메인화면으로
'껍데기뿐인 진보'와 이별할 때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껍데기뿐인 진보'와 이별할 때

['이명박 시대'를 맞으며] 다시 황무지에서

끝내 그렇게 되고 말 것을, 조짐이나 징후를 넘어선 엄연한 현실이었음에도 왜 그렇게 인정하기 힘들었을까. 지난 대선 기간 차라리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적이라도 일어났으면 하는 바램으로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던 건 그러니까 안일하게, 마음 편하게 세상을 읽고, 가져가려는 나약함이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겠다. (투표장에서 기표하는 마지막 순간에야 마음이 편해졌다. 그제서야 현실을 받아들인 셈이라고 할까)
  
  선거가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에서 책임론이 불거지고 모든 걸 알고 있었다는 투의 비평이 쏟아지고 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자 이제 어디서 다시 시작할까. 이제 하도 씹어 걸레조각이 되어버린 참여정부 얘기, 기다렸다는 듯이 터져나오는 민주노동당 분당 얘기, 하늘같은 대중들의 뜻을 헤아려 머리를 조아리는 일, 새 정권의 앞날을 미리 점치며 진보의 깃발 아래 등 돌린 대중을 다시 모셔오는 일, 다 필요하겠으나 오늘은 우리가 가진 밑천을 한 번 살펴보자.
  
  '진보'라 하였다.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좌파적 의식과 이에 따른 제도적 개혁과 이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기대하였다. 하지만 실제는 신자유주의 자본제적 질서의 유지, 강화의 큰 흐름에 저항 한 번 못해보고 떠내려가거나 올라타고 말았다. 그러니까 참여정부는 내용에 있어 좌파가 아닌 좌파적 기대에 의해 만들어진 정권이었던 거다. 참 막연한 장밋빛 그림이었다.
  
  정권이 바뀌면 무언가 제대로 일을 칠 것 같은, 그래서 이를 선택해 준 대중들의 위대함에 감복하기도 하고 어서어서 노를 저어 앞으로 나아가자며 희망의 노래를 불러댔다. 그런데 무엇이 바뀌었나, 오히려 돈과 권력을 틀어쥔 저들의 결속과 훼방은 극심해졌고, 구체적인 전망이나 실질적인 정책을 갖지 못한 정권은 관료와 언론의 손에 놀아나고, 약간의 개혁적 공간마저 고작 정치적 입장을 견지하는 정도의 선언적 형태에 자족하며 조촐한 그들만의 파티로 위안을 삼는 현실, 그 속에서 지도자들은 맘만 먹으면 언제든 뜻대로 세상을 바꿀 것처럼 허세를 부렸고 많은 이들은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방심의 들뜬 모습을 보였고, 대중들은 제 앞에 더 많은 것을 갖다 주길 기대하며 하루하루 팍팍한 현실을 견뎌왔고.
  
  돌이켜 생각하면 참여정부의 등장은 참으로 얻기 힘든 호기였다. 뭐랄까, 진보와 개혁을 위한 종자돈이거나, 쪽방이나마 아름다운 집을 지을 수 있는 틀을 마련했다고나 할까. 그리고 그야말로 정신 바짝 차리고 제자리를 정해 기운을 모아 틀을 꾸리고 이를 다져 나가야 할 중요한 시기였다. 약간의 틈을 보인 저들의 거대한 세력을 최대한 밀어붙여 적어도 저들에게 밀리지 않을 정도의 단단한 세를 확보하여야 했다.
  
  현실은 그러질 못했다. 농사철 동네 강아지라도 데려다 힘을 모아야 할 판인데 알량한 대로 그나마 있는 인재풀(pool)도 이를 키워가거나 결집시키지 못하였다. 그런 측면에서 노 대통령의 역할은 아주 중요하였는데 결과적으로 무능한 모습이었다. (이러한 개인에 대한 기대 자체가 진보역량이 처한 한계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겠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한편 각 분야의 진보역량은 더욱 위기감을 느끼고 절박한 심정으로 일을 꾸려가는 대신에 쪽방신세를 한탄하며 그나마 있는 종자돈을 야금야금 까먹기 시작했다. 그 동안의 힘든 생활에 대한 댓가나 보상 정도로 여겼는지도 모르겠지만 전체적 흐름 속에서 현재의 상황을 직시하고 이를 경고하거나 내일에 대비하는 목소리나 움직임은 아주 미약했다.
  
  그러니까 어설프고 성긴 자루나마 어렵사리 마련한 것을 제대로 그 내용을 채우기보다 시나브로 자루를 헐고 있었던 것이다. 한 번의 선거를 통해 얻은 것을 그것도 실질적인 승리이기보다 대중이라는 큰 흐름 속에 잠시 물 위로 떠오른 부표 정도에 환호하면서 마치 스스로의 역량인 것처럼 들뜬 채 아무 근거도 내용도 없는 장밋빛 환상에 젖어들었던 것이다.
  
  김대중 정부도 그랬지만 참여 정부도 힘든 상황 속에 막판 역전이라는 어렵사리 얻어낸 결과물이었음에도 사람들 사이에 대중에 대한 막연한 믿음이나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알게 모르게 자리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자만과 우월의식 속에 땡볕에 맨땅을 일구는 농부의 마음이기보다 서늘한 그늘에서 자리보전하는 일이 더 잦아졌으며 원론적 수준의 정치적 객담이나 선언적 수준의 캠페인성 참여가 주를 이루었다.
  
  그냥 잠시만 앉아서 따져보라.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의 색깔이란 게 일정한 정치적 성향 말고 실제적인 운동역량이 반영된 것이 제대로 있었는지를. 엄혹한 군부독재시절과 뒤이은 반민주적 정치행태에 대한 싸움 속에 얻어낸 것이 있다면 이제 새롭게 민주적 정부형태와 제도적 개혁을 이룰 수 있는 틀을 만들고 진보 역량의 실질적 내실화와 강화를 이루어 내야하는 아주 중요한 시기에, 또 참여 정부의 경우 앞의 김대중 정부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었음에도 이러한 중요성이나 심각성을 거의 외면해 버린 혐의를 벗기 힘들다. (앞에서 김대중 정부나 참여 정부라 함은 그 기간 동안의 모든 진보 역량을 통털어 말하는 시기적 의미로 쓴 것이다)
  
  누구 탓할 일이 아니다. 지나서 생각해보면 대중의 흐름은 일관되고 꾸준하였다. 저쪽의 어떤 소설가는 '칼로 자르듯 등 돌린 민심'이라며 흐뭇해 하였지만 지난 두 번의 대선 때도 '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면 특별한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하여 군부독재의 연장인 노태우 정권도 대중들이 선택한 것이라 한다면 새 당선자의 허물 쯤 문제가 안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 사태는 명확하다. 저만치서 밀려오는 거대한 수구적 물결 앞에 (에프티에이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 자본제도 본질상 이와 다르지 않겠다) 어설픈 울타리 둘러쳐놓고 자족과 나태와 안일의 나날을 보내온 거다.
  
  언제 어디서든 진보란 다수 대중의 이해에 기반하여 민감하게 반응하고, 대중 스스로 이에 반응할 수 있도록 조직, 선동하는 일이며, 대중 스스로 타방에 맞서는 것이며, 대중 스스로 정치의식을 갖는 것이며 끝내 대중이 주체로 서는 일일 것이다. 돌아보라. 지난 10년간 얼마나 진보적 책무에 충실하였는지.
  
  '잃어버린 10년'은 저들의 구호가 결코 아니다. 허송세월 넋놓고 지내온 진보의 뼈아픈 시절을 이름이다. 이제 '껍데기뿐인 진보'와 이별할 때다. 더 이상 통합신당이니 민노당이니 내년 총선이니 하는 잔머리 깨끗이 지워버리라. 지난 시절의 달콤한 기억이 있었다면 잊어라, 지난 시절 나태와 안일의 기억이 있다면 아로 새겨라. 전망과 정책의 부재를 탓할라 치면 석달 열흘 끙끙 앓으며 고민하라. 지역이든 분야든 자신의 삶터로 돌아가라, 거기서 다시 공동체를 꾸리고 경제적, 정치적 시각을 공고히 하라.
  
  자주 써먹는 말이지만 그람시의 '진지전'은 이 시기에 유효하다. 거기서 시작할 일이다. 진지를 구축하고 연대하고 진보의식의 끈을 바싹 조인 채 스스로와 공동체를 단련시켜라. 사방을 둘러보라. 다시 황무지와 낡은 보습을 끌고 서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떠올려보라. 거기 서있을 일이다. 거기서 시작할 일이다. 이제 새해 아닌가.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