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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위 전권론은 제3의 문제 초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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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비대위 전권론은 제3의 문제 초래한다

[반론] 당원총투표로 건곤일척의 승부 벌여야

홍기빈 씨의 글이 <프레시안>에 올라온 것은 1월 9일 오후 6시 38분경. 이 글에서 비례대표 불출마를 선언하지 않는다고 비난을 받았던 김창현 씨는 그날 오전 11시에 기자회견으로 비례대표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만큼 11일 당원토론회와 12일 중앙위원회를 앞두고 민주노동당 사태는 다시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홍기빈은 사회주의의 역사를 살피며 오늘날 NL과 PD의 문제를 해부하고 있다. 이 부분에 관한 그의 설명과 논리에 대부분 동의한다. 그동안 다수파인 자주파에 가려져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전진' 그룹의 단점은 추후에도 꾸준히 논의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진'은 (사회민주주의와 구분되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언뜻 영국노동당 내의 '벤 좌파'와 닮아 보인다. 그러나 벤 좌파가 1970년대 NEB(국민기업위원회) 설립을 포함한 AES(대안경제전략)라는 젖줄을 갖고 있는 것과는 달리, '전진'은 작년 선거를 맞이해 '제헌의회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대선강령을 내놓으며 다시금 관념적 급진성을 청산하지 못했음을 실토하였다. 이에 대해 그런 이념적 선언을 강령으로 제출하는 것이 왜 잘못이냐는 응답도 존재하지만, 민주노동당에 그리고 당내 평등파에 그런 류의 청사진이 필요하지는 않다. 그러나 내가 이 시점에서 '전진'의 한계를 짚고 넘어가는 것은 홍기빈과는 전혀 다른 목적에서다. 홍기빈은 '전진'을 비판하며 NL세력과 다를 바 없는 무책임함과 무능을 지적하지만, 나는 그들의 무책임함과 무능이, 그리고 이에 대한 통절한 반성이 부족하다는 점이 재창당이나 분당을 포함한 신당 논의를 빛바래게 하는 것이 더 못마땅하다.
  
  그래도 일단 홍기빈이 분당파 또는 신당파를 '전진'과 등치시키다시피 한 것은 올바르지 못하다는 걸 지적해야겠다. 김형탁 씨 등 전진 소속의 분당파 또는 신당파가 아직 당에 남아 있는 반면, 바로 며칠 전 구리시지역위원회에서 백현종 위원장 등 운영위원 전원이 당을 떠났다. "난파선에 남아 금고를 뒤지지 않겠다"는 그들은 '전진'이 아니다. 염탐하러 온 사람들까지 뒤섞여서 400명 이상의 회원수를 자랑하는 네이버 '좌파 지킴이' 카페에는 전진 바깥의 수많은 평당원이 가입되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전진 소속원이면서 분당론에 제동을 거는 흐름도 있다.
  
  또 나아가 나는 홍기빈의 지론이 과연 NL과 전진이라는 양대 정파의 게임을 깨트릴 수 있는가 의심한다. 제1의 문제와 제2의 문제를 비판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대안인 것은 아니다. 홍기빈의 견해나 혹은 그것이 낳을 결과가 '제3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홍기빈은 비대위의 논의과정이 투명하게 이뤄지고, 봉합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요지의 조건을 달면서 "최고위원회이건 중앙위원회이건 오로지 당원 총회의 권위에만 책임을 지는 조건에서 누누이 이야기한 세 가지 임무 즉 당 운영 평가 및 혁신 방안, 대선 평가, 공천권과 비례 대표 명부 작성을 포함한 총선 대책에 대해서 전권을 요구하여 실제로 집행해야만 한다"라고 주장한다. '당원 총회의 권위에만 책임을 지는 조건'이라는 구절의 의미를 잘 알 수 없지만, "전권을 요구하여 실제로 집행해야만 한다"에서는 비대위론자들의 문제점이 거의 비슷하게 노출되는 것 같다.
  
  현재 당내에서 폭넓게 운위되는 비대위는 그저 비상사태를 수습하고 다음의 지도부를 맞이할 채비를 갖추는 단순한 임시 조직이 아니다. 다가올 총선 대책은 물론 당의 향후 노선과 갖가지 쇄신방안들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조직이다. 비대위론자들은 심상정 의원에게 힘을 실어주자며 당내 다수파이자 권영길 후보를 지지했던 NL쪽에 손쉬운 요구를 하고 있다. 비대위 구성이 무슨 앞 번호 사람이 빠지면 뒷 번호 사람이 승계하는 비례대표 의원 승계식으로 결정하는 것인가? 예전에는 민주노총의 명망가였고 원내 수석부대표까지 역임하다 대선 후보 경선에서 2위를 차지였으며 선대위원장까지 맡았던 심상정 후보에게 비대위도 모자라 '비대위 전권'을 그냥 준다는 것은, 심 의원이 내놓을 혁신방안이 전적으로 옳다 여길지라도 바람직하지 않은 방법이다.
  
  작년 상반기 내내 자주파는 민주노총의 국민파와 합세해 민중참여경선제를 부르짖었고, 현 비대위론자들을 비롯한 평등파 당원들은 진성당원제의 명분에 기초하여 당원직선제를 지켜내고자 노력하였다. 비대위 전권론자들은 이러한 자신들의 역사를 부정하며 상대방의 그름에 의거해 자신의 성찰능력까지 은근슬쩍 저버릴 수도 있는 함정 앞을 기웃거리고 있다.
  
  이 오류는 '비례대표 공천권' 주장에서 극치에 달한다. 나는 '전략공천'이라는 것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상위 순번에 랭크된 후보가 일부러 조금 더 밑으로 가겠다고 자청하는 일에서부터 최상위까지는 아니나 당선가능권에 지도부나 심사위 등의 기구가 특정 분야의 전문가를 공천하는 일까지 얼마든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제한적이어야 하며, 그 제한 역시 당원의 의사에 의해 그 여부와 범위가 결정되어야 한다.
  
  NL의 비례대표 불출마를 요구하는 쪽이나 불출마를 받아들이겠다는 김창현 쪽이나 원칙보다 전술을 앞에 놓기는 매한가지다. 홍기빈의 경우 "민노당 당직자들 누구도 이번 총선에서 비례 대표 10번 위로 이름을 올릴 수 없음을 분명히 하자"는 제언을 내놓았는데, NL에서 당직 경험이 없는 이를 내보내면 허무하게도 달라질 것은 인물밖에 없다. 그렇다고 자주파의 출마를 원천봉쇄할 것인가? 그건 온전히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비대위가 당원의 선택권을 박탈하는 행위다. 그런가 하면 김창현은 비례대표 불출마선언을 하면서 소위 종북주의 청산에 대해서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고 토를 달았다. 이렇듯 NL과 일부 비대위론자들은 한가지를 잊어버리고 있다. 일부 당원들이 요즘 외치는 '청산'의 핵심은 인적 쇄신이 아니라 이념 정립이라는 사실 말이다.
  
  지금 NL측은 종북은 없다며 북핵사태나 일심회사건 당시 스스로의 방침에 아직도 자부심을 갖고 있다. "판도를 못 바꿔서 진 거지"라며 '졌으니까 졌다'는 하나마나한 대선평가를 내놓고, 심지어 '의회주의'가 대선의 패인이었다고 우기기까지 한다. 보아하니 차기 의원들이 18대 국회에서 '탈출'하여 4년동안 부지런히 '만인보'를 쓰면서 2012년에 기어이 광화문에 100만 민중을 집결시켜야 분이 풀릴 태세다. 그런 NL쪽에 2선후퇴를 요구하는 건 시간 죽이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
  
  임종인 의원이 열린우리당에 있던 당시 상임위원 선거에 나와서 "한나라당이 쳐놓을 철조망을 폭파하는 방법에는 세가지가 있다"고 연설한 적이 있다. 첫째, 밑으로 통과, 굴복. 둘째, 옆으로 통과, 적당한 우회. 세번째, 폭파. 세상사가 다 그렇다. 현재 비대위에 관한 제언들은 주창자들 입장에서는 잔꾀 어린 '옆으로 통과'이며, NL의 처지에서는 굴욕적인 '밑으로 통과'이다. 당의 혁신을 갈망하거나 분당까지 각오한 이들로서는 더더욱 수용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비대위 전권론이 과연 분당론보다 더 차분하고 온건하며 현실가능성이 높은가? 오히려 내가 보기에 비대위 전권론자들이 분당 수순을 밟으려고 작정을 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더구나 당원민주주의를 해쳐가면서 말이다.
  
  비대위는 대폭 권한을 이양받기 이전에 당원총투표로 인준을 받거나, 그들이 내놓을 '혁신안' 또는 '제2창당안'을 두고 역시 당원총투표를 거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때마침 마산의 몇몇 당원들이 종북 청산 등의 과제를 당원총투표에 부치자는 선언서를 발표했다(참고로 이들의 행동은 '전진'의 기획과는 무관하다). 이 정도는 되어야 고종석이 <한국일보> 칼럼에서 민주노동당에 고언한 '건곤일척의 승부'일 것이다. 나는 그들의 선언으로 인해 자주파나 전진 등의 거대 정파의 조직력을 능가할 '이심전심의 힘'을 믿게 되었다. 그것으로 종북주의 등 민주노동당의 난제들을 돌파하고자 하며, 그것이 실패하면 미련없이 당을 떠나기로 하였다.
  
  비상시국에 비대위를 구성해야 한다는 의견은 '배 고프니 밥 먹자'는 수준의 대안이다. 그래서 더 중요한 것은 비대위의 구성과 기능 그리고 그에 대한 민주적 원칙인 것이다. 당원총투표로 승인받지도 못하고, 게다가 비례대표 공천권까지 휘두른다면 비대위는 예의 지긋지긋한 '민주집중제'의 현현에 다름아니며 NL과 PD에 이은 신종 교조의 탄생에 지나지 않는다. 홍기빈이 이에 가담하지는 않을 것으로 사료한다. 기획과 집행에 관련한 비대위 전권론은 접어야 하고, 자주파의 비례대표 2선후퇴로 쏠리는 요구들도 중단되어야 한다. 종북 등에 관한 모든 논쟁을 당원총투표으로 끌어올리는 것이야말로 '로두스에서 뛰는 것'이다.
  
  추신: 홍기빈은 분당했을 경우 각 당파가 예전의 습속을 유지한 덕으로 각멸하는 시나리오를 상정하였다. 그렇게 망할 거라면 함께 있어도 망하는 게 당연하다. "진보니까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남으면 진보의 대변자다" "나는 진보니까 진보다"라는 세가지 오만이 은연 중 뇌리에 각인되었는지 모두 저마다 자신을 의심할 때이다. 달라지기 위해서는 갈라져야 할 수도 있다. 작금의 신당론 및 분당론의 목적도 나눠먹기가 아니라 달라지기이다. 달라지지 않고 살아남느니 종북 습성과 민주노총 상층부의 전횡 등을 털어내고 인민 앞에 떳떳하게 나서다 사라지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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