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 인수위원회가 내놓은 영어 공교육 강화 방안에 관심이 많다는 한 독자가 <프레시안>에 글을 보내왔다.
영국에서 언어교육교재개발을 전공하고 국내외 대학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쳤다는 김민수 씨는 인수위의 영어 공교육 강화방안에 "목표와 처방이 따로 놀고 있는 비전문적인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인수위원회에 "'영어 전용 영어수업'은 어느 수준의 수업인지", "인수위가 제시하는 영어전용 교사의 인재풀은 현실성이 있는지", "영어 구사력과 영어 교육 전문성을 같다고 보는지" 등의 질문을 던지며 인수위의 '비전문성'을 지적했다.
이어 그는 "현재 영어 공교육의 낡은 패러다임은 밑 빠진 독이다. 밑 빠진 독을 수리하지 않고 교사 영어구사력 제고에만 총 2조 원이 넘는 재원을 쏟아 붓는다고 기대처럼 독에 물이 가득 찰리는 만무하다"면서 '학습자 중심의 영어 수업', '교사의 교육 전문성 제고' 등을 대안으로 제기했다.
그간 영어 공교육의 문제와 인수위의 실천방안
외국어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학습' 외에도 '습득'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기존의 공교육에서는 영어'학습'만 과다하게 있었지 영어'습득'의 과정이 너무나도 빈약했다. '영어전용 교사', '영어전용 보조교사'를 공교육 현장에 투입하겠다는 것은 이를 통해 '습득'의 과정을 제공하겠다는 취지일 것이다.
이러한 '습득'은 해당 언어를 사용하여 의미있는 의사소통을 할 때만 이루어진다. 그런데 문법 중심의 교과 과정, 표현 능력과는 무관한 입시, 영어 공교육계의 역량 부족, 열악한 교육환경 등으로 인해 '표현 능력의 습득'이라는 과제는 사교육 시장과 해외 언어연수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영어 공교육의 이런 모순적 구조가 한계에 부딪히기 시작한 것이 영어 교육 관련 논쟁이 불붙게 된 본질적 원인일 것이다.
차기 정부는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기본 생활회화가 가능하도록 영어 공교육을 바꾸겠다는 것을 목표로 내세운다. 나는 이 목표에 반대할 의도는 추호도 없다. 이마저도 안 된다면 거의 모든 국민에게 최소 10년 동안 영어 배우기를 강요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인수위의 구체적인 실천방안 중 몇 개를 보면 이 목표에 찬성한다고 말하기가 겁난다.
'영어전용 영어수업'은 어떤 수업을 말하는가?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영어전용 영어수업은 어떤 수업을 말하는가?'이다. 영어 문법 등을 영어로 설명하는 교사 중심의 강의식 수업은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서로 영어로 의사소통하게 하는 학습자 중심의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는 것은 이만큼 어려운 것도 아니다. 실례로 학습자 중심의 수업을 주로 연구해 온 영국의 영어교육 전문가가 영어 구사력이 낮은 교사의 영어사용 수업진행 능력을 높이기 위해 펴낸 책을 보면, 학습자 중심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기 위해 교사들에게 요구되는 영어수준은 초등학교.중학교의 경우 중급 정도면 충분하다.
하지만, '학습자 중심 수업'을 위해 설계된 교재도 없는 상황에서 언어교육 문외한이었던 영어전용 교사들이 '학습자 중심 수업'을 진행하리라고 기대하기는 무리가 너무 많다. 교사 부임 전에 6개월 이내의 연수를 받는다고 해도, TESOL 과정을 이수한 사람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현재 인수위가 제시하는 영어 전용 교사제 도입 이유나, 한 조사기관에서 '영어로 영어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영어교사는 23.3%만 가능하다'고 집계한 것 등을 볼 때 한국에서 영어전용 교사에게 요구하는 영어 수준은 강의식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 정도의 고급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 만약 '교사 중심의 강의식 수업'을 위한 고급영어 구사능력을 전제로 하지 않았다면, 현재로도 적당한 지원과 길지 않은 연수만으로 '학습자 중심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중급 이상의 영어실력을 갖추고 있는 교사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영어전용 교사' 제도 도입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 될 것이다.
누가 영어전용 교사가 될 것인가?
인수위는 국내 외 영어교육과정 이수자(TESOL 등), 영어권 국가 석사학위 이상 취득자, 교사자격증 소지자, 전직 외교관ㆍ상사 주재원 등 전문직에게 영어전용 교사 지원자격을 주겠다고 했다. 일단 '이질적인 집단'을 우선 살펴 본 뒤, TESOL 등 국내외 영어교육과정 이수자에 대해 얘기하도록 하겠다.
영어권 국가에서 석박사 학위를 따온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 그리 흔하지 않은 고급인재들이다. 이들이 해외유학을 결심했을 때는 분명 어떠한 목표와 뜻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전공이 영어교육과는 무관하다면, 그들이 유학을 떠날 당시의 목표와 뜻이 영어교사가 되는 것은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이들의 유창한 영어실력은 학업의 부산물일 뿐이다. 이런 부산물을 자기 직업의 바탕으로 삼는다는 것은 이들에게나, 이들에게 교육을 받는 학생들에게나 긍정적일 수는 없다.
게다가 필자의 관찰에 따르면 모든 외교관들이 높은 영어 구사력을 갖춘 것은 아니다. 그리고 외교관은 정년이 보장된 국가공무원이다. 인수위는 영어전용 교사를 농산어촌에 우선 배치한다고 하는데, 높은 영어 구사력을 갖춘 영어권 석박사학위 소유자, 전진 외교관, 전직 상사 주재원 중 계약직 교육공무원의 신분으로 농산어촌 지역에 우선적으로 가서 영어를 가르칠 사람들이라…. 도대체 어떤 부류의 사람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인지, 필자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현재 교육부에서는 농산어촌에 더 많은 교사들을 보내기 위해 면 단위 또는 도서지역에서 근무하면 정교사들의 경우 경력을 1.5배로 계산해 주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인수위는 이들 영어전용 교사의 신분을 계약직 교육공무원이라고 했다. 계약직 교육공무원의 대표적인 사례는 다름 아닌 기간제 교사이다. 현재 기간제 교사의 최고 호봉은 14호봉으로 제한되어 있다. 높지 않은 급여까지 생각한다면, 특히 그들의 인생 역정이 영어교육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지 않다면, 도대체 어떤 부류의 '영어 고급인력'들이 영어전용 교사에 지원할 것이며, 지원한다면 그들은 어떤 생각과 목표로 영어교사가 되려고 하는지 궁금해진다.
물론 기간제 교사의 급여보다 더 높은 급여,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함으로 더 많은 '영어 고급인력'을 영어전용 교사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는 일반교사 비해 영어전용 교사를 더 우대한다는 것을 명백하게 자인하는 것이 되고 만다. 가뜩이나 영어 구사력을 기준으로 한 영어교사 줄 세우기가 명백해지는 마당에, 이는 학교 내에서 일반교사와 영어전용 교사와의 관계 설정에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두 번째는 누구를 지적하는지 모호한 '교사자격증 소지자'들이다. '교사자격증 소지자'가 영어교과 자격증 소지자만을 뜻한다면 도대체 무슨 이유로 여러 가지 반대를 무릅쓰고 무리하게 영어전용 교사제도를 추진하는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영어전용 교사제도 외에 다른 방안을 통해서도 소기했던 목표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데 말이다.
'교사자격증 소지자'가 영어에는 능통하지만, 영어교과가 아닌 다른 교과의 교사자격증을 갖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이럴 경우 논란의 여지는 줄어들 수 있다. 비록 영어교과는 아니지만, 국가가 이미 인정한 '교사자격'과 차기 정부에서 공식 인정할 영어 구사력을 갖춘 재원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두 가지 요소와 영어교사로서의 전문성은 또 별개의 문제이지만, 초등학교로 영어교육이 확대될 때 타교과 교사자격증 소지자들도 영어전담 교사로 확충된 전례도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들은 인수위의 영어전용 교사제도를 위해 발굴해야 하는 새로운 재원은 아닌 셈이다.
이제 인수위가 발굴할 새로운 재원만 남았다. 국내외 TESOL 등 영어교육과정 이수자들이다. 2만 3000명이라는 이들을 발굴하기 위해 '교사가 되고 싶으면 사범대 졸업 등을 통해 교사자격증을 따라'는 국가가 한 중요한 약속 중 하나를 파기하기까지 했다. 차기 정권이 의도했든 아니든 영어전용 교사제도가 기존 여타 제도와 본질적으로 차별되는 점은 영어교사의 공급을 국내외 사교육 시장으로 개방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한 가치판단은 독자 여러분께 맡기겠다.
하지만 TESOL 등 국내 및 해외영어교육과정이 대한민국 영어 공교육에 대해 얼마나 고민해 왔고, 또 어떤 연구 성과를 갖고 있는지 묻고 싶다. 인수위도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채용하기 전에 교수법 및 교사로서의 자질 함양을 위한 6개월 이내의 연수를 거친다'는 방책을 내놓으면서 사실상 TESOL 등을 거친 영어전용 교사 잠재인원들의 전문성 부족 문제를 인정했다. 이는 인수위가 영어교사 공급을 개방하는 이유를 오로지 현직 교사들의 영어 구사력 부족으로 들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아이러니한 지점이다.
외국어 교사는 전문직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인수위가 제안한 '영어 공교육 완성 실천방안'을 살펴보면서 강하게 느껴지는 그들의 영어교육에 대한 '고정관념'들이다. 나는 이에 동의할 수 없을뿐더러 이 관념들이 인수위의 정책의 기저라고 판단되기 때문에 이를 비판하고자 한다.
첫째는 교사의 영어 구사력만 강조하고 있을 뿐, 외국어교사로서의 전문성은 크게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외국어 교사는 전문직이다.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좋은 영어교사가 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이 외에도 해당 언어에 대한 언어학적 이해, 외국어 교수 방법론, 제2언어 습득론, 수업 운영 방법, 교재 사용법, 학습자에 대한 이해 등 폭넓은 분야의 지식과 실제 교육현장에서 수업에 이를 녹여내는 교육경험이 필요하다. 또 외국어 강사가 아닌 공교육 교사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이에 국한되지 않는다.
하지만, '영어전용 교사' 재원으로 영어권 국가 석사학위 이상 취득자, 전직 외교관ㆍ상사 주재원 등을, '영어전용 보조교사' 재원으로는 영어 잘하는 대학생, 영어 잘하는 주부 및 지역주민, 해외교포를 활용하겠다는 인수위의 발표를 보면, 외국어 교육이 엄연한 전문분야라는 사실을 얼마나 고려하고 있고, 또 얼마나 중시하고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영어수업은 영어로만 진행되어야 한다는 도그마
두 번째 비판 대상은 영어수업은 영어로 진행돼야 한다는 도그마다. 물론 외국어 수업에서는 해당 외국어에 대한 노출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기에 교사가 이를 되도록 많이 사용하는 것은 분명 권장할만하다. 하지만, 나는 영어 수업은 영어로'만' 진행되어야 한다고 못을 박는 정책에는 반대한다. 이는 언어습득 면에서나, 교수방법 면에서나 모국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최신 언어교육학계의 성과와 흐름에도 맞지 않는다.
또 아직은 영어를 비롯해 모든 교과가 주입식 강의식 교수방법에 의존하는 것이 일반적인 한국의 교육 상황에서는 영어수업을 영어로 진행한다는 것은 '영어 문법을 영어로 설명'하는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영어 공교육의 역량과 인프라가 아직 이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법중심, 교사중심, 주입식, 강의식 영어교육의 패러다임에서 탈피하지 않는 이상, '영어수업은 영어로만' 원칙은 교사에게 필요 이상의 높은 영어구사력을 요구하게 된다. 이는 전보다 많은 수의 학생이 영어 공교육에서 낙오되고, 전문성을 충분히 갖췄지만 영어 구사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한국인 교사들이 마치 원어민 교사를 포함한 단순 영어 유창자들보다 열등한 존재인 것처럼 만들어 버리는 결과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영어로만 진행되는 영어수업이 한국어를 병용하면서 진행되는 수업보다 우월하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특히 이를 위한 교재와 교사 연수 등 시스템이 지원되지 않는 상태에서 영어수업은 영어로만 진행해야 한다고 내모는 것은 폭력에 가깝다.
밑 빠진 독부터 수리하고 물을 붓자
이 글의 목적은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다. 위의 비판은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한 비판이다. 인수위의 접근법과는 사뭇 다른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첫째, 영어에 대해서 가르치는 영어교육이 아니라 영어 그 자체를 가르치는 영어교육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기를 제안한다. 특히 욕심처럼 빠른 시일 내에 모든 영어수업은 영어로 진행되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면 더욱 그래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영어문법 등 영어에 대해 가르치는 것에는 고급영어 구사력이 필요하지만, 영어 그 자체를 가르치는 영어 교육에는 이보다 훨씬 더 낮은 수준의 영어구사력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영어에 대해 가르치지 말고 영어를 가르치라는 테제는 강의식.주입식 수업을 지양하고 학습자 중심 수업을 지향하는 것과도 상통하기 때문에 회화능력 향상이 목적이라면 패러다임을 더더욱 바꿔야 한다. 물론 이 테제는 영어교육계 내에서 식상한 용어가 되어 버린 지 오래고, 내가 이를 처음 제안한 사람도 절대 아니지만, 인수위에서 나오는 얘기 중 어느 곳에도 이를 알고 있다는 징표가 느껴지지 않기에 하는 말이다. 학생 영어구사력 신장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현재 영어 공교육의 낡은 패러다임은 밑 빠진 독이다. 밑 빠진 독을 수리하지 않고 교사 영어구사력 제고에만 총 2조원이 넘는 재원을 쏟아 붓는다고 기대처럼 독에 물이 가득 찰리는 만무하다.
이 패러다임의 전환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이 패러다임에 맞는 교재가 있어야 하고, 이에 대한 지속적인 교사 연수와 지원이 있어야 한다. 또 학습 환경도 바뀌어야 한다. 이는 시스템의 대대적인 전환을 의미하고 결코 쉽게 달성될 수 있는 목표가 아니다. 하지만 단언컨대, 영어교육계의 영어구사력을 대대적으로 끌어 올리는 것보다는 쉽게 달성될 수 있는 목표이다. 또 이러한 영어교육의 이러한 패러다임 변화가 아직은 주입식 교육이 대세인 다른 교과목의 교육방법에도 변화를 가져 오리라고 기대해 본다. 언어교과가 주입식 교육이 안 통하는 가장 대표적인 교과인데, 영어교육의 변화가 앞장서서 주입식 교육으로부터의 탈피를 이끈다면, 그동안 영어교육이 다른 교과에 미쳤던 폐해를 조금이나마 보상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가져 본다.
현직교사 연수도 전문성 제고를 중시해야
현직교사 연수의 교육 주목표가 영어구사력 제고인지 영어교육 능력 강화인지 인수위 발표 자료에도 명시되지 않고 인수위 공청회는 참석할 수도 없으니 이를 자세하게 알아 볼 수도 없지만, 현직교사 연수에 대해서도 전문성 제고를 중시하는 입장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현직교사 연수도 영어구사력 신장에 초점을 맞춘 어학연수보다는 영어교육 능력 강화에 초점을 맞춘 영어교사 연수여야 한다. 영어교육 능력강화 연수를 영어로 진행한다면 이게 바로 내용기반 학습법, 즉 몰입식 교육법이고, 인수위가 강조하는데로 '영어 구사력 신장'에도 더욱 효과적이 될 것이다.
또 해외 영어교육 전문가들의 동영상 강의를 만들어 교사들이 틈틈이 볼 수 있게 하는 것 등도 투자되는 재원에 비해 많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중급 정도의 영어수준으로도 충분히 이해 가능하면서, 실제 교육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강의들을 다양하게 준비할 수 있다. 국내로 초청한 영어교육 전문가의 강의와 동영상 강의를 충분히 들은 교원을 해외연수 대상자로 우선 선발한다면 국내 연수의 동기 부여와 해외 연수의 효율성 제고에 모두 기여하게 될 것이다.
국가 프로젝트로의 영어 교과서 개발
그리고 외국 교재 등 다양한 교재가 공교육에서도 활용될 수 있도록 규제 완화한다고 했는데, 이는 현 영어교과서의 문제와 한계를 인식한 결과라고 믿는다. 하지만 외국에서 출판된 교재들 대부분은 영어권 국가에 언어연수를 온 학생들을 현지 원어민 교사가 가르치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교재라서 공교육 상황과는 여러 가지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또 값도 기존 교과서는 물론 다른 국내서적 비해 훨씬 비싸다. 이보다는 국제적인 영어교재개발 전문가의 컨설팅을 받으면서, 국내 영어교육학자와 현장 교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한국 공교육 실정과 새로운 목표, 한국 학생들의 관심사에 맞는 맞춤 교재를 개발하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이고, 목표달성 면에서도 더욱 효과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이러한 교재개발은 이웃나라 일본 뿐 아니라, 불가리아, 터키, 나미비아 등 여러 나라에서 국가 프로젝트로 해 왔고, 하고 있다.
현재 영어교과서는 검인정 교과서로 동일한 교육과정 당 십여 종의 교과서가 발행되고 있는데, 교과서 발행을 이렇게 춘추전국시대로 만들어 놓은 것이 천편일률적이면서도 고만고만한 교과서만 십여 종 있는 원인 중 중요한 하나라고 본다. '시ㆍ도별 교과서 사용의 자율성 확대'보다는 영어교과서를 전국적으로 통일해야 규모 있는 예산을 투자할 수 있고, 이는 교과서의 질적 향상으로 직결될 것이다. 이는 정부가 아닌 다른 곳에서는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아니다. 대한민국 영어 공교육은 교과서와 입시를 떠날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하시길 바란다.
해외 영어교사 수입도 전문성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야
'영어수업은 영어로만'의 원칙을 고수한다면, 한국인 영어교사는 원어민 교사에 비해 열등한 존재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원어민을 그만큼 도입하고 싶었으나 재정 문제를 고려해 내놓은 고육지책 중 하나인지, 아니면 국부를 해외로 유출하기 보다는 국내 영어 고급인력을 활용하자는 정책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인수위 발표에 원어민 보조교사에 관한 부분도 있기에 제안을 하나 더 한다. 영어교사를 해외에서 수입할 때도 영어교사로서의 전문성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기 바란다.
하지만, 불행히도 원어민 수준의 영어구사력과 영어교사로서의 전문성을 겸비한 사람은 전 세계적으로도 그리 많지 않아서 한국 공교육에서 필요한 만큼 맘껏 초빙하기는 쉽지 않다. 예산 문제를 고려한다면 더욱 어렵고, 범위를 한국계 또는 영어 상용 6개국 출신으로 제한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필자는 <한겨레> '왜냐면' 지면을 통해 인도 등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국가에서 전문 영어교사를 초빙하자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다.
최근 영어교육 토론이 활성화됨에 따라 같은 맥락의 주장이 <중앙일보>를 통해 다시 제기되었는데, 이 기사들에 대한 댓글 중 비판적인 의견을 살펴보면, 필자의 주장과는 달리 해당 기사의 논조가 '인도인 교사를 쓰자. 싸지만 그럭저럭 쓸 만하다.' 정도로밖에 읽어지지 않는데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인종주의와 저개발국가에 대한 편견들을 제외하고는 비판다운 비판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비판을 위해 한 가지 부연설명을 하자면, 우리가 초빙해야 할 사람들은 알아듣기 힘든 인도식 발음의 영어를 구사하는 인도인이 아니다.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의 고급 영어를 구사하고, 영어교사로서의 전문성과 경험을 충분히 갖춘 전문 영어교사들이다. 영어를 '특정 국가의 언어'가 아니라 '국제어로서의 영어'로 본다면, 그리고 영어교사의 자질을 국적과 피부색이 아니라 이력서를 보고 판단한다면, 특히 영어교사로서의 전문성을 중시한다면, 한국에 와서 영어를 가르쳐 보기 전에는 영어교육 문외한 원어민 교사들보다 이들이 못할 것은 전혀 없다.
끝으로 한 마디
이명박 당선인과 인수위는 국토를 바꿀 수 있고, 백년지대계를 바꿀 수 있는 막강한 대통령의 권한 행사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은데, 불행히도 현재 대한민국 교실과 학습에서 최종 결정권자는 다름 아닌 학생들이다. 전직 외교관이 아니라, 영어를 원어민 뺨치게 잘하는 전직 통일외교부(인수위에서 검토했던 정부부처 명칭 중 하나이다.) 장관 할아버지가 와서 영어전용 수업을 한다고 해도, 학생들이 수업 안 듣고 엎드려 자 버리면 다 말짱 도루묵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인수위 차원에서 최종 수요자이자 최종 결정권자인 학생들의 의견을 조사했다는 등의, 학습자 중심의 연구조사를 했다는 얘기는 아직 못 들어봤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인수위의 사교육을 받지 않고도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기본 생활 영어로 대화할 수 있도록 함'이라는 목표를 지지한다. 지지자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제기한 제안이 받아들여 좋은 결과를 내는 것만큼 기쁜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수위 문건의 정확한 표현인 ''모든' 학생이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기본 생활 영어로 대화할 수 있도록 함'이라는 목표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말꼬투리를 잡는 것 같지만, 언어장애가 있는 학생은 고등학교도 졸업시키지 않겠다는 얘기인가?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인수위의 정책이 교육현장과 많이 떨어져 있다는 생각도 들고 '장애가 있는 경우 낙태가 어쩌구저쩌구'라고 한 당선인의 철학이 이 문건에까지 은연 중 드러난 것이 아닌가. 또 이게 모두 오해라면 영어에 몰입된 인수위의 한국어 구사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인수위 문건의 첫 장을 펼치면서부터 기분이 착잡했기에 붙이는 사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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