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 대통령을 꿈꾸는 버락 오바마, 첫 여성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힐러리 클린턴, '공화당의 이단아' 존 매케인. 그들이 주인공인 각본 없는 드라마는 클린턴 행정부 말기 이후 10여년의 세월동안 사라졌던 미국의 담론을 부활시키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의 한 기자는 감격스러워했다. 미국은 어떤 나라이며 미국의 미래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담론이다.
미국인들은 언론인, 교사 등 특정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자기가 지지하는 대선 후보를 거리낌 없이 밝힌다. 그리고 지지 후보의 상대가 되는 정치인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언제나 상대 후보의 장점을 먼저 추켜세운다. 하지만 '당신이 지지하는 후보는 이런 점이 존경스럽다'라며 시작한 토론은 어느새 치열한 신경전으로 바뀐다.
민주당 예비선거를 앞둔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에서 만난 대학생들은 미국의 정치 열기와 정치 토론의 진수를 그대로 보여줬다. 오바마 지지자 7명, 힐러리 지지자 1명으로 매치업 자체가 불공평했지만 오바마 측 학생들은 힐러리 지지자를 결코 몰아세우지 않았다. 힐러리 측 학생 역시 전혀 위축됨 없이 오바마의 장점을 인정하면서도 힐러리를 지지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짚어나갔다.
|
8일 오후 현지 언론 <피츠버그 포스트-가제트> 회의실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한 학생들은 피츠버그 지역 3개 대학에서 오바마나 힐러리를 지지하는 운동을 선두에서 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대학에서의 선거 열기는 단지 자신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게 이들의 전언이다. 오바마 열풍으로 불붙은 젊은이들의 정치 참여 분위기는 미국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음을 웅변하고 있었다.
- 지지 후보를 위해 어떤 활동을 하나?
|
켈리 그리그(포인트 파크 대학) : 오바마 캠프에서 활동한다. 학교 차원에서 청년 지지층을 모으는 일을 한다. 민주당 학생회(College Democrats)라는 조직을 창설할 예정이다. 오바마 지지자를 포함해 대학 내 민주당 지지자들의 모임이다. 오바마 캠프에서 전화를 하면 도우러 간다. 가끔은 밤 12시에도 전화가 온다. 유권자들의 집을 방문해 유권자 등록과 부재자 투표 등을 돕는다.
리사 그레이거(피츠버그 대학) : 민주당전국위원회(DNC)에서 운영하는 민주당 대학생회의(College Democratic Chapter) 회장이다. 이 조직 역시 힐러리와 오바마 두 호보 모두를 위해 일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힐러리를 지지한다. 힐러리 캠프나 오바마 캠프에는 자원봉사를 하는 학생들이 많다. 나는 일주일에 2~3회 힐러리 캠프를 방문한다.
- 힐러리와 오바마 모두 대통령이 되면 이라크에서 즉각 철군하겠다고 공약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또한 오바마는 변화를 얘기하는데 정치 현실에서 근본적인 변화는 쉽지 않다. 그래도 그들을 계속 지지할 것인가?
리사 : 누구든 당선이 되면 이라크 상황을 다시 평가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이라크와 미국의 상황을 고려해 점진적으로 철군을 진행할 필요가 있긴 하다. 그러나 두 후보 모두 철군 약속은 반드시 지킬 것이다.
톰 파이크(카네기 멜론 대학) : 오바마가 말하는 근본적인 변화는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오바마를 지지하는 것은 변화의 속도가 아니라 그가 이끄는 변화의 방향이 올바르다고 보기 때문이다.
|
- 오바마 지지는 유행이나 바람이 아닌가?
캐리 포터(포인트 파크 대학) : 지난주 우리 학교에 클린턴의 딸 첼시가 와 연설을 했는데, 그 후 힐러리 지지자가 갑자기 많이 늘어나는 현상이 있었다. 또 오바마 측 연설자가 오면 오바마 지지세가 갑자기 느는 것도 사실이다. 왔다 갔다 하는 학생도 꽤 많다.
켈리 : 오바마 지지자의 수가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건 바람이 아니다. 정책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사라 포스너(피츠버그 대학) : 나는 피츠버그 대학에서 민주당 코디네이터로 활동한다. 우리 학교는 오바마 지지자가 분명 더 많다. 그들은 오바마의 정책과 입장을 지지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오바마는 처음부터 이라크 전쟁에 반대했다. 그것이 많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오바마에게는 남녀노소, 종교에 관계없이 미국을 단결시키는 힘이 있다.
|
매트 맥케이브(피츠버그 대학) : 나 역시도 피츠버그 대학 학생들의 절대 다수가 오바마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것은 사람 자체를 지지하는 게 아니라 정책을 지지하는 것이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면 단순한 정권교체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아주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는 로비스트가 아니라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정책을 펼 것이다.
리사(힐러리 지지) : 그런 주장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피츠버그 대학에 오바마 지지가 많긴 하다. 그러나 전부가 정책에 관심을 갖는 것은 아니다. 오바마의 연설 기술, 연설을 들었을 때의 기분 때문에 지지하는 경우도 많다.
톰 : 나는 오바마 열풍이 불기 훨씬 전인 2006년부터 그를 지지했다. 오바마가 의원 선거 운동 과정에서 했던 연설과 실제로 이행한 정책을 살펴보니 일치하는 부분이 아주 많았다. 그런 정치인은 매우 드물다.
사라 : 힐러리는 너무 자주 말을 바꿔 신뢰도가 떨어졌다. 반대로 오바마의 지지도가 올라갔다.
폴 콤(카네기 멜론 대학) : 우리 학교에도 오바마 지지자가 절대 다수다. 오바마는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는 계층까지 끌어들이는 노력을 한다. 반면 힐러리 캠프에서는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거나 잠재적인 유권자가 아닌 사람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게 큰 차이다.
리사(힐러리 지지) : 오바마가 새 유권자 확보에 주력하는 건 사실이지만, 힐러리도 지역 공동체에서 민주당원이건, 공화당원이건, 무당파이건 새 유권자를 등록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
마리아 모로(카네기 멜론 대학) : 학생들은 누가 우리 시대의 리더가 될 수 있는지에 관심이 많다. 대학에서 오바마와 힐러리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일을 해왔다. 학생들이 그걸 보고 오바마 지지로 쏠리는 걸 많이 봤다.
- 펜실베이니아에서는 힐러리의 인기가 여전히 높다.
매트 : 펜실베이니아 주민들은 힐러리의 남편 빌 클린턴이 199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때부터 관심이 많았고 지지율이 높았다. 특히 필라델피아 시장은 클린턴 부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오바마가 혜성처럼 나타나 몇 주 동안 펜실베이니아를 몇 차례 방문하면서 지지도가 급상승했다. 오바마는 이 지역에 와서 볼링을 하는 등 사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 그럴 때마다 인기가 치솟았다. 유권자들은 그를 직접 보고 그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알게 됐고 이제는 지지도 격차도 없다.
- 정책을 설명했더니 오바마를 지지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이 대학생들에게 어필했나?
마리아 : 개별적으로 정보를 제공한 게 아니라 웹 사이트에 그들의 공약과 정책을 보여주면서 편견 없이 보도록 했다. 대학생들은 역시 교육 정책에 관심이 있다. 오바마는 교육 공제 혜택을 연 4000 달러까지 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건 정말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된다. 등록금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고 학자금 대출 상환이 어려운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 오바마 자신이 학자금 대출을 갚았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 공약이 나왔을 것이다.
건강보험 문제도 상당히 심각한 문제인데 오바마는 부모님 보험 밑에서 만 25세까지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한다고 했다. 그 역시도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오바마는 엄청난 액수의 정치자금을 모았다. 모든 사람들이 조금씩 내면서 이뤄낸 것이다. 그것은 오바마가 화합의 정치를 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변화는 조금씩 이뤄지고 있다. 10살 어린이부터 90세 노인까지 모여 일하는 오바마 캠프의 모습이 단적인 예다. 풀뿌리 운동의 근본을 보여주는 것이다.
|
- 대학에서 선거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나타나는 변화는?
폴 : 오바마의 등장은 20세기 초 미국의 '진보시대'가 다시 열리는 것과 비견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당시 시민들은 처음으로 상원의원 선출권을 가지면서 정부를 직접 통제할 권한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클린턴 행정부 말기부터 부시 행정부에 이르기까지의 정책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책을 위한 정책이었다. 미국과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목표를 향해 갈 수 있는 방법을 파악하는 것이 올바른 정책이다.
리사 : 젊은이들이 선거 과정에 참여하면서 정치에 미치는 목소리가 커졌다. 후보들은 이제 학생들이나 젊은 부부들의 요구를 파악하고 그걸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사회보장 제도 등 노인을 중심으로 한 정책에만 산경을 썼던 과거와 대조적이다.
매트 : 1976년 카터 대통령 당선 당시의 경선 이후 처음으로 치열한 선거를 치르고 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무언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에 흥분해 하고 있다. 그것이 상당히 좋은 영향이다. 경선이 길어지는 게 문제라는 말도 있지만 클린턴이 대통령 후보가 될 때도 48개 주에서 경선이 끝난 다음에야 후보를 결정할 수 있었다.
|
- 부모님들에게도 오바마를 지지하라고 설득하나?
매트 : 내 어머니는 오랫동안 공화당 지지자였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8년을 겪고 나서 민주당으로 옮겼다.
캐리 : 가족 모두를 설득해 오바마를 지지하게 했다. 아버지는 공화당 지지자였는데 오바마 때문에 민주당으로 바꿨다.
사라 : 할머니는 열렬한 클린턴 지지자였다가 몇 주 전부터 오바마 지지로 바꿨다.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켈리 : 뉴햄프셔에 사는 부모님은 선거권을 가진 이후 단 한 번도 투표를 하지 않았다. 정치에 관심이 없었고, 정치에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와 동생이 오바마 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걸 보고 관심을 많이 갖게 됐다. 아직은 투표를 하라고 조르고 있는 단계다.
- 이라크 전쟁으로 미국의 대외 이미지가 추락했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면 이미지를 개선 할 수 있다고 보나?
사라 : 국제관계를 전공하기 때문에 후보들의 외교정책을 가장 중시하고, 그래서 오바마를 지지한다. 그는 처음부터 일관되게 이라크 전쟁을 반대했다. 정치적인 이해보다 원칙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특히 적대국이라도 양자접촉을 해야 한다는 게 오바마의 입장이다. 부시와 체니는 적대국과 협상하지 않고 양자대화를 거부했는데 그건 아주 잘못된 판단이었다.
톰 : 외국의 많은 언론들은 미국을 폭군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나의 조국은 폭군으로 불리는 나라가 아니라 오바마가 건설하고자 하는 새로운 나라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 문제는 나에게 아주 중요하다. 오바마는 수용소의 폐쇄를 주장한다. 부시 행정부는 관타나모에 대해 많은 부분을 왜곡했다. 그건 헌법 위배였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미국 법의 함정을 이용해 법망을 피해가려 했었다.
|
폴 : 냉전시대 전까지 미국의 대외정책은 대립으로 점철됐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미국인들은 미국이 독단적으로 행동해야 할지 국제사회와 화합해야 할지를 판단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젠 분명하다. 미국은 국제사회와 함께 손을 잡고 같은 입장을 취해야 한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과거의 패러다임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다. 이라크전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오바마는 다른 국가들과 동등한 외교관계를 맺는 정책을 펴 나갈 것이다.
리사 : 힐러리의 외교정책에도 강점이 있다. 수많은 경험이다. 이라크 문제가 가장 중요한데, 두 후보 모두 그 문제에서 미국을 해방시킬 것이다. 힐러리는 아프리카, 동아시아, 동유럽 등을 방문하면서 많은 국가 지도자 만난 경험이 있다. 지구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성, 어린이, 환경 등 여러 가지 문제를 다루기도 했다.
- 매케인에 대한 지지도 오바마나 힐러리 못잖다. 왜 그렇다고 보나?
톰 : 사람들은 아직 매케인을 모른다. 그는 관타나모 수용소를 유지하려는 법안에 대해 처음에는 반대하다가 나중에 타협해 법을 통과시켰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매케인을 공화당의 이단아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민주당 내부의 경쟁이 치열해서 매케인의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매케인에 대한 지지는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폴 : 매케인은 2000년 공화당 경선에서 공화당의 기존 입장과 반대되는 정책을 용감무쌍하게 내놨다가 대통령 후보가 되지 못했다. 그 후 공화당 지지자들이 자신의 이단아적 속성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그걸 포기했다. 그 후 자신을 이단아라고 말하는 매케인의 주장은 모두 거짓이다.
캐리 : 부시 대통령은 무능한 이미지 때문에 정책도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매케인은 아직 그 정도까지는 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바로잡힐 것이다.
|
- 선거 후에도 정치활동을 계속 할 생각인가?
매트 : 누가 당선되느냐에 달려있다. 오바마가 당선되면 적어도 몇 년간 활발하게 참여할 것이다. 오바마가 우리에게 요청하는 것은 투표에 참여하라는 것만이 아니라 젊은층이 정치에 참여하라는 것이다. 자신이 좋은 교육정책을 내놓겠으니 젊은이들도 국가에 할 일을 하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한다.
리사 : 선거가 끝나고도 지금과 같은 참여 수준이 유지될지는 모르겠다. 첫 흑인 대통령, 첫 여성 대통령 탄생 가능성 때문에 관심이 많은 것이다. 대선 말고도 대량 학살 문제, 환경 문제 등이 있지만 사람들이 그런 문제에 계속 참여할지는 회의적이다.
사라 : 바로 그것이 힐러리와 오바마의 근본적인 차이다. 오바마는 풀뿌리 선거운동을 통해 풀뿌리 정치를 형성시키는 노력을 많이 한다. 그렇게 사람들이 직접 정책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계속 정치에 참여할 것이다. 대량 학살 문제를 얘기했는데, 다르푸르 대학살은 풀뿌리 운동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막을 수 없는 것이다.
마리아 : 우리 정치에는 젊은층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그게 실현될 때까지 계속 참여할 것이다. 여기 온 학생들은 대부분 그럴 것이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재단과 미국 동서센터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2008년 한미 언론교류 프로그램'에 참가해 작성한 것입니다.
☞ 美 대선 열전의 현장 <상> "오바마·힐러리 모두 자랑스럽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