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오전 지하철 '톈안먼 동역'에서 내려 'D' 출구로 나오자마자 눈에 들어 온 것은 평소보다 많은 공안 차량과 경찰이었다.
톈안먼 광장과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는 보도에는 많은 일반인들이 이날 최고 35도에 달한 더위를 피해 가로수 밑에 삼삼오오 둘러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몇 십 미터 지나지 않아 이들이 관광객이나 일반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들 중에는 왼쪽 팔에 '수도치안지원자'라는 빨간 완장을 단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중국의 상징이자 대표적 관광명소인 톈안먼 광장은 이날도 여느 때처럼 관광객과 일반인들에게 개방됐다.
| ▲ 공안들이 톈안먼 광장으로 들어가는 동쪽 입구에 엑스레이 검색대를 설치하고 출입자의 소지품을 일일이 검사하고 있다. ⓒ온기홍 |
중국역사박물관 쪽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톈안먼 광장 동쪽 입구로 들어서자 공안 요원들이 흰 대형 천막 안으로 안내했다. 엑스레이 검색대가 설치돼 있었다. 공안 요원들은 검색대를 통해 광장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소지품을 검사했다.
필자도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검색대에 올려놓았다. 가방이 검색대를 통과하자마자 여경이 필자를 부르더니 "가방을 열어 봐도 되겠냐"며 안을 뒤졌다. 그리고는 곧바로 안에 있던 A4용지의 복사물을 꺼내 내용을 훑어봤다. 6·4 사건 관련 유인물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새 콜라병의 뚜껑을 돌려 열어 음료수가 맞는지를 확인했다. 가방을 돌려받자 마자 다른 여경이 필자의 몸을 수색했다. 총이나 흉기, 폭발물 따위를 소지하고 있는지를 보려는 듯 했다.
| ▲ 톈안먼 광장에서 많은 정사복 경찰과 군인, 시민지원자들이 배치된 가운데 관광객들이 톈안먼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온기홍 |
| ▲ 여성들로 구성된 시민지원자들이 양산을 받쳐 들고 시위 감시활동을 벌이고 있는 모습 ⓒ온기홍 |
검색대 천막을 빠져 나오자 톈안먼 광장에 국내외 관광객과 시민들이 평소처럼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는 모습이 보였다. 동시에 광장 곳곳에 푸른색 제복을 입은 경찰이 많았다. 쏟아지는 따가운 햇볕을 피하기 위한 사람들이 펼쳐 든 형형색색의 양산도 많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양산을 받쳐 든 사람들은 관광객이 아닌 대부분 사복 경찰과 보안요원, 치안지원자들이었다. 희생자 유족 및 시민들의 추모 행사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막기 위해 동원된 것이었다.
사복 경찰과 보안요원들은 왼쪽 가슴에 인민대회당이 그려진 배지를 달고 있었다. 이들은 귀에 무선 이어폰을 끼고 경계 활동을 벌였다.
베이징 시민들로 이뤄진 치안지원자들은 웃는 얼굴이 그려진 빨간색 스티커를 상의 왼쪽에 붙이고 있어 관광객들과 구별이 쉬웠다. 치안지원자들은 연령대도 다양했고, 주부들도 적지 않게 섞여 있었다. 올림픽이나 주요 행사 때 베이징에서 쉽게 볼 수 있던 시민지원자들이었다.
여러 색상의 반팔 티셔츠를 입은 사복 경찰과 치안지원자들은 2-3미터 간격으로 떨어져 여러 명씩 뭉쳐 있었다. 더위 탓인지 대부분 양산을 들거나 가끔씩 파라솔 아래 그늘을 찾아 들었다.
| ▲ 헬멧을 쓴 공안들이 순찰을 돌고 있는 가운데 사복 경찰과 시민지원자들이 양산을 들고 감시활동을 벌이고 있다. ⓒ온기홍 |
| ▲ 톈안먼 광장의 인민영웅기념비 주위로 공안차량이 줄지어 있는 모습 ⓒ온기홍 |
평소보다 3배 정도 많아 보이는 정·사복 경찰, 무장경찰, 보안요원들이 깔린 데다 시민 치안지원자들까지 가세해 수적인 면에서 관광객들보다 더 많아 보였다. '물 반, 물고기 반'라는 말에 견줄 만 했다. 그 동안 스무 차례 정도 톈안먼 광장을 찾았지만 이처럼 많은 정·사복 경찰과 치안지원자들을 보기는 이날이 처음이었다.
수많은 감시자들이 광장 도처에 깔려 물샐틈없는 경비를 하고 있어서 관광객들이나 일반인들이 돌발 활동을 하더라도 단 1-2초 내에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공안 차량도 평소보다 많았다. 20년 전 베이징의 대학생들이 만들어 세웠던 높이 10미터짜리 민주주의 여신상이 있었던 국기게양대 근처에는 이날 공안이라고 쓰인 대형 봉고차 두 대가 정차돼 있었다. 국기게양대 바리케이드 안으로 봉고차가 세워져 있었고, 사복 경찰들이 오르내렸다.
국기게양대에서 100미터 가량 떨어진 인민영웅기념비 주변에는 20대 안팎의 공안 차량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또 광장 곳곳에 설치된 가로등마다 디지털영상정보저장 기능을 갖춘 CCTV가 설치돼 관광객들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감시하고 있었다. 인민대회당으로 이어지는 광장 서쪽 출입구와 지하보도 출입구에도 엑스레이 검색대가 설치돼 있었다.
이 때문에 톈안먼 광장과 주변은 겉으로는 평온한 분위기였지만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관광객들만 없다면 계엄 상태를 방불케 하는 삼엄한 분위기였다. 톈안먼 광장은 열렸지만, 톈안먼 민주화시위와 관련된 활동과 정보는 꽁꽁 봉쇄된 셈이었다.
사복을 입은 시민 치안지원자들에게 다가가 "오늘 왜 이렇게 경찰들이 많이 나왔냐"며 넌지시 말을 건네자, 대부분 답하기를 꺼렸다. 한 치안지원자는 "건국 60주년을 앞두고 사회 안정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에서 금기어가 되다시피 한 6·4라는 단어는 일부러 입 밖에 내지 않은 것 같았다.
필자가 목을 축이기 위해 가방에서 음료수 병을 꺼낼 때 마다 사복 보안요원과 치안지원자들이 쳐다봤다. 카메라 셔터를 눌러 댈 때도 경계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중국 당국이 외신 기자의 광장 출입을 통제해서 인지 이날 방송용 카메라나 고성능 카메라를 든 외신 기자들이 보이지 않았다.
광장을 빠져나가며 동쪽 지하보도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던 20대 젊은이에게 "오늘 경비가 무척 심하다"고 말을 걸자, "외국인이냐"고 반문하고는 목소리를 낮춰 예상 밖으로 "오늘은 중국 역사상 특별한 날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에게는 좋지 않은 날이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6·4 사건 당시 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정부의 부패를 비판하고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다 희생됐다"면서 "하지만 요즘 많은 중국인들은 6·4 사건을 잊었다"고 말하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 ▲ 파란색 베이징올림픽 자원봉사자 티셔츠를 입은 사복경찰들이 경비를 서고 있다. ⓒ온기홍 |
| ▲ 사복경찰들이 35도의 무더위 속에 양산을 받쳐 들고 경비를 서고 있다. ⓒ온기홍 |
"언젠가 재평가될 것"
톈안먼 민주화시위를 주도했던 베이징대학으로 발길을 옮겼다. 중앙도서관 앞은 한산했다. 학생들도 뜸했다. '대자보'가 있는지를 보기 위해 백주년기념강당 옆 게시판 쪽으로 가봤다. 톈안먼 민주화운동 20주년 관련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대신 쓰촨성 원촨 대지진 1주년 관련 사진과 지원활동 소개 내용이 게시판을 꽉 채우고 있었다. 이는 중국 당국이 올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애국주의 교육을 부쩍 강화하고 있는 것과도 연관이 있어 보였다.
맞은편 백주년기념강당에도 영화 포스트가 내걸리고 쓰촨성 원촨 대지진 1주년 기념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캠퍼스 곳곳에 내걸린 현수막에서는 톈안먼 민주화운동 20주년을 기리는 내용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며칠 전부터 중국 인권운동 단체들을 중심으로 희생자 추모를 위해 이날 흰옷을 입자는 캠페인이 펼쳐질 것이라는 소식이 외신을 통해 전해졌지만, 베이징대학 캠퍼스에서는 추모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중국 당국이 6·4 관련 보도를 철저히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은 흰옷 입기 캠페인 소식을 모르고 있는 듯 했다. 캠퍼스를 둘러 봐도 톈안먼 민주화시위 당시 희생된 학생과 시민들을 추모하는 조화나 촛불은 보이지 않았다.
3강의동 앞에서 만난 한 남학생은 "오늘이 6·4 사건 20주년이 되는 날인 줄은 알지만, 주위 학생들은 그것에 별로 신경 쓰지 않고, 기말시험 공부와 과제물 작성, 취업 준비에 바쁘다"고 말했다.
게시판 근처를 지나던 한 남학생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그는 "6·4 이후 중국은 빠르게 발전해 경제 강국이 됐는데, 언젠가 6·4의 의미가 재평가되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 ▲ 베이징대학의 남문에서 경비들이 출입자의 신분증과 차량을 일일이 검사하고 있다. ⓒ온기홍 |
| ▲ 베이징대학캠퍼스에서 학생들이 가장 많이 오가는 곳에 설치된 게시판에 쓰촨성 원촨 대지진 1주년 관련 사진과 활동내용들이 소개돼 있을 뿐 톈안먼 민주화시위 20주년 관련 대자보나 사진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온기홍 |
| ▲ 베이징대학 캠퍼스에는 여러 현수막들이 내걸렸지만 톈안먼 민주화시위 20주년 관련 현수막은 내걸리기 않았다. ⓒ온기홍 |
상상 초월하는 언론 검열
이날 베이징 시내 가판대에 오른 신문에는 6·4 사건 20주년 관련 보도를 찾아 볼 수 없었다. 관영 중앙방송(CC-TV) 뉴스 프로그램에서도 6·4 관련 보도를 들을 수 없었다. 중국 언론에서 6·4 단어 자체를 듣거나 보기 어려웠다. 중국 당국이 톈안먼 민주화시위 관련 보도를 검열·통제하고 있고, 언론도 자체 검열을 하고 있는데 따른 것이었다.
인터넷도 예외가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3억명의 네티즌을 가진 중국의 인터넷 상에서 톈안먼 사건에 대한 공개 토론은 금지 되고 있다. 정부의 입장에 반하는 내용이나 웹사이트들은 여지없이 삭제되거나 폐쇄되고 있다. 외국의 유명 온라인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투브와 온라인 사진 공유 사이트 플리커 등도 접속이 차단됐다.
이처럼 중국 당국이 여전히 6·4 민주화 시위를 '반혁명 폭란'으로 규정하고 국민들의 귀와 눈을 철저하게 막고 통제하면서, 중국의 학생들을 비롯해 일반인들은 관련 정보를 접할 기회가 없고 별로 관심을 두고 있지 않는 분위기다. 그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중국 당국의 철저한 감시 때문에 의견 개진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시내에서는 톈안먼 민주화 운동의 정신을 기리거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베이징대학 옆 중관촌 상가에서 만난 한 여대생은 "6·4 사건 때 탱크가 동원됐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며 "오늘 6·4 사건이 20주년을 맞은 날이라지만, 나뿐 아니라 친구들도 신경 쓰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 민주화시위를 주도했던 베이징대학 캠퍼스 안에 있는 신문 잡지 가판대에는 톈안먼 민주화시위 20주년 관련 보도를 찾아 볼 수 없었다. ⓒ온기홍 |
| ▲ 베이징대학의 중앙도서관 정문 앞이 한산한 가운데 몇몇 학생들이 지나가고 있다. ⓒ온기홍 |
| ▲ 칭화대학 정문에서 경비들이 출입차량을 검사하고 있다. ⓒ온기홍 |
| 홍콩에서 더 뜨거웠던 기념 행사 이날 중국 외교부의 친강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하루 전 톈안먼 민주화 시위 희생자 명단을 공개하고 진상조사 및 희생자 유족과의 대화를 촉구한 미국에 대해 내정간섭을 하지 말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친강 대변인은 그러면서 "1980년대 말에 중국에서 일어난 정치적 풍파와 관련된 모든 문제에 대해 당과 정부는 이미 명확한 결론을 내렸다"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며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가 중국의 국가정세와 대다수 인민의 근본적인 이익에 부합한다는 것과 중국 인민의 목소리를 반영한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 증명한다"고 말했다. 20년 전에 톈안먼 광장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중국 대륙의 침묵에 빠진 것과 달리 홍콩 빅토리아공원에서는 이날 톈안먼 민주화운동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렸다. 주최측인 '중국의 애국주의적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홍콩 연대'는 이날 밤 촛불집회에 홍콩의 톈안먼 민주화 운동 관련 집회 사상 최다규모인 15만 명(주최측 추산)이 참석했다고 밝혔다. 집회 참석자들은 톈안먼 사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중국 정부에 대해 톈안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재평가와 복권을 요구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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