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나 부모 자식도 집안 문제를 놓고 의견이 항상 일치될 수는 없다. 국가 단위의 문제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하나의 사안을 놓고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이해충돌이나 갈등이 빚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저마다 생각과 처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것을 민주주의의 과정을 통해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통합하는 것이 바로 정치의 역할이다.
민주주의에서 절차가 강조되는 이유는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 '참여'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란 말 그대로 사회 구성원 모두가 주인으로서 공동체의 문제를 결정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 아닌가. 그 참여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민주적 절차가 마련되는 것이다. 힘의 논리에 따라 참여의 기회가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독점되고, 누군가는 배제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닌 것이다.
공동체의 문제를 결정함에 있어서 민주적 절차란 무엇인가? 무엇이 문제인지, 어떤 해법이 있는지, 새롭게 발생할 다른 문제들은 없는지 충분한 논의 과정을 거쳐서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전 과정을 말한다. 이명박 정권 들어서 벌어진 그 모든 소동들은 이 기본적인 상식을 힘의 논리를 앞세워 붕괴시킨 데서 비롯됐다. 미디어법 날치기 파동은 그 결정판이다.
무법천지를 만들고 있다
이 정권은 정치의 과정을 불필요한 딴죽걸기나 비효율로 치부하면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단기간 내에 성과를 내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있다. 논의과정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반대자의 의견은 힘으로 누르는 것이 '다수결 원리'에 따른 민주주의라 우기고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폭력일 뿐이다.
투표가 종료되고 세어보니 투표참가자가 과반에 미달한 경우를 우리는 '정족수 미달로 부결'이라고 한다. 부결됐으면 일사부재의 원칙에 따라 다음에 다시 상정하여 다시 논의하는 것은 상식이다. 투표불성립을 외치고 재투표를 해봐야 그것은 그저 해프닝일 뿐 부결됐다는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 표결에 관한 법해석도 엿장수 맘 대로다.
대리투표 논란은 낯부끄러운 일이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상대 정당의 당원이 대리투표를 하다 발각됐다면 세상이 뒤집어진 양 난리를 부릴 게 분명한 사람들이 아닌가? 그러나 온갖 해괴한 논리로 진실을 호도한다. 컴퓨터가 열 받았다는 궤변은 그 중에서도 압권이었다. 컴퓨터가 열 받았든 안 받았든 남의 투표를 대신하면 그것은 무효다.
누군가 목소리가 크고 주먹이 센 사람이 정상이 아닌 것을 정상이라고 우기며 힘의 논리로 앞뒤 정황을 제 멋대로 재단할 때, 이런 경우를 우리는 무법천지라고 말한다. 딱 1년 반이 걸렸다. 이명박 정권은 1년 반 만에 우리 사회를 동물의 왕국으로 만들었다. 법치는 완전히 타락했으며 법은 희화화되었다. 민주주의의 후퇴인가? 후퇴가 아니라 완전한 파괴다.
민주주의의 후퇴 아닌 파괴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또한 무법천지의 현장이다. 공장 출입구를 접수한 경찰은 물과 음식물 반입을 철저히 봉쇄하고, 성안에 갇힌 적군을 고사시키는 삼국지의 전법을 재현했다. 국가 간에 전쟁이 나도 적십자 활동은 보장되건만, 노동자들에겐 의료진의 출입마저 허용되지 않았다. 심각한 인권유린이다. 동물의 왕국에서 인권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인가?
쌍용자동차를 무책임한 외국자본에 팔아넘기도록 결정한 것은 대한민국 정부였지, 노동자들은 아니었다. 일자리 나누기는 이명박 대통령의 시책이었으며, 일자리를 나누는 대신 임금을 삭감하겠다고 제안한 것은 노동자들이었다. 그리고 이를 거부한 것은 사측이었다. 그러나 정부가 사태 해결(?)을 위해 한 일은 공권력 투입이 전부였다.
나는 한국 정치의 가장 큰 고질적인 병폐가 보통 사람들의 절박한 삶의 문제들을 끊임없이 정치와 사회 바깥으로 밀어내는 '배제의 정치'라고 생각한다. 정치로부터 배제된 보통 사람들이 정치에 대해 갖게 되는 태도는 환멸과 무관심이다. 그렇게 해서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면 다시 배제의 정치는 강화되고 망루와 옥탑 위로 올라가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진다.
이명박 정권은 배제의 정치를 원색적이고도 극단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이에 대한 야당과 시민들의 저항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반대 여론에 귀 막고, 제 갈 길 가는 것을 역사적 과업완수 쯤으로 아는 정권이다. 이들을 상대로 무언가 요구하거나 단순히 반대하는 것은 소귀에 경 읽기일 뿐, 더 이상 유효한 대응 수단이 아니다.
이명박 이후를 모색해야 한다
이제 반대와 투쟁 속에서 이명박 이후를 모색해야 한다. 모르쇠 정권은 정권교체로 심판하는 것 외에 달리 해결 방법이 없다. 어떻게 해서 정권을 되찾아 올 것인지, 이명박 다음에 이 나라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이제 그 문제들에 관해 논의해야 한다. 방법이 없으면 찾아야 하고 길이 없으면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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