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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대못'이 안 뽑히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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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대못'이 안 뽑히는 까닭

[기고] 열린 자세와 합당한 절차가 전제돼야

스웨덴의 정형외과 의사 브뢰네막은 1952년 연구 차 토끼의 대퇴골에 티타늄 물체를 넣었다. 치료기간이 지나 도로 빼내려 했으나 빼낼 수 없었다. 다른 금속과 달리 티타늄 주위로 뼈 성분이 조성돼 서로 단단히 결합돼 있기 때문이었다. 혁신적 치과시술법인 임플란트는 이렇게 해서 개발되게 되었다. 티타늄의 골유착(osseointegration) 현상 덕분에 인공치아가 거의 생이빨처럼 신체의 일부로 자리잡는 것이다.

정부의 기대와 달리 '세종시 대못'이 잘 안 뽑히는 것은, 그게 '대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종시란 이름의 행정중심복합도시는 충청지역에 심어진 임플란트 같은 것이다. 지난 7년여간 이 지역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골유착이 완결된 상태다. 흔히 생각하듯 경제적 이해관계만 걸려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지역 사람들의 자존심, 정당한 대우를 받고자 하는 욕구가 신경다발처럼 얽혀 있다. '국책사업''지역발전'이란 대의에 떠밀려 조상 대대로 살아온 터전을 내주고 떠난 이주민들의 눈물어린 희생도 엉켜 있다. 비단 지역정서만이 아니다. 지역균형발전, 수도권 과밀 해소 등의 국가목표와도 연결돼 있다. 여야 합의로 제정된 법률 그리고 한나라당의 당론도 함께 떠받치고 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성분으로 골유착이 단단히 이뤄진 상태인데, 마치 대불공단의 전봇대 뽑아내듯 일거에 뽑아내고 다른 것을 박아넣으려고 하니 상처가 나고 저항이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과거 김대중정부나 노무현정부 때 새만금 갈등을 제대로 풀기 힘들었던 주요인도 비슷했다. 당시 전북지역에서는 새만금간척을 둘러싼 이해관계의 골유착 현상이 너무나 굳건해진 상태였다.

행정 효율성 그리고 통일 대비 차원에서 세종시 문제를 재검토할 필요성은 있다고 본다. 그렇다 해도, 세종시가 대못이 아니라 임플란트라 한다면, 접근법이 달라야 한다. 치조골과 잇몸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정교하게 접근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선해야 할 것은, 이 사안의 주인인 충청지역 주민들의 동의를 얻는 일이다. "국익을 위해 재검토했으면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하며 양해를 구하고 의견을 물었어야 했다. 그렇게 열린 자세로 임했다면 지역 주민들의 반응이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그런 뒤 진정한 지역대표들과 협의하며 함께 대안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함께 만드는 수정안은, 충청 주민들의 자존심, 정당한 대우, 이주민들에 대한 공정한 보상과 지원, 지역균형발전, 수도권과밀화 해소, 그리고 타 지역과의 형평성 등의 문제가 두루 고려된 것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간 정부가 택한 과정은 그게 아니었다. 정부 혼자 방침을 결정하고 수정안을 만들고선 충청 주민들에게 내밀었다. 이미 자리잡은 임플란트를 빼내고, 대신 "이게 더 좋은 것"이라며 금니를 박겠다는 식이다. 정부 수정안에는 행정도시만 빠진 게 아니다. 민주주의의 핵심인 합당한 절차(due process), 그리고 대안으로서 갖춰야 할 필수 요소들이 빠졌다. 그로 인해 충청 주민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분노와 반발만 키우게 된 것이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홍보와 물량공세로 만회하려 하는데, 부안사태에서도 봤듯이 한번 돌아선 민심은 그런 식으로 되돌려지지 않는 법이다.

진정 국익을 위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위기일수록 정도를 가야 한다. 핵심 요건은 진정성과 열린 자세 그리고 해결의지다. 특히 관건을 쥔 충청 주민들의 마음을 열려면 정부 먼저 열린 자세로 다가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원만한 해결은 더욱 어렵게 된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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