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만 명의 임직원들이 일을 하며 가정을 꾸려가는 곳이며, 젊은이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장이고, 삼성의 국제적 위상을 자신의 일처럼 자랑스러워하고 응원하는 수많은 국민의 사랑을 받는 기업이다. 삼성이 훌륭한 상품들을 생산해 자국민들에게 판매하고 해외로 수출하는 것, 그렇게 해서 이윤을 창출하고 세금과 일자리와 투자를 통해 사회로 환원하는 것은 한국 경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삼성이 그 비중에 걸맞지 않는 불법과 탈법들에 연루되어 있다는 의혹은 이미 오래전부터 불거져 나오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삼성의 핵심이라고 일컬어지는 구조조정본부의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으로 사회 전면에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전개는 우리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바와 같다.
삼성이 대한민국에서 공식적으로 면죄부를 받게 된 것은 단순히 '삼성의 승리'에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이것은 공동체에 속한 모든 이들이 그 앞에서 평등해야하는 법이 '몰락'했다는 것을 역설하는 사건이다. 물론 이것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지만, 삼성 사건은 이 몰락을 '성문화'하는 사건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우리의 공동체에 준 타격은 이건희 일가의 경영권 세습과 맞바꾸기에는 너무도 큰 것이다.
'독재'에서는 벗어났으나 '신자유주의'에는 자유롭지 못한 독립 언론
그러므로 우리의 싸움은 끝날 수 없다. 그러나 그 싸움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슬픈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최근 김상봉 교수의 기명 칼럼을 개재하지 않았던 <경향신문>, <오마이뉴스>와 김용철 변호사의 저서인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 펴냄)의 광고를 거부했던 <한겨레>의 사례는 서글프리만치 아프다. 우리는 제대로 된 싸움을 시작하기도 전에 우리 '안'에 있는 삼성과 먼저 싸워야하는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한겨레> 이 세 언론은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권력과 재벌에 유착하지 않고 언론의 정도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독립 언론'으로 분류된다. 독재 정권이 지속적으로 언론을 탄압하고 검열하면서 자신들의 통치 도구로 악용해왔던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생각해보면 한국 사회가 이러한 독립 언론을 갖게 된 것은 민주화가 이룩해낸 소중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독립 언론은 이제 독재 정권의 치하에서는 벗어났지만 신자유주의적 질서라는 새 시대의 망령 앞에서는 자유롭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 이후 <경향신문>과 <한겨레>에 광고 게재를 중단했던 삼성의 행태는 그들이 노골적으로 돈을 이용한 언론 길들이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그 이후 심각한 경영란에 시달리며 임금 삭감, 구조 조정 등으로 겨우겨우 명맥을 유지했던 두 언론의 모습은 우리가 쟁취해낸 독립 언론의 취약한 고리를 너무나도 여실히 드러냈다.
특히 최근 삼성의 광고 재개 결정과 관련하여 벌어진 최근의 사태는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의 말 그대로 "오늘 한국의 진보 언론이 겪는 존재론적 아픔의 속살"을 적나라하게 보였다. 이 사태의 이면에는 대기업의 광고 수주가 아니면 언론의 존폐 자체가 위협받는 한국 사회의 기형적인 환경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막강해지는 최대 광고주 삼성의 권력이 있다. 삼성의 광고가 중단되었던 지난 2년간 원래부터도 취약했던 독립 언론의 재정 상황은 더 더욱 악화일로를 걸었다. 덕분에 많은 기자들이 임금 삭감이나 무급 휴직과 같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아마도 그러던 와중에 드디어 삼성의 '광고 정상화'가 현실화되었기 때문에 독립 언론의 입장에서는 많은 고민이 뒤따랐을 것이 당연하다. 게다가 내일 혁명이라도 일어난다면 모르겠지만, 자본주의 시스템 내부에서의 생존이 중요해지는 기업의 입장에서 경영상의 어려움을 마냥 외면한다는 것은 언론의 기능적 유효성에도 치명적일 수 있는 문제이다.
<한겨레>와 <오마이뉴스>의 해명,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지금의 이 '구도'는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할 필요가 있다. 우선 언론사는 언론으로서의 역할과 재정의 문제가 분리될 필요가 있다. 언론은 기업이지만 특수한 기업이고 이 기업의 가장 큰 자산은 '신뢰'다. 그리고 이 신뢰는 다른 기업과는 달리 이윤에 휘둘리지 않고 공정하게 사건들을 바라보는 데에서 생겨난다.
물론 이 공정함은 기계적인 중립성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언론의 공정함은 오히려 중립성, 객관성 같은 잣대를 대상에 따라 다르게 적용하거나, 혹은 그것을 빌어 궁색한 변명을 할 때에 빛이 바랜다. 물론 공정함의 가장 밑바닥에는 '사실들'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저널리즘의 대혼란 속에서 얻어낸 교훈에 의하면 정말 중요한 문제는 이 사실을 해석하고 배치하는 맥락과 방식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태에 대한 <오마이뉴스>와 <한겨레>의 해명은 충분해 보이지도 정직해 보이지도 않는다. 우선 <오마이뉴스>의 수많은 시민기자의 기사 중에는 법리적으로만 보면 명예 훼손의 소지가 다분한 것들이 심심찮게 존재한다. 그러나 <오마이뉴스>는 자체적인 윤리 기준이 위배되지 않는 한에서 그러한 기사들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옹호하며 시민들의 언론의 자유를 지키려 애써왔다. 하지만 김상봉 교수의 칼럼에 대해서 만큼은 갑자기 명예 훼손과 사실 입증의 문제를 들먹이며 수정을 요구했다. <오마이뉴스>는 "김 교수님 역시 <오마이뉴스>의 이 같은 편집 원칙에서 예외일 수 없는 6만여 명 시민기자 중의 한명"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지만 이것은 궁색한 변명이다. 막상 별로 '과격'하지도 않았던 김 교수의 짧은 칼럼을 문제 삼은 것은 오히려 반대로 김 교수이기 때문에, 더 정확하게는 삼성 때문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한겨레>의 광고 문제도 마찬가지다. 우선 나는 출판사의 태도나, 출판 광고의 관행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하필이면 '이 시기'에 '그 책'의 광고에 대해서 그런 조치를 취했다는 것은 쉽게 납득 가는 해명이 아니다. 게다가 출판사의 태도나 예상 판매량을 문제 삼으며 광고비를 급작스럽게 3배나 올리는 행위는 이것이 언론의 영역이 아니라, 경영의 영역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해도 불합리하다. 이것은 "지난 2년간 삼성 없이도 버텨왔다"라고 큰소리를 쳐서 해명될 수 있는 종류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한국 언론 최초로 <한겨레>에 생긴 '대기업 전문기자'라는 직함을 스스로 반납했던 <한겨레> 기자의 말처럼 "어느덧 삼성 관련 기사는 <한겨레> 기자들에게 자기 검열의 대상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해서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한다.
'삼성'이 아니라 '신뢰의 상실'을 두려워하라
현재의 언론 환경이 언론사들의 운신의 폭을 매우 좁히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또 그 환경을 악용하여 언론사를 길들이려 하는 자본의 횡포가 선행한다는 것 역시 당연하다. 그러나 명예 훼손, 광고 거부 같은 것을 두려워하며 자기 검열을 하는 언론은 종국적으로는 언론으로서의 신뢰와 가치를 하락시키게 될 위험이 크다. 전략적으로 사고해보아도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두려운' 존재이지, '말 잘 듣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잡은 고기'에는 더 이상 먹이를 주지 않는 법이라는 오래된 속담도 있지 않은가?
게다가 지금의 논란에서는 '언론과 독자 간의 신뢰'라는 언론의 존립 기반에 대한 논의를 보기 어렵다. 다만 여기에는 삼성과 언론의 불편한 관계에 대한 슬픈 이야기들만이 있을 뿐이다. 언론이 사회적 영향력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결국 성역 없는 정확하고 공정한 취재를 통해 대중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자본이나 권력으로 언론사를 탄압하려 할 때, 그들의 지지자인 독자들을 믿고 함께 맞서야 한다. 또 마찬가지로 독자들 역시 그들의 언론이 정도를 잃지 않도록 격려하고 힘을 실어주는 것은 물론, 언론의 감시자가 되어 언론의 과오에 대해 감시하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환경은 하루아침에 조성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계획과 그에 대한 지속적인 지지가 필요한 일이다.
이제부터 우리가 자본과 권력에 맞서서 해야 할 싸움은, 단지 삼성과 몇몇 재벌들에 대한 도덕적 규탄에서 그치는 일이 아니다. 이것은 자본과 권력이 무너뜨린 공동체의 신뢰를 다시 만들어가는 싸움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권력도 자본도 아닌 '신뢰의 상실'을 가장 두려워하는 언론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다.
든든한 '버팀목'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의 곁에는 저 두려움을 무겁게 그러나 너무나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훌륭한 기자들이 많이 있다. 특히 이번 사태에 대한 <경향신문>의 고백과 반성은 매우 고무적이다. 막내 기수 기자들의 문제제기에서 시작된 내부 편집회의는 두루뭉술한 해명이 아니라 정직하고 철저한 반성을 이끌어냈다.
물론 칼럼의 재게재 같은 조치까지는 취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지만, 우리는 이처럼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독자의 신뢰를 택하는 훌륭한 독립 언론과 기자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한국의 독립 언론들이 진정한 독립을 맞이하게 되는 날이 되면, 우리의 싸움은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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