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지방 선거뿐 아니라 지난 수년간 치러진 지방선거, 총선, 대선을 보면서 그 중 어떤 선거에서는 그 결과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뒤돌아보면 우리나라 국민들이 참으로 절묘한, 그리고 현명한 선택을 했구나, 어쩜 그렇게도 민심이 한치의 오차 없이 정확하게 드러나게 되었을까 감탄하면서 우리나라 국민의 위대함을, 그리고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더라도 위대한 지도자들도 물론 있었으나 그보다 더 중요한 힘의 원천은 일반 백성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국민들이 정치권의 잘잘못을, 그리고 민심의 도도한 흐름을 정확한 수치로 보여준 것을 보고 새삼 세상이치의 오묘함이 경이롭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최근 우연히 접하게 된 책(The Wisdom of Crowds, 'Why the many are smarter than the few? 저자 James Surowiecki)의 첫 페이지를 보는 순간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불가사의'한 현상이 94년 전 나이 많고 호기심 많은 한 과학자에 의해 증명되었다는 사실을 읽고 놀랐고 이와 같이 재미있고 중요한 실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1906년 통계학과 유전학 연구로 명성을 날린 영국의 과학자 프랜시스 갤턴(Francis Galton)은 원래 이 세상은 극소수의 똑똑한 사람들, 평범한 사람들 그리고 대부분의 '멍청한' 사람들로 구성되었다고 굳게 믿었던 사람이었고 이를 실험을 통해 수치로 증명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이분이 85세가 된 어느 날, 전공과 무관한 시골의 가축 경매 축제 구경을 갔다가 황소의 몸무게 알아맞추기 대회장면을 구경하게 되었고 이때 그의 호기심이 발동하여 실험을 해보기로 하였다.
그는 가축의 무게를 예측하는 데 전혀 문외한인 보통사람들과 대다수 '멍청한' 사람들은 아주 틀린 답을 낼 것이라는 가정 하에, 더 나아가서는 민주 국가에서 중요한 사안들을 민주절차에 따라 투표로 결정할 때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대다수의 '멍청한' 일반인들이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자기의 믿음을 과학자답게 실험을 통하여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대회가 끝나고 황소의 실제 몸무게와 가장 근접한 답을 적어낸 사람에게 상금이 주어진 후 그는 800장에 이르는 답지를 빌려달라고 하여 여러 통계 기법을 이용하여 이를 분석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를 보고 여지껐 그가 평생 굳게 믿었던 가정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나를 발견하였고 이 결과를 후에 <네이처(Nature)>에발표하였다.
황소를 키우는 몇 명의 전문가와 약간 명의 축산농가 사람들 그리고 대다수의 이 분야에는 전혀 문외한인 "멍청한" 사람들이 적어낸 답은 당연히 아주 틀릴 것이라는 그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가 모든 답지에 적힌 무게를 그래프로 그려보니 벨 커브(bell curve)를 보였고 모든 예상 숫자들의 평균값이 1,197 파운드로 계산되어 놀랍게도 실제 황소 무게 1,198 파운드와 정확히 일치하였다. 결과적으로 대다수의 예측이 완벽하다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었고 이후 그는 생각을 바꿔 다수의 민주적 판단이 얼마나 중요하고 신뢰할 만한 것인가를 믿게 되었다.
이런 사실이 오래 전에 입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는 자기가 믿고 싶어하는 환상만을 믿는 우를 범하고 있으며 이에서 깨어나기를 거부하곤 한다. 특히 정치인들에게서 이런 착시현상이 심한 것 같다. 매번 똑같이 "멍청하지 않은"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보면서도 선거가 끝나는 즉시 머리에서 지우개로 지우듯 지워버리는 기억상실증도 심한 것 같다. 모쪼록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이런 착각에서 깨어나서 과거의 실패를 기억하며 똑바른 판단력을 가진 지혜로운 다수의 국민들을 위하여 좋은 정치를 펼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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