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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피소 피난민들 "쓰나미 덮친 악몽의 그날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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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피소 피난민들 "쓰나미 덮친 악몽의 그날밤엔…"

[강진 현장 르포] 참사 후 악천후까지 겹쳐 '설상가상'

미야기(宮城)현 시오가마(鹽釜)에서 국도를 따라 북상해 히가시마쓰시마(東松島)시로 향하는 길은 한동안 평온했다.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은 것처럼 깨끗한 마을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사람들은 3월 중순임에도 쏟아지는 눈발을 헤치며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한 산모퉁이를 돌자마자 재해 지역이 나타났다. 행정구역상으로는 히가시마쓰시마에 속하는 마을이었다. 해안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었지만 쓰나미는 이곳도 비켜가지 않았다. 고가도로 위에서 내려다본 마을의 참상은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마을 전체에서 진흙 냄새가 진하게 올라왔다. 소방차가 골목을 누비며 주민들에게 안내 방송을 하고 있었다. 사이렌 방송 소리가 처량하게 울려 왔다.

ⓒ프레시안(최형락)
▲ 사사키 시게오 씨가 집 안에서 쓸만한 물건을 끌어내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폐허가 된 도시를 맞딱드리며 망연자실해 하고 있는데, 민가에서 한 남자가 나타났다. 취재진의 등장에도 놀라지 않고 그는 하던 일을 계속했다. 집 안에 쓸 만한 물건들을 끌어내 홀로 닦고 복구시키려 하고 있는 것.

사사키 시게오 씨는 지진 피해를 입은 즉시 인근 대피소로 몸을 옮겼지만, 집이 걱정돼 매일 집에 와서 가재도구 등을 정리하고 있다고 담담한 어조로 설명했다. 도와줄 일이 없겠냐고 묻자 그는 멋쩍게 웃을 뿐 자신의 할 일을 계속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사사키 씨는 쓰나미가 자신의 모든 것을 덮쳐 없앤 그날 밤 가족들의 안부를 확인한 즉시 둘째 날부터 피난소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는 옆집 2층에서 고집스럽게 집에 남아 있다"며 걱정하는 빛을 보였다.

히가시마쓰시마 시내에서 교민 심영희(42) 씨를 만났다. 가정주부인 그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한국에 있는 조카가 안부를 매우 걱정할 것 같은데 전화가 불통이라 연락이 안 된다며 기자에게 대신 연락을 부탁했다. 연락처를 적어 주는 그의 손이 떨리는 것은 꼭 추위 때문만이 아니었다.

나중에 미야기현을 벗어나 통신이 되는 지역에서 그가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를 받은 사람은 심 씨의 조카가 아니었다. 경황이 없어 번호를 잘못 적어준 것인지 조카의 연락처가 바뀐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심 씨에게 지진 당시의 상황을 묻자 별안간 그의 말이 빨라진다. 그는 "이 동네는 아니지만 바로 옆동네까지 온통 물바다가 됐다"며 "무서워서 산으로 피해 있다가 짐을 챙겨서 지금은 시민회관에 차려진 대피소에 있다"고 말했다.

심 씨의 집은 피해를 직접 입지는 않았고, 이틀 전부터 가스는 들어온다고 했다. 하지만 전기와 수도는 여전히 불통이라 집에서 생활하기는 불가능한 상태라고 호소했다. 질문을 더 하고 싶었지만 남겨두고 온 가족이 걱정되는 듯 자꾸 몸을 반 발짝씩 뒤로 빼는 그를 차마 잡을 수 없었다.

▲ 이시노마카의 한 고등학교에 마련된 대피소 ⓒ프레시안(최형락)
▲ 대피소의 어린이들 ⓒ프레시안(최형락)

북쪽으로 계속 나아가 이시노마키(石卷)시에 도착했다. 도로 주변 이시노마키 니시(西)고등학교에는 대피소가 차려져 있었다. 대피소 관계자는 자위대 간부들과 뭔가를 한참 의논 중이었다. 취재진이 대피소에 머무는 내내 그들의 얘기는 이어졌다.

대피소의 주민들은 의외로 차분하고 평온한 모습이었다. 서넛씩 모여 담소를 나누며 웃음짓는 모습도 간간히 보였다. 그러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만은 감출 수 없었다. 현관 한편에서는 50대로 보이는 남자가 장화를 벗고 진흙에 전 발을 씻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지나 2~3km 정도 이동하니 차들이 길게 멈춰서 있었다. 도로가 막혔나 했지만 반만 막혀서 차들이 양쪽 방향에서 교대로 한 대씩 지나고 있어 밀린 것. 반만 막혀서 다행인 것인지 반이 끊겨서 큰일인 것인지 모를 상황이었다.

그 교차점 바로 너머에는 자동차와 집과 전봇대와 농지, 그리고 사람들의 생활이 흙탕물에 잠겨 있었다. 곳에 따라 발목에서 무릎까지 차오르는 물속을 걸어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는 주민들의 뒷모습에서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분위기가 풍겼다.

ⓒ프레시안(최형락)
▲ 자위대가 제공하는 식수를 받아 가는 주민들 ⓒ프레시안(최형락)

그 심한 눈보라를 뚫고 사람들은 어디론가 종종걸음치고 있었다. 우비를 입고 자전거를 탄 채 물건을 구해 길을 재촉하는 주민들의 모습도 자주 보였다.

이들은 대개 물과 식료품을 구하기 위해 나선 사람들이었다. 대도시가 아닌 도호쿠 지역에서는 평소에 이동 수단으로 차량을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지진 피해로 차가 망가졌거나 기름이 부족해 사용할 수 없어서 자전거를 타거나 걸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영하에 가까운 날씨 속에서 진흙탕과 눈보라를 헤치며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의 모습과, 이들이 손에 든 비닐봉지가 바람 속으로 흔들려 사라져갔다.

▲ 대피소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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