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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전문 일본 교수도 '피신' 연료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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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원자력 전문 일본 교수도 '피신' 연료 채웠다"

[강진 현장 르포] 센다이 거주 한인 "센다이서 그렇게 많이 죽었어?"

18일 아침 일본 니가타(新潟) 국제공항에는 한국행 비행기를 타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서있었다. 사람들의 손에는 큰 여행가방이 두세 개씩 들려 있었고, 이민 가방을 든 사람도 있었다. 마스크를 쓴 일본인들과 지쳐 보이는 한국인 가족들의 모습도 보였다.

다른 탑승 대기자들 중에는 이기훈(40) 씨의 가족도 있었다. 일본에서 2년 반 동안 거주하며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이 씨의 가족은 쓰나미에 직격당한 센다이(仙台)에서 왔다고 했다. 전날 밤 니가타에 도착해 하루를 묵고 한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다행히 이 씨의 집은 센다이 시내 북쪽에 있어 직접적인 쓰나미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전기도 수도도 들어오지 않아 생활이 불가능한 상태라 귀국을 결심했다고 그는 말했다. "전화도, 인터넷도!"라고 옆에서 보고 있던 이 씨의 아내가 덧붙였다.

이 씨는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유출 우려에 대해 "일본 방송에서는 심각한 얘기를 하지 않는다"면서 "하지만 사태가 좋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씨는 "다시 언제 돌아올지 계획은 없다"면서 "한국에서 2주 정도 지내면서 상황을 볼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에서는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과 하고 학교도 휴교 상태라 가능한 일이다.

이 씨의 딸 정원(11) 양은 센다이에서 국제학교에 다닌다. 지난 11일 지진 발생 당시 학교에 있었다는 정원 양은 "교실이 막 흔들렸어요"라며 아버지 손에 매달려 입을 열었다.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 정원 양에게 오히려 더 이상 묻기가 미안해 망설이고 있는데 말이 계속 이어진다.

"다들 책상 밑으로 들어가서 몸을 웅크렸어요. 교실 불(전등)도 꺼졌다가 켜졌다가 깜박거리고, 아이들은 무섭다고 울었어요. "

▲ 18일 오전 니가타(新潟) 국제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 뒤쪽에 이들이 타고 갈 비행기의 모습이 보인다. ⓒ프레시안(최형락)

지난 15일 센다이 주재 한국총영사관에서 만난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센다이시 거주 교민은 약 2780명이며 당시 200명 가량이 영사관에서 제공한 버스를 타고 상대적으로 좀더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도쿄(東京)나 니가타로 대피했다고 설명했다. 이 씨의 가족도 그들 200명 중에 포함돼 있었던 셈이다. 이 씨 가족이 한국행을 결심한 것을 보면, 도쿄나 니가타가 센다이보다 '안전'했던 이유는 한국행 비행기가 이륙하는 공항이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 관계자는 방사능 위험에 대해 "일본 정부는 안전하다고 설명하고 있다"며 "(사건 자체의) 심각성보다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고가 생긴 것이 충격적이라고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교민들의 불안은 그 수준이 아니었다. 이 씨의 가족 맞은편에 앉아 비행기를 기다리던 김윤근(55) 도호쿠대학 교수는 "일본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잘 해결할 거라고 믿는다"면서도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그는 "원자력 분야의 일본인 동료 교수에게 들었는데, '아직까지는 정부를 믿는다'고 하더라. 하지만 그 교수도 휘발유를 구해서 차에 70% 가량 채웠고, 이틀만 더 기다려 보다 여차하면 센다이를 빠져나갈 생각이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는 'WPI'(World Premier International) 프로그램에 참여해 전기화학 분야의 프로젝트 연구를 진행하던 중이었지만 이번 사태로 귀국 비행기를 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지진 당시의 상황에 대해 "대학에서 제공한 숙소가 아파트 4층에 있었는데, 비상구 문 손잡이를 잡고 있었음에도 열고 나가기가 어려울 만큼 흔들림이 심했다"고 회고했다.

지진 다음날부터 그의 아파트에는 전기도 수도도 가스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하루를 꼬박 굶고 다음날에는 동료 교수의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졌다고 했다. 그는 "니가타에 와서도 여관에 묵다가 엘리베이터에서 나는 진동음만 들어도 깜짝 놀랄 정도로 불안감과 스트레스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정보 부족이 가장 큰 문제였다며 "센다이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지진 당일 저녁 늦게 잠깐 터졌던 그의 휴대폰은 이후 2~3일간 완전히 먹통이었고 인터넷도 끊겨 주변 상황을 알 수 없었다.

▲ 이날 인천공항에서는 입국자들을 대상으로 방사능 검사를 실시하고 있었다. ⓒ프레시안(최형락)

외국인들도 한국행…"보이지 않는 위협 더 겁나"

덴마크 <엑스타블라뎃> 신문사의 사진기자 벤자민 커슈타인(30) 역시 "정보의 부족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커슈타인도 방사능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일단 가까운 한국으로 몸을 피하기로 한 경우다. 그는 "방사능은 보이지 않는 위험이라 더욱 걱정된다"며 "내가 이미 방사능에 노출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신문사에서는 '덴마크로 돌아올지 말지는 본인 판단 하에 결정하라'는 지침을 내렸지만 돌아오는 쪽을 더 강하게 추천했다"면서 한국에 머물면서 정보를 모은 후 안전하다고 판단되면 일본으로 다시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커슈타인의 옆에 있던 다른 덴마크인 사진기자는 아예 덴마크로 돌아간다고 했다. 나나 코이츠만(35) <질란드포스텐> 기자는 "회사에서는 일본에 남든지 덴마크로 돌아오든지 둘 중에 결정을 내리라고 했다"면서, 그와 커슈타인은 야마가타(山形)에서 출발했으나 휘발유와 음식, 정보 부족 때문에 결국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이들은 비교적 운이 좋은 경우다. 강추위와 폭설이 몰아치던 전날 밤 10시경 니가타역에서 만난 파키스탄인 마자르 마무드(33) 씨는 "파키스탄으로 가는 비행기 표가 없어 한국으로 가려고 한다"고 했으나 "니가타에 있는 한국 총영사관에서는 비자를 내주지 않아 도쿄에 있는 한국 대사관까지 가야 한다"며 한숨지었다.

마무드 씨는 5년 전부터 니가타에서 중고차 매매 일을 하고 있다. 그는 1998년부터 2년 간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공부한 적도 있다며 기자에게 '안녕하세요'라며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그는 당장 다음날 아침 방사능 물질 확산과 여진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고 있는 도쿄로 떠나야 할 판이라면서 "도쿄는 매우 위험하다. 지금 상황은 큰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나라 정부는 자국민을 철수시키려고 비행기까지 보내고 있는데 파키스탄 정부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어 자신이 직접 동분서주해야 한다며 한탄했다.

후쿠시마 원전 상황에 대한 일본 당국의 발표를 신뢰하냐고 묻자 그는 "일본 정부가 뭐라고 말하건 간에 이미 그들은 상황을 통제할 수 없는 것 같다"며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 지진 피해 지역을 떠나는 자동차 행렬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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