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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가 패배로부터 배워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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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가 패배로부터 배워야 할 것들

[기고] 오늘의 아픔을 딛고 다시 힘있게 일어서자

2007년 대선이 끝나고 나는 한 신문에 '진보, 아픈 만큼 성숙해질 것인가'라는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5년이 지나 2012년 대선이 끝나고 우리를 향한 성찰의 글을 다시 올린다.

우선 나는 헤겔의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 무렵 날개를 편다"는 그 유명한 철학적 표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인간의 지혜가 상황구속적이기에 앞날을 내다보기에는 그만큼 힘들고, 어떤 엄청난 일이 터지고 나서야 그 의미 매김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 이 또한 소중한 것 아닌가. 그러기에 대선이라는 역사의 중대국면을 막 통과하면서 나는 다시 우리가 얼마나 성숙했는가 질문하고 싶다.

그렇다. 이 글은 이번 대선 패배가 우리의 문제에서 연유한 것이라는 생각해서 출발한다.

우선 2012년 12월은 진보에게 더 많은 실망과 허탈감을 가져다주었음에 틀림없다. 그만큼 문재인의 승리에 거는 기대가 컸고, 그러나 결과가 박빙의 패배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지난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던가? 5년이 최소한 두 배는 더 길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기에 2007년과는 달리 이번에는 '꼭 이겨야 한다'는 공감대가 다시 부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우리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보수는 2007년에 이어 다시 한번 승리의 축배를 들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보수는 어떻게 또다시 대권을 거머쥘 수 있게 되었나. 이미 오래전부터 대권 주자로서의 카리스마를 인정받고 있었던 박근혜라는 유력한 대표주자가 있었던 반면 진보진영은 그에게 필적할만한 선수를 뒤늦게 발굴했다는 점을 많은 이들이 얘기한다.

사실 이번 선거는 안철수라는 인물이 없었더라면 2007년 선거처럼 완패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은 두 가지 점에서 아쉽다. 하나는 참여정부 시기에 뚜렷한 정치적 이미지를 주지 못했다는 점,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너무 늦게 대안적 정치 지도자로 부각되었다는 점.

또 이번 선거에서 주변 사람들은 문재인은 괜찮은 것 같은데, 민주당은 싫다고 했다. 그래서 반(反)이명박 정서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일부는 안철수에게로 쏠렸다. 그런 점에서 안철수는 그가 갖고 있는 고유한 강점도 있겠지만 불신당하고 있는 민주당으로부터 얻은 반사이익을 누렸음에 분명하다.

그렇다면 반독재 민주화세력의 정통을 잇는다고 자부하는 민주당은 쇄신의 모습을 보이려고 여러 번에 걸쳐 당명도 바꾸는 등 노력을 했건만 왜 이렇게 되었는가. 나는 유권자들이 몇 번에 걸쳐 민주당에 기회를 주었지만 성숙한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고 본다. 지난 4월 총선 공천과정에 실망한 유권자들은 예상과는 달리 당명과 정책을 수정하면서 쇄신의 모습을 보인 새누리당을 제1당으로 밀어주었다. 오히려 민주당은, 천안함 사태 직후에 있었던 지방선거에서 여전히 숙제를 해결하지 못한 민주당에 힘을 실어준 국민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민주화 투쟁 경력을 갖고 있는 인물들로 구성된 민주당에 대한 불신은 민주화 투쟁 경력이 이제는 그다지 대중적으로 호소력을 갖고 있지 못함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미 많은 민주투사들은 권력의 수혜자가 되었고 또 그만큼 변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라는 가사의 노래를 목이 터져라 부르던 그 진정성은 퇴색되었다. 권력은 인간을 바꾸는 마력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은 권력에 정직하게 반응한다. 상식 이하의 공천은 민주화세력이 권력을 쥐게 되면 그 권력을 다루는 방식이 다를 줄 알았던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그들도 그렇게 권력에 정직하게 반응하였던 것이다.

진짜 실망스러웠던 시기는 참여정부 시기였다. 눈부신 투쟁 경력을 갖고 있는 투사들이 행정부, 입법부에 그렇게 많이 진출했는데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행태는 독단적이고 파벌적이었다. 특히 나는 참여정부가 정치적 자유주의를 꽃 피운 것은 인정하지만 그 통치행태의 폐쇄성에 실망했다. 나는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어낸 노사모는 존경스러웠지만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이후에도 존재하는 노사모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보수 권력이건 진보 권력이건 모든 권력은 견제와 감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권력 안에 숨어 있는 자기 확장성이 권력을 독단과 부패에 빠뜨리는 부정적 요소를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자유주의 세력을 대표하는 정통야당세력의 이런 문제점이 급진적 성향의 진보진영에도 예외없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선거에서 이정희의 '돋보임'은 전혀 표로 연결되지 않았다. 최소한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그들의 행태를 국민들이 기억하는 상황에서 그가 박근혜에게 들이댄 예봉은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주었을지는 몰라도 그가 그렇게 역설한 정권교체의 '종이돌'(paper stones)이 되지 못했다. 나는 극히 상식적인 질문을 이정희에게 던지고자 한다. 박정희를 향한 그의 날카로운 비판이 왜 사회주의 체제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세습체제를 고착시킨 북한권력을 향하지는 않는가. 그것은 명백한 이중잣대 아닌가. 나는 '반미'가, 자유권이라는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할 존엄한 권리를 대신할 수 있는, 그 정도의 미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 이번 선거에서 좌파진영의 대표를 자임하는 대선 후보 5번과 7번의 차이가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차이에 대한 포용이 메말라버린 그것이 좌파를 자임하는 한국 진보의 현실은 아닌가. 나는 좌파 정체성을 자부하면서 정치적 독자성에 몰입하는 지식인들에 묻고 싶다. 현실에 토대하지 않는 실천은 공허 그 자체가 아니냐고. 이때의 현실은 언론환경의 악화 등 자유권과 법치주의가 공고화되었다고 볼 수 없는, 즉 민주주의의 역진 현상을 보게 되고 그래서 핵심 사안에 대한 합의를 바탕으로 연대의 극대화를 꾀해야 하는 한국 민주주의의 절박한 현안을 말한다.

주지하다시피 브라질 노동자당(PT)은 권력 재창출에 성공하는 등 지속적인 발전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브라질 노동자당 안에는 자유주의 세력부터 트로츠키주의 세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파와 이념이 폭넓게 공존하고 있다. PT는 정치적으로 현실과 이상을 적절히 조율해내고, 진보적 가치를 정치적 온건함으로 용해해내고, 당내 다양한 정치적 지평을 대중정당의 활력으로 승화시키는 '융합의 정치'의 대표적 예다. 더욱이 노동자 출신 룰라의 카리스마는 PT에 더없이 소중한 자산이었다. 물론 PT라고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차이를 인내하지 못하는' 한국의 진보는 PT로부터 분명히 배울 것이 있다고 본다.

나는 한국의 보수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민주주의와 산업화의 기본이 형성된 이승만, 박정희 시기가 식민주의를 경험한 다른 제3세계 국가들과 비교할 때 보게 되는 비교우위의 측면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제3세계 국가들은 이념과 체제의 차이를 막론하고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에 실패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필리핀의 개혁 지도자 막사이사이도 산업화의 토대가 되는 농지개혁에 실패했다. 이후 필리핀은 아시아의 병자로 전락했다. 또한 1950~70년대에 걸쳐 반제국주의와 사회주의를 내건 대부분의 제3세계 국가들이 민주주의와 산업화의 기초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1인 독재권력, 빈곤국으로 추락한 모습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한국 보수의 비교우위에 한국 진보의 기여가 있었음을 강조하고 싶다. 흔히 이승만 시기에 이루어진 농지개혁이 한국 산업화의 기초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것 역시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요구하는 당시 좌익의 압박이 없었으면 가능했겠는가. 나아가 이승만 시기의 농지개혁 없이는 박정희 시기의 경제적 성과를 논할 수 없다. 4.19에 대한 부담이 없이는 박정희의 추격형 산업화 전략을 또한 생각할 수 없다.

나아가 한국의 진보는 한국 보수의 이러한 비교우위 측면에도 불구하고 1987년 민주항쟁을 통해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끌어냈고 김대중과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다. 그리고 이번 선거에서 박근혜의 새누리당으로 하여금 보수언론의 공격을 감수하면서 과거 자신들이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던 정책들을 대폭 수용하도록 하였다.

박빙의 패배가 그렇듯이 이번 대선에서 한국의 진보가 완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의 진보는 보수로 하여금 '수동혁명', 즉 위로부터의 개혁을 이끌어내는데 기여하였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정부는 50%에 가까운 반대세력을 의식해 '동의의 정치'를 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박정희가 부활하고 있는 것에 심리적 거부감을 감내하면서 민주적 절차와 그 결과에 승복해야 하는 고통이 있다.

패배의 아픔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우리에게 '의지의 낙관주의' 뿐만 아니라 '지성의 낙관주의'를 주문하고 싶다. 나는 나의 비판과 제안이 완벽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경험한 만큼 내가 아는 만큼 얘기한 것이다. 우리가 각기 달리 경험하고 달리 판단하고 달리 생각하는 것들을 서로 나누고 보완하면서 상식의 세계를 반영한 거대한 희망 만들기 프로젝트에 다시 참여하였으면 한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힘든 시기를 거치면서 힘있는 정당이 만들어지고, 2017년 대선에서 진보의 미래를 열 수 있는 걸출한 지도자가 탄생하길 기대한다. 정치적 보수화의 결빙을 막고 한국 민주주의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서도 2017년의 변화는 당위이기 때문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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