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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 불가! 이 단정치 못한 소설을 어찌할꼬!

[프레시안 books] 김종호의 <인어공주 이야기>

독자와 계약을 파기한 소설

소설가가 소설을 쓰는 건 법으로 금지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소설가와 독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계약 관계에 놓여 있다. ①지루하면 던져버릴 겁니다, ②당신의 입으로 내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③저는 감동받을 준비가 된 사람입니다, 저에게 책 무게만큼이라도 감동을 한번 주세요!

소설가 김종호의 <인어공주 이야기>(허남준 그림, 문학과지성사 펴냄)는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계약 위반이다. 바라나시 강변에서 하시시(마약의 일종)를 하는 어느 나병 환자의 방언 같기도 하고, 세계 도처에 지사를 둔 어느 이야기 넝마주이의 수습 안 된 소설 같기도 하다. 등장하는 언니들은 한결 같이 무시무시하고, X자로 타이핑 된 육두문자는 방송 불가처럼 '인쇄 불가' 판정을 받을 만하다. 그래도, 혹은 그래서<인어공주 이야기>는 읽다가 쓰러질지언정 읽어 치워야 하는 소설이다.

▲ <인어공주 이야기>(김종호 지음, 허남준 그림,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
밀란 쿤데라는 <불멸>(김병욱 옮김, 민음사 펴냄)에서 자신의 소설은 영화가 될 수 없다며, 그런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말했다. 또 같은 책에서 '육체의 소리'를 들으라고 했다. 이 소설이 그러하다. <인어공주 이야기>는 영화가 되어서도 안 되고, 될 수도 없는 소설이다. 저주 받은 땅과 하늘에서 검은 비가 내리고, 악취가 풍기고, 삶과 죽음이 뒤엉킨 이야기가 썩은 시체를 발로 밟은 것처럼 물컹댄다. 이런 소설 세계를 열 수 있고 지탱 할 수 있는 소설가는 귀하다. 계약은 위반했어도, 독자들이 받을 보상은 충분하다.

책을 펼쳐보자. 뒤죽박죽 실마리를 잡기가 쉬워 보이지 않지만, 이 불친절한 소설가의 검은 잉크 자국을 좇아가다 보면 그가 역설하고자 하는 지점에 서 있게 된다.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과거나 미래, 15세기 간디아 앞 바다에서나 풍문으로 들었을 법한 인어 이야기를 듣고 있다. 흑사병이 창궐해서 시체가 바다로 던져지는 풍경을, 어느 쇠락한 교회 종탑 옆에서 바라보는 입장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이 소설은 공포 이면의 가장 인간적인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살점이 터져 검은 피가 흐르듯 노래가 나오고, 죽어야 영원히 사는 시간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음란하지만 지극히 아름답고,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듯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이다.

망가진 사랑 기계의 검은 녹물들

김종호는 그의 첫 번째 소설집 <검은 소설이 보내다>(열림원 펴냄)에서 글쓰기 자체가 저자를 쓰는, 죽음이 존재를 쓰는, 욕망과 무의식이 주체를 쓰는, 상상이 현실을 쓰는 그런 불가능한 텍스트를 '검은 소설'로 명명했다. <인어공주 이야기>도 이 '검은 소설'의 연장선에 있다.

"내 눈이 어두웠던 탓일까. 사람의 팔과 다리를 달고 삐걱 비틀거리며 새카만 어둠을 뒤집어쓰고 걷다 보니, 보이지 않던 것들도 보이게 되었단다." (47쪽)

나는 가끔 계단을 내려오면서 발보다 먼저 휘청거리는 두 팔이 계단 저 밑에 툭 던져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을 할 때가 있다. 21세기 도시에 기생하는 누구나 그런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무거운 몸으로 지하철을 타고 퇴근 할 때면, 이 건사하기 힘든 육체가 집 앞마당에 그냥 툭 널브러져 있으면, 방안 옷걸이에 척 걸쳐져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망상이나 상상, 혹은 환상이나 공상 뭐 그런 거 말이다.

불온하고 단정치 못한 소설 <인어공주 이야기>는 그러한 도착(到着)을 그리고 있다. 사랑이 삶을 지탱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욕망이 된 이상, 사랑의 기착지는 죽음이다. 소설가는 이 죽음을 포장하는 기술을, 육포를 씹듯 질겅질겅 들려주고 있다.

<인어공주 이야기>는 동화의 상상력을 바탕에 두고 있다. 하지만 행간을 들여다보면 시적 언술이 적지 않고, 사유의 깊이 또한 깊다. 이 소설에 빠져들 수밖에 없도록 하는 소설가의 전략이다. 행간 속에서 툭툭, 눈에 들어오는 사유들! 내면 깊이 살점처럼 박혀 있던 사적 진술들이 붉은 반점처럼 드러난다. 이 사유들은 곧잘 소설의 형식을 벗어나기 일쑤다. 애초부터 질서를 부여받지 못한 소설이니까.

'프롤로그'에서는 다섯 명의 언니들 둔 막내 인어공주가 이야기를 시작하는 듯하지만, '언니들'에서는 각각의 언니들이 막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내 이야기는 인어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이야기로 흘러가고, 그 이야기를 하는 주체는 또 다시 다른 누군가이다. 아니, 다른 누군가가 누구인지도 확실치 않다. 어느 시간에서 흐르는 이야기인지 알 수도 없다. 그래도 이야기는 계속해서 새롭게 시작된다.

그것은 노래였다가 시였다가, 대화였다가 혼잣말이 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이야기를 하는 자와 이야기를 듣는 자가 불분명해지는 순간, 그곳에 아름다움이 와 있는 것이다.

자유로운 영혼이 만든 '새것'들

<인어공주 이야기>를 읽다보면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문학과지성사 펴냄)가 떠오르기도 한다. 글투에서도 닮은 부분이 있고, 문장에서도 닮은 구석이 있다. 하지만 다르다.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가 범신론에 근거한 죽음을 이야기한다면 김종호의 <인어공주 이야기>는 더 이상 타락하고 추락할 곳이 없는 인간 군상들의 삶에 비춰보는 죽음 얘기다. 소설가가 상상력으로 만든 움푹한 세계에서, 소설가는 망가진 사랑 기계를 수리하고 있다.

평평한 곳을 놔두고 왜 움푹한 세계로 독자들을 잡아당기느냐고 한다면 할 말은 없겠지만, 이런 불온한 소설이 한국 문학의 저변을 넓힌다고 본다. 도저히 맥락이 잡히지 않는, 흉측한 현실 삶을 역설해 내는 이 기괴한 소설에 박수를 보낸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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