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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의 남자들', 진보의 미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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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의 남자들', 진보의 미래인가?

[프레시안 books] 박신홍의 <안희정과 이광재>

박신홍의 <안희정과 이광재>(메디치 펴냄)는 전 대통령 노무현의 핵심 참모의 인생을 다룬 이야기다. 이들의 어린 시절 가정환경부터 대통령 참모를 거쳐 현실 정치인으로 거듭나기까지의 과정을 소설과 같은 문체로 묘사하고 있다.

저자 박신홍은 이 책을 쓰기 위해 안희정 충청남도지사와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는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만나며 총 40시간의 인터뷰를 했다고 말한다. 대단한 정성이다. 정성이 들어간 책은 쉽게 이해되고 쉽게 읽힌다. 이리 저리 딴 짓을 하면서도 반나절 만에 읽어버린 것 같다.

기본적으로 다수의 사람은 이 책을 읽으며 그럭저럭 성공한 정치인의 인생사에 대해 알기를 원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범상치 않았던 과거를 들춰보며 흥미로워할 것이다. 사리사욕만 채우며 민중의 이익을 등한시하는 일반적인 정치인들의 모습과 대비되는 그들의 신념에 찬 삶에 찬사를 보내는 이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삶을 그런 수준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안희정, 이광재가 젊은 시절 신념을 걸고 학생 운동을 하던 때에 그 길을 같이 걷던 그리고 안희정, 이광재가 정치권으로 들어갈 때 광야에 남아 기성 정치와는 다른 정치를 해보겠다는 꿈을 놓지 않고 진보 정치의 실현에 온 몸을 바쳤던 지금의 진보 정치 세력이다.


▲ <안희정과 이광재>(박신홍 지음, 메디치 펴냄). ⓒ메디치
이들에게 이 책은 여러 가지 면에서 특별한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안희정과 이광재의 젊은 시절은 전형적인 소위 '운동권'의 삶과 다를 바가 없었다. 유인물을 만들고, 집회를 주도했으며, 공안 기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동료의 신원을 노출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런 모든 감정은 동시대를 살았던 학생 운동가에게는 꽤 익숙한 것이었고 이런 경험은 지금 '386' 혹은 '486'으로 일컬어지는 특정 세대가 공유하는 집단적 정서의 근본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안희정, 이광재가 나름 유력한 야당 정치인의 참모로 활동하면서 기성 정치권에 발을 들였을 때, 기성 정치가 아닌 대안적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진보 정당을 만들고자 수많은 노력을 기울이며 온갖 고생을 다했다. 민중당, 한국사회주의노동당, 진보정당추진위원회 등 빛을 보지 못하고 명멸했던 조직들이 다 이러한 흐름 안에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고단한 투쟁의 길이었다.

이러한 흐름은 민주노동당 창당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진보 정치의 길과 안희정, 이광재의 길은 완전한 대척점에 서게 되었다. 이것은 노무현 정부 내내 불거졌던 진보 정치 세력과 노무현 정부 간의 감정적 대립으로 나타났다. 노무현 정부 인사들이 보기에 진보 정치 세력은 철없고 고집 센 이상주의자로 여겨졌을 것이고 진보 정치 세력에게 그들은 운동을 함께 했으나 이제는 권력에 눈이 먼 변절자로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사실이 그랬던 걸까? <안희정과 이광재>를 읽으면 어느 정도의 답을 얻을 수 있다. 이 책에 실린 글은 안희정, 이광재의 과거를 스스로가 술회한 인터뷰를 기본으로 작성된 것이니 아무래도 현실보다 훨씬 미화된 장면을 묘사하고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을 감안하더라도 안희정, 이광재가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돈과 권력을 쫓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비록 같은 길에 서 있지는 않았지만 안희정, 이광재가 고민했던 것들은 진보 정치 세력도 똑같이 고민했던 것이다.

사람들을 조직하고 추스르는데 능력을 가졌지만 뜬구름 잡는 역사철학(?)에서 벗어나지 못한 안희정이, 돌아다니면서 사고를 치는데 익숙한 실용적 마인드를 가진 이광재와 갈등을 빚는 부분은 지금도 진보 정치 세력 내에서 사람들이 이념이냐 현실이냐를 놓고 쉽게 부딪치는 딜레마적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책을 읽는 내내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안희정, 이광재가 자신들의 신념을 헌 신짝 버리듯 내다 버리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진보 정치 세력과 안희정, 이광재는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물론 안희정, 이광재의 신념과 진보 정치 세력의 신념이 완전히 같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진보 정치 세력 스스로도 자기들끼리 신념을 맞추지 못해 늘 싸우는 판이니 말이다.

한 때는 함께 학생 운동을 하던 처지였던 사람들이 진보 정치와 보수 정치로 갈라지게 된 결정적인 인식의 차이는 역시 '방법론'에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진보 정치의 고전적인 방법론은 노동자, 서민을 기반으로 한 세력을 형성하고 그들의 단단한 지지를 획득하는 진보 정당을 만들어 이를 통해 정치 권력을 획득하는 것이다. 즉, 진보 정치의 집권 수단은 '조직'이다. 진보 정치는 '조직'에서 '사람'이 태어나고, 이 '사람'이 '정치'를 한다.

반면에 안희정, 이광재의 방법론은 '사람'에 희망을 거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꿈을 이루어줄 정치인을 간절히 찾아 헤맸고 마치 그것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인 듯한 노무현을 만났을 때 비로소 자신의 신념을 걸 수 있었다. 이 대목은 미국 드라마 <웨스트윙>에서 백악관 비서실차장 조시 라이먼이 자신들의 인생을 걸만한 정치인인 제드 바틀렛을 찾아내 공보비서관 샘 시본을 찾아가 서로 의미 있는 웃음을 주고받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안희정, 이광재는 웃음을 주고받는 대신에 캔 맥주 한 박스를 샀다. 안희정은 이광재가 캔 맥주 한 박스를 들고 자신의 방으로 통하는 계단을 올라오던 때를 "광재가 최고로 멋있어 보이던 순간"이라며 회고한다. 이들은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통해 '조직'을 만들고, '사람'을 통해 '정치'를 했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여러 가지 평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진보 정치의 입장에서 노무현 정부는 실패한 정부다. 노무현도 본인의 회고에서 밝히는 아쉬운 점들은 진보 정치 세력의 입장에서는 치명적인 것이다. 그들의 실패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따지는 것은 매우 어렵고 험난한 일이나 그 원인 중 하나에 '방법론'의 문제가 있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해보는 것이 무리한 생각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진보 정치 스스로가 자신의 고전적 방법론을 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든다. 한 때 민중의 든든한 대안으로 떠올랐던 민주노동당은 둘로 쪼개졌으며 이제 그마저도 사분오열되어 각자도생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진보 정치의 활동가로 살고 싶었던 나는 술을 마시면 습관처럼 "나의 주군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라고 말한다.

진보 정치의 이상을 진보 정치의 방법론으로 실현하고 싶었던 사람들에게 지금의 상황은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할 수 없이 안희정, 이광재의 길을 걸어야 하는가? 진보 정치 세력에게 이 책이 던지는 씁쓸한 물음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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