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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완득이'는 오토바이 타는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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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완득이'는 오토바이 타는 청춘!

[프레시안 books] 이송현의 <내 청춘 370km>

<내 청춘 시속 370km>(이송현 지음, 사계절 펴냄)를 보고 처음 떠오른 장면은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앳된 소년의 모습도, 너른 들판을 날아가는 보라매의 모습도 아닌 홀아비 냄새 나는 방의 풍경이었다. 이 이야기는 적당히 구질구질하고 그래서 적당히 실감난다. 포식자 본능이 살아 숨쉬는 매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한숨이 푹 났을 정도로.

주인공 동준이는 매 사냥꾼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아주 많다. 번듯한 회사 부장님으로 살다가 별안간 전통을 수호하고 풍류를 즐기겠다며 매를 기르기 시작한 아버지, 그리고 그런 아버지의 급작스런 선택으로 졸지에 우아한 사모님에서 억척어멈이 된 엄마. 엄마가 식당일을 하러 집을 나가자 집안엔 동준이와 아버지뿐이다. 동준이는 매 끼니를 라면으로 때우지만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는 매는 매 끼니 소고기를 먹고, 동준이는 아주 어릴 때 이후론 배 본 적 없는 아버지의 왼쪽 팔은 언제나 매의 차지다.

그 가운데 동준이가 속상해하는 것은 집안 형편이 나빠져서가 아니다. 녀석이 가지는 감정은 "아버지와 자신 사이에 언제나 매가 있"다는 데서 기인한 서운함이다. 아버지가 자식인 자기보다, 사랑하는 여인인 엄마보다 매를 더 아끼는 것 같다는 불만은 동준이를 오토바이에 올라타게 만든다. 안중근 의사의 말마따나 "앉아 있을 때가 아닌" 청춘은, 그렇게 야자 대신 길거리를 선택한다. 그래봤자 이륜구동, 심지어 중국집 오토바이가 달릴 수 있는 곳이라곤 국도라고 부르기도 겸손한 동네 길가겠지만….

동준이는 심지어 거기서도 고꾸라져 사고를 당한다. 좋아하는 예리랑도 어정쩡한 관계만이 지속된다. 드디어 동준이는 중국집 '안중근 형'의 부조리한 오토바이 대여료와 답답한 세상사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 아버지 밑에서 매잡이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물론, 바이크 사려고.

동준이는 잘난 것 하나 없는 놈이지만, 뜯어보면 못난 것은 더더욱 없는 녀석이다. 녀석은 어떤 관계든지 결코 포기하지 않고 건강하게 일구어내려 노력한다.

▲ <내 청춘 시속 370km>(이송현 지음, 사계절 펴냄). ⓒ사계절

책 표지에 적힌 문학평론가 오세란의 말은 이 책을 한마디로 설명해준다. "내가 읽은 청소년 소설 중에 청소년을 가장 깊이 믿어 주는 작품이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적잖은 청소년 소설들이 거의 상상으로 쓰인 것들이었다. 주인공은 너무 '오글'거리고 애답지 못했다. 벌써 어른의 생리를 간파한 녀석들에게 젖을 물리는 형국도 어렵잖게 목격할 수 있었다. 인터넷 소설이 선풍적 인기를 끈 것은 그 이야기들이 적어도 청소년기의 밑도 끝도 없는 몽상에 힘을 실어주었기 때문일 거다.

그 이후로는 청소년 소설에 자극적이고 날카로운 소재가 대거 등장했다. 동성애, 자살…. 누군가는 이야기해주어야 할 부분임은 분명했지만 누구나 지레 무게를 잡은 채로 표피만을 긁어내니 오히려 불편한 기분을 주기만 했다. 그 중 등장했던 것이 바로 김려령의 <완득이>(창비 펴냄)였고, <완득이>는 다양한 사회의 모습을 훑으면서도 다정함을 잃지 않았다는 점에서 사랑받았다.

<내 청춘 시속 370km>도 어쩌면 <완득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소설은 매 사냥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끌어오면서도 거기에 절대적인 비중을 부여하지 않는다. 마치 완득이에게 복싱과 어머니가 일종의 '통과의례'였던 것과 같다.

구체적 설정에서도 비슷한 부분들이 보인다. <완득이>에서 아버지 곁을 떠난 완득이의 엄마가 아버지 입맛에 맞춰 짠 반찬과 질긴 폐닭 백숙을 해주는 것처럼, 동준이의 엄마 또한 '잡새들'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하면서도 요리만큼은 신 김치와 맵고 단 음식을 좋아하는 아버지 취향대로 해 준다. 동주 선생을 콱 죽여 달라고 교회에서 기도하는 완득이와, 세상의 매란 매는 다 죽게 해달라고 절에서 기도하는 동준이도 닮았다. '똠양꿍'의 존재도 그렇다.

다만 <완득이>에선 다소 회피했던 문제가 여기선 비교적 정직하게 드러난다. 필리핀 출신의 엄마를 둔 친구 '똠양꿍'과 똠양꿍을 놀리는 '돼랑이'의 일화가 바로 그것이다. 돼랑이가 가지고 있는 '동남아 여자 국제 결혼'에 대한 일반적 편견과 그것에 상처받는 똠양꿍의 모습은 당장 우리에게 흔한 사건이 될지도 모르는 광경이다. 그리고 이런 데서 동준이의 미덕은 드러난다. 친구의 '다름'을 아예 의식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다르지만 상관없잖아'가 아니라, 애초에 다르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 이 의리 넘치고 착해빠진 태도는 일전에 완득이가 보여준 것임과 동시에 동준이에게도 마찬가지로 존재하는, 생각보다 훨씬 청순한 그맘때 남자애들의 성정이다.

하지만 동준이가 모든 갈등을 타개하는 과정에서, 정작 보라매 '보로'와 동준이 사이에 있었던 사건들이나 감정의 흐름들이 너무나 간략화되고 흐지부지 흘러간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완득이>의 작가 김려령에게도 지적된 적 있는 면으로, 문제를 모두 가볍게 희석시킴으로써 진지해야 할 순간마저 어물쩍 넘어가는 듯한 기분을 준다는 거다.

또한 소재에 몰입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소재를 잔뜩 늘어만 놓고 그것들이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건 소설로서의 끈끈한 개연성을 떨어뜨리는 일이 될 수 있다. 매 사냥도, 하모니카도, 오토바이도 전혀 모르는 사람이 기본적인 리서치를 했을 때 나올 수 있는 정도다. '매는 길들여지지 않는다'고 하면서 왜 보로가 다시 응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는지도 궁금하고, 동준이가 보로와 어떻게 정으로 맺어졌는지도 좀 더 이야기되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이때까지의 행보를 생각해 보면 상당히 무거웠을 결단을 너무 쉽게 내린 동준이의 행동에 대해서도 설명이 부족한 느낌이다.

하지만 마냥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애초에 동준이에게 중요한 것은 오토바이도 매도 아닌, 스스로의 성장이었다. 그맘때의, 그야말로 청춘을 솜이불 아래에서 어중간하게 엉덩이 비비며 보낼 순 없는 것이다. "지금은 앉아 있을 때가 아니"니까 말이다. 사실 보로 자체가 엄청난 일을 한 것 같진 않다. 보로는 엘윈 브룩스 화이트의 <샬롯의 거미줄>에 등장하는 동물들처럼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베치 바이어스의 <검은 여우>처럼 자연 자체에 깊게 매혹되도록 하는 수단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동준이와 보로의 관계는 어쩌면 '그냥 그래'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정말로 사소한 것에 위안 받을 수 있는 것이 또 이맘때다. 그 위안을 위해 수십만 고등학생들은 아이돌 '오빠'에 매달리고, 게임에 '현질'을 하고, 동준이처럼 바이크를 타고 '빠라바라밤' 효과음 내는 클랙션을 새로 다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하면서 산다. 그러니까 동준이에겐 그저 계기가 필요했을 뿐이다. 자신을 위로해 줄 그 무언가가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처음에는 오토바이, 뒤에는 매였던 것이다.

게다가 세상엔 가족끼리도, 친구끼리도 할 수 없는 얘기가 있는 법이다. 동준이도 보로나 되니까 이름도 양담배를 따서 짓고, 싸가지 바가지인 돼랑이를 겁줄 때도 애를 데려갈 수 있었다. 입이 무겁다 못해 부리로 만들어진 맹금류 동반자라니 참으로 쏠쏠하지 않은가. 무엇보다도 이 사소한 위안의 체험은 동준이가 아버지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길이 되어준다.

동준이가 대학은 어딜 가고 전공은 뭘 하고 진로 계획은 어떻게 잡고… 하는 이야기는,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없다. 할리우드 영화스러운 긴박감과 드라마틱한 상황에 맛들인 독자라면 다소 밍밍한 흐름에 허무할 수도 있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전개가 썰렁하다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덕분에 독자들은 사랑스러운 진실을 깨닫는다. 사실은 누구나 사춘기는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그래서인지 초반 느꼈던 퀴퀴함에 대한 한숨은 다시 목구멍 안으로 들어간다.

<내 청춘 시속 370km>를 다 읽은 다음날, 꾸역꾸역 오르막길을 올라 산 밑의 절에 다녀왔다. 극락전에서 아주머니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 100일 기도를 하고 있었다. 시험 잘 치고 좋은 일만 일어나며 실수 없고 무탈하게…. 우리나라에서 날이 추워지는 타이밍을 가장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척도가 바로 수능 디데이다. 그리고 마침 콧물이 나려는 게, 곧 쌀쌀한 겨울이었다. 매사냥과 또, 질주하는 소년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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