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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안철수는 무엇인가

[프레시안 books] <안철수 밀어서 잠금 해제>

모든 사람들이 이토록 안철수를 말하게 될 줄 몰랐다. 그전까지 그에 관해 갖고 있던 기억이라곤 초등학교 컴퓨터 시간에 바이러스를 잡는 'V3 백신'이 안철수연구소에서 만들어졌다는 정도, 시간이 흘러 다른 백신을 쓰게 되었지만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좋은 인상을 주었다는 것 정도다.

정보통신 업계 종사자가 아니고서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같은 20대에게 안철수는 그렇게 익숙하면서도 막연히 나쁘지 않은 인상의 덩어리로만 남아 있는 사람이었다. 이런 인물을 정치 뉴스에서 매일 만나게 되고, 정치인과 학자를 비롯해 온갖 '글밥'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 중요하게 거론될 줄은 정말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 모든 소란은 안철수가 정치에 뜻을 '언뜻' 내비치면서 시작되었다. 여기서 정치는 생활 정치도 아니고 '사내 정치' 따위 인간관계의 정치도 아니고, 그야말로 권력을 얻고 공직에 오르고자 하는 의미의, 가장 흔히 쓰는 의미에서의 그 정치였다. 사람들이 가장 혐오하는 그것이다.

안철수가 서울 시장 선거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박원순에게 양보한 짧은 시간 동안, 사람들이 그의 인성에 감동했든 왠지 아니꼬워했든 문제가 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가 이 사건 이후 대선을 묻는 여론 조사 설문 항목에 이름을 올렸으며, 박근혜를 앞선다는 믿지 못할 결과를 냈다는 것. 그저 가상 시나리오 중 하나일 뿐이지만, 그저 인상 좋은 유명인이었던 그가 5000만 명 중 열 명도 채 되지 않는 국가 최고 통수권자 후보에 오른 것이다. 그것도 맨 앞에.

동네방네 입 달렸다고 광고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곧바로 '안철수 잔칫상'을 차리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의 이력과 도덕적 성품에 기댄 단순한 기대에서부터 기성 정치권 혐오 현상을 개탄하는 목소리까지, 수많은 논평과 특집이 쏟아져 나왔다. 잔치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잘 먹고 가는 게 뭐 그리 문제겠는가. 어차피 글쓰기도 죄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니 말이다. <안철수 밀어서 잠금 해제>(한윤형·이재훈·김완·김민하 지음, 메디치 펴냄)도 그 안철수 잔칫상 중에 올린 숟가락 하나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 <안철수 밀어서 잠금 해제>(한윤형·이재훈·김완·김민하 지음, 메디치 펴냄). ⓒ메디치

하지만 이 책은 그 이상이다. 그저 그런 덕담을 던지거나 잔칫집 주인장에 대한 야사나 품평을 늘어놓는 것을 넘어, 이 잔치가 왜 마을에서 중요한 일인지 조목조목 짚어주며 주인장을 둘러싼 평가들의 진위를 가려준다. 또 이 집 주인장 때문에 마을의 힘깨나 쓰는 사람 중 누가 울고 웃을 것인지, 이다음 순간엔 이들이 어떻게 모이고 흩어질 것인지에 대한 예상도를 세세하게 그려낸다.

1장의 저자 한윤형은 '안철수 현상'이 하룻밤의 축제가 아니라는 점을 짚고 시작한다. 여기서 그가 드는 '스파크' 비유는 흥미롭다. 스파크가 일어나려면 정전기가 먼저 흐르고 있어야 한다. 그럼 안철수 스파크의 정전기는 무엇이었나? 한윤형은 그가 출연했던 '청춘 콘서트'에서 그 단초를 본다. 안철수와 박경철이 진행한, 20대 대학생을 위한 이 강연은 현장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고 한다. 하지만 누가 어떤 공연을 본 뒤 새로이 살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해서 한국 사회 전체에도 영향을 줄 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 열기는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이유는 다음과 같다. 민주주의 정치 체제에서의 선거란 일반 '시장'과는 달리 특이한 시장이어서, 무작정 많은 사람의 많은 소비를 이끌어 낼 필요가 없다. 자본주의 아래 최대한 많은 이윤을 이끌어야 불황 때의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기업과 달리 민주주의 아래 정치인은 51퍼센트를 얻든 70퍼센트를 얻든 큰 상관이 없다. 아무래도 높은 지지를 얻는 쪽이 국정을 수행하기 쉽겠지만 어쨌든 자리에 앉는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한윤형은 이런 민주주의 장터의 진실이 20대가 소외된 원인이었다고 말한다. 20대에 대한 말은 많았지만 정작 20대를 위한 정책이 나오지 않은 것은, 그들을 굳이 건드리지 않아도 다른 세대에서의 지지를 통해 투표에 승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단, 20대가 정치적인 의사를 밝히지 않는다는 한에서.

안철수는 여기에 스파크, 불꽃을 튀긴다. 한윤형은 이 지점에서 일련의 세대 논의와 달리 어떤 도덕적 기준이나 정치적 성향에 근거하지 않고 철저히 '힘'의 관점에서 사태를 파악한다. 정전기는 20대고 스파크는 안철수다. 20대가 이렇게 타오른 불꽃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서로를 하나의 집단으로 의식하는 것도 아니고, 안철수가 이 불꽃을 그대로 가지고 갈지 말지도 명확치 않다.

다만 어쨌든 불이 붙었고 이제 어느 누구도 이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대는 안철수를 통해 한국 정치계의 핵심 쟁점이 되었다. 하지만 다들 그들이 블루오션이라는 것을 몰라서 방관하고 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안철수가 정확히 이곳을 개척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른 저자들이 쓴 장에서 조금씩 다르지만) 이 책의 기본 논지는 여기에서 시작한다. 안철수는 하나의 사건이다. 그 어떤 상황도 이전과 같지 않다. 안철수에 대해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퇴행적인 일이다. 1장 나머지 논지 대부분은 이를 부정하는 사람들, 안철수 비관론(문제아론)의 논지를 격파하면서 진행된다.

첫 번째는 '정치인의 자격'론이다. 이를 내세우는 이들은 정치인으로 검증되지 않은 이가 정치적 활동을 하여 한국 정치 제도의 근간이자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집단적 의사 결정인 대의 민주주의를 훼손한다고 주장한다. 한윤형은 주장의 전제가 틀렸음을 지적하는 방식으로 답한다. 안철수는 대의 민주주의가 무너진 원인이 아닌 그 결과이며, 이러한 상황은 오히려 그 '정치인의 자격'을 검증할 시스템이 부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올바른 대의 민주주의의 기준을 정당 출신의 정치인에서 찾는 것은 상표만 보고 물건을 사는 것과 같은 단순하고 순진한 짓이다. 과연 그 이름난 상표들이 과연 질 좋은 상품을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공정 기반을 갖추고 있을까? 여기서 한윤형은 정당의 가입 유무가 아닌 '정치인의 자격'을 판별할 나름의 기준을 시범적으로 제시해 본다.

정치인은 공직에 몸담은 지 오래되지 않아 관료만큼 실무에 빠삭하지도 않으며 다양한 이해관계를 대변해야 하기에 운동가처럼 특정한 불의에만 분노하고 있을 수도 없다. 한편으론 관료와 운동가는 못해도 정치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는데 그 둘의 주장을 조화시키고 현실의 정책으로 입안시키는 것이다.

한윤형이 격파하는 안철수 비관론 두 번째는 안철수는 신자유주의가 요구하는 인간성의 아이콘이라는 이른바 '탈정치적 엄친아'론이다. (<한겨레> 이재훈이 쓴 이 책의 2장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 주장의 문제점은 우선 안철수의 도덕성과 완벽주의, 경쟁 심리와 나르시시즘 그리고 그에 대한 대중의 열광과 사회적 정의와 경제적 이익에 대한 기대 등 오로지 안철수만 갖고 있는 게 아닌 추상적 감정과 가치들을 신자유주의라는 자본주의 지배 질서와 등치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이다.

이런 주장은 표면적으로는 (신자유주의의) 도덕을 비판하지만 역설적으로 매우 도덕주의적인 담론이다. 도덕1이 아닌 도덕2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반(反)도덕은 인식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좀 더 교활한 형태의 도덕이 된다. 나아가 한윤형은 안철수 개인의 성격은 몰라도 사회 문제에 대한 그의 공개된 주장 자체는, 오히려 재벌에 대한 개혁적인 태도를 보여준다는 점을 지적한다. 안철수의 주장에는 1990년대 이후 한국의 경제 민주화론과 맥락을 같이 하는 면이 있으며 현재 한국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반한다는 것이다. 결국 안철수의 주장이 아닌 '품성'을 비판하는 데 집중한 담론들은 신자유주의라는 개념을 구조/경제적인 면은 도외시한 채 개인/도덕적인 면에 국한시킨 셈이다.

위에서 살펴본 두 담론들은 서로 꽤 닮아 있다. 이들은 실패한 대의 민주주의/신자유주의의 책임을 안철수 개인에게 물으며, 그것도 그가 사회에 대해 가지고 있는 주장이나 사회에 미칠 효과가 아닌 개인적인 품성에서 찾는다. 그들 각자가 생각하는 '올바른 정치'에서 안철수가 벗어나 있다고 나무라지만 그 올바른 정치란 인물 품평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쓰는 말은 다르지만 결국 '안철수는 정치가가 아니다"의 두 판본인 셈이다. 이렇게 뒤틀린 전제에서 시작한 이들은 이런 정치 아닌 것에서 정치를 찾는 '대중들의 일그러진 욕망'을 분석했노라고 자신한다. 이러한 접근들에서 현실 정치는 권력을 가지고 있든 말든 거짓 정치라고 치부된다.

이러한 관점을 이끌고 갔을 때 4장의 분석은, '정치'를 우리게 흔히 쓰는 협의의 정치 그 자체로서 상정하고 논의를 진행시킨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 만하다. 과거 진보신당 당직자였고 현재는 팟캐스트에서 '야채라디오'(☞바로 가기)라는 시사평론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김민하(☞홈페이지)는 이 책에서 안철수를 둘러싼 다양한 현실 집단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가 분석하는 관계는 각 절의 제목에서부터 매우 명료하게 드러난다. 1절은 '안철수 on 한나라당', 2절은 '안철수 in 민주당', 3장은 '신당 by 안철수'이다. 제목 그대로 시뮬레이션하고 있기에 매우 수월하게 읽히는 장이다. 이러한 독서의 윤기는 저자가 정당을 직장 중 하나로, 정치인을 생활인의 하나로 전제한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여기서 정치인들은 취업 준비자들이 공채 시험을 준비하는 것처럼 내년에 취직, 아니 당선될 수 있을지 여부를 점쳐본다. 정치인들은 공식·비공식적 루트에서 온갖 정보를 끌어 모아 지금 두목이 당선을 도와줄 힘이 있을지 없을지 가늠해보고 여차하다 싶으면 다른 보스를 모시든 자력갱생(신당 창당)을 하든 살 길을 찾기 위해 암중모색한다. 겉으로는 자신이 믿는 이념보다는 자신을 취직시켜줄 면접관(지지자)이 믿는 이념과 가치에 따라 움직인다. 다음 번 공채(선거) 때 자신의 나이가 너무 많을 것 같다 싶으면 준비를 좀더 '빡세게' 하기도 하고, 자존심 한구석들은 있어서 '독재자의 딸은 인정할 수 없다'며 배짱을 부려보기도 한다.

김민하는 안철수를 통해 현실 정당, 계파, 정치인, 대중과 그들 간의 관계에 대한 생태박물지를 작성하고 있다. 쇠똥구리는 그냥 심심해서 똥을 굴리는 게 아니라, 분명한 생존의 목적을 위해 굴린다. 하물며 정치인과 정치는 그냥 아무렇게나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정치인들이 멍청해 보이고 얼핏 보기에는 납득이 가지 않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나름의 이유는 새로운 책을 읽거나 이념을 배워서 얻을 수 있는 고차원의 것이 아니라, 그냥 살면서 마주치는 문제들과 매우 비슷한 것들이다. 그런 생존 경쟁과 역학 관계, 거기에 약간의 이념에 더해져 현실의 정치가 움직여 나가는 것이다.

안철수는 이렇게 구성되어 있는 생태계 외부에서 도입된 자극, 스파크다. 안철수가 어떤 구체적인 희망을 제시한 건 아니지만 그가 던져주는 교훈이 있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그렇게 천년만년 변하지 않는 곳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김민하는 이런 생태박물지를 기술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안철수를 통해 활성화된 에너지들이 어디로 튀어서 각각 단위들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발랄한 톤으로, 그러면서도 역사적이고 현재적인 근거들을 제시하면서 전개해 나간다. (이 가운데 '언론'이 자극에 어떻게 반응했고 앞으로 어떻게 반응할지에 대해서는 <미디어스> 김완이 쓴 3장을 참조하면 된다.)

네 저자들은 안철수 현상이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는 것인 듯 부인하거나, 그 중 일부만을 캐내어 일어나지 않은 미래로 앞질러 가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이러한 현상의 사회적, 정치적 토대를 차분하게 뒤쫓고 있다. 한 사람을 둘러싼 분석인 이 책에서 무엇을 얻을지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이것 하나만은 말해두고 싶다. 역사에는 '되감기'와 '빨리 감기' 버튼이 없으며 안철수 현상은 그러한 역사의 일부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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