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강대국의 식민지 늘리기 경쟁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국가 중 하나. 인종 차별 정책 (Apartheid) 철폐를 위해 오랜 기간 투쟁하고 많은 민중이 목숨을 잃은 나라.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지속되는 차별과 빈곤 그리고 식민의 잔재를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는 나라. 바로 이번 제17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UNFCCC COP17)가 열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착취와 억압에 맞서 싸워왔던 이곳 민중은 이제 기후 정의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 이들은 자본과 기업의 논리에 무시되는 수많은 원주민, 농민,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서 그리고 몇몇 국가에 의해 어느새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린 유엔 기후 체제에 의해 고통 받는 전 세계 민중과 함께 하기 위해서 더반에 모였다.
2012년 교토 의정서의 생명이 다해가는데도 기후 변화 총회는 지리멸렬한 협상으로 수년간 소중한 시간을 낭비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렇다 할 결론을 내기보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간의 힘겨루기만이 더욱 치열해졌다. 올해 역시 모두가 예견했듯이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은 보이지 않고, 선진국은 시간을 끌고 책임을 전가하는 이기적인 행보만 계속하고 있다. 반면 기후 자본 메커니즘을 통해 자본주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에는 적극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탄소 거래와 탄소 상쇄 등 시장 기반의 잘못된 해결책으로는 결코 기후 변화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고, 오히려 민중에게 부담을 가중시킨다. 더반 회의장에는 선진국과 선진국의 재정 지원을 필요로 하는 개발도상국 그리고 그 배후에 있는 초국적 기업과 금융 업체, 이들 사이에 더러운 뒷거래만이 진행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후 변화를 막고자 이곳에 모인 전 세계 사회 단체 활동가와 아프리카 민중들은 이번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를 오염자의 총회(COP: Conference of Polluters)라고 규정하고, 기후 변화의 책임이 있는 엘리트들이 자신의 이익만을 대변하고 새로운 이윤을 추구하는 행태를 비판하고 있다.
현재 공식 총회는 더반 시내 국제 컨벤션 센터(International Convention Centre)에서 열리고 있지만, 인도네시아 발리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기후 정의를 주장한 민중 진영은 콰줄루나탈 대학 (University of Kwazulu-natal)에 마련된 민중의 공간(People's Space)에서 대안적 총회를 열고 있다.
또 국제 농민 단체 비아 캄페시나(Via Campesina)와 원주민 그룹의 대형 텐트에서도 아래로부터의 총회를 지속하고 있다. 이들과 함께하면서도 새로운 흐름으로 등장한 것이 '기후변화협약 총회 점령(Occupy COP 17)' 운동이다. '월스트리트 점령(Occupy Well Street)'이 더반으로 확산된 것이다.
현재 '기후변화협약 총회 점령'이 국제적으로 뜨거운 관심을 받는 까닭은, 더 이상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가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 전 세계가 노력하는 자리가 아니라 1퍼센트의 선진국, 초국적 기업, 쾌락적 유산 계급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공간이 되어버렸다는 진실을 폭로하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유엔 회의가 단지 1퍼센트만을 위한 총회라면 민중은 기꺼이 그 총회를 부정하고 99퍼센트를 위해 투쟁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제 민중은 더 이상 1퍼센트의 오염자의 총회를 믿지 않으며, 그들이 선호하는 방식도 신뢰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내가 이야기를 하면서 울면, 슬퍼서 운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나는 슬픈 것이 아니라 화가 나는 거예요. 분노입니다."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 기후 부정의의 현장을 증언하는 자리에서 한 원주민 네트워크의 여성 참가자가 이야기했다.
"그들은 정말 우리와 다른 곳에 사는 건가요? 지구에 살지 않는 사람 같군요. 이렇게 모든 공동체가 사라지고 사람들이 죽어가고 그렇게 되면 저 유엔 기후변화협약 총회 안에 있는 이들은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화성에라도 가서 살 건가 보죠?"
또 다른 참가자의 분노가 이어졌다.
기후변화협약 총회는 기후 변화로 힘겨워하는 이들의 희망의 자리가 아니라 절망의 자리이자 분노의 자리가 되어가고 있다.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방안이라고 만들어 낸 시스템은, 자본이 청정 개발과 투자라는 이름으로 개발도상국에 들어가 공동체와 주민들의 삶과 권리를 침해하고 어머니 지구를 파괴하고 했으며, 이를 통해 만들어진 오염 배출의 권리를 사고팔아 기업들의 배를 불려주고 있다.
이로 인해 민중은 지금껏 민중을 위해, 지구를 위해 기후 변화와 싸우고 있다고 생각했던 유엔과 맞서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되고 이에 대해 분노하게 된 것이다. 유엔 회의가 지속적으로 자본과 기업을 대변하는 행사장으로 변질된다면, 분노의 눈물을 흘렸던 원주민 여성 참가자처럼 민중 모두가 분노하게 될 것이고, 이 분노의 물결은 더반의 거리에서 나타났다.
| ▲ 국제 공동 행동의 날 더반 시내에서는 선진국의 의무 감축, 기후 변화 일자리, 핵 발전 반대, 지속 가능한 미래, 산림 전용 방지(REDD) 반대 등 기후 정의의 목소리가 뜨거웠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
'아만다!(Amandla!)'가 선창되자 그 뒤를 이은 수천 명의 민중은 '아웨쥬!(Awethu!)'를 외쳤다. 이곳 줄루어로 '민중에게 권력을!'이라는 이 슬로건은 12월 3일 열린 국제 공동 행동의 날에 더반 시내에서 울려 퍼졌다. 아침 9시로 예정 됐던 행진은 '코리안 타임'보다 더 느긋한 '남아공 타임'에 맞춰 10시가 넘어 시작되었다.
더반 시가지를 돌아 총회장인 국제 컨벤션 센터를 지나 해변으로 향하는 행진은 약 4시간가량 진행 되었다. 민중은 쉼 없이 기후 정의를 외치고, 자본과 시장을 기반으로 한 잘못된 해결책만을 만들어 내는 유엔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특히 기후변화협약 총회가 진행되는 국제 컨벤션 센터를 지나 갈 때는 더욱 목소리를 높였고, 절규에 가까운 민중의 목소리는 바리케이드를 넘어 더반을 채웠다.
"사려 깊고 헌신적인 소수의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절대 의심하지 말라. 실로 세상을 바꾼 것은 그런 소수의 사람들이었다."
저명한 문화인류학자이자 페미니스트였던 마거릿 미드(Margaret Mead)의 이 명언처럼 기후 변화를 막고 어머니 지구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수천 명의 민중에서 시작될 것이다. 회의장에서 엘리트들이 지구를 걸고 도박판을 벌이고 있을 때, 전 세계의 여성, 원주민, 농민, 노동자, 시민들이 모여 원주민의 권리와 어머니 지구를 존중하고, 공동체를 파괴하는 산림전용 방지(REDD)와 같은 잘못된 해결 방안을 금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자본과 권력이 기획하는 탄소 식민주의가 확대되는 것을 반대하고, 노동자들을 위한 기후 변화를 막을 수 있는 괜찮은 기후 일자리(Climate Job)를 창출하고, 화석연료와 핵에서 벗어나 재생 가능 에너지를 확대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것이 민중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다. 민중은 말하고 있다. 민중이 답이다. 아만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