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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명이 닦았지만…기름 유출의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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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명이 닦았지만…기름 유출의 진실은?

[프레시안 books] 리키 오트의 <바다가 죽은 날>

한가하던 해양수산부 기자실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2007년 12월 7일 아침 7시께 충청남도 태안 앞바다에서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 호가 삼성중공업 해상 크레인과 충돌해 다량의 기름을 유출한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그날 오후 첫 공식 기자 회견이 열렸다. 외신 기자도 취재에 나섰다. 첫 보도 자료에 사고를 일으킨 배의 이름을 잘못 적는 등 정부도 사상 최대 규모의 기름 유출 사고에 허둥대는 모습이 역력했다(기름 오염 사고는 사고를 일으킨 배의 이름으로 부르는 게 관행이다. 사고가 난 지역으로 부르면 그 지역을 오염 지역으로 낙인찍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태안 기름오염 사고'가 아니라 '허베이 스피리트 호 기름 오염 사고'가 맞다).

사고가 났을 때 담당 기자가 할 일은 얼마나 큰 사고인지를 빨리 판단해 회사에 보고하는 일이다. 그래야 사회면에 쓸지 1면에 쓸지를 결정하고 이미 오전에 다 결정해 놓은 그날의 모든 다른 뉴스가 자리 이동을 하는 번잡한 작업을 제 시간에 마무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초 당시까지 가장 큰 기름 유출 사고인 여수의 씨프린스 호 사고를 떠올렸다. 하지만 흘러나간 기름의 양이 1만 킬로리터(5만 드럼)를 훨씬 넘어서는 것으로 드러나자 일이 커졌다. 자연히 세계 최대의 기름 유출 사고인 엑손 밸디즈 호 사고가 궁금해졌다.

당시 바다의 기름은 어떻게 수거했나, 해변의 기름 찌꺼기는 어떻게 제거했을까, 바다 생태계의 장·단기 피해는 어땠나, 정화 작업에 참여한 사람의 건강 피해는 없었나 그리고 바다가 회복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리나. 의문은 끝이 없었지만 참고할 자세한 정보를 담은 책은 없었다.

'엑손 밸디즈 호 기름 유출 사건의 진실과 거짓'이란 부제가 붙은 리키 오트의 <바다가 죽은 날>(강윤재·조아라 옮김, 소나무 펴냄)이 그때 있었다면 당시 그리고 직후 내가 썼던 기사들의 상당수는 아마 달라졌을 것이다.

▲ <바다가 죽은 날>(리키 오트 지음, 강윤재·조아라 옮김, 소나무 펴냄). ⓒ소나무
1989년 3월 24일 자정 조금 지나 알래스카의 프린스윌리엄사운드 해협에서 암초와 충돌한 엑손 밸디즈 호에서는 4만~12만 킬로리터의 원유가 새어 나왔다. 사상 최대 규모의 기름 유출 사고 가운데 하나인 이 사고로 해달, 물개, 연어, 청어 등 해양 생태계의 보고가 망가졌고 정화 작업에 나선 수많은 노동자와 어민들이 건강 피해를 입었다.

놀라운 건 사고가 난 지 20년이 지났는데도 이 사고로 얼마나 많은 원유가 유출됐는지 정확히 모른다는 사실이다. 유출량의 오차 범위가 이렇게 큰 집계를 통계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다. 이런 불확실성은 환경 재앙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현대 과학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이지만, 이 사고에선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

600쪽을 훌쩍 넘기는 이 책은 석유 문명의 위험성을 고발하는 단순한 환경 계몽서가 아니다. 해양 독성학자이자 현지 주민이기도 한 지은이 리키 오트는 사고 뒤 15년 동안 현장을 발로 뛰면서 방제 작업 참가자, 관련 연구자 등을 인터뷰하고 재판 기록들을 추적했다. 이 책은 그렇게 수집한 방대한 기록을 충실히 담아낸 보고서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 영웅들의 피땀 어린 분투와 사악한 거대 기업의 횡포로부터 감동과 분노를 느끼려 한다면 오산이다. 구체성의 미덕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실용적 힘이다.

과학과 과학자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이 책은 수많은 사례를 들어 증명하고 있다. 이 책은 그래서 '엑손 과학'과 거기에 종사하는 '엑손 과학자'들에 맞선 '공공 과학자'들의 분투기이기도 하다. 엑손은 기름 유출량을 줄이고 그 피해를 과소평가하도록 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고, 그 가장 유력한 수단의 하나가 과학이었다.

환경오염에서 과학이 얼마나 가해자 쪽에 가까운지를 보여주는 사례는 이 책에 넘쳐난다. 엑손 쪽 과학자들은 시료를 채취할 때 바닷물 시료의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 농도를 낮추기 위해 시료를 허술하게 다루었고, 평균값을 가지고 장난을 쳤다.

예를 들어, 기름 영향으로 고둥 두 종이 모두 감소했지만 '기회 종(opportunistic species,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나면 급격히 증가한 번식 능력을 보이는 생물 종) 속성이 있는 한 종은 곧 급속히 회복했다. 이런 생물종의 차이를 기술하지 않은 채 두 종의 개체수를 단순히 평균하면 고둥은 대체로 빨리 회복했다는 결과가 나온다.

또 오염 지역과 오염되지 않은 대조 지역의 생물상을 비교할 때 대조 지역을 엉뚱한 곳에 잡아 오염 지역의 영향을 과소평가하는 일도 자주 벌어졌다. 대조 지역을 애초 생물이 거의 없는 황폐지로 잡는 방식을 쓰는 것이 그런 예이다.

지은이는 이런 작태를 보면서 "나쁜 과학은 잘못된 통계학에 편하게 숨어서 존경할 만한 과학인 체 가장한다"고 통박했다.

우리에게도 엑손 밸디즈 호 사고의 교훈은 도움이 됐다. 엑손은 사고가 나자 1989년 한 해에만 1만1000명을 동원해 고온 고압의 수증기로 해변을 씻어내는 작업을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다수의 작업자가 기름과 기름 연무, 디젤 연기, 바닷물 연무, 분산제, 세척제 때문에 급성 및 만성 질환에 걸렸다.

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기름 피해보다 심한 생물 피해를 일으켰다. 기름 누출 때 살아남은 해초 등 생물의 거의 대부분이 청소 과정에서 죽은 것이다. 태안에선 고온 고압 증기 대신 100만 명 이상의 자원 봉사자가 바위를 일일이 닦아냈다. 증기 세척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알래스카와 같은 대대적 피해는 없었다.

수많은 자원 봉사자들이 축제처럼 피해 복구에 나섰다고 해서 피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걸레는 눈에 보이는 기름때를 닦아낼 수 있을 뿐이다. 이 책이 내린 주요한 결론의 하나는 "기름은 이제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과 환경에 훨씬 더 많은 독성을 내뿜는다"는 것이다.

태안의 기름 피해도 1년이 안 돼 육안으론 거의 확인하지 못할 만큼 회복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미량의 난분해성 화학 물질로 인한 피해는 이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다.

태안환경보건센터가 2009~2010년 벌인 중장기 건강 영향 조사에서는 유류 피해 주민에게서 폐금속 광산의 두 배, 일반 주민의 세 배나 되는 건강 영향이 드러났다. 사고 지역에 가까운 곳에 사는 어린이일수록 천식 유병률도 높았다. 사고 해안 침전물의 환경 독성을 분석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지경희 박사 팀의 연구에서도 조사 지점의 45퍼센트에서 유전 독성이, 41퍼센트에서 내분비 교란 독성이 확인됐다.

기름오염의 영향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 간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이 인용한 미국 국립해양대기청의 한 과학자의 말이 여운으로 남는다.

"기름 유출에 대한 최선의 대응책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석유와 화학물질에 의존한 생활을 바꿔나가는 것 말고는 해결책이 없다는 얘기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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