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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김려령 씨! 청소년 소설이 '판타지'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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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김려령 씨! 청소년 소설이 '판타지'인가요?

[청소년 소설의 '리얼리티'를 묻는다] <가시 고백>

아이들이 죽어간다. 같은 반 친구들에게 괴롭힘 당하는 걸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끙끙 앓다 유서를 써 놓고 하늘나라로 간 대구 중학생의 자살은 크게 이슈가 된 것일 뿐, 폭력과 왕따, 성적 비관으로 청소년들은 어제도 오늘도 계속 죽어가고 있다.

교실에서는 신체적인 폭력이나 왕따 말고도 심부름이나 자기 할 일을 대신 시키고, 장난이란 이름으로 다른 학생을 은밀히 괴롭히면서 희열을 느끼고, 거짓말로 나쁜 소문을 내 서로가 서로를 할퀴고 상처 주며 살아간다. 남을 짓밟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극한의 경쟁 사회에서 1등이 아니면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청소년의 삶이 이렇듯 곪아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극단적인 사건들이 매스컴에 부각되고 자성의 목소리들이 나오면서 학교 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지만 청소년들이 어떤 아픔을 갖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이런 것들이 청소년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청소년의 삶에 관심을 갖고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는 청소년 소설은 어른들이 청소년의 삶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또 청소년들은 소설 속 인물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생각하고 용기와 꿈을 얻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 시대의 청소년 소설은 그 어느 때보다 책임과 역할이 막중하다 하겠다.

▲ <가시 고백>(김려령 지음, 비룡소 펴냄). ⓒ비룡소
<완득이>로 잘 알려진 김려령의 신작 <가시 고백>(비룡소 펴냄)은 한 학급의 친구들이 저마다 안고 있는 가시 같은 고통을 서로에게 털어놓으며 우정으로 치유한다는 따뜻한 소설이다. 전작들에서 이미 확인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탁월한 솜씨와 간결하고 스피디한 흐름, 실감나는 장면 묘사, 유쾌하고 재치 있는 비유로 소설은 재미있게 읽힌다. 그러나 청소년의 아픔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는지에 대해서는 고개가 갸우뚱해 진다.

엄마를 닮아 섬세한 손끝을 타고난 주인공 해일은 스스로를 '순수한 도둑'이라 부른다. 물건이 탐나서가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데 왜 그런 도벽을 생겼는지 이유는 불분명하다.

새 아빠에게 빌린 전자수첩을 눈 깜짝할 사이에 도둑맞은 지란은 아빠에게 냉정한 엄마와 그런 엄마를 못 견뎌 다른 여자와 만나는 아빠를 보고 자랐다. 지란이 상처를 받을 대로 받은 후. 부모는 이혼을 하고 엄마가 재혼한 후에는 새 아빠와의 어색한 관계와 친아빠와의 인연을 끊을 수 없어 괴로워한다.

해일에게 도둑질은 마음의 가시이다. 도둑질이 남에게 들켜 그 버릇을 고치고 싶지만 솜씨가 좋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해일의 마음을 위로해 준 것은 달걀을 부화시켜 태어난 병아리이다. 내신 성적 0.1점에 절박해야 하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부화기를 직접 만들고 병아리 부화에 성공했다는 신선한 사건으로 담임선생님의 관심을 받고 친구들이 집까지 놀러오게 된다. 우정이 깊어질수록 가시를 빼내고 싶은 해일의 마음은 커지지만 용기를 내지 못하던 중 지란의 부탁을 받는다.

지란의 가시는 가족에게 받은 상처이다. 친아빠에게 받은 상처를 되갚아주기 위해 친구인 해일과 진오와 함께 친아빠의 집에 몰래 들어가 가구에 낙서를 해 놓는다. 이 과정에서 해일은 자신도 모르게 넷북을 집어 오고 진오가 이를 목격한다. 이를 계기로 해일은 자신의 도벽에 대해 털어놓는다. 지란도 친구들에게 자신의 치부를 보여주고 그 과정 속에서 친아빠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고 마음의 가시를 빼낸다.

서로의 아픔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우정으로 따뜻하게 감싸준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나 소설을 읽으며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우선 해일의 도둑질은 너무 쉽게 받아들여진다. 해일이 친구 지란의 전자수첩을 훔쳤다는 사실을 진오, 지란, 반장인 다영까지 알게 되지만 누구도 해일을 배척하거나 잘못을 추궁하지 않는다. 청소년 범죄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절도'라고 한다. '절도'는 심각한 범죄이다. 자기도 모르게 저지른 일이라고 해서, 선천적으로 타고났다고 해서 용서가 된다면 사이코패스에게도 할 말이 있을 것이다.

한 왕따 가해 학생이 처벌을 받지 않고 사건이 마무리가 됐는데 어른이 되어서도 마음의 짐을 덜지 못해 자살한 사건은 잘못에는 반드시 대가가 있어야 하며 그것이 잘못을 한 당사자를 치유하는 한 방법이란 것을 말해준다. 그런 점에서 소설은 해일의 잘못을 너무 가볍게 적당히 덮어준 듯하다. 해일이 가시를 빼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아픔과 고통을 겪고 이겨냈어야 했다.

지란이 아빠와 화해하는 과정은 위험해 보인다. 친구 둘을 데리고 가구에 낙서를 하는 장면에서는 얼마 전 부산의 한 빈집을 청소년들이 쑥대밭을 만들어 놓은 사건이 떠올랐다. 주인집 막내딸 친구가 현관 비밀번호를 알게 돼, 빈집이 가출 청소년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는데 이 소식을 뒤늦게 접하고 외국에서 급히 들어온 집주인은 만신창이가 된 집을 보고 몸 져 눕기까지 했다고 한다. 소설 속 지란의 아빠는 이해심이 넘쳐 자기가 모르는 사이에 아이들이 무단 침입해 가구들이 엉망이 돼 있는 것을 보고도 화 한 번 내지 않고 딸의 마음을 알아준다.

해일의 가족은 어떠한가? 형인 해철은 정작 동생의 아픔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다른 이들의 감정을 설계하겠다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갖고 있는 철없는 백수이다. 아빠는 작은 아파트 단지의 관리소장이며 엄마는 유능한 가발 기술자이지만 지금은 쉬고 있다. 해일의 아빠는 성실하지만 가부장적이며 약간의 의처증도 있다.

가난하지만 화목한 분위기 때문에 지란에게는 해일 가족이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러나 이 가족, 어떻게 화목하기만 할 수 있을까? 공부에 크게 열의를 보이지 않는 작은 아들을 보면서 부모가 잔소리 하거나 걱정 한 번 하는 장면이 없다. 서른이 넘은 백수의 고뇌 따위, 해철에겐 보이지 않는다. 그저 허허실실이다. 부모도 혀만 끌끌 찰 뿐 심각하진 않다.

교실 속 아이들 모습은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악의적으로 친구를 모함하는 미연은 이야기 속에 왜 존재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 여러 가지 부정적 모습을 산만하게 늘어놓은 느낌이다.

진정한 리얼리티는 읽는 사람이 소설 속 인물에 깊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을 때에 얻어진다. 그럴 때에 소설 속 인물들은 우리 마음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말을 걸어 올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시 고백>은 청소년들이 소설 속 인물의 아픔과 슬픔을 자기 것으로 느끼고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주는 데까지 나아갔다고 보기 어렵다. 암담한 현실을 적당히 희망적으로 얼버무려 끝맺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청소년 소설이 하나의 장르로서 자리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문학성을 갖춘 수작들이 나오고 질적 양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아직은 만족스럽지 않다. 청소년의 삶을 좀 더 깊이 사랑하고 이해하여 진정한 리얼리티를 갖춘 청소년 소설들이 더 많이 나와 청소년들의 고통과 슬픔을 어루만지고 용기를 줄 수 있길 바란다.

녹록치 않은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침착하게 그린 소설들에서 우리는 청소년의 삶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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