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7월 31일 창간호를 낸 '프레시안 books'가 2년 만에 100호를 냅니다. 이번 프레시안 books는 100호 그리고 2주년을 자축하면서 숫자 '100'을 열쇳말로 꾸몄습니다. 또 100호를 내면서 프레시안 books 100년을 상상합니다. 2013년 100주년을 앞둔 일본의 출판사 이와나미쇼텐을 찾아가고, 100년이란 시간을 견딘 서점, 도서관 등을 둘러본 것도 이 때문입니다. 열두 명의 필자는 자신의 추억과 '100'을 엮은 글을 선보입니다. 여러분도 프레시안 books가 펼쳐 나갈 100년을 함께 지켜봐 주세요. <편집자> |
스무 살 언저리를 돌이켜보면 남자를 만난 지 100일이 될 무렵의 설렘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내가 이 사람의 여자 친구인가 아닌가라는 그 모호함이 확신으로 돌아서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얄궂은 것이 사랑의 감정이어라, 서로에게 각자 남친과 여친이 되고 나면 그때부터 연애의 고통도 함께 시작되었으니.
100일이 가장 행복했던 이유는 좋아하는 감정이 사랑으로 확실히 바뀌면서 또한 연애의 고통은 아직 시작되지 않은, 짧고도 환한 행복 때문이었다. 사랑뿐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조카를 비롯하여 주변의 갓난아이를 보면 100일 잔치를 할 무렵의 아이가 가장 예쁘다. 어느 시기나 예쁘지 않을 때가 있을까마는, 그러나 젖살이 올라 뽀얗고 통통해지면서 눈코입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는 100일 무렵의 갓난아기는 정말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의 모습 그대로이다.
꼭 그때 잔치를 하며 100살까지 오래오래 살라고 백설기와 수수경단을 돌렸던 이유는, 유아사망률이 높았던 과거엔 100일을 넘기면 이제 무사히 한 고비를 넘겼다는 의미가 부여되었기 때문이리라. 이처럼 100일이라고 하는 것은 새로 탄생한 존재이 안정적이고도 본격적인 궤도에 들어선다, 더 나아가 100일을 버티면 앞으로 1년, 10년, 100년도 내다볼 수 있다는 의미가 담긴 날이다.
그러고 보니 13년 전 우리가 결혼을 할 때도, 혼인 날짜를 양가 어른들이 잡는 대신 청혼한 날로부터 100일째 되는 날로 잡았다. 사실 연인들이 가장 마음이 많이 상하는 시기가 청혼에서 결혼하기까지의 기간인데, 그 100일을 무사히 잘 넘겼기 때문인지 올해 말 결혼 5000일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13년만 더 지나면 100번째 100일인 1만 일도 가능하다. 그리고 내게는 잊을 수 없는 100번째가 또 하나 있다.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던 2001년 1월, 나의 자리는 지상 3층의 설계1본부에서 지하 2층의 자료실로 옮겨져 있었다. 건축을 전공하여 설계실에서 근무하던 사람을 별안간 전혀 새로운 부서에 배치하는, 이른바 구조조정이 시작된 것이다. 설상가상 나는 그때 서른두 살의 나이로 아버지를 잃었다. 금요일 새벽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가 일요일 아침 장지에 모시고 월요일 출근을 하고 보니 그 짧은 시간 안에 자리가 옮겨진 거였다.
|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서윤영 지음, 궁리 펴냄). ⓒ궁리 |
거기서 하는 일이란 일주일에 한 번 1층에서 7층까지 카트를 끌고 회사를 돌며 미반납 도서를 회수하고, 한 달에 한 번 신간 도서를 구매하고, 그리고 회사에서 설계한 건물의 홍보 기사를 써서 신문과 잡지에 송고하는 일이었다.
철저히 혼자 남겨졌던 그 때, 지하 2층의 작은 창 너머로 햇볕이 들어오면서 책 한 권을 비추고 있었다. <집으로 보는 우리 문화이야기>(강영환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라는 대중교양 서적을 그저 생각 없이 뽑아 들고 읽기 시작했다.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아무 할 일이 없었기에. 그 어떤 슬픔도 한 시간의 독서로 풀리지 않는 것은 없다, 라고 말한 것은 몽테스키외였던가. 그렇게 나의 독서는 시작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혼자 밥 먹는 모습을 여러 사람에게 들키기 싫어 회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식당에서 밥을 먹고 오던 길이었다. 두세 정거장의 거리를 걸어오는 길, 무언가 나는 계속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누가 보면 정신이 나갔거나 실성했다고 생각했을 만큼, 무언가를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말이 하고 싶었다, 누군가를 붙잡고라도 말이 하고 싶었다. 깨알같이 올라오던 말들은 그 동안 먼지 쌓인 책에서 읽고 생각해냈던 온갖 편린과 상념들이었다. 만일 내게 단 한 명의 동료가 있었으면 그를 향해 그 이야기들을 쏟아내었을 것이다.
그러나 철저히 혼자 남겨졌던 내게는 아무도 없었기에, 집에서 가져온 개인용 노트북을 켜고 그 말들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정말 아무데나 올렸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면 적립금을 주던 인터넷 서점에, 모자와 배낭을 기념품으로 주던 신생 사이트의 수필 공모전에, 최고의 조회수를 기록하면 문화상품권을 주던 포털 사이트의 게시판에.
그냥 허공에다 외치는 관객 없는 몸짓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서서히 팬레터가 오기 시작했고, 때로는 조금 낯선 메일도 왔다. 시민 기자가 되어 인터넷 신문에 건축 관련 칼럼을 연재해 줄 수 없겠느냐는, 진보 성향의 젊은 세대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어느 신문사의 메일이었다. 아울러 고료는 1만4000원이라 했다.
글 한 번을 쓰면 책 한 권이 생긴다는 생각에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리고 한 달 뒤 10만원 남짓한 돈이 은행계좌로 들어왔다. 그걸 돈이 아닌 '고료'라고 부르기 시작한 날이 2002년 5월이었나. 유례없는 월드컵 4강 신화로 온 나라가 붉은 티셔츠의 물결을 이루던 때이기도 했고, 아울러 슬픔을 잊기 위해 시작한 책 읽기가 100권 째를 맞이하던 때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뜨겁던 여름이 사위어가던 가을, 또 한 번의 낯선 메일을 받았다. 인터넷 신문에 연재하는 글을 모아 책으로 출간하고 싶다는 출판사의 메일이었다. 그리고 그 이듬해 나의 첫 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서윤영 지음, 궁리 펴냄)이 나왔다.
나는 본래 글을 쓰고 싶다거나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은 꿈에라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었다. 아니, 일기든 편지든 글이라고 하는 것은 단 한 번도 써 보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 데뷔 10년차의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책 읽기의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100권 째의 책을 읽었을 때 태어나 처음으로 글을 쓰고 또한 처음으로 고료를 받았다.
그러고 보면 그 100권이라고 하는 존재가, 불안정한 상태의 어떤 것이 제대로 된 궤도 속으로 들어간다는 의미가 있는 듯하다. 그날 이후 나는 지금까지 600권의 책을 읽었고 또한 6권의 책을 썼으니까. 무릇 100일은 처음 본 남녀가 연인이 되며, 미처 탯줄도 떨어지지 않은 핏덩이가 사람 꼴이 나는 시기이다. 아울러 구조조정을 당한 사람이 새로운 터닝 포인트가 이루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100이란 바로 그러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상징적 의미를 좋아하는 중국에서는 흰 백(白)과 백 백(百)을 같은 음으로 읽지 않는가. 희다는 것은 곧 상서롭다는 것과 같은 의미니까.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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