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7월 31일 창간호를 낸 '프레시안 books'가 2년 만에 100호를 냅니다. 이번 프레시안 books는 100호 그리고 2주년을 자축하면서 숫자 '100'을 열쇳말로 꾸몄습니다. 또 100호를 내면서 프레시안 books 100년을 상상합니다. 2013년 100주년을 앞둔 일본의 출판사 이와나미쇼텐을 찾아가고, 100년이란 시간을 견딘 서점, 도서관 등을 둘러본 것도 이 때문입니다. 열두 명의 필자는 자신의 추억과 '100'을 엮은 글을 선보입니다. 여러분도 프레시안 books가 펼쳐 나갈 100년을 함께 지켜봐 주세요. <편집자> |
이른바 질풍노도였던 소년 시절, 노을을 뒤따라 나타난 어스름이 내겐 비수와 같았다. 서녘 하늘이 그 찬연한 주홍빛으로 물드는가 싶더니 서서히 잿빛을 품는다. 이어 서산 깊은 곳에서 푸르름을 자랑하던 나무가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숲이 한 덩어리의 암흑 속에 잠긴다. 친구와 함께 걸었던 골목길도 아스라이 멀어지면 어스름은 소년의 폐부 깊숙이 들어와 쓸쓸하고 스산한 감흥을 부채질 한다.
그 때 실존적 사유는 시작된다. 삶과 죽은, 나와 사회, 인간과 자연 따위의 풀리지 않는 과제가 마음을 헤집어 놓으면서 공허한 감회를 부풀려 놓는다.
어디 소년기뿐이었으랴. 골목길을 종착역으로 내게 헉, 하고 밀려오던 어스름은 청년기에도 어김없이 찾아오곤 했다. 아니, 더 강력한 비수가 되어 내 20대를 견인하곤 했다. 돌아갈 수도 없고 전진하기엔 막막하기만 했던 그 때 책은 내게 최고의 위안이었다. 내 고뇌는 내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책을 지어온 수많은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먼저, 나보다 더욱 강력한 어스름 녘을 만나왔지 않은가.
그러나 그 위안도 잠시, 밥벌이에 바쁜 30대에게 책은 사치였던가. 일에 묻혀서 30대를 보내며 책을 멀리했던 시골 사람 몇몇이 책을 다시 손에 들었다. 이젠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기 시작한 것이다.
2006년 7월이니 만 6년의 세월이 훌쩍, 그러나 신바람 나게 지나갔다. 일평생 짊어지고 가야할 것만 같은 실존적 고뇌와 위로가 이곳에서 새롭게 시작된 것이다. 그 시작이 두 돌을 넘긴 어느 날, 우리는 비로소 충남 보령 땅에 '책익는마을'이라는 깃발을 세우고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자영업자, 세일즈맨, 주부, 학원 강사, 의사, 아파트 관리소장 등 일상에 바쁜 중년들이 모여 사람들에게 책을 권하기 시작했다. '저자 초청 토론회'라는 제목으로 현수막을 붙이고 홍보 전단을 만들어 아파트 곳곳에 알렸다. 일은 벌여 놓았지만 우리는 아연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는 그 분야의 전문가인데 그런 분을 초청해서 토론을 하겠다니, 우리가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괜스레 동네에서 창피 당하지는 않을까.
그러나 우리에겐 뜻한 바가 있었다. 저자 초청 '강연회'라 하지 않고 '토론회'라 했던 데는 책익는마을의 출발이었던 '책을 읽고 함께 토론한다'라는 모토를 지켜야 한다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홍보 전단에 그 자리에 나올 수 있는 자격으로 '선정된 책을 읽은 사람'이라고 알렸다. 저자에게도 30분 강연에 90분 토론이라는 다소 건방진 제안을 하였다. 누군가 사회자가 있어야 할텐데 그런 토론을 어디서 구경한 적도 없고 생업에 바쁜 우리들이 그런 진행 비슷한 것을 경험하지도 못했지 않은가.
고민 끝에 우리는 몇 가지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전문가가 아니므로 전문가 흉내를 내려고 하지 말며, 사람들 앞에서 자랑할 이유도 없으니 우리 수준 그대로 솔직하게 다가가자는 것이었다.
행사일은 다가왔고 우리는 얼마나 긴장했던가. 90분 토론 시간을 채우지 못할까봐 다양한 방법으로 질문을 준비했고, 소위 다양한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었다. 아! 그러나 우리가 솔직해지는 순간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교만해지지 않으면 얼마나 큰 감동이 함께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아동문학가 이면서 소설가인 안학수 선생을 모셨던 제1차 저자초청 토론회는 두 시간을 황홀하게 꽉 채우고도 시간이 모자라지 않았던가. 돌이켜보면, 주로 30대 이상의 어른들이 함께했던 그 토론회는 결국 자신의 삶의 고뇌를 토로하고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염려하는 자리였다.
나이를 먹는다고 하여 어찌 인생의 진실이 저절로 깨우쳐질 것인가. 사회생활을 한다고 하여 어찌 저절로 정치적 사회적 현상의 본질을 알 수 있단 말인가.
우리의 일상은 하루 종일 상사의 눈치를 보든가, 시장에서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팔려고 전전긍긍하면서 생의 업보를 감당하고 있는데 말이다. 온종일 그렇게 챗바퀴 속 다람쥐처럼 보내고는 밤늦도록 업무연장의 술자리에서 흔들리다보면 책은 멀고 몸은 늙어가는 것이 우리네 일상 아니던가.
그러나 어찌 생각조차 없으랴. 비록 우리네 소시민의 일상이란 것이 험난하다보니 입 닫고 귀 막고 세월을 이겨낼 뿐 아니던가. 그 귀와 입을 열어주는 순간 우리는 비록 고상한 전문용어는 몰라도 당대를 함께 살아내는 자로서의 고뇌의 길을 그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감이 붙은 책익는마을은 두어 달이 지나고 제2차 저자초청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도서평론가 이권우 선생을 모셨던 토론회도 한 달 전에 선정도서를 홍보하고 사람들에게 그 책을 읽고 나오라 알렸다.
이번에는 더 많은 시민들이 마을 문화원 강당을 제법 그득히 채웠다. 사람들이 선정도서를 손에 들고 등장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그리고 어른들이 아이들처럼 줄을 서서 저자에게 사인을 받는 모습도 풍경이었다. 책 안 읽기로 유명한 대한민국이지만 보령 땅에는 책 읽는 어른들이 줄을 서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 중심에 독서 토론 홍보대사로 책익는마을이 우뚝 서있는 형국이었다.
| ▲ <현대사 아리랑>(김성동 지음, 녹색평론사 펴냄). ⓒ녹색평론사 |
어디 그뿐인가.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게 분포한 책익는마을 회원들은 9개 모둠으로 나뉘어 독서토론을 진행한다. 그리고 청소년 지원사업도 진행하는데, 청소년들의 독서토론 모둠 5개가 성황리에 운영되고 있다. 또한 여름날 대천해수욕장에서 이틀 동안 진행하는 축제인 인문학 페스티벌도 다음 달에 세 번째로 열린다. 아마 이번 여름밤도 저자와 독자가 새로운 형식으로 소통하는 인문학 축제로 대천해변이 뜨거워질 것이다.
가을이면 제17차 저자 초청 토론회가 열릴 것이다. 만4년 동안 16차를 진행했으니 계절 마다 진행한 꼴이다. 그토록 어렵게 시작한 행사가 16차를 이어왔으니 50차, 100차도 어렵지 않으리라. 100번째 맞이하는 계절이오고 내 머리 희끗희끗해지면, 저녁 노을이, 그 노을을 서산 너머로 밀어내고 찾아오는 어스름 녀석이 왜 자꾸만 스산하게 느껴지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될까.
데카르트의 근대 이후 인간의 사유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왔고, 개인의 존엄과 함께 따스한 사회를 향한 갈망을 이어왔다. 그 역사에 책이 함께 있었고 소시민들의 존엄한 일상과 분투가 존재했다. 보령 땅 책이 익어가는 마을길에서 어른들의 책 읽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구름을 타고 저 하늘 높이 무지개 되어 곳곳에 전해지고 있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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