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저자들은 서로 다른 시대에 살았던 노인들의 삶을 소개하고 있지만, 모든 시대에 걸쳐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어느 시대에도 단지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노년의 지위가 보장된 적은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단지 그들의 나이만으로 존경을 받거나 받지 못하는 것은 유럽 문화를 포함한 대부분의 문화에서 드문 일이다. 연령에 무관하게 사람들은 행동을 통해 존경을 획득했다. 아니면 부와 권력이 복종을 강요했다(29~30쪽). 따라서 우리가 '황금 시대'라고 칭할 만한 시기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저자들은 강조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노년에 대한 사람들의 통념은 비단 존재하지 않았던 '황금 시대'를 회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른 사회를 이상화하는 경향에서도 발견되고 있다는 점이다. 1960년대 미국의 인류학계에서는 사회 문제로 떠오른 노인들의 삶에 대해 인류학자들 역시 관심을 기울일 것을 강조하였고, 이를 계기로 미국 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노년 문화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 ▲ <노년의 역사>(슐람미스 샤하르 외 지음, 팻 테인 엮음, 안병직 옮김, 글항아리 펴냄). ⓒ글항아리 |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과거에는 지금보다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회에 사는 노인들이 우리들보다는 더욱 대접받고 살 거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러한 믿음은 왜 쉽사리 사라지지도 깨어지지도 않는 것일까? 이는 단순히 역사적인 사실을 몰라서라기보다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 이 시대와 이 사회에서의 삶이 만족스럽고 행복하다면 우리는 다른 시대를, 다른 사회에서의 삶을 꿈꾸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무엇이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를 그리워하게 만들고 있는지, 그 결핍에 대해서 질문해야 할 것이다.
19세기와 20세기 노인들의 삶을 기술한 토마스 콜과 팻 테인의 다음과 같은 진술은 현대를 살아가는 나이든 사람들이 느끼는 결핍이 무엇인지 짐작하게 해준다.
"서양 세계의 부의 축적은 노년의 보장된 물질적 안락과 은퇴의 가능성을 열었다. 그러나 이것이 짐스러운 세대라는 관념과 노령자의 적절한 사회적 역할과 지위에 대한 우리의 불안정한 견해를 없애지는 못했다. 생활수준의 개선과 의학의 발전이 기대 수명을 연장했으나 행복에 대한 우리의 감정을 반드시 증진시키지는 않았다." (398쪽)
"어떤 곳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단지 더 오래 살았을 뿐 아니라 인생의 더 늦은 시기까지 건강과 활력을 유지했다. 이것은 사람들이 수세기 동안 꿈꾸었던 활동적 삶의 연장이었으며 생활수준, 특히 소득, 식사, 위생의 유례없는 개선의 산물이었다. 중요도에서 약간 떨어지지만, 이 시기에 의학 지식과 기술에서도 큰 진전이 있었다. 하지만 기묘하게도 이 업적은 일반적으로 기쁨이 아니라 노령의, 소위 의존적인 사람의 늘어나는 수가 줄어드는 젊은 인구에 부과하게 될 '부담'에 대한 걱정과 비관주의와 함께 받아들여졌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국제적으로 기대 수명의 증가와 출산율의 감소가 겹쳐졌기 때문이었다." (402쪽)
이 시대 노인들은 이전 시대와는 달리 늙어가는 육체와 흐릿해지는 기억이 자신과 가족들에게 끼칠지도 모르는 어려움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얼마나 부담이 될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놓여 있다. 바로 국제적인 문제로까지 거론되는 인구 고령화 현상이 가져다주는 무게감 때문이다. 노년층의 증가는 흔히 젊은 세대의 감소와 비견되며 그 초라함과 암울함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과거 그 어떤 시대보다도 개개인은 나이가 들어서도 좀 더 다양한 형태의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음에도 불구, 노인들은 젊은 세대와 사회에 큰 짐을 주는 존재라는 표상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 결과, 노령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음에도 '노인들'을 찾기 쉽지 않은 특이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노인들이 자신은 '노인'이 아니라고 부정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팻 테인에 따르면, 1980년대 말 영국에서 실시된 한 조사에서 '자신이 늙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단 두 명만이 명확하게 그렇다고 말하고, 나머지는 압도적으로 '그렇지 않다'라고 답했다 한다.
이는 비단 영국 사회에서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텍사스에 머물 당시 시니어 클럽, 양로 시설, 노인 보건 시설 등 다양한 곳에 방문하여 많은 노인들을 만났는데 그들 대부분은 스스로 늙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그 가운데 나의 주된 정보 제공자(key informant)가 되어준 당시 70세였던 '존'은 나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기도 하였다.
"그래. 물론 나는 나이가 들긴 했지. 하지만 난 늙지는 않았어(Yes, of course I am old but I am not old)."
일본이나 한국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특히 스스로 아직 건강하고 남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노인들일수록 필자의 인터뷰 요청을 당혹스러워했다. 그리고 그들은 한결같이 "나는 그런 '노인' 아니에요. 다른 사람 찾아보세요"라고 말했다. 이는 "늙었다"라는 말에는 단순히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었다는 것 이상의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노인들 스스로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통찰은 바로 여기에 있다. 저자들이 진심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과거 그 어느 시대에도 노인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존경을 받았던 적은 없다는, 이른바 노년의 잔혹사를 그려내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암울하게 여겨왔던 우리 시대가 가진 가능성, 희망을 보여주고자 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일부 사례가 보여주듯이, 그리고 다음의 각 장이 풍부하게 설명하는 것처럼 역사 전체를 통해 현실 속 노년의 삶은 문학이나 미술에서만큼이나 다양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이 다양성이 증가했는데, 늙는다는 것이 일반화된 지난 세기 동안에는 특히 그랬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더 노령까지 살고 건강하며 훨씬 다양한 생활방식을 추구한다. 노년의 이야기는 우리가 너무나 자주 믿게 되는 것보다 훨씬 더 희망찬 것이다" (52쪽)
"인구 노령화의 함의에 대한 좀 더 신중한 분석의 결론은 당면한 대규모 노령 인구 세대의 부양비용은 경제 발전에 의해 쉽게 감당할 수 있으며, 이주와 출산 패턴이 바뀌지 않는다 하더라도 은퇴 관행의 변화와 함께 개인 및 정부의 저축과 지출 패턴의 변화로 일부 사람들이 예언한 '위기'를 막을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425쪽)
20세기 그리고 21세기는 늙는다는 게 역사상 처음으로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시기이다(401쪽). 노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으며, 연령의 경계 역시 흔들리고 있다(441쪽). 또 인구 고령화의 위기는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팻 테인은 단언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노년은 더 이상 죽음만을 준비하는 시기만으로 치부되지 않는다. 이제 노인들은 남은 삶을 어떻게 하면 즐겁고 보람차게 보낼 수 있는지, 죽음이 아닌 삶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자신을 '노인'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노인들이 증가하고 있는 현상 역시 특정 연령 집단에 속하는 모든 사람을 동일하게 다루는 관습에 대한 저항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대 노인들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연령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의 삶을 추구할 수 있는 자원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21세기는 필연적으로 타자에게 도움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에 대해 겸허히 인정하고 이를 준비하는 시대가 되었으면 하는 게 나의 바람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어려서부터 친할머니와 함께 살아온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맞벌이로 바쁘신 부모님을 도와주시기 위해 할머니께서는 아주 어려서부터 우리 형제를 돌봐주셨다.
그런데 그 관계는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조금씩 역전되기 시작했다. 폭설이 내려 도로가 빙판길로 바뀌고, 지하철을 타지 않으면 보건소를 가지 못하던 시점이 되자 할머니께서는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셨다. 그때 비로소 나는 빙판길이 얼마나 노인들에게 큰 위협이 되고 있는지,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계단을 올라가야 하며, 안내판들은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무엇보다 벤치 하나 없는 매끈한 도로를 지나는 게 노인들에게 얼마나 고역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철학자 마르타 누스바움에 따르면, 인간은 다른 종에 비해 굉장히 오랜 보호를 받아야 하는 존재이다.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는, 이른바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기간은 매우 한정되어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누구나 본질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사회 환경은 '인간은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주체'라는 기본적인 가정 하에 구성되어 있다고 그녀는 지적한다.
21세기는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시기를 필연적으로 맞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을 받아들이고 '늙어서도' 변함없이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 환경을 재정비하는 노력이 꽃피우는 시대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인 문제'를 경제적인 관점으로만 바라보거나, 무능한 일부 사람들만의 문제만으로 바라보지 않고, 우리들 자신의 문제로 바라보는 공감 능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하여 먼 훗날 역사가가 이 시대를 기록할 때, 21세기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인간답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삶의 조건을 배려해주는 게 보편화된 성숙한 시대였다고 평을 내렸으면 하고 바라본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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