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책을 왜 샀나요? 사놓고 내버려 둔 이유는요? '프레시안 books'는 '사놓고 읽지 않은(못한) 책'이란 주제로 열두 명의 필자에게 글을 청했습니다. 책등만 닳도록 봐 온 책에 대한 필자들의 추억과 항변은 각각의 '자서전'이나 '독서론'이 되었습니다. 읽은 책에 대한 서평보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하여 말하는 법'이 더 흥미로운 까닭입니다. |
나는 서가를 눈높이 기준으로 분류한다. 일단 가장 좋아하는 책을 서가 앞에 섰을 때의 눈높이에 맞는 칸-1등석이라고 부른다-에 줄줄이 모셔 놓고, 좋아하기는 하지만 일 년에 두 번 이상은 넘겨보지 않는 책을 1등석의 바로 아래 칸과 위 칸에 넣는다. 마지막으로 손이 잘 닿지 않는 맨 위 칸과 맨 아래 칸에 다 읽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던 탓에 당분간은 꼴도 보기 싫은 책을 처박아 둔다.
말하자면 취향에 의거한 분류법인 셈인데, 여기에 하나의 예외 분류 방식을 추가로 적용한다. 구해 놓고 읽지 않은 책을 1등석의 오른쪽 한쪽 구석에 책 등이 잘 보이도록 꽂아 두는 것이다. 이 예외 분류 방식의 목적은 물론 아직 안 읽은 책의 존재를 나 자신에게 환기해서 하루라도 빨리 읽어 치우기 위해서인데, 책상 앞 벽에 붙여 둔 식품 함유 칼로리표의 네 귀퉁이가 누렇게 변색되어 가는 것과 같은 이치로 여태껏 아무런 효과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1등석에서 방치당하고 있는 책들 중에는 책이라기보다는 수집품이나 책의 형상을 한 장식품이라고 해야 할 책이 대부분이다. 90년에 선물 받고 마르코 복음 이후로 진도가 나간 적 없는 <공동번역 신약성서>와 세로쓰기 편집으로 되어 있는 <포우 推理名作選(추리 명작선)> 사이에서 잠깐 갈등하다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김희영 옮김, 동문선 펴냄, 2004년 11월 25일 개정판 초판 발행)을 꼽아 본다. 이 책이 출간된 지 얼마 안 되어 광화문 교보문고(영풍문고였을지도 모른다. 실은 기억이 잘 안 난다.)에서 사 들고 온 지 올해로 8년째니 다른 책들에 비하여 방치 기간이 그다지 오래 된 책은 아니다. 게다가 <사랑의 단상>의 첫 번역판은 1991년에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하니 나는 이미 세간에 알려질 대로 알려진 스테디셀러를 한참 늦게 손에 넣은 셈이다.
| ▲ <사랑의 단상>(롤랑 바르트 지음, 김희영 옮김, 동문선 펴냄). ⓒ동문선 |
여하간 그 시절 나는 아직 진짜 사랑을 해 보지 못했다는 불만(이 불만은 진짜 사랑을 하고 싶다는 '열망'과는 또 다른 끈질긴 감정이다.)에 가득 차 있었고, 마침 내 주변에서는 한창 <사랑의 단상>에서 발췌한 구절들이 잠언처럼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그 문장의 파편들에 완전히 반해 버렸다. 바르트는 사랑에 대해 내가 한창 키우던 환상을 정확하게 관통하는 매혹적인 문장을 쓰고 있었다. 전설적인 책의 실체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진 나는 도서관도 건너뛰고 그대로 서점으로 직행했다.
외람되지만 <사랑의 단상>은 당시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연애 교본 역할을 하는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연애하면서, 즉 사랑하면서 품는 갖가지 불가해한 감정들에 대해 상세한 정의를 내려 주는 책이니 연애 교본이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다. 20대 중반이 훌쩍 넘어서도 나는 곧잘 <사랑의 단상>을 들여다보며 나 홀로 키운 사랑에 대한 환상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하지만 그 환상은 책이 아닌 현실의 연애 상대와 적극적인 소통을 해 나가면 자연스럽게 없어지는 것이었고, 마침내 그 동안 열심히 키워 오던 사랑에 대한 판타지가 현실의 연애와 한 판 일기토를 벌이는 시점에서 <사랑의 단상>은 자연스럽게 서가의 1등석 오른쪽 재야 공간으로 밀려났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시야가 좁다. 상대방에게서 오로지 내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는 바늘구멍 사진기 같은 눈을 갖게 된다. 바늘구멍 사진기는 대상의 일부를 거꾸로 뒤집힌 모습으로 내가 지정한 벽면에 비추어 보인다. 바르트는 내가 이상적으로 설정해 둔 사랑이라는 개념을 매혹적인 문장으로 해석해 주었지만, 당연하게도 그 해석은 책 바깥의 현실에서 사랑에 빠지는 것과는 또 다른 층위의 이야기였다. 앞서 이야기한 바늘구멍 사진기의 논리에 따라 나는 <사랑의 단상>에서 오로지 내가 읽고 싶은 구절만 반복해서 읽었다. 그리하여 결국 <사랑의 단상>을 끝까지 읽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당시 나를 사로잡은 문장이 쓰여 있는 몇몇 페이지에 책갈피를 꽂아 두었을 뿐이다. <사랑의 단상>은 각각의 소제목 바로 아래에 두세 줄 이내의 짧고 간결하고 매력적인 문장으로 본문 내용을 요약하는데, 지난 8년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이 대표 문장 아래의 본문을 읽은 적이 없다.
사랑에 대한 개념을 쓴 책과 사랑에 빠지다. 로맨스 소설이나 드라마의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하며 임사 연애 체험을 하는 것과 별 다를 바 없는, 아니 어찌 보면 그보다 더 허망한 행위 역시 이제는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윤색되어 책장의 유배지에 남아 있다. 아, 그 때 나는 참 어리고 청순했었지.
드라마 DRAMA.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연애 소설을 스스로는 쓸 수 없다. 다만 아주 오래된 문학 형식만이 그가 얘기하지 않고 낭송조로 읊조리는 이 사건을 수용할 수 있다. (<사랑의 단상> 139쪽)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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