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책을 왜 샀나요? 사놓고 내버려 둔 이유는요? '프레시안 books'는 '사놓고 읽지 않은(못한) 책'이란 주제로 열두 명의 필자에게 글을 청했습니다. 책등만 닳도록 봐 온 책에 대한 필자들의 추억과 항변은 각각의 '자서전'이나 '독서론'이 되었습니다. 읽은 책에 대한 서평보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하여 말하는 법'이 더 흥미로운 까닭입니다. |
얼마 전 '프레시안 books'에 실린 금정연 씨의 글(☞바로 가기 : 소설가 백민석, 그는 왜 절필했을까?)을 보았다. 그는 왜 절필했을까, 라는 제목을 마주했을 때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문득 떠오른 기억 때문이다.
십 년 가까이 지난 일이다. 훗날 그를 알 만한 두 사람에게, 실은 제가 전에 다녔던 회사에서 말이죠, 하고 슬쩍 얘기를 꺼낸 적은 있다. 심란해서. 세월이 이만큼 지났어도 여전히 조심스럽다. 싸구려 소설 같은 얘기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그래도 한 가지만은 확실하게 머릿속에 들러붙어 있다. 사투리가 섞인 새된 목소리. 그건 마치 길고 어려운 여행에서 돌아온, 겪을 수 있는 불운이란 불운은 모조리 겪고 돌아온 운 나쁜 여행자 같은 목소리였다.
시간은 일정했다. 밤늦게, 혹은 아침 일찍 사무실로 걸려 왔다. 주위에 아무도 없었고, 전화는 항상 내가 받았다. 통화 내용도 매번 비슷했다. 어딘가에 나를 공격하는 글이 실렸다고 들었다. 나는 지금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는 곳에 와 있다. 당신은 그 글에 대해 알고 있겠지. 그러니 알려줬으면 좋겠다.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는 나도 상당히 놀라서, 한번 찾아볼 테니 다시 연락을 주세요, 하고 부탁했다. 하지만 통화를 마치고 아무리 뒤져봐도 그를 "공격한" 글은 찾을 수 없었다. 며칠 뒤 전화가 걸려왔을 때, 선생님이 말씀하신 글은 없는 모양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는 믿지 않았다.
십 년 전. 나는 '아웃사이더'라는 출판사에서 편집 일을 했다. 첫 직장이었다. 전임 편집자가 이미 퇴사한 상태라 <책 잘 만드는 책>(김진섭 지음, 은행나무 펴냄)을 보며 편집 실무를 익힌 기억이 난다. 상근으로 일하는 구성원은 단출했다. 대표와 영업자, 나까지 세 명. 나중에 좀 늘어나긴 했지만. 나의 임무는 잡지와 단행본 편집이었다. 평일에는 원고 교정을 보고 주말에는 각종 시위에 쫓아다니며 잡지에 실을 사진을 찍었다. 핸드폰이 없거나 있어도 꺼놓고 다니는 저자들이 많아서 마감을 독촉하고 원고의 수정을 요청하는 전화는 대개 밤에 걸었다. 일은 즐거웠지만, 판매는 신통치 않았다. 대표와 영업자가 밤낮으로 뛰어다녀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는 1971년생이다.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고, 1995년 <문학과 사회> 여름호에 <내가 사랑한 캔디>(백민석 지음, 김영사 펴냄)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등단 전까지 함께 살던 가족은 할머니뿐이었고 생계도 할머니가 책임진 듯하다. 그래서인지 첫 번째 장편소설 <헤이, 우리 소풍 간다>(문학과지성사 펴냄)의 맨 앞 페이지에 '할머니께'라고 적혀 있다. 결혼하지 않았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부터는 혼자 살았다. 김영하, 장정일, 송경아, 배수아 등과 더불어 "신세대 문학의 기수"로 불리며 각종 논쟁의 중심에 서서 여러 매체에 호출되었지만 동세대 작가들과의 교류는 없었던 모양이다. 2000년 6월, <퍼슨웹>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손정수 : 90년대 초반에 등단했던 또래 작가들에 대해 문단은 신세대다, 새로운 흐름이다, 이런 평가들을 하곤 한다. 그렇다고 그런 흐름의 실체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건 그들이 하나로 모일 수 없는, 그러니까 상당히 비대중적인 실험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당신과 그들 사이에 어떤 연대감 같은 게 있나?
백민석 : 내 생각에 문학적인 연대의식은 없었다. 다른 작가들도 이런 생각에 반대는 하지 않을 것 같다. (…) 인간적으로도 그렇다. 친한 사람들 중에도 그룹이 나뉘어져 있었고 나는 그 어느 그룹하고도 별로 친하지 않았다.
| ▲ <죽은 올빼미 농장>(백민석 지음, 작가정신 펴냄). ⓒ작가정신 |
손정수 : 모든 사회생활이 그렇겠지만, 문단 술자리 같은 데 가보면 신인들은 구석에 앉아서 별 얘기도 못하고 처박혀 있는 게 보통이다. 그런 신인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백민석 : 내가 바로 그런데! 아이 참나. 내가 그래요. 지금도 그래. 하하.
손정수 : 문단 활동이 불편한가?
백민석 : 몇 년 동안 많이 시달렸다. 그래도 될 수 있으면 조용하게 있으려고 한다. 가끔 출판사나 가고. 그래도 다행인 게 작가들 술 사주는 출판사가 아직 있다. 이제는 조금씩 사람들 많이 만나려고 한다. 여자도 사귀고 싶고.
손정수 : 소설가들은 대체로 자기 작품에 대한 비평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소설가와 비평가의 관계는 불평등하다. 당신 자신에 대한 비평들, 독자의 반응들, 하다못해 신문 기사들에 대해 할 말 없나? 어떤 때는 칭찬이든 비판이든 자기가 말하고 싶었던 거랑 전혀 엉뚱한 얘기들을 하기도 할 텐데.
백민석 : 그런 경우도 있다. 그래도 가만히 있는다. 불이익 당할까봐.
예민한 성격, 원만해 보이지 않는 대인관계. 무리에 섞여 술집 한 구석에 말없이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외로웠을까. 그의 소설을 평가할 때 매번 따라붙곤 하던 "엽기", "반사회적", "그로테스크"와 같은 평가들은 이와 연관이 있을까. 문학권력 논쟁, 신세대 문학 논쟁, 문학의 종언 논쟁. 그를 둘러싼, 혹은 그가 속한 문단을 둘러싼 논쟁을 지켜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마디 하고 싶었을까. 불이익을 당할까봐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자신을 질책했을까.
이듬해, 그는 <아웃사이더>에 한 편의 글을 기고한다. 안티조선운동에 대한 '조심스러운' 입장 표명이었다. 내가 입사하기 전에 발간된 잡지이므로, 기고 당시 상황은 알지 못한다. 이 글을, 나는 잡지가 출간되고 한참이 지나서야 읽을 수 있었다. 지금 다시 보니 별스러울 것도 없는 내용이지만 그 무렵 사회적 분위기에서, 특히 문단 일각에서는 '이적행위'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가 얼마나 마음 졸이고 망설이며 썼는지는 글의 서두에 잘 나타나 있다. 내가 짐작하기에 이 글이 방아쇠가 된 게 아닐까 싶다. 섣부르게 요약하기보다 그의 주장이 잘 드러난 문단을 통째로 옮겨보겠다.
<조선일보>가 가진 윤리에 대해선 이미 숱한 분석들이 제시되었다. 내가 서명한 것 역시, 그 수다한 분석들에 내가 공감했고 그에 동의했다는 뜻이다. 며칠 전 발표된 IFJ의 결의문도, 우리 언론이 킹 메이커 역할에 탐닉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담고 있다. 그건 언론이 지켜야 할 본연의 자세에 대한 윤리적 의문을 담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다중심 사회에서는, 중심의 '그 다양성'이 아니라, 다양한 중심들 사이의 '그 분열'이 문제가 된다. <조선일보>의 윤리는 이 짧은 문장에서 동시에, 두 군데에 걸린다.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부정하고 가로막으며 동시에, 우리 사회의 분열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아웃사이더> 5호, 2001년 9월 10일)
2003년의 어느 날이었다. 처음 그에게서 전화가 온 건. 이후로도 여러 차례 왔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글은 아무리 찾아도 없더라"고 말해 주었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내가 뭘 감춘다고 생각한 듯했다. 어떻게 자기에게 이럴 수 있느냐고도 했다. 며칠을 주기로 그와 나는 이런 대화를 반복했다. 그의 목소리는 불안했다. 불만에 차 있었다. 나는 도통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뭐가 뭔지 모르는 채로 그와의 통화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맥락도 뭣도 없는 대화여서 누구에게 말한다 해도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지금에 와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이런 기사가 눈에 띈다.
"요즘 제 기분 상태가 좋지 않아서 하고 싶지 않네요. 전화 인터뷰는 몰라도 지금은 누구도 만나기 싫습니다." 기자의 인터뷰 요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백민석 씨의 태도가 당황스럽다. 그 '기분 상태'에 대해 물어볼 일말의 여지도 남기지 않을 만큼 단호하고 약간 신경질적인 목소리. 등단 8년째인 이른바 90년대 작가, 촉망받는 신인 작가를 넘어 이제는 중견 작가로서 자리를 잡아가는 그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며칠 후에야 충남 서산에 살고 있는 그와 통화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았지만, 도저히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겨 얼마 전 태안 가까이 있는 한 풍광 좋은 시골 마을로 이사와 살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신문>, 작가와의 대화 소설가 백민석, '순수문학 작가의 '끔찍한' 일탈', 2003년 11월 15일, 윤경욱 기자)
도저히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 라는 대목이 역시 마음을 걸린다. 무엇이었을까. 의문은 꼬리를 문다. 결혼은 했을까. 여전히 혼자일까. 뭘 하며 지내고 있을까. 2003년에 나는 경험이 일천한 편집자였고, 2012년에 나는 십 년 전 그때 내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까닭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의식이 작용했기 때문이리라. 그 후로 나는 그의 책을 읽지 않았다. <러셔>(문학동네 펴냄)는 사두었지만 읽지 않았고, <죽은 올빼미 농장>(작가정신 펴냄)은 사지 않았다.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서 그를 찾아야 했을까. 자책도 꼬리를 문다. 그랬어야 했는지 모른다. 내 잘못이었을지 모른다. 어디선가 "쯧쯧, 추리소설을 너무 많이 읽었군" 하는 대화가 오가고 있을 듯한 기분도 든다.
정말, 이 모든 게 소설의 한 대목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여전히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2000년대 초반 안티조선 운동과 함께 문단 내에서도 조선일보가 주관하는 동인문학상과 관련된 논쟁이 촉발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2000년 <한겨레 21>에 실린 ''꽃을 든 괴물' 어떻게 볼 것인가 : 고종석과 정과리의 논쟁-<조선일보> 문화권력을 보는 두 가지 시각' 대담이 있다. 2000년에는 황석영 작가가, 2001년에는 공선옥 작가가, 2004년에는 고종석 작가가 동인문학상 후보 자리를 고사한 바 있다. <편집자>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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