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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시대 역행! PDF는 모른다!

[서가 속 부름] 헤겔, 그리고 '전자책 유감'

그 책을 왜 샀나요? 사놓고 내버려 둔 이유는요? '프레시안 books'는 '사놓고 읽지 않은(못한) 책'이란 주제로 열두 명의 필자에게 글을 청했습니다. 책등만 닳도록 봐 온 책에 대한 필자들의 추억과 항변은 각각의 '자서전'이나 '독서론'이 되었습니다. 읽은 책에 대한 서평보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하여 말하는 법'이 더 흥미로운 까닭입니다.

왜 책을 읽는가? 이 단순한 질문에 대해 고상하고도 아름다운 답들이 아주 많이 나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러한 모범 답안들은 적어도 나에게는 큰 설득력이 없다. 어떤 목표나 이득을 위해서 책을 읽어야 한다는 수많은 당위들은 나를 설득하지 못한다. 나는 왜 책을 읽는가? 간단하다. 읽지 않은 책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볼 때마다 스스로에게 부끄럽기 때문이다. 그게 전부이다.

우리 집 책꽂이에는 아주 많은 책들이 꽂혀 있다. 물론 책꽂이에 들어가지 못하고 방구석 여기저기에 누워 있는 책들도 꽤 된다. 이들 중에서 정말 많은 책들을 나는 아직도 읽지 않았다. 이를테면 어느 날씨 좋은 주말에 집에서 차 한 잔을 손에 쥐고 그 책꽂이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리고 거기에 들어있는 그 매력적인 책의 제목과 표지를 보고 있노라면, 저들을 하루빨리 읽고 싶다는, 혹은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서서히 치밀어 오르곤 하는 것이다. 나는 이제까지 무얼 하고 산 것일까? 최근에 내가 공부를 너무 게을리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이렇게 책을 사서 한쪽에 쌓아 놓고만 있는 건, 이건 정말이지 너무도 부끄러운 것 아닌가?

나는 덧없을 만큼 짧은 이 순간을 사랑한다. 어쩌면 책을 읽는 시간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지도 모른다. 책에 대한 호기심이 그간의 게으름에 대한 후회와 섞여서 피워내는 이 기이한 열정을, 나는 종종 우리 집의 사랑스러운 책꽂이들 앞에서 맛본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내가 책을 계속 읽고 있는 이유이다.

독일 유학 시절, 공부가 지지부진하고 논문 쓰는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나는 도서관에 들어가서 철학 분야의 서가들을 하나하나 자세하게 뒤지고 다니곤 했다. 그 수많은 책들 중에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들을 한 권씩 뽑아서 차근차근 살피다 보면, 나도 이 정도의 슬럼프는 빨리 뛰어 넘고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내가 읽은 책들에서 배운 것들을 잘 엮어서 멋진 논문으로 완성하고 싶다는 의욕이 불끈 솟아오르곤 했던 것이다.

누구나 한번은 그런 시절을 겪게 되지만, 나도 한때 정말이지 미친 듯이 책들을 사 모은 적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나 필자의 신간이 나오면 당연한 듯 서점으로 달려갔었다. 그 작가의 책들을 한데 모아 꽂아 놓고 그걸 바라보며 연신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을 것이다. 또한 어떤 전문 분야에 흥미가 생기게 되면 무엇보다 관련 책들을 구입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헌책방도 한때 누비고 다녔다. 친구들과 만날 약속도 항상 서점 앞에서 했기 때문에, 조금 일찍 도착했을 때는 안으로 들어가서 한 권이라도 사가지고 나와야 직성이 풀리곤 했다. 물론 책을 사기 위해서 일부러 일찍 갔던 때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아주 빠른 속도로 책이 늘어났다. 그 시절에는 저작권 개념이 확립되어 있지 않았다. 소위 "복사 아저씨"분들이 대학교에 제법 출입하셨다. 그분들이 가지고 다니며 대학원생들에게 내밀었던 카탈로그에는 서양 철학자들의 원문 전집이 가득했다. 심지어는 학교 도서관에도 없는 전집들까지 상당수 있을 정도로 이 카탈로그는 완벽했다. 책의 외양 또한 매우 훌륭했다.

지금도 후회가 밀려든다. 그때 무슨 마음으로 그 전집들을 구입해서 집으로 들여놓았던 것일까? 물론 원서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저렴한 불법 복사물들이었지만, 특별한 돈벌이가 있을 리 없었으므로 변변치 않은 조교 장학금을 학비에 보태고 있는 대학원생의 호주머니 사정에 비추어보면 그리 만만한 가격들은 아니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플로티누스 그리고 칸트의 전집….

▲ <정신현상학>(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지음, 임석진 옮김, 한길사 펴냄). ⓒ한길사
이 정도면 사실 지금 이토록 아프게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 더해 각종 어학 사전들, 전공과 관계없는 분야의 전문 사전들을 구입해 들이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황망한 압권은 <헤겔 연구(Hegel Studien)>라는 독일 헤겔학회의 학술지인데, 이 학술지의 20여 권 또한 당시 내 구입 목록에 들어 있었다. 물론 나는 이 학술지의 어느 논문 한 편도 완전하게 읽지 않았다. 그러나 이 처량한 전집을 볼 때마다 대학원 시절을 떠올리며, 그때 그랬던 것처럼,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함께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다시 한 번 읽고 싶다는 주제넘은 의욕을 불태우곤 한다. 부끄럽지만, 고마운 일이다.

지금도 내 서가에는 읽지 않는 책들이 그득하다. 시간이 없어도, 여유가 없어도, 그래도 여전히 책을 읽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속으로 마음먹는 것은, 집 거실에 가득한 아직도 읽지 않은 그 많은 책들 때문이다. 읽지 않은 책들 때문에 책을 읽는다. 그 부끄러움 때문에 책을 읽는다.

바야흐로 전자책의 시대이다. 모두들 그렇게 이야기한다. 아직 정확한 실체는 도래하지 않았으나 모두들 그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여러 의미에서 시대의 이 흐름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편이다. 물론 나 혼자 이를 마뜩치 않게 여긴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 게 있냐마는, 반대의 취향이 충분히 존중받을 분위기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니터로 책을 읽는 시대를 썩 반기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 미래의 시대에는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을 살펴보면서 독서에의 의욕을 불태우는 나의 오랜 습관을 실천하기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파일의 형태로 담긴 글들은 컴퓨터 어딘가에 들어가 있게 되는데, 이를 통해서는 도무지 독서에로의 자극이 생겨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지금 내 컴퓨터 안에는 엄청난 양의 PDF 파일들이 들어 있지만, 내가 폴더에서 서브폴더로 열심히 클릭해서 들어가지 않는 한 그들은 내 눈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 파일들은 말하자면 나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오랜 기간 동안 잠복해 있다가 내가 어떤 필요성에 의해서 검색을 하거나 폴더를 찾아 들어가면 그때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그들은 나와 함께 살지 않는다. 그들은 내 삶의 공간의 구성 요소가 아니다. 전자책 시대에 아마도 나는 책을 읽기 위해 필요한 정서적 자극을 공급받지 못해 서서히 책에서부터 멀어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지금부터 불안하기만 하다.

나는 앞으로 책을 읽을 조건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책을 구입하여 읽지 않은 채로 책꽂이에 꽂아 넣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책을 읽게 되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힘이다. 아직 읽지 않은 책이 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책을 읽는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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