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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 '막말 용역' 이긴 '선비'가 있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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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 '막말 용역' 이긴 '선비'가 있었다네!

[프레시안 books] 유채림의 <매력 만점 철거 농성장>

두리반 농성장에는 세 개의 층이 있었다. 먼저 자주 방문하는 사람들의 회합 장소로 이용되던 1층. 두리반 농성을 이끌던 두리반 칼국수집 사장 안종녀와 그의 남편 소설가 유채림, 그리고 농성장에서 상근하던 활동가들이 몸을 기거하던 2층. 마지막으로 공연이나 낭독회, 다큐멘터리 상영회 등 각종 행사들이 열리던 널찍한 3층.

한 계절 이상을 두리반에 머무른 이들은 각자 자주 다니는 층이 있었다. 이를테면 음악가인 나는 3층인 식으로. 물론 층끼리의 이동은 자유로웠고, 그래서 나는 간간이 피곤할 때마다 2층 한 구석 평상에 몸을 뉘이곤 했다. 그곳에서 가끔씩 유채림이 일기를 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그의 일기장을 부러 들춰보려 노력하진 않았다.

▲ <매력 만점 철거 농성장>(유채림 지음, 실천문학사 펴냄). ⓒ실천문학사
그리고 두리반의 농성이 마무리된 지 한 해하고도 한 계절, 우리는 그의 기록을 이제야 확인해볼 수 있게 되었다. <매력 만점 철거 농성장>(실천문학사 펴냄)은 유채림이 매일 적어 내려가던 일기에 기반을 두어 쓰인, 두리반에 대한 공식적인 첫 출판물이다.

두리반은 지역단위 재개발과 강제철거에 맞서 2009년 12월부터 2011년 7월까지 531일간 투쟁한 서울시 마포구의 동교동 삼거리에 위치한 칼국수집의 이름이다. 사실 이제는 너무 많은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탓에 '재개발에 맞선 농성의 기록'이라는 테마 자체는─그것의 시의적절함과는 별개로─크게 매력적이진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에겐 아직 두리반, 그리고 두리반에서의 농성을 기억해야할 몇 가지 이유가 있다.

1) 531일 간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폭력 상황을 거의 발생시키지 않았으며, 공개적인 협상의 결과로서 승리를 쟁취한 전례를 찾기 힘든 투쟁이다. 2) 이러한 결과와 그에 이르는 과정을 만들어냄에 있어 '젊은 세대'들과 '예술가'들이 주도적인 기여를 했다. 실제로 두리반은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젊은이들과 음악가, 영화인, 미술가, 활동가 등 수많은 이들의 방문으로 연일 떠들썩했으며 나아가 그들이 먹고 자고 놀고 일하는 생활 공간으로서 기능하기도 했다. 3) 투쟁 주체는 이러한 '젊은 세대'와 '예술가'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잠재력을 비교적 잘 파악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의지를 가진 이들이 농성에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는 채널을 가능한 열어두려 노력했으며 나아가 이에 함께 동참하여 서로 간 발생할 수 있는 문화적인 간극을 좁히려 애썼다. <매력만점 철거농성장>에서는 이중 3)에 대해 가장 집중적으로 서술되어있다.

하지만 소재를 떠나 이 책의 가장 도드라진 특징은 본업이 '소설가'인 철거투쟁 당사자 유채림이 직접 기록을 정리하고 글로 풀어냈다는 점일 것이다. 유채림은 책 전반에 걸쳐 시종 자신의 시점에서 기록하고 서술했음을 숨기지 않으며, 오히려 행위자이자 관찰자로서 더욱 적극적으로 자신을 투영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객관적인 기록이라기보다는 글 쓰는 주체의 의지가 개입된 기록들의 재구성에 가깝다.

전자와 후자의 방식에 각기 장단점은 있겠으나, 주 무대가 두리반인 탓에 유채림의 방법론은 더욱 효과적으로 느껴진다. 책을 읽어본 독자라면 짐작할 수 있듯, 두리반 내부에서의 의사 결정은 그 권리를 투쟁 주체만 독점하고 있지 않았으며 구성원들과의 협의를 통해 조율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나의 '길'로 수렴되기보다는 각자의 '길'에 기반을 두고 구성원 대부분이 동의할 수 있는 '길'을 선택했다. 모든 선택을 대표=재현하는 인격체=리더는 없었으며 그런 이유에서 모두를 대표하는 글도 원칙적으론 불가능한 것이다. 물론 이건 원칙에 관한 이야기고 실제로 대부분의 기록은 '오피셜'을 가정하고 쓰이는 경우가 잦다. 그러나 유채림은 '오피셜'을 자처하는 대신 굳이 한 사람의 '개인'이라는 입장에서 이 책을 쓰고 있다.

유채림은 책 초반에 궁형을 받은 사마천의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하며 "선비를 때려죽일 수 있어도 욕보일 순 없는 거지!"라는 대사를 인용한다. 유채림을 이해하는 데 있어 '선비 정신'은 중요한 키워드다. 그래서 유채림은 용역 깡패가 몰려온 두리반 앞에서 "삶에 앞서 체면"을 생각한다. 그리고 철거민임에도 자신의 농성을 "벗어날 수 없는 부끄러움"이라 생각한다. "격"과 품위를 생각하고 절규하는 철거민을 향해 "밤길이나 조심해 이년아!"라 일갈하는 철거 용역을 보며 "그들은 인간이 아니다"라 생각한다. 때로 이러한 기준은 자신과 함께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에게도 적용된다. 심지어는 농성의 가장 앞머리에서 투쟁하는 자신의 아내 안종녀에게도 '소음 시위'는 할 수 없다며, 그렇게 이긴다 해도 "그건 이기는 게 아"니라며 자신을 굽히지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유채림은 그 고집을 생산적인 방향으로 활용했으며, 그래서 '노동자는 노동자의 방식으로, 작가는 작가의 방식으로'란 두리반 농성의 기반이 되는 논리를 만들어낸다. 이를 통해 음악가인 나는 음악가의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었으며, 많은 이들이 자신에 적합한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찾아냈다. 시간 순으로 드라마틱하게 서술되었고 자잘한 에피소드를 적소에 배치하여 쉽게 따라가며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소설가이자, 선비이자, 한 가정의 가부장이자, 남편이자, 세대 구분으론 베이비붐 세대에 속하는 유채림의 여러 조건들을 염두에 두고 읽었을 때, 우리는 '우리에게 두리반은 무엇이었나?'에 접근하는 제법 쓸 만한 하나의 '길'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 한 가지. 앞서 언급했던 것과 같이 두리반의 농성은 531일간 진행되었다. 그런데 책에선 두리반 단전 사태가 일어났던 여름, 그러니까 2010년 8월까지 초반 8개월의 투쟁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이후 막판 협상이 시작되는 2011년의 봄으로 바로 건너뛰게 된다. 2010년 가을과 겨울의 이야기가 빠져있는 것이다. 내게 두리반의 가을과 겨울은 지리멸렬했던 시간의 연속으로 기억되고 있다. 겨울이 되면서 오는 사람이 확연히 줄었다. 늘 젊은이들의 명소였던 두리반도 비는 날이 많아졌다. 그렇게 우리는 두 계절을 버텼다. 유채림은 점차 승리에 가까워지던 순간들만을 기록하고 싶었을까?

한 가지 더. 책 자체에 대한 아쉬움은 아니지만, 말했듯 두리반엔 수많은 주체들이 있었고 그들이 두리반을 바라보는 시점과 입장, 그들이 두리반에서 참여하고 기여하는 방식은 모두 달랐다. 하지만 정리하여 출판까지 된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아직 두리반에 대한 이야깃거리는 많다. 나는 우리의 모든 기억이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공중으로 휘발되면 안 된다 생각한다. 우리에겐 아직 더 많은 기록이 필요하다. 우리에겐 아직 더 많은 두리반과 주체들에 대한 기록들이 필요하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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