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로 분류학의 시를 쓰는 것,
그리하여 한 곤충의 대부, 그의 첫 기재자가 되리니.
그 이상의 영예는 원치 않는다.
핀에 꽂혀 펼쳐진 채(비록 그대로 잠이 들었건만)
스멀스멀 다가드는 먼 친척들과
녹슬지 모를 위험에서 벗어나
기준 표본을 보관하는 격리된 성채에서, 그것은 사체를 초탈한다.
심오한 그림들, 왕좌, 순례자들이 입 맞추는 돌들,
천 년이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을 시들,
그러나 모든 것은 한 조그만 나비에 붙은
붉은 라벨의 영원 불멸성을 고작 흉내 낸 것에 불과하리라.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나비의 발견'(<나보코프 블루스>(커트 존슨·스티브 코츠 지음, 홍연미 옮김, 해나무 펴냄), 5쪽)
2006년 베를린 자연사 박물관에서 '트렁크 41/건조 물질'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낡은 트렁크가 발견된다. 1939년 이후로 67년 동안 이곳에 처박혀 있던 트렁크의 주인은 독일인 나비 연구자(애호가) 아르놀트 슐체. 트렁크 안에는 담뱃갑이 46개 들어 있었으며 담뱃갑 안에 차곡차곡 포개진 종이봉투에는 슐체가 콜롬비아에서 채집한 신열대구 나비 1만8000여 마리가 날개를 접은 채 영면하고 있었다(동물상을 기준으로 전 세계를 나누면 구북구, 에티오피아구, 동양구, 오스트레일리아구, 신북구, 신열대구, 남구로 구분할 수 있다). <박물관의 나비 트렁크>는 이 나비 트렁크에 대한 이야기다.
| ▲ <박물관의 나비 트렁크>(한나 체카우·한스 치슐러 지음, 유영미 옮김, 프로네시스 펴냄). ⓒ프로네시스 |
채집가는 집에 돌아와 나비의 날개를 펴고 온몸에 핀을 꽂아 액자에 넣는다. 생물로서의 나비가 표본으로서 부활하는 것이다. 날개의 비늘이 떨어지고 벌레에게 갉아 먹히면서 나비는 서서히 세 번째 죽음을 맞는다. 두 저자가 트렁크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그 속의 나비들은 세 번째로, 영원히 죽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은 어쩌면 그중 87마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사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 책은 트렁크에 들어 있는 나비 중 87마리의 세밀화 삽화, 트렁크 주인 아르놀트 슐체가 남긴 콜롬비아 여행 일지와 보고서 그리고 나비와 관련된 여러 저술가의 글을 모아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두 저자 한나 체카우와 한스 치슐러는 먼지 쌓인 채 구석에 버려진 트렁크를 발견하고 그 주인이 잊혀진—재조명받아 마땅한—연구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렸을까?
학술적 가치가 있다거나("그 나비들이 원래의 학문적 가치를 잃었다 해도 말이다") 희귀하다거나 색깔과 무늬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아름다운 것은 사실이지만—트렁크의 특정 담뱃갑에 들어 있다는 이유로 나비 모델을 선정한 것은 그런 까닭일 것이다(책의 목차로 미루어 짐작컨대 두 저자는 담뱃갑 여섯 개를 개봉한 듯하다). 하나의 사물을 매개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독자에게 여러 측면에서 정보와 감동을 전달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자칫 안이한 태도로 비칠 우려가 있다. 세밀화에 들어간 정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글을 선정하고 엮어내는 과정이 좀 난삽하다고 할까.
그래픽 디자이너 체카우는 나비뿐 아니라 나비를 감싼 종이봉투, 종이봉투를 담은 담뱃갑까지 정성들여 재현했다. 그리하여 독자는 20세기 초 콜롬비아에서 판매된 시가의 제조 회사 중에 빌라미자르 헤르마노스, 보크이카, 콜롬비아, 프로텍터, 피크-프린 & Co. 등이 있었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어쨌거나 담뱃갑 뚜껑 그림이 속표제지로 안성맞춤이기도 하고. 담뱃갑과 종이봉투를 삽화로 재현한 것은 1920년대 콜롬비아의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과는 무관한 디자인적 요소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된다. 나비 그림도 어떤 기준에 따라 선정된 것은 아닌 듯한데, 삽화 목록을 책 뒤에 정리해두지 않은 것을 보면 이런 의심이 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
후대에 재조명된 나비 연구자, 하면 우리나라에는 석주명 박사가 있다. 식민지 조선에서 나비 연구로 전 세계적 명성을 떨치고 1940년에 <조선산 나비 총목록>이라는 책에서 학자들이 잘못 붙인 나비 이름을 바로잡은 석주명. 지금이야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린 '위인'이지만, 1950년에 서거한 뒤로 1980년대까지 그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나는 청소년용 <열정의 나비 박사 석주명>(이병철 지음, 작은씨앗 펴냄)을 읽었지만 <석주명 평전>(이병철 지음, 그물코 펴냄)이 출간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길).
다만 슐체와 석주명의 나비 연구에는 큰 차이가 있다. 슐체를 제국주의적 나비 연구자라고 부른다면 석주명은 민족주의적 나비 연구자라고 할 만하다. 슐체가 이국의 나비를 채집하고 분류했다면 석주명은 외국 학자가 잘못 분류한 자국의 나비를 제 위치에 돌려놓고 일본어식 이름을 한국어식으로 고쳤다. 석주명은 생물학에 국학의 성격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국학으로서의 생물학을 보급하고자 했다.
나비 채집의 가장 큰 매력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나비를 최초로 발견하여 자신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박물관의 나비 트렁크>에 여러 차례 등장하는 나보코프는 1938년에 알프스에서 발견한 나비에게 '리산드라 코르미온 나보코프(Lysandra cormion Nabokov)'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그의 '신열대구 플레베이나이에 관한 고찰'을 기념하여 새로 발견되는 라틴아메리카 블루 종들에 나보코프식 이름을 붙이는 일이 시작되었다(국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협회 회원 워런 휘터커가 명명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석주명도 '도시처녀나비(Coenonympha horeuja SEOK)', '(수노랑나비Apatura ulupi morii SEOK)' 등 다섯 종을 처음 발견하여 자기 이름을 붙였다. 슐체가 처음 발견한 동물로는 몰룬두에서 발견한 '유리오색조류(Tricholamea schultzei)'가 있지만(27쪽), 아쉽게도 슐체의 이름이 붙은 나비는 없는 듯하다.
두 번째 매력은 희귀한 나비를 손에 넣는 것이다. 김용식의 <나비 찾아 떠난 여행>(현암사 펴냄)에서는 나비 애호가들의 속마음을 이렇게 묘사한다. "귀한 나비를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은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지기도 한다. 새로운 채집지가 발견되거나 사육에 의해 흔한 나비로 되어버리는 순간, 엄습해 오는 공허감은 감당하기 힘들다. (…) 채집가들이 새로 찾아낸 채집지를 비밀로 하려는 것은 그 나비를 보호하려는 뜻에다가, 한편으론 장소가 알져서 흔한 나비로 되는 것이 아깝기 때문이기도 하다"(66, 81쪽). 다른 사람이 귀한 나비를 가지고 있으면 사정사정해서 얻어내기도 하고 몰래 슬쩍하기도 한단다.
이런 점에서 나비는 보석을 닮았다. 실제로도 "남아메리카에 서식하는 거대한 푸른색 열대 나비인 모르포 나비는 예전부터 액자에 걸려 집을 장식하는 데 사용되었고, 그 날개는 조각조각 나뉘어 보석처럼 귀금속 세팅에 쓰이기도 했"다(<나보코프 블루스>, 51~52쪽). 보석이 희소성에 따라 가치가 매겨지듯 나비도 (희)귀할수록 귀한 대접을 받는다.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는 자신이 잡은 제왕비단나비를 "그 나비는 가히 어두운 숲에서 나타난 빛나는 보석"이라 불렀다(90쪽).
나보코프가 말하는 세 번째 매력은 나비의 삶과 습관, 신체 구조, 분류 체계를 연구하는 것이고 네 번째 매력은 스포츠적인 요소라고 한다(19~20쪽). 나보코프는 작가보다 나비 연구자가 되고 싶었다(그렇다. <롤리타>를 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이야기다).
"솔직히 나는 한 번도 문학을 직업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게 늘 낙담과 의기양양의, 고문과 소일거리의 혼합물이었습니다. 결코 그것이 수입의 원천이 될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조차 해본 적이 없습니다. 반면에 흥미진진한 직업으로 훌륭한 박물관에서 일하는 소박한 학예 연구사를 꿈꾸곤 했습니다." (<나보코프 블루스>, 13쪽)
큐피드의 얼굴을 보고 싶어 불을 켰다가 곤경을 겪고 결국 큐피드와 결혼한 프시케. 그런데 영어에서 '프시케(psyche)'에는 '영혼'과 '나비'라는 두 가지 뜻이 있다. 그리스 사람들은 영혼을 나비에 비유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도 무덤가를 날아다니는 나비에게서 비슷한 느낌을 받는 듯하다. 이를테면 김용식 씨는 "바둑돌부전나비를 처음 본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 나비는 외할머리께서 음덕을 베풀어 보내신 거야.' (…) 외할머니 산소를 단장하고 비석을 세워드리는 날, 우연찮게 산소 밑자락의 풀숲에서 귀한 바둑돌부전나비 수컷 두 마리를 채집했다"라고 회상한다(<나비 찾아 떠난 여행>, 23, 24~25쪽). <박물관의 나비 트렁크>에서는 "번데기에서 나비로의 탈바꿈과 육신에서 영혼으로의 탈바꿈이 유사하다 보니 영혼은 계속해서 나비에 비유되곤 한"다고 말한다(127쪽).
한편, 이탈리아어 '아우렐리아(aurelia)'는 '나비의 작은 날개'를 일컫는데(어원은 '금'을 뜻하는 '아우룸(aurum)'이다) 이로부터 '나비 연구자'를 뜻하는 '오릴리언(aurelian)'이 파생했다(이 책의 원전은 독일어판인데 왜 '오릴리언'이라는 영어 명사로 1장이 시작되는 걸까 하고 궁금했는데 나보코프의 단편 소설 중에 '오릴리언(The Aurelian)'이라는 작품이 있었다). 한편 영어 '버터플라이(butterfly)'는 '버터를 상하게 하는 마녀, 혹은 우유 도둑'을 뜻한다고 한다(131쪽). 나보코프는 'better fly', "다른 나는 것들보다 크고 화려한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했다(<나보코프 블루스>, 55쪽).
<박물관의 나비 트렁크>의 집필 의도는 다음과 같다.
"연구자의 이름은 여러 방식으로 계속 살아남지만(용어 같은 것에서), 그 이름과 연결된 삶의 이야기는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이 자연 과학 분야에서 고집스럽게 지속되고 있는 경향이다. 우리는 슐체를 읽으며 그런 경향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이 책에는 나비 연구자의 음성이 담길 것이다. 우리는 조제프 주베르,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 빌헬름 레만, 로제 카이유와, 프랑시스 퐁주,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와 같은 '이야기꾼'들의 글을 통해 이들이 화려한 나비를 포착할 때 느꼈던 강렬한 끌림과, 이 아름다운 나비들을 사냥하고 소유하고 명명하고 싶은 억제할 수 없는 욕망, 거대한 나비 무리를 목격할 때의 황홀한 기쁨을 접할 것이다." (17쪽)
그런데 슐체의 일기와 '이야기꾼'의 글들은 구색 맞추기로 끼워 넣은 인상이 강하다. 어쩌면 이 책은 이미 나비에 매혹된 사람들을 겨냥했을까? 하지만 "우리나라에 나비 채집하는 사람이 많게 잡아도 100여 명"(<나비 찾아 떠난 여행>, 289쪽)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출판사가 몰랐을까?
책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원고는 슐체가 1927년에 작성했으나 1937년이 되어서야 발표된 보고서 '시에라네바다 데 산타마르타의 화재'다. 이 보고서는 나비 이야기가 아니라 콜롬비아의 생태 파괴를 고발하는 여행기다. 여기서 '화재'는 목초지를 조성하려고 숲에 불을 지르는 행위를 일컫는다. 슐체는 가뭄과 홍수가 둘 다 숲을 파괴한 대가라는 사실을 밝혀냈으며 "인간의 탐욕과 짝지어 이런 부유하고 아름다운 나라의 경제적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치명적인 자연 파괴를 중단시켜"(304쪽)달라고 요청했다.
어쩌면 두 저자가 이 책을 쓴 것은 나비를 미끼로 슐체의 이 보고서를 소개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는 슐체를 '학술적 낭만주의의 마지막 후예'라 부르는데, 그리하여 슐체의 "글은 구원의 닻이자 그물로서, 감동과 지각적 인상을 포착하고 정리하고, 그 자리에 함께 하지 않았던 독자들의 추체험을 가능케 한"다(182쪽). 그리하여 독자는 이 보고서를 읽으며 콜롬비아의 자연을 마치 직접 여행하듯 체험하며 이 아름다운 자연이 파괴되는 것에 대해 슐체가 느낀 안타까움을 함께 느낀다. 나비의 애호에서 연구로, 다시 생태계 보전으로 발전하는 경로를 보여준다고 할까.
하긴 나비는 생태계 파괴의 결과를 온몸으로 증언하는 곤충이다. 나비의 종류는 남북한 합쳐서 268종, 남한에만 216종이 있으나, 앞으로 출간되는 도감은 신종을 기록하기보다는 멸종한 종을 삭제하는 일이 더 잦을 것이다. 이미 붉은점모시나비, 상제나비, 산부전나비, 고운점박이푸른부전나비, 북방점박이푸른부전나비, 여름어리표범나비, 봄어리표범나비, 산꼬마표범나비 등이 멸종 위기에 처했으며(<나비 찾아 떠난 여행>, 348~355쪽) 지구 온난화와 서식지 변화에 따라 더 많은 종이 사라질 것이다.
아르놀트 슐체는 나비 트렁크를 먼저 독일로 보낸 뒤에 아내와 함께 '인' 호를 타고 독일로 향했다. 수십 년간 채집하고 연구한 결과물을 모조리 지닌 채. 하지만 그의 배는 연합군의 포격에 침몰했고 모든 표본과 자료가 수장되었다. 그러니 이 책은 한 위대한 연구자가 세상에 남긴 아주 작은 유품인 셈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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