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년 첫 '프레시안 books'는, 향후 5년을 건너가는 데 함께 하면 좋을 책 특집으로 꾸몄습니다. '5년'인 이유는 새로운 대통령과 정권이 들어서는 변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는 비록 전부는 아닐지라도 많은 이들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며 그들의 희망과 절망을 교차시키는 변화입니다. 여덟 명의 필자가 이 '5년'을 마주하며 책 한두 권씩을 꺼내 들었습니다. <편집자> |
굳이 분류하자면 '좌파' 혹은 '진보'에 속하는 편이지만, 나는 진보의 일각에서 선거 때마다 제기하는 '계급 투표'에는 별로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왜냐하면 이때 쓰인 계급이라는 단어는 목적의식적으로 형성된 대자적인 의식으로서의 계급이라기보다 경제적 기반과 직결된 즉자적인 사회적 지위로서의 계급에 가깝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권자들도 실제로 계급 투표를 하지 않는다. 저학력 저소득층이 자기들에게 오히려 불리한 정책을 펴 왔거나 펼 것으로 예상되는 박근혜 당선인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지지한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유권자들에게 "왜 계급 투표를 하지 않느냐?"고 묻기 전에, 유권자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현명한 처사일 것이다.
5년여 전 이명박 현 대통령이 당시 대통령 선거에 나섰을 때 주변의 과학자들 중에는 그의 공약 사항이었던 과학 비즈니스 벨트 때문에 그를 선택하는 것이 우리에게 큰 이득일 것이라고 했던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 말 자체는 전혀 틀린 말이 아니었다. 만약 내가 5년 전에 계급 투표를 했다면 나는 아마도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 표를 줬을 것이다.
과학자나 과학기술자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전문직 종사자들도 자신들만의 계급 투표를 고집한다면 자칫 볼썽사나운 제 밥그릇 챙기기로만 끝날 수도 있다. 전문직 종사자들은 대체로 여론 주도층이기 때문에 이들이 어떤 관점을 갖느냐가 한 사회의 향방에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즉자적이고 경제주의적인 싸구려 계급의식이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 속에 투영된 보편적 가치와 철학을 들여다보는 안목이다. 일선 과학자로서 박근혜 시대를 전망하는 나의 고민이 박근혜의 구체적인 과학기술 정책보다도 그 철학과 근본적인 가치 지향점에 우선적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솔직히 일자무식의 이 무명 과학자가 생각할 수 있는 철학이나 가치라는 것이 그리 거창하거나 심오한 수준에 이르지는 못한다. 다만 일선 과학자이기 때문에 조금 더 민감할 수밖에 없는 요소들을 지적하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국 사회가 앞으로 지향해야 할 바는 선진화나 복지화가 아니라 문명화라고 생각한다. 문명의 사전적인 의미는 보다 나은 삶의 양태인데, 이를 위해서는 자신과 그 주변에 대한 주체적이고도 자기 완결적인 이해와 통찰이 필수적이다. 그 이해와 통찰의 가장 고도화된 형태는 물론 과학이다. 그래서 '과학 문명'의 시대를 살고 있는 과학자에게 문명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는 남다른 데가 좀 있다.
"지금 한국이 야만 사회란 말인가?"라고 누가 되묻는다면 나는 내가 이렇게 이해하는 방식으로서의 문명에 대한 기준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면 한국 사회의 야만성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에 빛나는 자살률이나 인간 이하의 삶을 강요당한 해고 노동자들, 졸지에 테러리스트가 돼 버린 용산 참사 피해자들은 극히 일부의 대표적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언론은 가장 무식한 방법으로 정부가 점령해 버렸다. 권력에 비판적인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은 것은 흡사 갈릴레오의 종교 재판을 보는 듯했다. 야만이라는 단어 외에는 이 상황에 적합한 말이 도무지 떠오르지가 않는다.
돌이켜보면 지난 이명박 정부는 탄생 자체부터가 반문명적이었다. BBK 논란과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이 오랜 세월동안 남긴 숱한 기록들은 모두 없던 일이 돼 버렸다. 여기에는 본인의 목소리가 직접 담긴 동영상도 있었다. 기록은 문명사회를 떠받치는 가장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요소이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기록에 관한 한 독보적인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다. <다라니경>, <직지심경>, <팔만대장경>은 물론이고 <조선왕조실록>, <의궤> 등은 인류 역사상 유래를 찾기 힘든 기록 문명의 흔적이다. 오죽하면 세종대왕이 새로 글자를 만들 생각까지 했으랴.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이명박 정부는 권력을 위해 문명을 말살하면서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이명박 대통령 치하의 온갖 반문명적 야만 행태가 바로 여기서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의미 있는 지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기록물이 800만 건이 넘는 데 비해 이명박 대통령의 기록물은 재임 4년차까지 겨우 82만 건에 불과하다. 기록물을 많이 남겼다고 해서 훌륭한 지도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기록에 대한 개념이 없거나 오히려 적대적인 사람을 문명사회의 지도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안타깝게도 박근혜 당선인은 이런 면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많이 닮았다. 기록을 무시하는 그의 태도는 5·16이나 인혁당(인민혁명닥) 사건에 대한 입장에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현대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기록물 중 하나가 법전인데, 인혁당 재심 결과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박근혜 당선인이 차량을 이용한 선거 운동을 금지한 선거법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과학기술부 폐지에 적극 동조(정부조직법 공동 발의와 찬성 투표)했던 전력을 TV 토론에서 전면 부인하기는 훨씬 더 쉬웠을 게다. 팩트(fact), 그것도 여러모로 기록된 팩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을 어떻게 문명사회를 이끄는 지도자라 할 수 있을까?
문명화의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서부터 이렇게 어긋나기 시작했으니, 조금만 상황이 복잡해져도 야만적 본성이 횡행하기 시작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논란이 그러했고, 천안함 침몰을 둘러싼 논란이 꼭 그랬다. 다른 건 둘째 치고 나는 관성력 때문에 천안함의 스크루가 앞쪽으로 휘었다는 합동 조사단의 발표를 보면서, 내가 이 땅에서 물리학을 연구하는 게 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밀려왔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정부의 발표에 대한 이견이 곧바로 친북이나 종북으로 연결되면서 마녀 사냥이 시작됐다는 점이다.
과학이나 공학에 대한 이해가 낮아 관성력이 스크루를 휘게 했다는 어이없는 주장을 할 수도 있다. 더러는 어이없는 주장이 사실로 밝혀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건 납득하기 어렵다"는 이의 제기를 원천 봉쇄하는 것은 책을 불사르고 학자를 구덩이에 파묻는 패륜과 다를 바 없다. 실제로 헌법재판관 후보가 천안함 관련 발언으로 낙마했으니, 후대 사람들이 이를 두고 뭐라 할지 근심이다.
박근혜 당선인의 사태 인식 또한 '천안함에 의문을 제기하는 친북 세력'이라는 야만적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천안함은 북한 공격으로 침몰했다는 결론에만 매달리다보니, 정작 함미 인수에 왜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 왜 46명의 장병들이 이틀 가까이 물속에 방치될 수밖에 없었는지, 이 과정에서 누가 무엇을 잘못했고 어떻게 고쳐져야 하는지는 전혀 논의되지 못했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당선인은 야당이 집권하면 이념 논쟁으로 날 샐 것이라고 비난했지만, 천안함 사건에서 보듯이 과학 논쟁을 이념 논쟁으로 변질시켜 본질을 호도한 것은 오히려 그들이었다. 정말 박근혜가 열린 마음의 문명화된 마인드를 갖고 있다면, 예컨대 이승헌이 쓴 <과학의 양심, 천안함을 추적하다>(창비 펴냄) 정도는 사심 없이 읽어보길 권한다.
| ▲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이종필 지음, 글항아리 펴냄). ⓒ글항아리 |
20세기와 마찬가지로 21세기도 어쩔 수 없이 '과학 문명'의 세기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바, 앞으로의 박근혜 집권 5년 동안에도 광우병 파동이나 황우석 사태, 혹은 천안함 침몰을 둘러싼 논란 같은 일들이 수없이 벌어질 것이다. 대통령이 모든 현안의 모든 디테일을 알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각 현안의 핵심과 전체 국정 속에서의 상대적인 위치를 파악하는 종합적인 사고 능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과학적 방법론과 문명화(적어도 탈 야만)의 마인드가 필요한 곳이 바로 여기이다.
마지막으로 박근혜 당선인에게 당부하자면, 달나라에 태극기 꽂는 것과 같은 그런 퍼포먼스에만 너무 매달리지는 말기 바란다. 박근혜 당선인이 최근 중국의 우주선 도킹 장면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아서 그러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미국이 이른바 '스푸트니크 충격'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했던 일 가운데 하나가 미 대학의 수학과와 물리학과를 전폭적으로 지원한 일이었음을 잊지 말기 바란다.
대학은 인재를 재생산하고 일차적인 연구와 교육이 함께 진행되는 기관이기 때문에 과학기술정책을 고민할 때 정책의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부터 고려해야 할 대상이다. 안타깝지만 한국 대학에서의 기초 과학의 현실은, 달나라 태극기 타령이나 하고 있을 만큼 그리 한가롭지 못하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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