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모녀의 대결의식', 그 힘으로 살아가리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모녀의 대결의식', 그 힘으로 살아가리

[내가 읽은 박완서] 스승 김윤식 쓰고 딸 호원숙 읽다

지난해 5월이었다.
김윤식 선생님이 나에게 먼저 전화를 주셨다. 좀처럼 없는 일이지만.
너의 엄마 자료를 모아 놓은 걸 자네에게 전하고 싶다는 짧은 통화였다.
선생님은 핸드폰이 없으시다. 그런데 내 핸드폰 번호는 기억해 놓으신다고 한다. 언제 어찌 될지 모르는 살아 있다고 해서 살았다고 할 수 없는 늙은이이니….

나는 약속한 날 동부이촌동 아파트로 선생님을 모시러 간다. 늘 하던 대로 경비실에서 연락을 주면 내려오신다. 쇼핑백을 하나 들고 나오신다.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내 차 앞자리에 타시더니 '가까운 데다' 시키는 대로 쭉 가라고 하신다. 박물관으로 갈 거다. 집에서 가까운 국립중앙박물관이다. 나는 선생님과 점심을 같이 하려고 남산에 있는 근사한 레스토랑에 예약을 해 놓았는데 거기는 안 가신다며 취소하라고 하신다. 밑그림이 그려진 대로 따라하면 된다.

국립박물관에서 돈을 안 받는다고 나라에서 참 잘하는 것이라며 빠른 걸음으로 앞서 들어가신다. 나는 쭐레쭐레 뒤따라가며 염려했던 선생님의 건강 상태에 안도한다.

박물관 낭하를 빠르게 가로질러 2층에 있는 찻집으로 가시더니 대추차를 시키신다. 같이 대추차를 마시며 보자기에 싼 원고 보따리를 풀어보라신다. 친필로 쓰신 원고지와 여기저기 책에서 뜯어 붙이기를 한 인용문들 때문에 부피가 두둑하다. 조금은 긴 앞말, "잘 설명할 수 없는 것들" 이란 서문의 소제목과 나누어진 챕터의 제목, 책의 제목까지도 이미 정해놓으셨다. <내가 읽은 박완서>

▲ <내가 읽은 박완서>(김윤식 지음,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그리고 어머니와 찍은 사진들은 이미 다 추려서 설명까지 붙여 편집을 다 해 놓으셨다.

너의 엄마 2주기에 내도록 해라. 자네가 읽어보고 시답잖고 맘이 내키지 않으면 그냥 안 내도 된다며 혼잣말처럼 이야기하신다. 내 대답은 기다리지 않으신다.

이내 일어나시더니 국립박물관에 오면 꼭 보아야 할 것이 있다고 더욱 빠른 걸음으로 앞서 가신다. 금동미륵반가사유상, 국보 78호가 있는 방으로 향한다. 여러 번 오신 듯 망설임도 두리번거림도 없이 직행이다. 드디어 그 설명할 수 없는 어둠 속의 고요 앞에서 스승과 같이 서 있는다. 나는 이 시간이 영원히 이어지기를 바라기도 하고 또 빨리 끝나기를 바라기도 한다. 나무랄 데 없는 아름다움의 절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오직 한 점의 그림을 위해 거기 들렀고 딴 그림은 안중에도 없이 곧장 그리로 빨려들어갔다."

어머니 산문집 <두부>(창비 펴냄) 209쪽에 나오는 글이다. 선생님의 글에서도 여러 번 인용되었던 드레스덴 미술관의 장면이 기시감으로 겹친다.

다행히 이제 밥을 먹어야지 하시며 언제 끝날 줄 모르는 몰아의 시간을 끊어주신다. 아까보다는 조금 느린 걸음으로 박물관 구내식당으로 가는데 사람들이 식권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밥을 어찌 나라비를 서서 표를 받아 먹을 수 있겠는가" 하시며 다시 박물관 바깥 경내에 있는 음식점으로 향하신다.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다.

올 1월 어머니의 2주기에 책으로 나와 묘지 앞에 놓여졌다. 돌아가실 때처럼 묘지는 눈에 싸여 있었다. 선생님은 오지 않으셨고 오직 책으로만 놓여졌다.

나는 이 책을 리뷰를 하거나 서평을 할 능력은 더욱 없다. 더구나 <프레시안>이라는 치열하고도 진보적인 매체에 아무 주장도 이론도 학문도 없는 내가 글을 쓰는 것은 가당치 않다.

그런데도 감히 쓰겠다고 한 것은 내가 쓰지 않겠다고 해서 누군가 다른 사람이 이 글을 쓰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굳이 설명하자면 역할을 피하지 않고 어떻게든 해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다.

어머니는 담낭암 수술을 받고 회복 중에 갑자기 돌아가셨다. 아무리 위중한 암이라지만 그 전날까지도 지팡이를 내던질 정도로 거동에 불편이 없으셨고 정신은 더욱 더 명징하셨기에 장례 절차를 미리 기획할 정도로 위급하지 않으셨다. 그 날 새벽 어머니의 죽음은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남은 가족에게 닥친 것은 슬픔보다는 우선 현실적인 장례 절차였다. 가족들이 같이 의논하지만 최종 결정은 맏이인 내가 해야 한다는 것이 까마득했다.

어쩔 수 없이 가족장으로 진행이 되는데 동생이 눈물을 흘리며 "세상에 엄마한테 그럴 수는 없어 엄마가 그동안 문단에 어떻게 했는데" 하며 원망스럽게 말했다. 나는 그 와중에도 박경리 선생님의 장례위원장을 하셨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세상에 여자를 장례위원장 시키는 법도가 어디 있어?" 하기도 했지만 어머니는 그 역할을 피하지 않고 잘 해내셨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나는 누군가 나서서 이 아득한 일을 한꺼번에 해결해 줄 수는 없을까. 이 결정의 자리를 누군가 아니면 어떤 단체에게 떠맡기고 피할 수는 없을까 생각했다.

나는 소식을 듣고 일찍 달려오신 김윤식 선생님께로 다가갔다. 나는 동생들이 엄마를 가족장으로 모시는 건 너무하다며 운다는 말을 전했다. 김윤식 선생님과 그 곁에 앉으신 최일남 선생님은 나를 위로하며 "너의 엄마한테는 가족이 가장 영광스러운 거다. 무엇보다 더 좋은 거야. 엄마도 그걸 원하실 거야."

나는 그 한 말씀에 눈을 번쩍 떴다.
나는 그때 스승의 그 한마디가 특별한 사랑과 오랜 내력이 없이는 나올 수 없는 말이란 걸 알았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김윤식 선생님의 책을 다시 또 읽게 되었다. 동어반복이 나올 때마다 민망스럽기는 했지만 어쩌면 그건 한 작가에 몰입한 한 평론가의 무조건적인 신뢰와 편애의 기록일지 모른다. 아니면 무한한 주절거림과 독백일지 모른다. 소설에 관한 평론이 아니라 김윤식 자신의 문학적 고백록일지 모른다.

"너는 파수꾼의 한 사람. 너는 섶나무 더미의 장작에서 불을 활활 타오르게 붙여 휘두르면서 다음의 파수꾼을 찾고 있다. 왜 너는 눈 뜨고 있는가? 누군가가 깨어 있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 한 사람은 여기에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읽은 박완서>(김윤식 지음, 문학동네 펴냄) 230쪽)

이 책에서 인용한 카프카의 글을 다시 베껴 쓸 수밖에 없다.

"작가 박완서의 문학이란 그러니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로 요약되는 그의 대표작이란, 엄마인 기숙 여사와의 대결이라는 것."

"모녀의 대결의식이야말로 이 작품의 긴장력이자 박완서 문학의 긴장력의 근원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작가 박완서는 이 점을 전력을 기울여 주장해 왔고, 심지어 이 주장이 그의 생존의 모양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128쪽)


이번에 다시 읽은 이 글 앞에서 나는 눈이 번쩍 뜨인다. 이제는 바로 나의 이야기가 된 것이 아닌가. 그 긴장력과 대결의식을 유지하여야만 나는 생존할 수 있다는 비장한 마음에 이르게 된다. 그건 내가 글을 쓴다거나 하는 일과는 별개인 생존의 문제이다. 바로 그 정신적 긴장력이 어머니가 나에게 준 유산이라는 걸 일깨워준다.

"남이 못하는 특별한 일에 사로잡힌 사람 앞에서 뉘라서 안 질리겠는가. 무엇에 사로잡혔는지 그도 아마 그 실체를 본 적은 없을 것이다. 아무도 운명의 얼굴을 본 적이 없듯이. 혹시 문학에 사로잡혔다면 정답이 될까. 문학은 환각이라고 그가 누차 말하지 않았던가. 환각 또한 얼굴 없기는 마찬가지다. 소설가가 현실을 보고 환상을 만든다면 그는 환상을 통해 현실을 이해하려는 것 같다." (<두부> 217쪽)

ⓒ프레시안(손문상)
벚꽃 흩날리던 4월 어느 날 관악 캠퍼스 자하연 연못가에서 스승과 엄마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던 장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10여 년 밖에 되지 않은 일이지만 현실 같지도 않고 마치 책 속에 들어간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한강이 바로 옆에 있어 오후면 으레 강가를 걷는다. 왕복 6킬로미터. 버릇이 되었다. 거르는 경우엔 탈이 나곤 했다. 이 한 시간 걷기에 머릿속은 은화(銀貨)처럼 밝아진다. 낮에 읽은 책이나 작품이 반추된다. 아, 그런 뜻이었구나, 혹은 쓰다 만 글의 제목이 섬광처럼 떠오르곤 한다. 발걸음이 빨라지는 것은 이미 오래다. 잊어버리기 전에 고치거나 첨가하기 위해서다. 주변 풍경이나 강의 흐름 따위가 안중에 거의 없었던 이유이다. 산책이란 그러니까 걷기이며 걷기란 그러니까 팔다리와 무관한 것. 정신의 갈데없는 집중이라고나 할까." (181쪽)

정신이 흐리멍텅해질 때 가끔 꺼내 보는 명장면(?)이다.
김윤식 선생님은 아직도 월평을 쓰고 계시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