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세기에 걸친 실행을 통해 하나의 교의를 형성하게 된 죽지 않는 자들의 공화국은 완벽한 인내와 거의 완벽에 가까운 냉소를 터득하게 되었다. 그들은 무한한 시간 속에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들의 과거나, 또는 미래의 덕행 때문에 모든 사람은 모든 선의 신봉자들이다. 그렇지만 역시 같은 이치로 모든 사람들은 과거와 미래의 악행 때문에 모든 악의 추종자들이다. (…) 아무도 아닌 사람은 어떤 사람이며, 단 한사람의 죽지 않는 인간은 모든 죽지 않는 인간들이다."
-'죽지 않는 사람들' 중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전집 <알렙>(황병하 옮김, 민음사 펴냄))
인간은 오랜 시간동안 죽음에 집착해왔다. 알려진 바로는 아직까지는 죽음을 피해 달아나는데 성공한 사람은 없다. 용맹한 전사, 노회한 정치가, 현자와 학자, 절대 권력을 가진 군주마저도 이 궁극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가능한 것은 '발상의 전환' 같은 소극적 대처였다. 우울함을 달래기 위해 거대하고 호화로운 무덤을 만들거나, 종교와 사후세계 같은 것을 발명해 내거나, 삶에 이러저러한 의미들을 부여하고, 기록하고, 후세에 전하는 것 같은 일들이 그것이었다. 결국 문명이란 죽음에 대항하는 인간 활동의 집합체이고, 내가 필멸자로서의 한계에 대해 고민하기보다는 당장 닥쳐올 마감을 지키기 위해 전전긍긍할 수 있게 된 것도 이와 같은 연유다.
하지만 불로불사의 환영은 문명세계에서도 끊임없는 유혹으로 존재해왔다. 일반적으로 사멸에 대한 공포를 관장하는 것은 종교의 영역에 속했고, 종교는 우리에게 '이게 결코 끝이 아니다'라는 말을 전하며 안도감과 위협을 동시에 주었다. 그러나 종교가 제공하는 사후세계 컨설팅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은 자꾸만 생겨났다. 이들은 영혼이 아니라 육신의 영원함을 꿈꿨고, 죽음을 완전히 이겨내기 위한 기상천외하고 위험천만한 모험들이 시작되었다. 연금술, 금단의 마법, 불사의 약을 찾기 위한 탐험,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접근… 대부분의 시도는 다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들은 후대의 과학 발전에 본의 아니게 이러저러한 유산들을 남겼고, 이제는 과학적이고 조직적인 대규모의 의료-건강-미용 산업들이 불로불사 유지를 이어받고 있다.
동안들의 나라
한국에서 동안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였다. 이전까지 동안은 사회생활에 있어서의 여러 가지 불편함을 뜻했다.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연령주의 탓에 어려보이는 사람은 비즈니스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불이익을 당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동안인 이들은 어떻게 하면 나이 들어 보일 것인가를 두고 고민에 빠지곤 했다. 어두운 톤의 정장, 단정한 헤어스타일, 차갑고 사무적인 태도 같은 것이 대표적인 해법이었고, 이런 태도를 유지하는 것에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런 고충들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사회는 갑자기 반대방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미숙함의 상징이었던 동안이 자기 자기관리와 아름다움의 척도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코엔자임 Q10이라는 정체불명의 물질을 첨가한 화장품과 식품을 시작으로, 콜라겐, 항산화물질, 피테라, 레티놀, 이러저러한 한방요법 등이 유행과 소멸을 반복했다.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독소인 보톨리늄 톡신을 희석해 만든 보톡스는 주름에 관한 획기적인 개선책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각광을 받았고, 성형수술은 얼굴은 물론이고 전신으로 확대되었다. 사람들은 헬스, 요가, 필라테스 심지어는 밸리댄스 학원의 문을 두드리며 젊음을 되찾기를 원했고, 더 직설적인 사람들은 비뇨기과와 산부인과에서 성기를 성형 받으며 20대와 같은 성적 모험을 꿈꿨다.
매년 수차례나 열리는 동안 선발대회에서는 자기 나이보다 30세는 젊어 보이는 노인과 20대처럼 보이는 40대의 주부가 각자의 젊음을 과시하며 장기자랑을 벌인다. 이제는 그 누구도 세월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조용히 뒷방 늙은이가 될 마음은 없어 보인다. 불사가 안 된다면 불로라도 거머쥐겠다는 다짐들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과열된 양상은 당연하게도 이상한 장면들을 연출해낸다. 스스로를 동안이라 지칭하며 뿌듯해 하는 초등학생들의 모습은 실소를 자아내지만, 과거 청춘이라고 일컬어졌던 나이의 사람들도 자꾸만 어려지는 기성세대와의 이상한 경쟁구도를 벗어나지는 못한다.
어모털리티
| ▲ <어모털리티>(캐서린 메이어 지음, 황덕창 옮김, 퍼플카우 펴냄). ⓒ퍼플카우 |
"나이에 대한 개념과 정의를 가장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따로 있다. 바로 나이를 잊고 사는 사람들의 수가 크게, 그리고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나이에 어울리는 것인지에 대해서 별로 의문을 갖지 않는다. 나이에 관계없이 언제나 꿈을 꾸고 계획을 세우며,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 가장 먼저 써보고 싶어 한다. 결혼하고, 이혼하고, 아이를 낳고, 배우고, 일하는 등 인생의 모든 선택이 나이와 상관없이 계속 열려있다고 생각하며, 또한 그렇게 행동한다. 이들이 바로 '어모털족(amortals)'이며, 이 책은 이 새로운 종족을 최초로 해부한다." (15쪽)
그러나 저자에 의하면 이는 어모털족이 단지 애처럼 굴고 싶어 하는 노인들을 뜻한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어모털족의 또 다른 정의는 "10대 후반부터 죽을 때까지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수준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거의 대체로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이 소비하는"(15쪽)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모종의 성장 장애를 겪은 이들인 걸까? 그러나 저자는 "우리가 예전처럼 나이를 먹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성장하지 못한다는 의미다"라는 논리가 지나치게 단순화되어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어모털족이 "강제로 성장을 금지하는" 것과는 다르며, 오히려 "시간 순서로 나이를 보는 사회적 관점에서 이탈한 집단"(77~78쪽)이라고 설명한다. 이어서 "'나이의 의미가 혼란스러운 시대'를 '나이를 잊고 사는 시대'로 전환"(86쪽)하는 일에 어모털리티와 어모털족이 촉매제가 될 수 있으리라고 말한다.
또 저자에 따르면 어모털리티는 "태도, 가치관, 행동을 통해 정의되는, 그리고 세대와 계급, 또는 지역에 제한을 받지 않는 사회적 유행병"이라고 할 수 있으며, "사회의 풍요가 낳은 부산물"(17쪽)이기도 하다. 가장 크게는 의학의 발전에 따른 평균수명의 대폭적인 연장과, 영양상태 및 위생관리의 향상으로 인한 노화 속도의 평균적 하락이 그 핵심이다.
"2050년까지 인류 가운데 5분의 1은 60세 또는 그 이상이 될 것이다. 이미 세계에서 가장 나이 많은 지역이 된 유럽에서는 60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37퍼센트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 일부 국가에서는 인구의 5분의 2가 70대 또는 그 이상일 것이다." (22~23쪽)
그러나 이 증가하는 고령 인구는 예전 같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이들은 은퇴해서 안락의자에 앉아있기에는 너무 건강하고, 아직도 수십 년의 세월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의학은 생명연장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신체기능들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치료기술, 장기를 손상시키지 않고도 암 및 각종 질병을 치료하는 기술, 그리고 무엇보다도 모발이식과 발기부전치료제(!!)로 인한 섹스 가능 연령의 급격한 증대. 어모털족은 끊이지 않는 자기관리로 신체적 능력을 유지하고, 의학의 도움을 받아 아이를 낳고, 젊은이들과 대등하게 경쟁하며 일하고, 이혼의 아픔과 새로운 사랑을 향한 열정을 반복해서 겪는다. 이들에게는 죽음이나 노화라는 개념이 없으며, 그것이 고개를 들더라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재빨리 고개를 돌려 회피하는 것에 정통해있다.
"어모털족들은 늙는다는 것을 예상하지 않으며, 자신이 일찍 늙을 것이라는 생각을 회피한다. 그러나 나이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 태도가 안고 있는 이면이 있다. 나이와 죽음을 극복하기 위한 어모털리티적 마인드가 갖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226쪽)
이들이 마지막 숨을 쥐어 짜낼 때까지 나이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명확하다. 그러나 노화와 죽음은 이들의 영원한 숙적이자 최후의 정복자이다. 의학이 죽음과 노화를 정복하겠노라고 호언장담하고 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다. 저자역시 "진실, 특히 어모털족들에게는 불편한 진실은 의심할 여지없이 의미 있는 수준으로 시간을 되돌리는 효과를 보여주는 제품, 프로그램, 협정서 또는 만병통치약은 없다는 것이다"(369쪽)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어모털족으로 살기 위해 값비싼 건강관리 프로그램에 가입하는 것 대신에 저자가 제안하는 삶의 방식은 놀랄 만큼 단순하고 간단한 것이다. 영양소에 균형 잡힌 식사를 잘 먹고, 꾸준히 운동을 하고, 나쁜 생활습관을 개선할 것. 만약 여기에 더해 여력이 있다면 어모털리티적 삶을 방해하는 정치와 시스템을 바꾸는데 참여할 것. 예를 들면 식생활을 망가뜨리는 거대 식품회사들의 만행 같은 것들 말이다.
연령주의의 역습과 고령화
결국 이 책이 주제로 삼고 있는 것은 발전된 자본주의 사회들에서 골칫거리로 떠오르고 있는 고령화의 문제다. 그리고 저자는 이 고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실마리로 보이는 것을 어모털리티와 어모털족에게서 발견했다. 요컨대 노화와 죽음이 피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의 상태와 사회적 의미는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에서 "연령주의"에 대한 비판을 수행하고자 한다. 연령주의란 특정한 연령대에 요구되는 특정한 역할을 강제하는 모종의 사회적 차별기제 전반을 일컫는다. 가령 다음과 같은 부분에서 저자는 연령주의의 문제를 잘 요약하고 있다.
"더 나아가 우리 모두, 특히 남자보다 여자가 나이에 저항해야 할 훨씬 더 확고부동한 이유가 있다. 허영심 때문이 아니라 순히 경제적 생존의 문제 때문에 그러하다. (…) 그러나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 그리고 그 고정관념 때문에 나이를 잊는 삶이 방해를 받는 현상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남아있다. 우리의 문화는 젊음을 신격화하고 똑같은 잣대로 나이를 우습게 여긴다. 우리의 경제 시스템은 50대나 60대를 넘어서도 계속 일을 하도록 만들고 있지만, 고용주들은 언제나 젊은 노동자들을 선호하며 나이든 지원자들을 차별한다." (79쪽)
많은 전통적 공동체들에서 나이란 모종의 권위를 부여하는 근거가 되어왔다. 기나긴 삶을 살아낸 노인들을 존경하고 부양하는 것은 공동체의 주요한 기능이자, 존립의 근거이기도 했다. 그들이 고된 노동으로부터 면제받는 것은 오히려 특권이었고,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젊은이들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그들의 지혜를 빌렸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에서는 노인들의 지혜를 대체할 수많은 것들이 존재하고, 그들의 육체를 대체할 수 있는 수많은 젊은 육체들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은퇴와 연금(혹은 퇴직금)으로 대표되는 옛 공동체의 흔적이 남아 그들의 삶을 지탱해왔으나, 한 세기 정도를 위태롭게 버텨오던 이 제도는 부양을 받아야할 노인의 증가와 재원을 충당할 젊은층의 축소로 인해 큰 위기를 맞고 있다.
항구적이라고 해도 좋을 법한 경제위기의 시대에서 노인이 된다는 것은 동시에 빈곤층으로 돌입할 가능성이 급증한다는 것이다. 그 극단적인 예를 보여주는 것이 다름 아닌 한국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의 노인자살률(인구 10만명 당 81.1명)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노인의 빈곤률은 2010년을 기준으로 45.1퍼센트에 달한다. 거의 두 명 중의 한명의 노인이 빈곤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중의 상당수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겪고 있는 일을 "연령주의"의 문제로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물론 고령자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고 이들이 취업을 비롯한 사회생활을 유지하는 것에 장애물이 없다면 삶이 좀 더 수월해 질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함께 치솟고 있는 20대 실업자와 비경제활동인구의 행렬은 사태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어모털리티와 자본주의
"2010년 7월 뉴키공항 VIP 라운지에 앉아서, 캐머런(*현 영국 총리, 보수당)은 정년을 없애는 새로운 법률이 젊은 구직자들에게 불이익이 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했다. "(이런 잘된 인식은) 몇몇 나라들로 하여금 주 35시간 노동이나 의무적인 일자리 공유를 하도록 만듭니다. '어떻게 경제를 더욱 키울 것인가, 어떻게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 것인가?'라는 역동적인 방식으로 생각을 해야 합니다."(253쪽)
고령화 문제에서 영국 정부와 저자가 찾아낸 해법은 노년층을 다시 활성화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그들이 다시 일해서 스스로를 부양할 수 있게 된다면 붕괴 직전까지 몰린 노인 복지 예산을 삭감하거나 축소한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다만 영국의 총리에게는 해결해야하는 모순이 있다. 즉 "경제에서는 어느 정도 고정된 수의 일자리가 있으며 이를 어떻게 분할할 것인가를 풀어야 합니다"(253쪽)라는 자신의 말과 고령화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법간의 타협점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사실 저자 역시 이 두개의 모순 사이에서 별다른 해법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저자가 간과하고 있는 지점은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노동을 얼마나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있는가이다.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들의 무리는 자본이 가장 피하고 싶은 악몽 같은 존재이다. 자본이 원하는 것은 값싸고, 통제하기 쉽고, 보장이나 권리 같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 노동력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많은 생산 노동들이 본국의 드세고 비싼 노동자들을 떠나 아시아와 아프리카 같은 곳으로 이주를 감행했고, 그들을 관리하기 위해 존재하는 본국의 사무노동들 역시 IT와 네트워크 기술의 발전에 의하여 점점 더 적은 인력만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마저도 날이 갈수록 아웃소싱과 비정규직으로 채워진다. 어제까지 함께 일하던 동료가 다음날 유령처럼 비정규직으로 돌아오는 광경을 우리는 심심찮게 목격해왔다.
창의적인 돌파구를 떠올려 보려 한들 상황은 마찬가지로 녹녹치 않다. 마크 주커버그와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를 제외한 대부분의 IT 기술자들은 과로와 박봉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며 신경쇠약에 걸려가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몰려드는 지원자들을 1회용 건전지처럼 갈아치우며 그 눈부신 빛들을 유지한다. 창업은 우주여행부터 동네 슈퍼마켓의 초코바까지 팔아치우는 거대 기업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한 해를 넘기기 어렵다. 세계의 대부분의 것들은 아주 소수의 사람들에게로 점점 쏠려가고, 강고한 소유의 질서 속에서 그들은 날개라도 달린 것 마냥 자유롭다. 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점점 땅속으로 나무처럼 처박히고 있으며, 얼마 남아있지 않는 양분을 얻기 위해 빽빽하게 심어진 다른 나무들과 아귀다툼을 벌여야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모털리티의 확산을 해법으로 내놓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저자가 "만약 말에서 떨어졌다면 다시 올라타라. 일주일 동안 나쁜 음식을 많이 섭취하거나, 과식 또는 과음을 했거나, 싸구려 담배를 피웠거나, TV 앞에서 빈둥거렸다면 다시 말에 올라타라"(379~389쪽)고 채찍질을 하는 것은 우리들이지 대기업은 아니다. 그가 어모털족의 특징중 하나를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의식을 거부하거나 지워버리는 것"(182쪽) 이라고 정의할 때 우리는 모든 것을 온전히 개인의 책임으로, 개인의 태도와, 자기관리와, 능력과, 사실상 대부분을 차지하는 운 같은 것으로 돌리고자하는 어떤 고고한 흐름을 또다시 마주한다. 메릴 스트립도, 우디 앨런도, 휴 헤프너도 아닌 그리고 믹 재거처럼 움직일 수도 없는 우리는, 단지 그들과 비슷한 나이를 먹고 살아있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저자는 죽음과 노화를 회피하듯 재빨리 고개를 돌리라고 조언할지도 모르지만, 아쉽게도 죽음과 노화 그리고 빈곤은 우리에게 너무 가깝게 붙어있다.
우리는 나이를 어디로 먹는가?
우리는 어쨌거나 예전보다 오래 살 것이고, 지금과 같은 나이 체계 붕괴를 피할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사람들의 시간은 조각나있고, 우리는 종종 영화 <메멘토>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10분 전의 나에 대해서도 기억할 수 없게 된다.
저자는 나름 하나의 대안을 제시해보려고 했으나, 요즘에는 나이를 먹는 것도 나이를 잊는 것도 결코 평등하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다소 무시한 감이 있다. 당신이 저자가 희망하듯 "더 잘 먹고, 모두에게 필라테스를 가르칠 것이므로 몸의 유연성이 더 좋을 것"(386쪽)인 세상의 일원이 될 수 있다면 당신에게 1년은 0.5년 정도의 세월만을 더할 것이지만, 나쁜 환경에서의 고된 노동, 실업과 빈곤의 고통, 성차별적인 나이 체계 속에서 1년을 보낸다면 그것은 3년 정도의 시간을 당신의 몸과 마음에 얹어놓고 갈 것이다. 형편이 좋은 사람들이 바쁜 비즈니스, 자기관리, 연애, 취미생활 같은 것에 몰두하느라 나이를 잊는다면, 당장 내일을 알 수 않는 불안정한 미래를 해매는 사람들 역시 나이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러나 이들이 나이를 떠올릴 틈이 없이 살아남는 것에 몰두한다고 해서, 이들을 어모털족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가령 책의 가장 앞 페이지에 적혀있었던 어모털족 자가진단 테스트에서 나는 "진정한 어모털족"이자, "극한의 어모털족"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다만 "친구의 새로운 애인이 친구보다 25살이나 어리다면 당신의 반응은?"(5쪽) 이라는 문항에서 5살과 30살이 연애하는 것이 법적이거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을까라는 고민을 해야 했지만 말이다. 물론 나는 아직 노화와 죽음보다는 이런 삶이 수십 년 넘게 더 지속될 것이라는 사실에 좀 더 몸서리를 친다는 점에서, 필라테스 덕에 유연해진 어모털족의 범주에는 못 들어가는 것 같다.
책의 결론이 주장하는 바들은 새겨들을 가치가 있다. 잘 먹고, 운동을 하고, 나쁜 생활 습관을 고쳐라. 다만 그 이야기를 듣기위해 400쪽짜리 책을 읽기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좀 그렇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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