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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의 바리케이드, 한국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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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레 미제라블>의 바리케이드, 한국에도 있었다!

[프레시안 books] 스테판 욘손의 <대중의 역사>

1.
소외와 억압의 역사는 유구하지만, 민주주의의 역사는 계란 껍데기처럼 얇다. 당장의 현실에서도 재벌·검찰·학벌 동맹·조중동·대형 교회 따위의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연맹체가 철옹성보다도 단단히 민주주의와 민중을 포위하여 옥죄고 있다.

이 같은 한국의 현실은 학문과 지적 풍토에도 반영된다. 누가 3.1운동과 4.19와 5.18, 그리고 6월 항쟁과 1991년 5월을 그렸는가? 그리하여 한반도의 '대중'과 그 주권 의지의 역사를 쓰고 기렸는가?

물론 없지는 않다. 소설가 박태순이 4.19와 6월 항쟁의 민중을 그렸고, 5.18은 상대적으로 많은 표상을 갖고 있다. 조세희나 최병수, 노순택 같은 예술가들은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그리고 찍으려 했다. 이진경과 조정환은 '촛불'의 대중에 기대어 대중론을 이론화하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국문학자 이혜령은 염상섭의 소설들에 가시화된 식민지 군중의 모습을 살려낸 바 있고, 역사학자 허수는 '민중' 개념의 역사를 통해 민중의 상에 접근했다. 노동사학자 김원과 유경순은 1970~80년대 노동자와 기층민중의 삶과 목소리를 복원하여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그러나 태부족이다. 이를테면 3.1운동과 1991년 5월 투쟁의 민은 아직 예술적 형상을 갖지 못했다. 삶과 민주주의의 진리를 표현하는 예술은 물론, '노동'이나 대중정치·민중문화 등에 대한 연구도 여전히 일천하다. '분배'는 이 영역에서도 매우 불평등한 것이다. 이를테면 권력에 협력한 지식인의 사상(?)이나 지배의 기제를 섬세히 읽어주려는 연구는 허다하지만, 다수 민중의 사상과 삶의 역사를 보려는 노력은 아주 부족하다. 믿기지 않을지 모르지만, 한국에서 읽을 만한 민중사나 대중 문화사는 아직 단 한 권도 쓰이지 않았다.

귀스타브 르 봉이나 오르테가 이 가세트 같은 20세기 초의 유럽인이 쓴 아주 오래된 우익적 대중론이 '고전' 대접을 받으며 자의식 없이 인용되는 이유도 이런 데 있겠다. 이런 형편에서, 듣도 보도 못했던(그러나 구미 학계에서는 꽤 알려진 듯한) 스웨덴의 스테판 욘손(Stefan Jonsson)이라는 학자가 쓴 <대중의 역사 : 세 번의 혁명 1789, 1889, 1989>가 번역·출간된 일은 한편 반갑고, 다른 한편 우리 현실을 씁쓸히 돌아볼 수밖에 없게 만든다.

2.
▲ <대중의 역사 : 세 번의 혁명 1789, 1889, 1989>(스테판 욘손 지음, 양진비 옮김, 그린비 펴냄). ⓒ그린비
노동조합 운동과 진보정당 운동이 동시에 참담한 위기에 빠지고, (대의제) 민주주의가 망가질 대로 망가진 때에, 이 책은 우리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통찰'을 다시 환기하고 요청한다.

그것은 무엇보다 민주주의와 주권의 본질에 대한 것이다. <대중의 역사>가 주된 서술 대상으로 삼은 유럽사의 결정적인 계기점들, 즉 프랑스 대혁명, 파리 코뮌 그리고 1989년의 벨벳 혁명 등에서 민중은 민주주의의 내용과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대중의 역사=민주주의의 역사'이며 '대중의 역사=주권 투쟁·혁명의 역사'라는 것이 책의 주제이다. 데모스(demos)가 곧 데모크라시이다. (책에서 '대중', '인민'은 안토니오 네그리의 소론을 말할 때 외에는 혼용되는 듯하다. 이 글에서도 '대중, 인민, 민중'을 문맥에 따라 혼용했다.)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런데 우리는 곧잘 잊는다.

궁극적으로 민주주의는 3권 분립이나 정당제 같은 기능이나 법적 제도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인민의 행위와 권력의지 그 자체이다. 이런 견지에서 민주주의는 관찰되고 언급되고, 또 상상되어야 한다. 이것이 흔히 '민주화'로 요약되는 '사회 운동의 87년 체제'를 강제종료 당하며, 박근혜 시대를 맞게 된 우리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통찰=시선의 각도와 윤리'라 생각한다. 조금 더 부연해보자.

3.
대의제 민주주의는 언제나 속이 빈, 따라서 실천과 논쟁으로 내용을 계속 바꾸고 채워나가야 할 근원적 불완전성이다. 다시 말해 '대의'한다는 것 자체에, 대중과 민주주의 사이의 근원적 상동성과 무한 모순이 담겨 있다. 우리는 현존하는 대의제를 끝없이 비판하고 공격하고, 대의제 밖에서 싸움판과 난장을 벌여야한다. 그래서 인민의 의지가 보다 더 잘 '대표'되도록 해야 하며, 또 다른 싸움판과 난장을 법과 의회 밖에서 벌여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숙명이다. 이 같은 <대중의 역사>의 주지가 다음과 같은 대목에 압축돼 있다.

그것의 가장 순수한 형태에서 민주주의는 모순과 부정으로서만, 인민을 대표하는 사람들에 저항하는 인민의 능력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라고 랑시에르는 주장한다. 민주주의는 인민이 사회의 국면을 바로잡기 위해 행동할 때 거부하고 권위를 무효화하는 보편적인 권리이며, 상황에 따라서 이 권리는 선거, 폭동, 파업 또는 혁명들을 통해 행사된다.
일어나 저항하는 사람들이 공식적인 인민의 대표자들보다 더 엄밀하게 민의를 대표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것은 알 수 없다고 랑시에르는 말한다. 우리는 대리인들의 무한한 순환에 걸려드는데 그들 각각은 자신이 인민의 진정한 목소리라고 주장한다. 엄밀히 말해 인민의 목소리(vox populi)는 존재하지 않는다. (…)

우리는 이러한 대리인들, 즉 틀 안의 틀의, 또 그 틀 안의 틀들의 순환에 갇혀 있고 결국 그것 자체는 여전히 감춰져 있다. 인민의 땅은 이러한 대리인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인민이 정치적·미학적·과학적 대표를 필요로 하지 않고 스스로의 존재로 만족하는 곳에서 발견된다. 위고는 <레 미제라블>에서 이 땅의 경계에 곧장 다다랐지만 그의 길은 생앙투안의 외곽에 있는 거대한 바리케이드에 의해 차단된다. 또한 그가 그곳에서 본 것은 "이성을 넘어선" 것이었다. 바리케이드에서, 위고는 명령하는 외침, 전투 노래, 둥둥 울리는 북소리, 여성들의 흐느낌, 그리고 귀에 거슬리는 굶주린 사람들의 음흉한 웃음소리를 들었다. 이 모든 것들은 "신의 목소리로 충만했다." 200년 동안 인민은 무소부재한 신, 궁극적으로 다른 모든 구조들을 지배하는 구조이며 오직 그것의 영향들을 통해서만 존재하는 신으로서 묘사되어 왔다. (278~279쪽)


민주주의 사회에서 인민 외에 다른 신은 없으며, 인민의 목소리와 힘은 부재하는 현존이다. 거리에 바리케이드가 설치될 때 신은 그 구체적인, 숭고하며 위대하고, 복잡하고 더럽고, 시끄럽고 비탄에 찬 모습을 지상에 완전히 드러낸다. 그러나 가난한 신은 언제나 지상에 있다.

물론 이러한 논의는 한국 정치의 복잡한 현실과 그를 둘러싼 논쟁들을 즉각 떠올리게 한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한꺼번에 망해버린 진보 정당들과 지난 대통령 선거의 과정. 그리고 촛불·나꼼수·안철수 현상 등과 여기에 나타난 2000년대 한국 대중의 존재 방식.

특히 일련의 논쟁을 상기할 때, 한국의 진보 운동과 지식인 사회는 상당히 우경화돼 있는 듯하다. 이는 단지 의회주의에 함몰된 '진보' 정치인들이나 제도정치 만능론의 경향에만 관찰되는 현상은 아니다. 대중과 집합 행동에 대한 혐오는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한국 정치 문화의 일부이다. 거기에는 물론 구좌파나 주사파의 변하지 않는 고루함도 한몫 거든다. 그리하여 대중 혐오와 (아래로부터)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는 마치 좌파나 지식인의 올바른 자세인 양 간주되기도 한다.

제도 정치 만능론자와 고상한 지식인들은 인민 주권과 정치의 궁극이 법·제도와 이성 너머에 있거나 그것과 적대할 수 있음을 잊는다. 그들은 정당과 선거야말로 인민의 주권 의지를 봉쇄하는 가장 효과적인 장치이기도 하다는 것도 망각한다. 아니 잊는다기보다는 '정치'의 차원을 혼동하여 인민이 하는 일과 대표자가 할 일을 뒤섞는다. 또는 궁극적으로는 인민의 제헌적 주권과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혐오하고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한국에서 '포퓰리즘'이나 파시즘 담론은 기실 이제는 저 먼 과거의 것으로 추방돼버린 민중주의와 대중적 저항을 비난하고 저지하는 데에 사용된다. 그것은 좌·우파의 공유물이다. 대중 '현상'이나 집합 행동은 개입해야 할 판 그 자체인데, 그들은 언제나 그 속의 비이성과 광기를 적발했다며 호들갑을 떤다. 그 적발과 호들갑은 물론 쁘띠적인 '구별 짓기'의 일환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민족주의나 집단주의 또는 초합리성, 심지어 초월적 정동이 끼지 않는 대중 현상이나 혁명이 존재할까? 그들이 사유하는 건 실험실의 흰쥐처럼 약품처리 된, 관념 속에 존재하는 '순수한' 민중일 것이다.

4.
<대중의 역사>는 정치학이나 역사학에 귀속될 촘촘한 '학술서'나 논문 뭉치는 아니다. 하지만 책의 통찰과 방법론은 설득력 있고 자극적인 것이다. 책의 기본 졸가리는 인민의 제헌적 주권과 혁명을 상상하거나 재현한 자크 루이 다비드, 제임스 엔소르, 알프레도 자르 같은 세 미술가들의 작품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비롯된다. 즉 이 예술가들은 회화라는 가시성의 영역 안에 '신'을 강림하게 해두었다.

그런데 이 작품들이 포착한 것은 단지 유럽사의 세 계기만은 아니다. 작품들이 표상하는 사건과 시간은 곧 세계적인 차원의 민주주의의 역사적 전환이다. 또한 흥미롭게도 그것은 예술사적으로 각각 초기 근대, 모더니즘 단계, 후기 근대에 해당되는 것이다.

▲ 프랑스 대혁명과 <레 미제라블>의 시대를 표상하는 그림으로 저자가 꼽은 자크 루이 다비드의 '테니스 코트의 서약'(1791). ⓒNorstedts Agency

▲ 벨기에 화가 제임스 엔소르의 '1889년 브뤼셀에 입성하는 그리스도'(1888). 이 그림에서는 "탈 중심적이고 이질적이지만 경계를 넘어 하나의 공동체로 혁명을 즐기는 대중의 모습이"(출판사의 소개 중에서) 해방자 그리스도와 함께 그려져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그림은 일어나지도 않은 상상의 민중 혁명을 그린 것이라는 점이다. ⓒNorstedts Agency

▲ 1989년 동구의 벨벳 혁명과 68 운동의 흔적을 형상화한 칠레 출신 알프레도 자르의 설치 미술 '그들은 너무 사랑했다, 혁명을'. ⓒNorstedts Agency

저와 같은 도상과 재현에 나타난 인민과 혁명의 형상을 우선 분석한 후, 책은 당대의 정치 정황과 함께 철학자·문학자들의 담론을 경쾌하게 섭렵한다. 이를테면 빅토르 위고에서 르봉과 랭보, 또한 한나 아렌트를 거쳐 아감벤과 랑시에르까지 죽죽 나아간다. 그 분석과 섭렵이 요령을 갖추고 있어서 잘 읽힌다.

이를 통해 도달한 결론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200여년 유럽 민주주의사에서 대중과 혁명의 존재 양상에는, 잊지 말아야 할 연속성과 불연속성이 있다는 것.

우리가 다비드, 엔소르, 자르에게서 배우는 것은 민주주의가 그것의 유토피아 없이는 해낼 수가 없다는 점이다. 바로 모두에 의한, 그리고 모두의 이익을 위한 지배라는 발상이다. 권력이 위로부터가 아닌 아래로부터 행사되는 사회이다. 이 급진적인 민주주의 개념이 과거의 혁명들에 영감을 주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계속해서 오늘날에도 반란의 움직임들을 이끌고 인민 주권의 원칙에 새로운 의미와 새로운 추진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사회의 중심에서는 드물지만 사회의 어떤 구석이나 주변부에서도 나타날 것이다. 언제 어디서 그것이 출현하든 그것은 자유민주주의의 어휘로는 해석되기 어려운 언어와 요구들로 나타난다. 민주주의가 완전히 사라지거나 더 압제적인 정부 형태에 의해 뿌리 뽑힌 것으로 보일 정도로 민주주의가 정치 권력을 건드리지 못하는 긴 시기도 존재한다. (292쪽)

급진적 민주주의는 언제나 유토피아에 대한 꿈과 결부된다. 그것은 언제나 민중들의 뒷골목에 잠재해 있다. 그러나 아래로부터의 권력 의지의 드러남과 잠재는, 민과 권력의 상호작용의 특수한 결과이다. 아주 오래 걸릴 수도 있고, 내일이 '그날'일 수도 있다.

5.
민의 일어섬이 아주 오래 걸릴 것 같은 우리 이야기로 돌아가자. 한국 '대중의 역사'는 어디까지 어떻게 흘러왔는가? 그리고 어디에 민중의 의지가 있는가? 우리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 하나가 있다.

촛불 집회가 절정에서 불타오르던 2008년 6월 10일. 이명박과 그 졸개들은 아침부터 명박산성을 지어놓고 말뜻 그대로 쥐새끼들처럼 웅크려 눈치를 보고 있었다. 본 집회는 저녁이었지만 '촛불 시민들'도 오전부터 대거 거리에 나왔다. 명박산성을 한껏 조롱하고 즐겁게 기념 촬영도 했다. 그날 하루 종일 실로 다양한 세대와 계층의 대열과 모임이 광화문과 시청 일대에 펼쳐졌다. 저녁이 되자 광화문과 시청 앞 거리에는 약 50만의 군중이 운집했다. 공연과 볼거리도 넘쳐났다.

▲ 6월 항쟁 21주년이 되는 2008년 6월 10일, 광화문 일대에서 펼쳐진 촛불 집회의 모습. ⓒ노순택

그런데 밤이 깊어지는 어느 순간, 누군가들이 공사장에서 가져온 스티로폼 따위를 명박산성 앞에 쌓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바리케이드가 생긴 셈이다. 이제 마음만 먹으면 명박산성을 넘어 그 뒤에 웅크린 공권력과 대결할 수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산성을 넘을지,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는 아무도 몰랐다. 단지 분명한 것은 두 가지. 첫째, 경찰과의 대규모 충돌과 '폭력 사태'가 불가피해질 것이라는 점. 둘째, 그로써 '평화롭고' '문화적인' 촛불 시위와 그것이 야기한 정국이 결정적으로 표변할 수 있다는 점.

촛불 군중들은 바리케이드를 넘어 나아가는 대신 그 자리에 앉아, '넘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갖고 무려 네 시간 이상 논쟁했다. 그러느라 힘을 다 썼고 많은 이들은 집으로 갔다. 그래도 수만의 대중이 지켜본 논쟁은 인터넷에 생중계되기도 했다. '집에 앉아 봉기한' 컴퓨터 앞의 다중들도 키보드로 논전을 벌였다.

▲ '민족 주권'(이순신 장군)과 '비폭력', '비정치'를 강조한 6.10 촛불 집회 포스터.
2008년 6월 10일,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무려 50여만이 거리에 나섰지만 말이다. 이명박 정권은 (내상은 입었을지언정) 털끝하나 다치지 않았고 쇠고기 수입도 강행됐다. 명박산성 앞의 군중은 법과 이성의 바리케이드를 넘어 전진하는 민중이 아니었다. 주권 의지보다는 법과 '비폭력'의 힘이 더 셌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은 그랬다. '숨은 신'은 아직 모습을 드러낼 때가 아니라 판단한 것이겠다. 촛불 시민은 분명 새로운 대중 지성이자 후기 근대의 발랄한 '주체'였으나, 아무것도 못했다.

그리하여 우리가 6월 10일의 바리케이드 앞에서 확인한 것은 고전적 의미의 '혁명'의 가능성과 동시에 불가능성이었다. 이 긴 하루의 과정은 한국 대중의 존재성 변화와 민주주의의 (과)성숙을 보여준 일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요컨대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단순명쾌한 제헌적 진리가 반복해서 외쳐진 2008년의 촛불은 새로운 주체성의 탄생과 함께, 그 불완전성도 명쾌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제 어디에 대중이 있는가? '나꼼수'와 '안철수 현상'의 주체들, 그리고 SNS나 포털의 뉴스 페이지에 모여 있는 그들도 그렇다. 그들이 오늘날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의 유사-주체일 것이나, 신이 강림하는 순간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오늘날 대중의 무기처럼 간주되는 것은 두 가지밖에 없다. 즉 선거와 인터넷(SNS). 이들이 일으키는 작용에 언제나 섬세하게 대처하되, 이 장치들이 언제나 가장 강고한 인민의 족쇄라는 점도 항상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따라서 '51.6 대 48'은 통계적 환각에 불과하다. 그런 퍼센트 앞의 숫자나 '야권 연대' 따위의 기표는 당분간 완전히 잊어야 한다. 우리는 너무 깊이 기능주의적 민주주의론과 정치 공학에 길들어가고 있다.

노동자와 노조 운동은 어떤가. 그들은 너무나 고립되고 너무나 억압되고 약화돼 있다. 이제 그들이 '대자적' 주체가 되는 것은 고전적 교과서에서나 가능한 일 아닌가. 그러나 다른 주체를 상정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희망 버스 운동을 다시 한 번 상기해본다. 그것은 촛불 등에 비하면 아주 작은 '현상'에 불과했으나, 새로운 노동자-시민-다중의 연합에 의지한 성공이었다. 물론 그 운동은 보다 큰 규모로 계승되거나 주체성의 새 지평 자체로는 기입되지 못하고 있지만, 상당히 중요한 힌트임에 분명하다.

과연 의회주의의 부족이나 운동 정치의 과잉이 진보 정당을 망하게 했을까?

정말 많은 것이 새로 필요하다. 의회에 민의 대표를 보낼 새로운 정당과 참신한 정치가도 필요하고, 동시에 '법'과 선거 제도 밖에서 인민 주권을 상상하고 궁극적인 민주주의를 위한 '아래로부터의' 힘과 상상력을 응축하는 일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투트랙(two track)이다. 그러나 후자가 궁극이라는 점을 '대중의 역사=민주주의 역사'가 다시 말해준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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