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앞 카페에서 지인들이 모여 앉아 예처럼 조곤대고 있을 때, 살짝 취한 그가 말한다. "내 창 한번 부르고 싶소!" 모두들 좀 뜨악한 표정이지만 홍대 앞이 '나와바리'인 나는 어울리지 않게 행동 대장처럼 나선다. 카페 주인과 다른 테이블 손님에게 허락을 구하러 다닌다. 다행히도 그가 취해 있을 땐 다른 손님들 역시도 대략 취하기 좋은 늦은 밤이다. 어렵사리 카페 음악은 꺼지고, 잠시 후 그가 창을 뽑는다. 우리 모두 숙연하게 듣는다. 경상도 억양이 창에도 섞여 있다. 영 낯설기는 해도 시냇물의 색다른 음에 도취하기도 한다. 그날 밤 그는 귀가 택시 안에서 마저 부르지 못한 창을 한 곡 더했고, 기사로부터 "조선의 명창이오!"라는 칭송도 받았다 하니, 독특한 취향의 취객을 싣고 달렸던 기사는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했던고, 나는 그게 궁금하다. 왜냐하면 솔직히 말해서 그의 창은 열정에 비해 소박한 수준이었기에. 그래서 더욱 사랑스럽기 하지만.
그가 <신은 망했다>(민음사 펴냄)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하고, 또 파격적으로 은행원에서 편집자로 직업을 바꾼 직후인 1992년엔가 우리는 처음 만났다. 당시 시인들의 딜레당트하고 병약하고 시니컬한 풍모와는 전혀 다른 그 온화한 모습이 내 눈에는 돋보였다. 후덕하기까지 한 풍모 안에 날카로운 관찰력과 집요함이 있는 것이야 당연히 시집을 통해 알아보았지만, 그의 첫 산문집 <인왕산 일기>(궁리 펴냄, 2011)를 읽고서는 허리를 곧추세우고 그와 만난 시간들을 되새겼다. 무엇을 들켰을까. 어떻게 읽혔을까. 모든 사물과 시간들에 대한 그의 갈무리는 남다른 데가 있었다. 어느 지면에선가 나는 <인왕산 일기> 독후감에 쓰기를, 개인적인 나날의 기록을 이렇게 책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것, 그 은밀하고 수줍은 욕망이 의외라고 했었다. 그저 좋은 사람, 흐르는 시냇물 같은 시인 이갑수의 기록에 대한 욕망이 다소 당혹스러웠던 것이다.
| ▲ <오십의 발견>(이갑수 지음, 민음사 펴냄). ⓒ민음사 |
그는 지금은 사라진 '식물학과' 출신으로 인문학적 교양에 버무려진 이과적인 것, 천문에 대한 해박한 지식도 남다르고 우리 옛 문화에 대한 몰입과 관심도 깊다. 이 모든 앎과 삶이 아주 단순한 문장들 속에서 깊이 있게 드러나 있다. 가령 이런 문장들. "꼼짝, 못했다." "아뿔싸. 없었다""서울 날씨는 어이쿠, 추웠다." 단문 속에 삶의 안타까움과 감상이 부족함 없이 표현된 58편의 산문들에 나는 매료되었다.
'달과 함께'라는 제목의 산문에는 어느 날 보름달을 보고 지인들에게 보낸 문자가 휘영청하게 밝혀 있다. "달이 기똥찹니다. 하여튼 지금 있는 자리에서 고갤 들어 하늘의 충분히 멀리 있는 달을 보세요. 지금 안 보면 틀림없이 억울할 거외다, 궁리" 그때 나도 받았던 그 문자에 대한 지인의 답이 여럿 실려 있는데, '홍익대 앞'에선 달이 보이지 않노라며, 이제 내가 눈먼 사람인가 보다, 라고 엄살 부린 문자는 실제 내가 보낸 그것이다. 보름달을 보면 지인에게 문자를 보내고야 마는 문학적 성정의 그가 이 글을 맺는 방식은 이렇다. 다음 날 도착한 필라델피아 친구 문자를 전하면서, "달은 충분히 먼 곳에 있으매 지상의 누구에게나 곧바로 꽂힌 모양이다." 달과 사람 사이의 '아름다운 거리'에 대한 명상을 이렇게 실감나게 그린 산문이란. 어이쿠, 감동이었다.
그의 집, 사무실 풍경과 가족, 이웃의 사람 얘기가 담긴 일상은 산문집 뒤로 가면서 죽음의 문제까지, 추상적인 삶의 가치와 고민까지 끌어안고 내달린다.
"산다는 것은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는 일. 어느 날 그 업의 꼬리가 발등을 때리고 나도 과보를 받아야 하는 날이 분명히 온다. 그게 나의 끝이라고 생각하니 살아 있는 나날도 다 끝들의 집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끝이 그것으로 끝이라면 그곳은 시작도 없는 곳일 테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에서의 지루함과 고단함을 어찌 다 견딜 것인가. 그래서 그 끝을, 아니 그 시작을 믿기로 한 것이다."
시작을 믿든 안 믿든 우리는 모두 언젠가 사라진다. 그는 사라지는 순간을 떠올리면서, 어린 시절 임종을 지켜보았던 애틋한 기억의 외할머니 무덤에 대해 이렇게도 말한다.
"그때 문득 무덤이 단추 같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단추가 아니라 털이 부풀부풀한 누런 겨울 스웨터의 단추 같았다. 그런 생각으로 단추와 그 주위를 계속 보았다. 그러자 낙엽이 수북하고 누렇게 시든 풀들로 뒤덮인 넙데데한 산자락이 외할머니가 누워 계시는 땅속으로 가는 길이 열릴 것도 같았다."
시인들의 시선집에서 망일이 기록된 약력의 시인의 시를 읽다가 그는 또 가만히 말한다.
"호롱불 끄듯 시집을 덮으면서 알았다. 언제 어디에서든 삶보다는 죽음의 면적이 항상 더 넓다는 것을. 이제 생의 중력도 아주 가파르게 휘어졌음을, 또한 덤으로 알았다. 아직 팽팽한 중력이 작용하는 나의 생도 이승의 바닥에 바짝 달라붙어 기어가고 있다는 것을. 바로 내 무덤을 향하여."
오십 넘어 자신의 무덤 하나 그리며 살아가는 그와 또래인 우리는 그래서 오늘이 더욱 절실하다. 오늘 나눠 마신 물 한잔이 새삼스러울 때도 있는 것이다. 요즘 그의 주요 생활인 꽃 산행의 단면은 "같은 나무에서도 피어났어도 꽃들의 운명은 다 다르다. 모두들 혼자서 피고 홀로 진다"는 명제의 발견으로 빛난다. 무리 짓지 않고 의연하게 피었다가 지는 '홀로움'에 대한 옹호, 만나면 조곤조곤 시냇물처럼 소리 내는 그처럼 이 산문집은 삶의 서러움과 누추함을 대단하게, 그리고 그 절박함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시인이란 자못 사소한 일을 대단하게, 대단한 일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직업이렷다. 그와 우리들은 앞으로 얼마나 더 시냇물 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인가.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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