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레시안 books' 138호는 '아까운 책' 특집호로 꾸몄습니다. 지난해 가치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고 우리 곁을 스쳐가 버린 숨은 명저를 발굴해 소개합니다. 다양한 분야 열두 명의 필자가 심사숙고 끝에 고른 책은 무엇일까요? 여러분도 함께 '나만의 아까운 책'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이 작업은 출판사 부키와 공동으로 진행했습니다. 여기 공개되는 원고를 포함해 총 47편의 서평이 실리는 단행본 <아까운 책 2013>이 오는 5월 초 부키에서 발간됩니다. <편집자> |
"영하 50도의 혹한에서 얼어 죽는 사람이나 영상 50도의 혹서에 말라 죽는 사람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면 후자를 택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앞의 것은 잭 런던이 백년도 더 전에 이미 썼다. 더할 나위 없이 생생하고, 무정하리만치 담담하게"라고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잭 런던의 <불을 지피다>(이한중 옮김, 한겨레출판 펴냄)를 소개하면서 쓰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은 분명 행운이다. 잭 런던이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 자체가 내 인생에 놀라운 활력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의 글을 읽는 것은, 풍요와 나태의 시대에 굶주림이 가득하고 절망이 자욱한 대자연과 대도시로 모험을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설원에서 동상에 걸린 채 늑대와 싸우거나, 사각의 링에서 콧김을 뿜으며 펀치를 날리거나…
만약 잭 런던에게 '왜 쓰는가?'라고 묻는다면 그는 '생은 야만스러운 전투이며 승리는 정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고 말할 것이다. 그만큼 잭 런던은 그 자신의 인생에서 자연과 삶의 냉혹함을 겪었고, 그걸 살아 있는 문장으로 옮겨내는데 탁월했다.
이 책에는 '스테이크 한 장'과 '불을 지피다'를 비롯한 11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그리고 각각의 단편은 최후의 결전에 내몰린 인간들의 처절한 사투와 그에 맞게 벼려진 동물적인 감각이 생물학자나 해부학자의 눈으로 그려진다. 당연히 그가 쓴 문장에는 관념이나 계몽이 끼어들 틈이 없다. 접속사나 형용사를 배제한 채 오로지 주어와 동사만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하드보일드한 단문이, 마치 겨울 아침에 맞는 우박처럼, 마비된 생의 감각을 일깨우듯 매혹적이다. 작가가 쓰는 첫 문장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나로서는 내친 김에 이 책에 실린 그의 단편들의 몇몇 첫 문장을 옮겨보았다.
늙은 권투 선수가 혈기 왕성한 젊은 선수와 사투를 벌이는 '스테이크 한 장'은 "톰 킹은 마지막 빵 한 조각으로 밀가루가 더 많이 든 고기즙 수프를 말끔히 훔쳐내 천천히 명상하듯 씹었다"로 시작한다. 아동 노동의 혹독한 실상을 고발한 '배교자'는 "조니, 너 안 일어나면 한 입도 못 먹는다!"로, 그리고 영하 50도의 혹한에서 얼어 죽는 사람을 그린 '불을 지피다'는 "동틀 때부터 날은 춥고 어둑했다. 지독히도 춥고 어둑했다"로, 굶주린 개와 생존 투쟁을 벌이는 '생에의 애착'은 "그들은 절뚝거리며 힘겹게 둑을 내려갔다"로 이야기의 문을 연다. 잭 런던에 의해 창조된 인간은 단도직입적으로 막다른 곳으로 던져지고, 거기서 '살아 내기' 위해 원초적인 야생성을 발휘한다.
개인적으로는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스테이크 한 장을 먹지 못해, 젊은 권투 선수에게 패배한 '스테이크 한 장'에 강한 애착을 느끼지만, 러시아 혁명가였던 레닌은 임종 말기에 '생에의 애착'에 대단한 애정을 품었던 모양이다. <레닌을 회상하며>(나제주다 꼰스딴찌노브나 끄룹스까야 지음, 최호정 옮김, 박종철출판사 펴냄)의 저자 끄룹스까야는 이렇게 회고한다.
"타계 이틀 전 저녁에 나는 그에게 잭 런던의 '생에의 애착'을 읽어주었다. 아주 뛰어난 이야기였다. 인간의 발길이 닿은 적 없는 광막한 빙원에서 굶어 죽어가는 기진맥진한 남자가 큰 강가의 항구를 향해 가고 있다. 힘이 다 빠져버린 그는 걷는 게 아니며 슬슬 미끄러져갈 뿐이며, 그의 곁에는 얼음을 지치는 늑대 한 마리가 있다. 둘 사이엔 싸움이 일어나고 결국 남자가 이긴다. 그는 반쯤 죽고 반쯤 미친 상태로 목적지에 도착한다. 이 이야기는 일리치(레닌)을 아주 기쁘게 해주었다."
| ▲ <불을 지피다>(잭 런던 지음, 이한중 옮김, 한겨레출판 펴냄). ⓒ한겨레출판 |
잭 런던의 연보를 보면 그의 소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예감할 수 있다. 11세에 신문 배달, 얼음 마차 조수 등으로 스스로를 '일짐승'이라 칭했고, 14세에 연어통조림 공장에서 일했으며 16세에 굴 양식장 해적이 되었다가 17세에 물개 잡이 어선의 선원이 된다. 18세에 부랑자가 되어 미국과 캐나다를 떠돌고 19세에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20세에 사회주의 노동당에 입당하면서 3개월간의 벼락공부로 버클리 대학교에 입학한다.
21세에 캐나다 유콘 주의 클론다이크 강에서 금이 대량으로 발견되자, 골드러시에 휩쓸려 클론다이크 모험을 떠난다. 22세에 괴혈병으로 고생하다 귀국해서 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해 많은 글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24세에 첫 단편집 <늑대의 아들(The Son of the Wolf)>을 출판했고 27세에 런던 빈민가 취재기인 르포르타주 문학의 고전인 <밑바닥 사람들>(정주연 옮김, 궁리 펴냄)이 출간된다. 28세에 러일전쟁 종군 취재 기자 자격으로 조선, 일본, 러시아를 여행한다. 29세에 농장을 사들여 사회주의 농촌공동체를 꿈꾼다.
지독히도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났으나 탁월한 정신력과 강인한 체력 덕분에 열여섯 나이에 이미 빈곤을 탈출했다. 어린 시절 겪었던 비참함을 결코 잊지 않았으며, 피착취 계급에 대한 의리를 보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20년의 직업 작가 생활 동안 잭 런던은 하루에 1000자씩 규칙적으로 쓰면서 르포르타주와 사설, 200편의 단편 작업 등 정력적인 활동을 했다. 잭 런던을 보면 조지 오웰과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많다. 둘 다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였고, 특히 조지 오웰은 잭 런던의 빈민가 르포르타주 <밑바닥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 비슷한 분위기의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신창용 옮김, 삼우반 펴냄)을 썼다. 잭 런던의 에누리 없는 차가운 문장을 읽어 내려가면서 조지 오웰이 겹쳐져 떠올랐던 이유가 거기 있다.
<불을 지피다>의 말미에는 소년 시절부터 잭 런던을 탐독했던 조지 오웰의 서평이 수록되어 있다. 조지 오웰은 잭 런던이 '환경에 적응하는 강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 이론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평한다. 런던이 작품 활동을 하던 시기에는 다윈 이론에 대한 조잡한 인식이 사회 전체에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은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로 적자생존의 증거가 되는 무한경쟁의 반복이다.
2013년 현재, 이 책이 더욱 귀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너도 나도 아픔을 호소하고 그걸 이용하는 값싼 힐링이 난무하는 시대에 잭 런던의 이야기가 뜨거운 부싯돌처럼 '생에의 애착'을 선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3세계 출신 이민자로서 차별을 받으며 혁명을 꿈꾸는 청년을 다룬 이야기 '멕시칸'을 보면, '괜찮아 괜찮아'라는 연약한 반창고에 가려졌던 내 안의 엄청난 '독기'가 꿈틀대는 느낌을 받는다. 18살 청년 리베라는 혁명을 위해 필요한 총 구입 자금을 벌기 위해 홀로 권투 시합에 나간다. 관중들은 모두 그가 지기를 기대하지만, 리베라는 야생 늑대 같은 원초적인 힘으로 싸운다.
"관중들은 리베라에게 분노를 느끼기 시작했다. 왜 정해진 대로지지 않는단 말인가? 물론지고 말겠지만 왜 악착같이 버틴단 말인가…심판은 마지못해 리베라의 한 손을 잡고 들어 올렸다. 리베라의 승리를 축하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하면서 코너로 갔다. 그의 세컨드들은 아직 접이 의자도 놓지 않고 있었다. 그는 로프에 기댄 채 그들을 노려 보았다…."
이순신의 <난중일기>가 감상이 배제된 냉혹한 무인의 글이듯, <불을 지피다>에 실린 잭 런던의 단편들도 삶이 곧 전쟁이었던 '모험가'의 글이고 '혁명가'의 글이다. '우리의 삶이 접속사로 이어지는 긴 문장이라고 한다면, 어떤 서술어가 쳐들어와도 스스로 주어의 자리에 가서 서겠다'는 결기가 갈피마다 배어난다. 그래서 우리 자신, 냉혹한 자연과 적자생존의 법칙 앞에서 무릎 꿇을지라도, 마지막까지 '생명의 존엄함'을 지키겠다는 의지의 인물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 책과 함께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이한중 옮김, 한겨레출판 펴냄)와 요른 릴의 <북극 허풍담>(백선희 옮김, 열린책들 펴냄) 시리즈를 읽어보길 권한다.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에서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자신이 기발하게 쓰기보다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해왔다는 점을 강조한다. 조지 오웰이 쓴 29편의 에세이에서 부랑자와 내전 지역의 종군 기자로 활동하던 시절의 기록과 문장을 보면 잭 런던이라는 사람을 보다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요른 릴의 <북극허풍담> 시리즈는 잭 런던이 금광을 찾으러 가던 클론다이크 모험가 시절의 이야기와 환경적으로 닮은꼴이면서도, 배꼽 잡도록 웃음을 선사하는 극적으로 다른 '허풍체'를 맛볼 수 있어 흥미롭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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