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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만 인문학? 의사들의 인문학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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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만 인문학? 의사들의 인문학이 시작된다!

[프레시안 books] 강신익의 <불량 유전자는 왜 살아남았을까?>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애플사의 독창적 제품들이 작고한 스티브 잡스의 인문학적 상상력에 힘입은 바 크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지며, 기업 경영자들이 인문학 강의를 듣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필자와 가까이 지내는 한 인문학 교수는 요즘 부쩍 외부의 강연 요청이 늘었다며 인문학에 대한 사회의 태도 변화를 실감한다고 말했다. 몇 해 전 인문학 교수들이 인문학의 위기를 알리고자 목소리를 높인 적이 있는데, 그 일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건 아니겠지만 이유야 어떠하든 인문학에 대한 사회 전체의 관심이 커진 것은 고무적이다.

사실 우리 사회에 인문학 열풍이 불기 여러 해 전부터 의료계에서는 인문학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인문학의 내용을 의과대학 교육 과정에 반영하려는 다양한 노력들이 이뤄졌다. 보수적이고 경직된 의료계에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 배경에는 사회와의 소통 부족에 대한 의료계의 반성과 비인간화된 과학 일변도의 현대 의료에 대한 반성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반성을 보다 체계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등장한 학문이 의료인문학, 혹은 <불량 유전자는 왜 살아남았을까?>(강신익 지음, 페이퍼로드 펴냄)의 저자가 말하는 인문의학이다.

▲ <불량 유전자는 왜 살아남았을까?>(강신익 지음, 페이퍼로드 펴냄). ⓒ페이퍼로드
용어상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의료인문학이라는 용어를 선호했다. 그러나 <불량 유전자는 왜 살아남았을까?>를 읽으며 인문의학을 주장하는 저자의 입장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되었다. 아울러 의료인문학과 인문의학의 차이에 대해서도 필자 나름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다소 생소하게 들리는 인문의학이란 무엇인가? 저자에 따르면 인문의학은 "생로병사의 경험적 현상을 과학적 방법으로 설명하고, 다시 그것을 인문학의 가치와 규범을 통해 이해하려는 생명 이해의 방법"으로 정의된다. 여기서 말하는 '인문학의 가치와 규범'이 무엇인지는 다소 모호하지만, 대략 인문학적 차원을 포괄하는 의학이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달리 말하면 자연과학에 기초를 둔 기존 의학에 인문학적 차원을 더함으로써, 기존의 자연과학적 의학을 확장 혹은 심화시킨 의학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의학으로 남아있는 인문의학에 비해 의료인문학은 의학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이다. 의학의 역사를 다루는 의사학, 의학의 철학을 다루는 의철학 등 기존 인문학의 학문적 범주 안에서 의학의 주제들을 특화시켜 다루는 것이 의료인문학이다. 인문의학과 의료인문학은 기존의 과학적 의학에 대한 반성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렇지만 학문의 명칭에서 수식어와 피수식어가 서로 바뀌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인문의학은 '의학'이고 의료인문학은 '인문학'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문의학과 의료인문학은 방법론을 달리 하는 측면이 있다. 의료인문학은 기존 인문학의 방법을 사용한다는 점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인문의학은 어떤 방법론을 사용하는가?

인문의학에 대한 저자의 정의에 따르면 과학의 방법은 인문의학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렇다면 기존의 자연과학적 의학과 인문의학에서 말하는 과학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이런 의문은 이 책을 읽어나가며 차츰 풀린다. 저자는 기존 의학에 대한 반성의 근거를 인문학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학과 과학 안에서 찾는다. 저자는 기존의 상식화되고 고정된 인체 이해에 도전하는 다양한 과학적 사례들을 제시한다. 저자가 즐겨 활용하는 과학의 내용은 진화생물학, 인지과학, 뇌과학 등의 성과들이다. 이들 학문은 최근에 많은 발전을 거듭하며, 인간 이해에 새로운 빛을 던져주고 있다. 인간에 대해서 새롭게 알려진 사실들 자체가 협소한 의미의 과학적 의학의 틀을 넘어서게 한다.

인간은 생물학적 존재로 태어났다. 이 생물학적 조건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제약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 인간은 정신을 통해 자신의 생물학적 제약을 뛰어넘는다고 보는 견해도 존재한다. 그런 입장에서 본다면 진화생물학이나 뇌과학을 통해 삶과 죽음, 그리고 마음을 말하는 저자는 생물학적 환원주의자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이 생물학적 조건의 제약을 받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곧 생물학적 환원주의나 결정론과 동일하진 않다. 오히려 저자는 그러한 단선적인 환원론에 반대한다.

유전자 결정론에 대한 저자의 입장이 이를 말해준다. 한때 유전자만 알면 인체의 모든 비밀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생명체는 그렇게 단선적인 방식으로 이해될 수 없다는 사실이 뒤이은 과학 연구의 결과로 밝혀지고 있다.

저자가 유전자 결정론 같은 인간에 대한 결정론에 반대하는 논거는, 인간의 자유의지설과 같은 철학적 이론이 아니라 바로 과학 자체에서 나온다. 생물학적 조건은 다양한 층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작용하므로 그것은 인간 존재의 제약만이 아니라 가능성이 될 수도 있음을 저자는 말한다.

<불량 유전자는 왜 살아남았을까?>는 인간의 생로병사와 마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일찍부터 철학이나 종교의 영역이었던 이러한 문제를 저자는 과학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단순히 생로병사와 관련된 과학적 사실들만 나열되어 있지 않다. 저자는 과학을 통해 인간의 생로병사를 말하고 있는데, 종교와 철학이 생로병사를 다루는 목적과 저자의 목적은 다르지 않다. 저자는 과학적 지식이 인간의 삶과 분리된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우리 삶의 의미와 늙어감, 질병, 죽음에 대해 보다 깊이 생각할 단초들이 과학적 사실 그 자체에 내장되어 있음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생로병사는 생물학적 현상이지만 우리는 바로 그 생물학적 과정에 대한 성찰을 통해 우리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의미를 찾아나갈 수 있다. 저자가 생각하는 인문학은 거창한 철학적 체계나 어려운 이론이 아니다. 인문학은 결국 인간 자신에 대한 성찰이다. 인간 존재의 의미는 선험적인 가치에 의해 규정되거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로병사의 과정을 몸으로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져나가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인문의학은, 그리고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의미 만들기로의 초대에 다름 아니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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