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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운동권 유물? '노동'으로 부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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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운동권 유물? '노동'으로 부활하라!

[프레시안 books] <다시 쓰는 맑스주의 사상사>

1980년대 한국 대학의 철학과에는 자칭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넘쳐났다. 마르크스주의에 동조하지 않더라도 마치 교양필수과목처럼 마르크스에 대해 조금씩은 알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 냉정하게 평가해 보자면 그 당시에도 마르크스를 열심히 읽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오역투성이 번역본 몇 권과 어떤 입장에 입각해 쓰였는지도 알지 못했던 몇 권의 해설서만을 읽고 마르크스를 다 아는 양 떠들던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고 다시 마르크스를 꼼꼼히 읽는 일은 지금도 다 마치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다.

게다가 그 유행마저도 오래가지 않았다. 철학과에서는 곧 포스트주의가 대세가 되었다. 사실 마르크스주의의 유행보다 포스트주의의 유행이 훨씬 오래갔다. 유행에 둔감한 나로서는 당혹스러운 경험이었다. 게다가 밥벌이를 하느라 거의 10년간 학교를 떠나 있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갔을 때의 느낌은 냉동인간이 되었다가 미래사회에 다시 깨어난 것 같았다.

▲ <다시 쓰는 맑스주의 사상사>(한국철학사상연구회 지음, 오월의봄 펴냄). ⓒ오월의봄

<다시 쓰는 맑스주의 사상사>(한국철학사상연구회 지음, 오월의봄 펴냄). 짧았던 마르크스주의 유행기에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하던 "철학자"들이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좀 더 나이 들고, 지나온 지적 경로의 흔적을 간직한 채 "오늘의 관점으로 다시 읽는 맑스주의"라는 부제를 달고서 말이다.

나는 그 제목을 보고 두 가지가 궁금했다. 철학자들이 정말 마르크스를 다시 읽은 것일까 아니면 과거의 겉핥기식 공부를 여전히 밑천삼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오늘"의 세상은 어떤 것일까? 미리 얘기하자면 두 물음 다 나로서는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다른 독자들도 이 물음을 품고서 책을 읽는다면 좀 더 흥미로울 것이다.

진부하지만 서평의 흔한 형식대로 장단점을 차례로 나열해 보자. <다시 쓰는 맑스주의 사상사>의 한 가지 장점은 여러 연구자가 참여했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주의 사상의 역사라는 방대한 주제를 한 두 사람의 작업으로 정리하는 것은 힘들다. 저자마다 입장 차이는 있지만 각자가 나름대로의 전문성을 살린다면 내용적으로 충실할 수 있다.

다음 장점은 비교적 쉽게 읽힌다는 것이다. 쓴 사람도 읽는 사람도 잘 모르는 현학적 글이 유행하는 철학계에서 이렇게 공들여 쉽게 쓴 글이 나왔다는 점은 너무나 반가운 일이다. 또 교과서로서의 기능을 염두에 둔 책이 한 권 더 늘어난 것도 좋은 일이다. 대단한 사상가도 아닌 연구자의 주관적 견해를 대중들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읽지는 않을 것이다. 대학 안의 연구자들이 실적을 쌓기 위한 학술지 게재용 글보다 대중들이 읽을 만한 책을 쓰는 것은 당연하고 시급한 의무였지만 너무나 등한시되어온 일이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지난 몇 년 간의 철학 대중화 작업은 아직 큰 파급력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바람직하고 의미 있는 활동이다.

이런 성격의 책을 쓸 때 각 사상가의 사상 전반이나 저작들에 대해 개괄하는 해설과 저자들의 판단이나 해석을 균형 있게 배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책에서도 예를 들어 레닌 장은 레닌에 대한 통념적 오해를 교정하는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그 과정에서 주로 지젝에 근거한 해석이 텍스트들의 개관보다 두드러지고 있다. 또 마오쩌둥 장은 중국의 전통 사상의 틀로 마오 사상을 해석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반면에 그 다음 장인 로자 룩셈부르크와 그람시에 관한 장들은 텍스트에 주로 의존해서 간결하고 요령 있게 그들의 생애와 사상을 정리하고 있다. 이 두 장은 특히 특정 사상가나 학파의 해석에 의존하기보다 역사적 사실과 문헌적 근거에 입각해 균형 잡힌 설명을 제시하고 있어서 교과서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다.

프랑크푸르트 학파 장과 포스트 알튀세르주의자들을 다룬 장도 여러 사상가를 한정된 지면에서 다뤄야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요령 있게 정리되어 있어서 처음 이 사상가들에 대해 알기를 원하는 독자들에게 유용한 안내가 역할을 해줄 것 같다. 어떤 기술방식이 더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르겠지만 이 책을 찾아 읽는 독자들이 기대하는 것은 아마도 교과서로서의 역할일 것이다.

다음으로 단점을 짚어 보자. 물론 여기서 지적하는 단점은, <다시 쓰는 맑스주의 사상사>가 막 시작한 작업의 도입 부분이라면 앞으로의 과정에서 충분히 보완될 가능성이 있을 것이고 그 보완물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언급한 것임을 먼저 밝혀 둔다.

가장 아쉬운 점은 각 장의 구체적 내용보다 목차에 있다. 이 책의 목차는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들이 마르크스주의 사상의 역사와 현실에 미친 실천적 영향력보다는 한국 철학계 내부의 관심을 더 많이 반영한 듯하다. 다루어진 사상가들의 목록을 보면 지나치게 협소한 지역과 경향의 사상가들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서구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신좌파들 그리고 실천가로서 보다 전업 연구자인 이들이 대부분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의 혁명 시기의 인물들을 제외한다면 마르크스주의 혹은 좌파적 운동의 실천가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 비서구 사회 출신은 선진국 일본의 가라타니 고진뿐이다.

그리고 철학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도 초기 인물들을 제외하면 없다. 마르크스주의는 철학의 한 유파가 아니라 정치적 실천의 이념이었고, 역사적으로 봤을 때 20세기 초반만 지나면 마르크스주의적 실천의 중심은 서구가 아니라 동구권과 주변부였다 또 마르크스주의 핵심적 과제가 자본주의에 대한 과학적 비판이었음을 고려한다면 마르크스주의의 자본주의 비판을 연구한 사상가가 빠져 있는 인물 선정은 아쉬운 부분이다.

그 다음 라클라우, 무페, 고진, 네그리, 월러스틴, 랑시에르, 바디우 등은 이들이 마르크스주의자인가를 둘러싸고 논쟁의 여지가 있는 사상가들이다. 하나의 기준을 가지고 마르크스주의자냐 아니냐를 교조적으로 판정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적인 접근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마르크스주의는 역사적으로 계승된 어느 정도의 공통된 방법론, 문제 틀, 세계관을 가진 사상의 유파이기도 하다. 위의 인물들을 마르크스주의 사상사에 넣는다면 이들의 사상이 어떤 의미에서 마르크스주의의 계승 혹은 갱신이라고 할 수 있는지를 분명히 해줄 필요가 있다.

이런 한계는 책에서 다루어진 주제를 협소하게 만드는 한계도 같이 가져왔다. 앞에서 언급한 특징들을 공유한 사상가들을 주로 소개하다 보니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에서 중요한 두 가지 의제였던 '노동'과 '제국주의'를 이 책에서도 많이 다루고 있지 않다. 서구의 철학자를 중심으로 인물을 설정한 결과 문제의식의 출발점이 겹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의 공통점 중 하나가 바로 노동과 제국주의라는 의제를 낡은 문제로 치부한 것이다. 오늘의 관점으로 마르크스주의를 다시 보려한다면 지금의 세상에서 노동과 제국주의 문제가 주변적인 의제인가에 대해 먼저 고민해야 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시대적 지리적 한계 중 가장 많이 지적되는 것이 그들의 유럽중심주의다. 레닌과 마오가 마르크스주의를 갱신했다면 이 한계지점을 그들이 처한 현실에 입각해 넘어서려 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처한 현실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한다면 다른 목록이 작성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신좌파 식의 마르크스주의 갱신은 그 명칭이 무색하게도 정작 서구에서는 유행이 지난 어제의 사상이 되어버렸다.

마지막으로 철학자들이 쓴 사상사에 굳이 경제학적으로 접근한 사상가를 넣을 필요가 있었는지 의아해할 독자들을 위해 덧붙이자면 마르크스의 철학과 경제학 연구는 기존의 철학과 경제학에 대한 비판을 통해 철학을 넘어선 철학, 경제학을 넘어선 경제학을 정초하기 위함이었다. 이는 철학자의 시선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철학의 한 흐름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마르크스주의를 통해 철학의 한계를 벗어나 현실의 변혁으로 나아는 것에 의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우리가 여전히 자본주의라는 현실에 의해 제약되고 있다면 자본주의에 대한 과학적 비판이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적 과제여야 한다. 한철연이 다시 이런 책을 쓰게 된다면 기존 사회가 만들어 놓은 대학과 학문제도의 틀을 넘어서 더 이상 철학자의 관점이 아닌 시각으로 새로 쓰기를 기대한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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