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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돈을 낳는 요지경 세상, 당신의 무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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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돈을 낳는 요지경 세상, 당신의 무기는?

[프레시안 books] 차현진의 <금융 오디세이>

지난 5월 9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7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김중수 총재는 금리결정 직후 가진 브리핑에서 "정부와 국회가 힘을 합쳐서 경제 회복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동참하고 노력하는 것은 바람직하다"라고 인하 배경을 밝혔다. 기존에 내세웠던 입장들과 다소 상반되는 결정이었기에 정책 신뢰도를 낮췄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적극적 경기 부양을 위한 정부와의 정책 공조 결정이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었다. 국내 증시도 이를 호재로 받아들이며 상승세로 화답했다.

중앙은행 전성시대

중앙은행이 정부와 함께 경기 부양에 나서는 일은 이미 낯설지 않은 광경이다. 미국 연방준비위원회(Fed)의 벤 버냉키 의장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대규모 채권매입 프로그램과 초저금리 정책을 통해 달러를 그야말로 '살포'한 끝에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아베노믹스'로 일컬어지는 일본 경기 부양책의 핵심은 일본은행(BOJ)을 통한 '무제한 양적 완화'이다. 유럽 중앙은행(ECB)과 호주 중앙은행도 잇따라 금리를 인하하며 경제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이제 금융 시장은 중앙은행의 모든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바야흐로 중앙은행의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언제부터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먼저 중앙은행을 향해 눈을 돌리게 되었을까? 불과 100년 전만 해도 미국 연방준비위원회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우리에게 익숙한 예금과 대출 기능, '은행의 은행'이자 최종 대부자라고 일컬어지는 중앙은행의 역할, 이 모든 시스템의 기반인 법정화폐의 활용까지, 이들이 당연하게 여겨지게 된 것은 생각보다 오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의 금융은 어떤 모습이었으며 현재의 금융 시스템은 어떤 과정을 통해 갖추어지게 된 것인가? 지금의 금융 시스템은 과연 과거에 비해 나아졌는가? 지금의 화폐와 은행, 또 중앙은행의 역할은 적절한가?

<금융 오디세이>(차현진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는 돈, 은행, 사람이 그 동안 겪어온 여정을 이야기하며 이러한 질문에 답변한다. 신기한 것은 모든 여행길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기시감이다. 돌아보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금융 위기는, 역사를 걸쳐 금융이 존재했던 곳엔 언제나 일상처럼 존재해왔다.

"돈……. 누구냐, 너?"

▲ <금융 오디세이>(차현진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인물과사상사
1부에서는 말발굽 모양의 은전부터 10~200킬로그램의 '동전'까지 지금의 법정통화 이전의 다양한 돈의 형태를 소개하는 한편, 돈의 정체, 이름, 가치 등을 주제로 한 다양한 일화를 통해 돈의 역사를 밝힌다. 교환경제마저 원활하지 않던 시절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돈은 중세에 들어서 서서히 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지만, 무언가 결정적인 것이 부족해 보였다.

돈이 비로소 돈이 되어 흐르기 위해 무엇이 가장 필요했을까? 바로 화폐의 시간가치(time value of money), 즉 이자이다. 저자는 화폐의 형태와 역할에 대한 논의보다 이 점에 더욱 주목한다. 1년 뒤 받을 돈과 지금 가진 돈의 가치가 같을 수 없다는 이 절대준칙은 현재 모든 금융이론의 근간에 자리 잡고 있지만, 기독교 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서양사에서 이런 개념은 오랫동안 금기시 되어왔다.

"돈이 돈을 낳는 대금업을 하는 것은 신성모독에 해당하는 엄청난 죄악이었다. 그런 일은 기독교도가 아닌 유대인 또는 유대인 중에서도 구제불능인 사람이나 하는 일로 치부되었다."(19쪽)

"중세에는 대금업자라는 이유로 마을에서 추방당하거나 맞아 죽거나 자손들이 시체 묻을 곳도 찾지 못할 수 있었다."(20쪽)


이렇듯 천대받던 대금업과 이자라는 개념이 사회적으로 용인되게 된 배경에는 돈과 권력의 만남이 있었다. 돈이 필요했던 권력은 음지에서 행해지던 금융을 추인, 양지로 이끌어 비로소 돈이 흐르도록 하였다. 저자는 중세의 두 가문(푸거, 메디치)을 통해 '돈과 권력의 만남'과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대비시키면서, 돈이 어떻게 시간가치(이자)를 만나 제 모습을 갖추는지, 또 그렇게 완성된 돈이 정치적으로 어떻게 활용되는지 그려낸다.

은행의 역사가 곧 금융 위기의 역사

돈이 완성되었다면 이제 은행이 등장할 차례이다. 2부에서는 은행의 아버지가 대금업자가 아닌 환전상이었다는 '출생의 비밀' 폭로를 시작으로 민간은행과 중앙은행의 탄생 이야기를 다룬다. 특이한 점은 2부에서 다루는 은행의 역사가 사실상 '금융 위기'의 역사와 다름없다는 것이다. 현재를 사는 우리들이 어디선가 본 듯한 낯익은 투기, 버블, 금융사기, 공황 등 모든 종류의 금융 위기들이 은행의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었고, 그러면서 은행은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551년부터 1866년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유럽에서는 금융 위기가 거의 10년 주기로 찾아왔다. 사람들은 그 원인을 잘 몰랐고 해결책은 더욱이 몰랐다. (…) 시간이 해결해주기만을 기다렸다." (207~208쪽)

현재의 금융 시스템은 금융 위기를 통해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은 새롭게 등장한 '금융'과 '금융 위기'에 대해 무지했다. 끊임없이 빈번하게 일어난 금융공황을 극복하고자 시도한 원시적 조치와 시행착오들이 쌓여 시스템이 형성되었다. 지금에서야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는 법칙들이 당시에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낮추는가 하면,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중앙은행을 없애고 최악의 경기불황 속에서도 흑자재정을 유지하는 웃지 못할 일도 일어났다. 중앙은행이 금융 위기의 주범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은행과 금융 시스템은 이러한 위기와 무지 속에서 경험을 쌓아 나가며 발전했다.

하지만 위기가 끊이지 않고 그 규모가 확대되면서, 사람들은 시장과 정부의 단순한 조치만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절감하였다. 이윽고 은행(특히 중앙은행)에게 "최종 대부자"의 역할을 맡아 세상을 구원하라는 요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제 은행은 때로는 금융 위기의 주범으로 몰리기도, 때로는 금융 시스템 보호자의 감투를 쓰기도 하게 된 것이다. 2년 전 월가 점령 시위의 집중 성토 대상 중 하나였던 J.P. 모건은 중앙은행 없이 미국이 금융공황을 겪던 100년 전만 해도 금융 시장을 구원할 '유일한 희망'이었다.

"글로벌 금융 위기는 화폐와 은행업에 대한 시각을 완전히 흩어뜨려 놓았다. 갈 때까지 간 경제위기 속에서 기존의 경제 이론들은 폐허의 더미 위에 던져졌다. 모든 것을 새로 세워야 하는 순간에 이른 것이다." (249쪽)

한때는 '원흉'이었던 은행이 '구원자'를 자처하는 상황이 되면서 은행의 역할과 도덕률에 대해서 정의 내리기가 어려워졌다. 중앙은행에게 주어져야 할 권한은 어디까지일지, 보호자로서의 중앙은행은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에 대해서 아무도 대답할 수 없게 되었다. '은행은 천사인가 악마인가?'라는 원초적 질문까지 제기된다. 저자는 판단을 유보하고 이제라도 우리가 무지함을 인정해야만 위기 극복의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던 모든 개념을 밑바닥부터 돌아보자는 제안을 던지며 금융에 관한 여정에 쉼표를 찍는다.

▲ 월가의 분주한 모습. ⓒAP=연합

치료하는 경제학은 가능할 것인가

돈과 은행의 역사라는 커다란 흐름을 거쳐, 3부에서는 근세와 현대의 금융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마치 사마천의 역사서 <사기(史記)> 말미에 등장하는 열전(列傳)을 떠올리게 한다.

"경제학은 규범과학인가, 실증과학인가? 경제학은 법학, 수학, 철학과 같은 선험적·연역적 학문인가, 아니면 의학, 생물학과 같은 경험적·귀납적 학문인가? (…) 경제학은 객관적 실체를 다루는 학문인가, 주관적 가치를 다루는 학문인가?" (278쪽)

저자는 법률학자(존 애덤스)와 경제학자(존 케인즈)의 대비를 통해, 학문으로서 경제학이 어떤 성격을 가지는 지에 대한 오래된 질문을 던진다. 법률학자가 시장의 자유를 중시하고, 경제학자가 정부의 개입을 추구한 역설을 통해, 경제학이라는 학문의 현재 위치와 역할이 '불분명'하다는 한계를 분명히 한다. 이에 대해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또한 아래와 같이 표현한 바 있다.

"경제학이 원시 과학임은 물론이다. 비슷한 사례로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의학을 생각해 보자. 당시 의학 교수들은 인간의 신체 기관과 작용에 관하여 수많은 정보를 축적해 왔으며, 이를 토대로 질병 예방법에 대해 극히 유용한 충고를 해 줄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병에 걸리면 대개는 치료할 줄 몰랐다. (…) (경제학자들은) 가난한 나라를 부유한 나라로 만드는 법을 알지 못하고, 또한 경제 성장의 마법이 사라져 버린 듯이 보일 때 그것을 회복하는 법을 모른다." (<경제학의 향연>(폴 크루그먼 지음, 김이수·오승훈 옮김, 부키 펴냄) 24~25쪽)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 형성된 현대 경제학과 금융 시스템조차 여전히 '치료'에 있어서 무능하다는 점은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어쩌면 세계는 여전히, 잦은 금융 위기를 통해 시스템을 완성해가려는 과정에 놓여있을 뿐이며 경제 회복을 위해 지금 시행되는 각종 정책들이 훗날 우스꽝스러운 일로 평가될 수도 있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대통령'과 '금융인'의 일화를 통해 한국 금융시스템과 중앙은행의 역사가 극히 짧았음을 강조하는 방식을 통해 새로운 경제학을 향한 여정의 출발 단계에 있음을 밝히며 긴 이야기를 마친다.

'위기 장사'는 그만, 이제는 위기 너머로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최근 국제통화기금(IMF) 블로그에 기고한 칼럼에서 "지난 30년 동안 거의 100 차례에 가까운 금융 위기가 발생했다"고 분석하며, "어떻게 우리는 그토록 긴 역사를 무시했던 것인가"라고 한탄했다. 하지만 금융 위기를 즈음해서 우후죽순 발간되는 책들 대부분은 역사를 진지하게 고찰하기보다 단기적 시야로 위기를 '팔아먹는데' 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로 최근 유로존 채무위기까지 몇 년 째 금융 위기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금,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사례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책을 찾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저자는 전작 <숫자 없는 경제학>(인물과사상사 펴냄)에 이어 이번에도 인문철학적 관점에서 경제와 금융을 바라보고자 하는 쉽지 않은 시도를 이어갔다. 복잡한 수식과 이론 없이도 금융의 긴 여정을 쫓다 보면 어렴풋이 다음 목적지가 보일 수 있다. 어쩌면 이러한 방식으로 금융을 접근할 때에야 우리는 위기 너머를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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