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배수아 지음, 자음과모음 펴냄). ⓒ자음과모음 |
멀리 떠나지 말아요, 단 하루라도, 왜냐하면
왜냐하면······ 하루는 길고
나는 당신을 기다릴 테니까.(8쪽)
아내에게 헌정한 칠레 시인의 연애시편은 아침, 오후, 저녁, 밤, 네 파트로 나뉘어 전체로는 하루의 순환 주기를 이룬다.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는 제목 그대로 아야미가 공연장에 앉아 라디오를 듣는 황혼부터 다음날 새벽과 대낮을 지나 저물녘까지 겪는 이야기로, 인용 작품의 구성 원리를 상호텍스트적으로 참조한다.
오디오 공연장에서 들려주던 레퍼토리 중 하나는 이란 작가 사데크 헤다야트의 <눈먼 부엉이>다. 마침 이 소설은 배수아 자신의 번역으로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에 뒤이어 출간되었다. 헤다야트의 저작은 그의 조국에서는 출판이 금지되었다. 그의 페르시아어를 번역한다는 것은 따라서 세계문학사에 알려지지 않은 목소리를 타국어라는 음향 장치를 통해 복제하고 증폭하여 알리는 일이 된다. 그렇다면 독일어 판본에 의거한 배수아의 중역본은 원래의 음향 설비 속에 잘못 장착된 고장 난 라디오, 복제된 소리 외곽의 어두운 파장, 재생된 음성의 사후적 잔향, 심지어 녹음된 목소리의 주인과 전혀 다르게 혼잣말 하는 유령이 될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이 점에서 낭송극이 끝난 뒤 아야미의 귀에 들려오는 미지의 소음은 다른 작가의 다른 언어를 옮기고 불러내는 글쓰기 방식에 대한 작가적 자의식이 담긴 알레고리다. 시적으로 잔존하는 유령 덕분에 중역과 오역의 불안은 기원의 목소리에서 무연히 멀어지는 허구로의 유혹적인 초대로 전환된다. 다른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그 다른 언어에서 또 다른 언어로. 번역을 번역함으로써 언어는 본래의 미지로 회귀하는 순환의 도정에 오른다. 소설은 이처럼 다시 알려지지 않은 목소리가 되어가는 언어의 한 국면이다. 라디오를 끄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그러기를 원하지 않는다.
| ▲ <눈먼 부엉이>(사데크 헤다야트 지음, 배수아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 |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는 <눈먼 부엉이>를 언급할 뿐만 아니라 "작품의 곳곳에 등장하는 신비한 반복 진술이 환상과 초현실주의적 효과를 느끼게"(119쪽) 하는 그것의 서술 기법을 차용한다. 아야미, 아야미의 독일어 선생 여니, 장님 소녀 웨이트리스, 얽은 얼굴에 싸구려 구두를 신은 중년 여인, 자동차를 타고 폰섹스 하는 여인, 변사체로 발견된 실종 여성, 아마도 시인 여자, 아야미의 어머니 등 일련의 여성 등장인물과 극장장, 시인 김철썩, 약 외판원 김부하, 교각에서 투신한 남자, 아야미의 아버지, 살해된 마을 약사 등 남성 등장인물은 각자에게 부여된 신체적 특징, 복장, 대사, 기억, 욕망을 유전자처럼 교환하고 공유한다. 뫼비우스의 띠 같은 무한 순환의 서사에서 과거는 현재에 범람하고, 풍문과 사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세대 구분과 개별적 정체성이 말소된 인물들은 근친 사이의 위험한 관계를 맺는다.
| ▲ <서울의 낮은 언덕들>(배수아 지음, 자음과모음 펴냄). ⓒ자음과모음 |
오디오, 라디오, 낭송극, 외국어 낭독, 전화, 독순술 등 전체적으로 청각적 매체성이 지배하는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의 후반부에는 사진 예술에 관한 단상이 다소간 급작스레 삽입되어 있다. 순간적으로 사건의 진행을 정지시키고 맥락에서의 이탈 및 문체와 분위기의 전환을 야기하는 이질적 목소리의 주인은 독일에서 여니를 찾아온 추리소설 작가 볼피다. 그는 폐관하여 용도를 전환한 오디오 극장에서 김철썩의 사진 전시회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를 관람하는 중이다. 전시회 제목은 폴 고갱의 유화 제목이기도 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밝혀놓지 않았다. 일종의 유머. 김철썩은 장르의 역사와 예술적 테크닉에 대한 고민 없이 이미 알려진 작품을 마치 알려지지 않은 목소리인양 전유하는 행위는 무단도용이나 표절의 경계를 건드릴 수 있음을 상기시키는, 실패한 시인의 우스꽝스럽고 비참한 초상이다. 소매치기, 도둑질 방식을 모방한 전시회 홍보 방식은 유머를 가중시킨다.
| ▲ <북쪽 거실>(배수아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 |
볼피의 사진론은 글쓰기로 증명해온 배수아의 문학론이기도 하다.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에서 아야미는 자기도 모르게 유사 초능력을 발휘할 때가 있다. 유리벽으로 막혀 있거나 가청 거리보다 멀리 있는 사람들의 말을 독순술로 알아듣는다거나, 소리를 들으면서 음향 장치 사이에 숨겨진 오래된 라디오나 전화기 저편에서 말하는 입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공감각 능력은 별도로 하더라도. 시력이 좋지 않은데도 어두운 밤 멀리 사고 난 버스 안에서 승객들이 읽고 있던 책의 내용을 알아보는 등. 아야미는 먼 곳의 이미지를 문자로, 먼 곳의 소리를 이미지로 전환하고, 먼 곳의 흐린 이미지를 가까이 명료하게 재생하는 기계-인간, 파장 변환기, 유령 탐지기다. 소설 속의 모순적인 디테일들은 행여 협소한 모방론적 관점에서 핍진성을 결여했다고 비판해서는 안 되는데, 왜냐하면 배수아의 서사가 모방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꿈의 작업이고, 꿈에서 우리는 이따금 신체와 시공간의 물리적 한계에 구속받지 않는 초능력자가 되기 때문이다. 아야미는 꿈꾸는 주체다.
배수아에게 글쓰기는 잠과 꿈, 백일몽과 환상처럼 정신이 이완된 상태에 신체를 믿어 내맡기고, 무의식이 선사하는 확장된 감각과 능력을 통해 새로이 느껴지는 세계를 기술하는 일이다. 기존 세계의 찰나, 틈, 껍질, 이면에서 알려지지 않은 어떤 것이 감지되고, 우리의 감각과 기술 능력이 증대됨에 따라 그것의 형상도 부풀어날 것이다. 언어의 세계도 그렇다. 글쓰기는 실물 세계뿐만 아니라 언어 자체의 균열을 들여다보기, 기존의 언어 망에서 구멍을 엿보고 아직 말이 되지 않은 말을 건져내기, 자기의 이야기에 틈바구니를 만들어 타인의 시와 소설을 초대하기다. 틈에서 비어져 나오는 것, 그것의 틈에서 다시 부풀어 나오는 것. 소설. 알려지지 않은 것의 내력은 이렇게 지속된다.
| ▲ <올빼미의 없음>(배수아 지음, 창비 펴냄). ⓒ창비 |
책상 위의 책들이 늘어난다.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의 기원을 찾아. 네루다와 헤다야트의 책 곁에 배수아의 전작들이 어지러이 쌓여간다.
글쓰기가 언어의 틈을 들여다보고 넓히는 작업인 이상, 언어에서 꿈과 유령과 비밀을 엿보고 추출하는 행위인 이상, 문학에 투신한 독자는 텍스트를 읽을 때마다 그것이 생성해 나온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을 수 없다. 알려지지 않은 목소리를 낳은 다른 알려지지 않은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거슬러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면서 이미 읽은 페이지 틈에서 미처 읽어내지 못한 문장, 플롯, 상징, 기법, 감정 등을 다시 훑어야 한다.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의 뫼비우스 띠 서사 구조는 이처럼 독자에게도 독서의 무한한 반복을 요청한다. 단지 이 책을 넘어 다른 책들로까지 회귀하여 끝없이 다시 읽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놀랍게도 매번의 독서마다 지난한 반복을 상쇄하는 새로운 발견이 있어, 책상에 쌓여가는 책만큼, 작가뿐만 아니라 독자 역시 드넓게 확장된 감각적 세계와 언어의 수혜자가 된다는 것, 이것이 배수아의 환몽의 글쓰기가 독자에게 선사하는 쾌락적 효과의 요체다. 기쁘고 고맙다.
배수아 소설에서 인물들의 본질적 행위는 낭송과 여행이다. 그런데 낭송은 결국 독자의 임무. 언제든 그녀가 내게 보내는 유령을 따라다닐 준비가 되어 있다. 항적처럼. 나 자신 낭송하는 유령이 되려는 욕망이 있다. 죽어가는 자의 소식을 따라 멀리 여행하여, "다른 세계, 즉 완전히 다른 감각의 세계로 향하는 문"(44쪽)에 기꺼이 진입하려 한다. 이미 그랬던 적이 있다.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에서 배수아는 그것을 초대라 말한다. 여러 번 힘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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