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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막히는 여름밤, '목소리의 유령'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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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막히는 여름밤, '목소리의 유령'이 찾아온다!

[프레시안 books] 배수아의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배수아의 신작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자음과모음 펴냄)를 읽다보면 책상 위에 어느새 다른 두 권의 책도 함께 펼쳐놓게 된다. 파블로 네루다의 <100편의 사랑 소네트>(정현종 옮김, 문학동네 펴냄)와 사데크 헤다야트의 <눈먼 부엉이>(배수아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다. 헤다야트의 밤에 네루다의 하루를 더해 배수아의 밤과 하루가 되었다.

▲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배수아 지음, 자음과모음 펴냄). ⓒ자음과모음
소설은 막 폐관한 오디오 공연장의 실내 묘사로 시작한다. 음향 설비를 통해 녹음 낭송극을 들려주던 극장의 마지막 공연이 끝나고 청중이 모두 떠난 자리에 극장 직원이자 전직 여배우 아야미가 홀로 앉아 있다. 음향 장치 어딘가에는 잘못 연결된 라디오가 하나 숨겨져 있는지, 낭송극 재생이 끝난 적요한 공기 속에 이따금 저절로 작동하여 소리를 내고, 아야미는 하루 업무가 끝났을 때마다 책 읽는 소리, 혼잣말, 뱃사람을 위한 일기 예보 같은 그 모호한 소음을 경청해왔다. 굳이 원인을 밝히거나 해결하고 싶지 않은, 알려지지 않은 채로 남겨두고 싶은, 매혹적인 이상 현상. 세이렌. 소멸 직전의 시공간에 "소리의 그림자" 또는 "알려지지 않은 목소리"(11쪽)처럼 들려오는 것은 네루다의 소네트 연작 중 45번이다. 아야미가 시를 이미 알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덕분에 나 역시 비로소 알게 되었지만. 그러기에 시는, 어떤 문학은, 알려지지 않은 목소리라 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멀리 떠나지 말아요, 단 하루라도, 왜냐하면
왜냐하면······ 하루는 길고
나는 당신을 기다릴 테니까.(8쪽)


아내에게 헌정한 칠레 시인의 연애시편은 아침, 오후, 저녁, 밤, 네 파트로 나뉘어 전체로는 하루의 순환 주기를 이룬다.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는 제목 그대로 아야미가 공연장에 앉아 라디오를 듣는 황혼부터 다음날 새벽과 대낮을 지나 저물녘까지 겪는 이야기로, 인용 작품의 구성 원리를 상호텍스트적으로 참조한다.

오디오 공연장에서 들려주던 레퍼토리 중 하나는 이란 작가 사데크 헤다야트의 <눈먼 부엉이>다. 마침 이 소설은 배수아 자신의 번역으로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에 뒤이어 출간되었다. 헤다야트의 저작은 그의 조국에서는 출판이 금지되었다. 그의 페르시아어를 번역한다는 것은 따라서 세계문학사에 알려지지 않은 목소리를 타국어라는 음향 장치를 통해 복제하고 증폭하여 알리는 일이 된다. 그렇다면 독일어 판본에 의거한 배수아의 중역본은 원래의 음향 설비 속에 잘못 장착된 고장 난 라디오, 복제된 소리 외곽의 어두운 파장, 재생된 음성의 사후적 잔향, 심지어 녹음된 목소리의 주인과 전혀 다르게 혼잣말 하는 유령이 될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이 점에서 낭송극이 끝난 뒤 아야미의 귀에 들려오는 미지의 소음은 다른 작가의 다른 언어를 옮기고 불러내는 글쓰기 방식에 대한 작가적 자의식이 담긴 알레고리다. 시적으로 잔존하는 유령 덕분에 중역과 오역의 불안은 기원의 목소리에서 무연히 멀어지는 허구로의 유혹적인 초대로 전환된다. 다른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그 다른 언어에서 또 다른 언어로. 번역을 번역함으로써 언어는 본래의 미지로 회귀하는 순환의 도정에 오른다. 소설은 이처럼 다시 알려지지 않은 목소리가 되어가는 언어의 한 국면이다. 라디오를 끄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그러기를 원하지 않는다.

▲ <눈먼 부엉이>(사데크 헤다야트 지음, 배수아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
헤다야트의 원작에서 필통 화가인 주인공은 유년기와 청년기의 외상적 경험이 현재의 삶에서 현실과 환상을 구분할 수 없이 무한히 반복된다는 데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느낀다. 화자가 환각 상태에서 목격한 신비롭고 아름다운 여인, 두문불출한 채 필통에 반복해서 그리는 메꽃을 든 소녀, 그리고 마부에게서 받은 꽃병 표면에 그려진 검은 눈동자의 여인 등 비현실적인 여인들은 그의 창녀 아내로 수렴된다. 마찬가지로 환각 속의 노인, 필통 그림 속의 곱사등이 인도 요기, 시체 운반 마부는 아내 주변을 얼씬거리며 그를 괴롭힌 정육점 주인과 늙은 고물상 등의 외양을 변주한다. 욕망과 좌절의 반복 회로. 우울과 염세. 환영에 탐닉하려 외부의 빛을 완전히 차단한 밀폐 공간에서 정신의 밤이 지속된다. 부엉이는 밤의 상징. 닫힌 밤 자기의 그림자를 향해서만 입을 여는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알려지지 않을 목소리가 될 수밖에 없다. 세계로부터 스스로를 밀봉하는 이야기들이 있고, 서사 구조가 작품이 겪어낼 역사적 운명을 결정하는 경우는 결코 드물지 않은데, 헤다야트의 텍스트가 바로 그러하다.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는 <눈먼 부엉이>를 언급할 뿐만 아니라 "작품의 곳곳에 등장하는 신비한 반복 진술이 환상과 초현실주의적 효과를 느끼게"(119쪽) 하는 그것의 서술 기법을 차용한다. 아야미, 아야미의 독일어 선생 여니, 장님 소녀 웨이트리스, 얽은 얼굴에 싸구려 구두를 신은 중년 여인, 자동차를 타고 폰섹스 하는 여인, 변사체로 발견된 실종 여성, 아마도 시인 여자, 아야미의 어머니 등 일련의 여성 등장인물과 극장장, 시인 김철썩, 약 외판원 김부하, 교각에서 투신한 남자, 아야미의 아버지, 살해된 마을 약사 등 남성 등장인물은 각자에게 부여된 신체적 특징, 복장, 대사, 기억, 욕망을 유전자처럼 교환하고 공유한다. 뫼비우스의 띠 같은 무한 순환의 서사에서 과거는 현재에 범람하고, 풍문과 사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세대 구분과 개별적 정체성이 말소된 인물들은 근친 사이의 위험한 관계를 맺는다.

▲ <서울의 낮은 언덕들>(배수아 지음, 자음과모음 펴냄). ⓒ자음과모음
텍스트 곳곳에서 배수아는 방향을 가늠할 수 없이 대범하게 휘는 특유의 문체로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숨 막히는 무더위를 묘사하는데, 고온다습의 밤에 발생하는 익명의 잠과 꿈은 특히 모든 소설적 요소들이 근친 관계조차 초월하여 상상의 모태 속에 하나의 세포로 거슬러 융합했다가 다시 분열하는 원초적 생성의 장면을 에로틱하게 재구성한다. 인간의 서사는 "장황하고 요란한 상상으로 이루어진 꿈이며, 하나의 꿈에서 깨어나는 꿈이며, 하나의 꿈으로 들어가는 꿈의 한 부분이고, 그 꿈은 지나치게 오랜 시간을 책과 진통제와 라디오, 그리고 오디오북만을 의지하여 살아온 사람들이 생의 마지막에 일종의 달콤한 보상으로 걸리게 되는 질병"(272쪽)이라는 <서울의 낮은 언덕들>(배수아 지음, 자음과모음 펴냄)에서의 전언이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에도 너울처럼 드리워져 있다. 누구의 것이라 지정하기가 무의미한 이 혼융의 몽환 속에 새로운 텍스트가 탄생한다. 목소리의 유령으로서. 이것이 배수아 글쓰기의 실천적 원리다. 문학이 스스로를 지속해온 내력이기도 하다. 어떤 글쓰기든 이미 과거로부터 존재하는 다른 목소리들을 유전 형질처럼 자기 안에 포합하는 상호텍스트적 생성이 될 수밖에 없다. 소설과 번역은 알려지지 않은 걸작을 알려지게 하기보다는 다른 유령적 존재들의 더욱 미혹적인 그림자로 어른거리며 미지와 익명의 불가능한 이상을 구현하려 한다.

오디오, 라디오, 낭송극, 외국어 낭독, 전화, 독순술 등 전체적으로 청각적 매체성이 지배하는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의 후반부에는 사진 예술에 관한 단상이 다소간 급작스레 삽입되어 있다. 순간적으로 사건의 진행을 정지시키고 맥락에서의 이탈 및 문체와 분위기의 전환을 야기하는 이질적 목소리의 주인은 독일에서 여니를 찾아온 추리소설 작가 볼피다. 그는 폐관하여 용도를 전환한 오디오 극장에서 김철썩의 사진 전시회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를 관람하는 중이다. 전시회 제목은 폴 고갱의 유화 제목이기도 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밝혀놓지 않았다. 일종의 유머. 김철썩은 장르의 역사와 예술적 테크닉에 대한 고민 없이 이미 알려진 작품을 마치 알려지지 않은 목소리인양 전유하는 행위는 무단도용이나 표절의 경계를 건드릴 수 있음을 상기시키는, 실패한 시인의 우스꽝스럽고 비참한 초상이다. 소매치기, 도둑질 방식을 모방한 전시회 홍보 방식은 유머를 가중시킨다.

▲ <북쪽 거실>(배수아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
여하튼 볼피의 논지에 따르면, 사진이 보는 사람에게 두려움이나 섬뜩함 등 모호하게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까닭은 대상을 복제하여 영혼을 훔친다는 옛 사람들의 미신과 아주 무관하지 않게 "현실의 틈새 사이에 있는 으스스한 찰나를 포착"(148쪽)하기 때문이다. 프린트지 위에 사후적으로 인화된 이미지에는 촬영 당시 사진가의 의도나 그의 시선이 파악한 피사체의 물성을 넘어서는 잉여적인 어떤 것이 있다. 세계 안에 존재하는 각각의 물상은 시시각각 크고 작은 스케일로 변모하는데, 육안이 미처 감지하지 못한 그 생성 과정의 한 단면, 찰나, 틈이 기계의 역능으로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절대적으로 낯선. 틈의 단면이 펼쳐져, 찰나는 영원히 고정된다. 시야와 의식의 통제를 벗어나되 기계 장치를 통해 부정할 수 없이 입증된 이것들을 우리는 유령, 꿈, 비밀이라 부른다. "사진은, 본래의 의도나 목적과는 다르게, 유령으로서의 인간을 증명하는 유일하면서도 강한 선언이다."(151쪽)

볼피의 사진론은 글쓰기로 증명해온 배수아의 문학론이기도 하다.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에서 아야미는 자기도 모르게 유사 초능력을 발휘할 때가 있다. 유리벽으로 막혀 있거나 가청 거리보다 멀리 있는 사람들의 말을 독순술로 알아듣는다거나, 소리를 들으면서 음향 장치 사이에 숨겨진 오래된 라디오나 전화기 저편에서 말하는 입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공감각 능력은 별도로 하더라도. 시력이 좋지 않은데도 어두운 밤 멀리 사고 난 버스 안에서 승객들이 읽고 있던 책의 내용을 알아보는 등. 아야미는 먼 곳의 이미지를 문자로, 먼 곳의 소리를 이미지로 전환하고, 먼 곳의 흐린 이미지를 가까이 명료하게 재생하는 기계-인간, 파장 변환기, 유령 탐지기다. 소설 속의 모순적인 디테일들은 행여 협소한 모방론적 관점에서 핍진성을 결여했다고 비판해서는 안 되는데, 왜냐하면 배수아의 서사가 모방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꿈의 작업이고, 꿈에서 우리는 이따금 신체와 시공간의 물리적 한계에 구속받지 않는 초능력자가 되기 때문이다. 아야미는 꿈꾸는 주체다.

배수아에게 글쓰기는 잠과 꿈, 백일몽과 환상처럼 정신이 이완된 상태에 신체를 믿어 내맡기고, 무의식이 선사하는 확장된 감각과 능력을 통해 새로이 느껴지는 세계를 기술하는 일이다. 기존 세계의 찰나, 틈, 껍질, 이면에서 알려지지 않은 어떤 것이 감지되고, 우리의 감각과 기술 능력이 증대됨에 따라 그것의 형상도 부풀어날 것이다. 언어의 세계도 그렇다. 글쓰기는 실물 세계뿐만 아니라 언어 자체의 균열을 들여다보기, 기존의 언어 망에서 구멍을 엿보고 아직 말이 되지 않은 말을 건져내기, 자기의 이야기에 틈바구니를 만들어 타인의 시와 소설을 초대하기다. 틈에서 비어져 나오는 것, 그것의 틈에서 다시 부풀어 나오는 것. 소설. 알려지지 않은 것의 내력은 이렇게 지속된다.

▲ <올빼미의 없음>(배수아 지음, 창비 펴냄). ⓒ창비
언어의 틈. 유령. 지속.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는 사실 작가의 전작 <서울의 낮은 언덕들>의 틈에서 부풀어 나온 유령이다. <서울의 낮은 언덕들>은 실종된 낭송극 배우 경희를 찾아 낭송극 극장이 있는 도시들을 순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이 방문한 극장들 중 하나가 아야미의 일터일 수 있지 않은가. 전직 여배우 아야미는 환생한 경희의 유령일 수 있지 않은가.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는 결국 <서울의 낮은 언덕들>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이어 쓴다. <서울의 낮은 언덕들>은 또한 그것의 전작인 <북쪽 거실>(문학과지성사 펴냄)의 틈에서 태어났는데, 왜냐하면 <북쪽 거실>에서 수니라는 인물 역시 낭송극 배우이자 오디오북 성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울의 낮은 언덕들>과 <북쪽 거실>은 <올빼미의 없음>(창비 펴냄)에서 미처 다 하지 못한 죽음과 애도의 이야기를 확장하는데, 미완성의 애도는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이후 알려지지 않은 차기작에서 거듭될지도 모르고. <북쪽 거실>에서 수니, 순이, 수알란처럼 한 존재에서 다른 존재로 옮아가는 이름들은 <훌>(문학동네 펴냄)에서 이미 극단적으로 실험되었으니······

책상 위의 책들이 늘어난다.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의 기원을 찾아. 네루다와 헤다야트의 책 곁에 배수아의 전작들이 어지러이 쌓여간다.

글쓰기가 언어의 틈을 들여다보고 넓히는 작업인 이상, 언어에서 꿈과 유령과 비밀을 엿보고 추출하는 행위인 이상, 문학에 투신한 독자는 텍스트를 읽을 때마다 그것이 생성해 나온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을 수 없다. 알려지지 않은 목소리를 낳은 다른 알려지지 않은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거슬러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면서 이미 읽은 페이지 틈에서 미처 읽어내지 못한 문장, 플롯, 상징, 기법, 감정 등을 다시 훑어야 한다.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의 뫼비우스 띠 서사 구조는 이처럼 독자에게도 독서의 무한한 반복을 요청한다. 단지 이 책을 넘어 다른 책들로까지 회귀하여 끝없이 다시 읽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놀랍게도 매번의 독서마다 지난한 반복을 상쇄하는 새로운 발견이 있어, 책상에 쌓여가는 책만큼, 작가뿐만 아니라 독자 역시 드넓게 확장된 감각적 세계와 언어의 수혜자가 된다는 것, 이것이 배수아의 환몽의 글쓰기가 독자에게 선사하는 쾌락적 효과의 요체다. 기쁘고 고맙다.

배수아 소설에서 인물들의 본질적 행위는 낭송과 여행이다. 그런데 낭송은 결국 독자의 임무. 언제든 그녀가 내게 보내는 유령을 따라다닐 준비가 되어 있다. 항적처럼. 나 자신 낭송하는 유령이 되려는 욕망이 있다. 죽어가는 자의 소식을 따라 멀리 여행하여, "다른 세계, 즉 완전히 다른 감각의 세계로 향하는 문"(44쪽)에 기꺼이 진입하려 한다. 이미 그랬던 적이 있다.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에서 배수아는 그것을 초대라 말한다. 여러 번 힘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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