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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게 소송을 걸다! 문학적 '똘것'의 탄생 배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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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게 소송을 걸다! 문학적 '똘것'의 탄생 배경은

[프레시안 books] J. P. 돈리비의 <진저맨>

아이패드 앱 중에 Discovr 시리즈라는 게 있다. 음악, 앱, 영화, 사람 따위가 서로 어떤 친족 관계가 있는지를, 각 요소를 하나의 노드로 삼아 연관 있는 것끼리 연결해서 클러스터 모양으로 만들어 보여준다. 예를 들어 <디스트릭트9>을 Discovr Movie에서 찾으면 <퍼시픽림>, <스타십 트루퍼스>, <소스 코드>, <혹성탈출> 등이 연결되어 나타난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재미난 소설을 읽으면 전에 읽었던 다른 소설과 노드 연결을 하곤 한다. 그렇게 해서 내가 읽은 책들이 머릿속에서 전체적으로 하나의 거대한 트리 구조를 형성...하면 좋겠지만 기억이 버텨주지 않아 그러지는 못하고 나무가 뇌세포 사망속도보다도 빠르게 죽어간다.

▲ <진저맨>(J. P. 돈리비 지음, 김석희 옮김, 작가정신 펴냄). ⓒ작가정신
그래도 뭔가 독서경험이 쌓이는 것처럼 생각하고 싶기 때문에 며칠 전에 읽은 <거대한 지구를 돌려라>(칼럼 매캔 지음, 박찬원 옮김, 뿔 펴냄)는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민음사 펴냄)과 연결했다. (같은 건물이 나온다는 매우 단순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유를 자세히 묻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사실 <거대한 지구를 돌려라>의 작가 칼럼 매캔이 아일랜드 출신이고 이 소설이 베트남전 직후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같은 아일랜드 출신 작가의 2차 대전 전후 이야기인 <진저맨>(J. P. 돈리비 지음, 김석희 옮김, 작가정신 펴냄)하고 연결이 지어졌으면 참 좋을 뻔했다. 그랬으면 이 글을 쓰기가 참 쉬웠을 것이다.

그런데 J. P. 돈리비의 1955년 문제작 <진저맨>은 읽으면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디에다 갖다 붙여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읽은 책의 데이터베이스가 작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책표지에도 "이제까지 본 적 없는, 어떻게도 분류할 수 없는 문학작품이다!"라고 적혀 있다.

계보가 명확하지 않고 눈에 뜨이는 계승자가 없는데도 이 책은 홀로 우뚝 살아남았다. 1998년 "모던라이브러리 선정 세계 100대 소설"에 들어갔고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4500만 부가 넘게 팔렸다고 한다.

<진저맨>은 돈리비의 첫 소설이자 대표작이다. 1926년 뉴욕에서 태어나 2차 대전 참전 뒤 아일랜드로 이주해 트리니티 칼리지에 다녔던, 소설 집필 전까지의 저자의 이력이 소설 주인공의 삶과 겹친다. 돈리비는 30여 군데 출판사에서 원고를 퇴짜 맞다가 마침내 사뮈엘 베케트 등의 작품을 낸 파리 올랭피아 출판사에서 초판을 출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진저맨>이 포르노 소설들과 같이 "여행자의 벗" 시리즈로 출간된 것을 알고 돈리비는 아무도 자기 작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분개했다. 결국 저작권을 되찾으려고 지루한 소송을 벌이다가 재정상태가 악화된 올랭피아 출판사를 몰래 사들였고 그러고 보니 "자기가 자기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는"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이 소설은 탄생 당시부터 몰이해와 싸우면서 문학사에서 제자리를 찾으려 분투했던 셈이다.

<진저맨>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더블린에 살며 트리니티 칼리지에 다니는 미국 출신 젊은이 시배스천 데인저필드가 먹고 섹스하고 술 마시고 깽판을 치고 친구들과 투닥거리는 이야기다. 말로는 법학을 공부해 법률가가 되겠다고 하지만, 머릿속에는 술 마시고 여자를 침대에 눕힐 생각이 가득하다. 처자식도 딸려 있는데 돈 벌 생각은 전혀 없고, 유일한 수입원인 제대군인 장학금은 홀랑 털어 술 사먹고, 돈이 떨어지면 아내가 모아놓은 푼돈을 털거나 그것도 없으면 셋집 물건이나 애인의 소지품을 훔쳐 전당포에 저당 잡힌다. 아내한테는 아무런 책임감 없이 함부로 대하면서 만나는 여자마다 어떻게 꼬셔볼까 궁리하는, 한 마디로 못 말리는 악당이다. 집은 망가지고 공부는 안 되고 돈은 떨어지고 경찰에 쫓기고 아내는 집을 나가고 뭐든 엉망진창이 되어버리는 것 같은데, 황당하게도 결국에는 그래도 다 잘 풀린다. 무뢰한이면서도 설명하기 힘든 매력의 소유자라 여기저기에서 외상으로 잘 사먹고 공짜로 얻어먹고 여자들도 쉽게 구슬려 낚는다.

주인공이 이런 인물이라고 해서 피카레스크(악한 소설)라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다. 시배스천 데인저필드는 <톰 존스>(헨리 필딩 지음, 류경희 옮김, 삼우반 펴냄)의 톰 존스처럼 명랑씩씩하지도 결국 뭔가 해내지도 않는다. 올랭피아 출판사에서 '여행자의 벗'으로 처음 출간할 때에는 유머 소설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슬랩스틱 코미디를 연상시키는 장면들도 있고 대사가 코미디 영화나 만화 대사처럼 찰지고 재기 넘치니 가히 여행자의 벗이 될 만하다. 하지만 한편 기묘하게 신경을 건드리는 우울함이 불쑥 불쑥 표면으로 올라온다. 과거를 회상하는 독백에 처연함이 깃든다.

혹은 주인공이 전후 '잃어버린 세대'에 속하는, 허무감에 젖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대표선수로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이종인 옮김, 열린책들 펴냄)에 나오는 프레더릭 헨리를 떠올려 보자. 참혹한 전쟁을 겪으며 희망을 잃은 프레더릭 헨리는 말은 자제하고 행동은 절제하고 감정은 억누르며 무게를 잡는다. 데인저필드는 딱 그 반대다. 말은 속사포처럼 쏟아 놓고 아무 것도 참지 않고 여기저기에서 사고를 일으킨다.


▲ <율리시즈>(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종건 옮김, 범우사 펴냄). ⓒ범우사
그러면 제임스 조이스에 갖다 붙여 볼까? 마침 시배스천의 아내 이름이 매리언인데 <율리시즈>(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종건 옮김, 범우사 펴냄)의 레오폴드 블룸의 아내 이름과 같다. 조이스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심증이 굳어진다. <진저맨>도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 서술된다. 그러나 3인칭 서술과 1인칭 헛소리가 뒤섞이며 마구 쏟아 붓는 듯한 이 책의 서사는 내면의 탐구라기보다 자기만 알아들을 수 있는 주사(酒邪)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시배스천의 분노와 폭력성을 1950년대 영국 노동자 희곡·소설의 한 경향인 성난 젊은이들(Angry Young Man) 혹은 미국 비트 세대 문학과 연결 짓기도 하지만, 시배스천의 일관된 즉물적 태도에서 저항의식이나 사회적 의식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정리하자면, 유머소설이나 피카레스크라고 보기에는 미묘하게 우울하고, 허무주의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조증(躁症)이고, 의식은 사색적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즉물적으로, 유아적으로, 파편적으로 내뱉듯 흐르고 방향성이 없다.

그렇지만 이게 대체 뭔지 알 수 없는 애매함 속에서 일단 그 독특한 문체와 리듬에 익숙해지면 '의외로'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시배스천이 웅얼웅얼 내뱉는 말투로 글을 썼기 때문에 한 문장 안에서 시점이 바뀌기도 하고 구두점이고 문법이고 안중에 없고 한 단어로 된 문장들도 많다. (그걸 이렇게 말이 되게 들리는 글로 만들어 내어 가며 번역하는 과정이 얼마나 수고로웠을지 상상도 하기 어려울 정도다.) 뭐 이런 놈이 다 있냐는 저항감을 버리고 그 문체에 익숙해질 즈음에는, 시배스천 데인저필드의 뒤죽박죽 정신세계를 따라 좌충우돌 행적에 몸을 맡길 수 있게 된다. 그러고 나니 무언가와 연결하려는, 어딘가에 끼워 맞춰 해석하려는, 논리와 윤리의 관점에서 작품을 설명하려는 강박도 떨치고 우스꽝스러우면서 때로 시적인 그 언어 자체를 즐길 수 있었다.

<진저맨>이라는 작품도, 소설 속의 시배스천 데인저필드라는 인물도,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어떤 노드와도 연결되지 않는) 문학적 똘것(전라도 방언-종이 다른, 어디에서 온지 모르는 것)인지 모르겠다. 데인저필드는 지금 살고 있는 구세계에도 떠나온 신세계에도, 구교에도 신교에도, 도덕, 일, 돈, 미래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소유하지도 소유 당하지도 않으려고 하고, 그 어떤 정신도 표상하지 않는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 절망, 소리 높이지 않는 광기, 애써 피해온 공포, 공허한 웃음, 몸부림치는 의지, 방향을 잃은 갈망을 어렴풋이 느끼게 하는 언어가 있을 뿐. 설명 불가능한 작품이니 겪어볼 밖에.

그는 부서진 건물을 지나 다리의 비탈진 쪽을 내려가고 있었다. 곧고 검은 형체를 가진 낯선 이여. 이리 오면 내가 말해줄게요. 바다에서 파도가 높은 곳, 부드럽고 축축하고 따뜻하며 때로는 햇빛으로 얼룩진 바람이 부는 곳은 어디인지. 모든 것이 말해지고 그에 대한 반응이 있는 곳을 이렇듯 격렬하게 동경하는 평화로운 마음. 나는 겨울밤에 시골길에서 말발굽이 돌바닥에 부딪혀 불꽃을 일으키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알았다. 말들이 달아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말들은 이제 곧 들판을 가로지를 것이고, 들판을 달리는 말발굽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려오리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말했다. 말들은 어떤 영혼과 함께 있는 죽음을 향해 이를 드러내고 광포한 눈으로 달려가고 있다고.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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