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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르네상스적 예술인, 100년 인생을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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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르네상스적 예술인, 100년 인생을 돌아보다

[프레시안 books] 박용구의 <먼동이 틀 무렵>

01. 월북 예술가들의 친구

'박용구'라는 이름을 맨 처음 접한 계기는 1990년 12월 방영된 MBC 창사특집 3부작 다큐멘터리 <인간시대-나의 아버지 김순남>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1988년 10월 28일 납/월북 예술인 해금조치가 시행된 이후, 역사의 질곡에 가려진 사람들의 삶이 일반 사람들에게 부분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월북 작곡가 김순남, 월북 문인 임화, 월북 화가 이쾌대 등과 교유한 남한의 평론가 박용구는 왠지 그들의 과거를 떠안은 곡절 많은 인물로 여겨졌다. 김순남의 <산유화>에 관해 조선가곡을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작품으로 평가한 그가,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평론집 <음악과 현실>(예솔 펴냄, 1949년/1998년)을 출간한 선구적인 평론가이며, 최초의 창작뮤지컬 <살짜기 옵서예>의 작사가임을 의식하게 된 것은 훗날의 일이다.

도서관이나 서점의 잡지 진열대에서 <객석>, <춤> 등 문화관련 저널을 훑어보다가 이따금 그의 글을 접할 때면 흑백 사진 속의 월북 예술가들의 친구이자 원로 평론가라는 인상이 부조됐다. 고령기로 접어들수록 서서히 활동이 줄어드는 여느 원로 예술가들과는 달리, 그의 활동은 1990년대 민족예술운동을 주도하던 좌파 예술인들의 공연예술 작업이나 대척점에 있던 순수 예술인들의 무대에서 대본 집필자, 평론가, 연출가, 제작자, 자문위원 등의 직함으로 지속적으로 눈에 띄었다. 가령 민족가극 <금강>(문호근 총연출, 박용구 자문), 창작 가극 <심청>(박용구 대본/연출, 이건용 작곡), 창작 발레 <바리>(박용구 대본, 이건용 작곡) 등의 작업에서 박용구의 역할은 비평가보다는 창작자로서 협업이었다.

02. '겹'의 인생, 르네상스 인간형을 길러낸 행운의 만남

▲ <박용구-한반도 르네상스의 기획자>(수류산방.중심 편집부·국립예술자료원 지음, 수류산방 펴냄). ⓒ수류산방
1914년생 박용구 옹의 인생의 여정과 예술편력을 풀어놓은 <박용구-한반도 르네상스의 기획자>(수류산방.중심 편집부·국립예술자료원 지음, 수류산방 펴냄)는 일제 식민지 시기부터 해방기를 거쳐, 6.25 전쟁 전후 근현대예술사를 아우르는 대하 다큐멘터리로 어느 쪽을 펼쳐 보더라도 지루하지 않을 만큼 여러 갈래의 이야기가 다양한 시공간을 배경으로 겹쳐져 있다.

공연예술계의 1세대 평론가이자 창작자인 그가 지금까지도 후배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저력은 타고난 좋은 환경과 시대적 흐름을 기민하게 체득한 자질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경상북도 풍기의 한의사집 셋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부친의 유별난 총애를 받았고 풍족한 집안 환경의 수혜를 충분히 누리면서 신학문을 접했다. 유년기에 예술 세계로 이끌어준 자형이자 보통학교 담임선생인 김희규 선생의 소개로 연극과 음악 세계에 눈 떴고, 고단샤에서 발행하는 잡지 <소년구락부>를 정기구독했으니 소년 시절부터 새로운 정보에 밝았다. 풍기공립보통학교를 마치고 평양고보로 유학을 가서는 훗날의 사학자 한우근, 소설가 김사량, 극작가 오영진, 교육자이자 법학자 선우종원, 미술가 박영선 등과 동기·선후배로 지냈고, 소설가 이광수의 강연을 직접 듣는가 하면, 재학 시절에 영화를 보러 다니던 평양 제일관에서 최승희의 춤 공연을 처음 관람하는 행운을 누린다.

평양고보 독서 서클에서 좌익 서적을 탐독하다 퇴학을 당하고 고향에서 지내던 박용구는 문학을 할 요량으로 일본으로 건너간다. 수업료만 내면 입학이 가능했던 일본 대학 미학과에 적을 걸어두고 음악을 하고자 우에노 음악학교 김문보를 찾아가서 개인교습을 받는다. 또한 일본 무용계의 대가인 이시이 바꾸 무용연구소에서 다니며 레슨을 받고 예비 무용가들과 교분을 쌓는가 하면, 동경학생예술좌 회원으로 활동하며 외국 희곡 공부, 독회 활동,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 방법론을 익히며 20세기 연극계를 주도한 세계적인 흐름을 당대적으로 공유한다. 때마침 히틀러 정권이 들어선 직후였던 시기라 일본에도 유대인태생의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건너와 다양한 음악 활동을 전개했는데 박용구는 그들의 공연장을 부지런히 쫒아다니며 일본의 교향악단이 급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본다.

그가 가는 곳마다 근현대사의 문제적 인물들과 문화 예술계의 주요 인물들과의 만남이 예비되어 있는 천운이 따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는 항상 눈과 귀를 예민하게 열어두고 좋은 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는 열정과 근성이 그런 만남을 가능케 하는 방향으로 그를 이끌었을 것이다.

<음악평론> 잡지사 시절에 경험한 일본의 선진적인 공연장 문화, 일본의 음악 잡지들을 섭렵한 체험담을 읽노라면, 식민지 체제를 살아가는 조선인이 일본 고급문화에 동화되어 마음껏 향유하며 자신의 심미안을 키웠고, 선민으로 혜택을 누린 그런 체험이 그에게 현대적인 종합예술인의 시각을 키워줬음을 짐작케 한다. 후학 연구자 중에 그의 일본 체류 시절에 드러난 일본 문화 경도에 비판적인 시선을 갖고 있는 이도 있다.

▲ 1971년 12월, 월간 <세대> 좌담회 풍경. 왼쪽부터 박용구, 건축가 김수근, 소설작 조선작, 천문학 박사 조경철. ⓒ수류산방 제공

03. 종합예술의 미래형, 심포닉 아트(Symphonic art)

거의 모든 예술 분야를 동시대적으로 섭렵한 박용구의 20세기 편력사를 육성으로 담은 첫 자료라고 할 수 있는 장광열과의 대담집 <20세기 예술의 세계-박용구 옹의 증언>(지식산업사 펴냄)의 머리말에서, 그는 담담하게 격랑의 시대를 겪고 살아남은 소회를 밝히고 있다.

"부당한 권력에 저항할 담력도 추진력도 모자라는 나는, 눈이나마 옳게 뜨고 보기라도 하자는 생각으로 살아온 세월이 어느덧 20세기를 넘기고 보니, 그런대로 동공(瞳孔) 바닥에 쌓인 것이 누룩처럼 곰삭아서 쥐어짜면 간장으로 쓰일 곳이 있음직도 했다."

이 대담집에는 일본 식민지 시대의 연극계 분위기, 1930년대와 1950년대 일본 체류 시절의 예술적 체험은 물론 월북 예술가, 자살한 예술가들의 비운의 삶 등이 담겨 있다. 또한 여기서 그는 종합예술의 미래형으로서 장르 간 통섭, 나아가서는 동서양간의 벽을 허무는 '심포닉 아트'를 제창하며 새로운 실험과 도전의 실천을 다짐하는 '영고(迎鼓) 21 선언'을 발표한다. 2000년대 들어 무용가 안은미와 더불어 <안은미의 춘향>(박용구 대본, 음악감독 장영규), <심포카 안은미의 바리>(박용구 대본)를 선보인 협업은 자신의 예술관인 심포카의 세계를 구현한 예에 가깝다. 박용구가 표방하는 '심포카(심포닉 아트)'는 간단하게 말하자면 동서양의 예술이 장르간 벽을 허물고 어우러지는 21세기의 총체예술, '굿의 현대화'라고 할 수 있다.
▲ <먼동이 틀 무렵-박용구 심포카 시놉시스>(박용구 지음, 수류산방 펴냄). ⓒ수류산방

백수를 기념하여 발표한 심포카 시놉시스 <먼동이 틀 무렵>(박용구 지음, 수류산방 펴냄)은 한민족의 DNA 이동 계보를 상상한 거대한 환타지 극본이자, 고대적 샤먼의 주술적 이미지부터 3D 디지털 기술까지 동원하여 박용구의 '심포카' 예술 양식을 구현한 100년의 기억지도다. 백수를 맞이한 박용구 선생이 비평과 창작을 겸비한 현재진행형 최장수 예술인으로서 건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나르시시즘에 안주하지 않고 자기반성과 비평정신을 견지한 비판적 태도와 새로운 것을 흡수하는 유연한 사고라고 여겨진다.

동서고금의 사상을 융합하고 고대적 예술적 형식에 현대적 기술을 결합한 총체예술, 즉 심포카 예술 양식이 한반도의 르네상스를 가능케 한다는 그의 예감이 언젠가 실현되기를 바랄 따름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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