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가 하면 인문학 연구자에게 좋은 전기 쓰기란 좋은 학술서 쓰기보다 훨씬 커다란 노고를 들여야 하는 일이다. 텍스트를 해석하기 이전에 발굴, 수집, 정리하는 아키비스트의 작업을 겸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기의 대상 인물이 남긴 파편적 자료들의 거대한 더미 앞에서, 학술적 가치는 거의 없는 편지와 일기를 해독하며 지성인 이면의 정념과 약점을 이해하고, 이제껏 아무런 중요성을 부여받지 못했던 메모 쪼가리들을 읽고 엮어 유의미한 논제를 만들어야 한다. 파편에서 파편으로. 파편들의 네트워크를. 전기 서술자는 선배 학자가 체험했을 감각적 시공간, 언어, 환상의 세계를 재구성하고 그 안에서 그의 정신의 방랑의 궤적을 더듬어 그려야 한다. 타인의 기억을 서사화하되. 최대한 사실에 입각하여. 최대한 자료에 충실하게. 그것이 아키비스트의 미덕이다.
| ▲ <아비 바르부르크 평전>(다나카 준 지음, 김정복 옮김, 휴먼아트 펴냄). ⓒ휴먼아트 |
기억 수집가의 이야기. 다나카 준의 <아비 바르부르크 평전>(김정복 옮김, 휴먼아트 펴냄)은 기억과 아카이브의 주제에 천착한 독자로서 오랫동안 번역을 기다려온 역작이다. 존경할 만한 영혼의 충실한 전기이자 그의 이론과 사상에 관한 탁월한 해석서다.
아비 바르부르크(1866~1929)를 가장 간단하게 소개해야 한다면 함부르크 태생 유태인 미술사학자, 이미지 인류학자, 그리고 도상해석학의 창시자라 할 수 있다. 미술사에 상당한 지식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곰브리치나 파노프스키에 비해 바르부르크의 이름은 거의 미지에 가까웠다.
그 까닭은 바르부르크가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보티첼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제도권 학계에 소속되어 제자들을 길러내고 학파를 형성하는 대신, 이탈리아와 미국 등지를 떠돌며 자율 연구를 수행하다, 함부르크에 귀향하여 사재로 설립한 문화학 도서관에서 방대한 서적과 이미지를 수집하며 독자적인 사유의 체계를 구현하는 데 힘을 쏟았기 때문이다. 바르부르크가 죽은 뒤 학문적 후계자 없이 남은 도서관은 나치의 침탈을 피하려 런던으로 이주했고 런던 대학교 부설 기관으로 병합되었다.
바르부르크가 고안하고 명명한 도상해석학은 후배인 파노프스키가 계승하여 발전시켰고, 곰브리치는 런던 바르부르크 인스티튜트 아카이브 소장으로 재직할 당시 그의 전기를 쓴다. 파노프스키적 이미지 해석 방법론과 곰브리치의 연대기적 양식사의 이면에 바르부르크는 유령처럼 은밀히 잠재해 있다. 억압되어 있었다고 해도 과히 틀리지 않다.
바르부르크의 이름은 오랫동안 주류 학계의 주변부를 떠돌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독일 소장학자들에 의해 전집이 출판되면서 한순간에 귀환한다. 부활한다. 1999년 주요 저작들이 영어로 번역되자 벤야민이나 프로이트 같은 동시대 사상가들과의 비교 연구가 활발하게 수행되었고, 프랑스에서는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을 필두로 바르부르크의 방법론을 응용하여 이미지의 역사를 재구축하고 현대 예술과 접목하려는 흐름이 생성되었다. 다나카 준에 따르면 바르부르크는 일본에도 "비교적 널리 알려져"(10쪽) 있어서, 곰브리치의 바르부르크 전기는 이미 1986년에 번역되었고 1999년에는 그에 관한 전시회도 개최되었다고 한다.
| ▲ <인문예술잡지 F> 9호(맹정현·김정아 외 지음, 문지문화원사이 펴냄). ⓒ문지문화원사이 |
망각과 억압.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존하는 생의 파편과 부활. 잠재와 발현. 죽음 이후 생의 지속을 가능하게 하는 서로 다른 언어로의 번역과 국경을 넘는 이미지의 이동. 바르부르크의 지적 유산이 겪은 운명은 그의 사유의 핵심적 주제들에 정확히 일치한다.
바르부르크의 박사 논문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과 <봄>의 문헌학적 기원을 추적하면서 호메로스의 서사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미 이때부터 그의 관심은 르네상스 또는 그 이후까지 유럽의 예술과 일상생활에 고대적인 것이 지속적으로 잔존하고 간헐적으로 발현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데 있었다. 빙켈만 이후 독일 예술사학계에서 고대 예술은 고요하고 정적인 위대함으로 규정되어 왔다. 이런 관념을 전복하며 바르부르크는 고대적인 것은 무엇보다 파토스의 분출에 있으며 그러한 격렬한 감정을 발산하는 인간의 몸짓이야말로 이미지의 역사에서 지속되어 왔다고 주장한다.
"해방된 신체 표현은 가눌 수 없는 슬픔에 빠져 있는 모습에서 잔인한 식인 체험의 흥분 상태까지, 격렬한 감정에 휩싸인 인간의 상태를 몸짓 언어로 표현한 모든 단계에 걸쳐 있다. 그리고 그것은 도취된 제의 행진에서 싸우고 걸어가고 달리고 춤추고 움켜쥐는 인간 운동의 다이내미즘으로, 예술 작품의 표현 속에서 무한한 몰아 상태의 흔적을 발산한다."(333쪽)
감정의 움직임은 직접적인 몸짓이 아니더라도 출렁이는 바다의 물결, 휘날리는 머리카락과 옷의 주름 등에서 은유적으로 발견된다.
| ▲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출처Wikimedia Commons) |
광기, 분노, 슬픔, 희열, 공포, 열광 등 주체할 수 없는 거센 감정에 휘둘릴 때의 신체 동작. 감정에서 신체로 전이되는 파동의 포착. 그것이 바로 바르부르크 미학의 가장 독창적 개념인 파토스포르멜(Pathosformel)이다. 다나카 준은 정념정형으로 번역한다. 바르부르크는 이처럼 파토스를 외적으로 형상화하는 신체와 부속물의 이미지 파편을 평생에 걸쳐 탐색하고 수집했고, 말년에는 "므네모시네," 즉 기억의 여신이라는 이름 아래 그것들을 검은 도판에 배열하여 거대한 이미지의 지도를 제작해나갔다. 프로젝트는 바르부르크의 갑작스러운 사망 때문에 미완성으로 남았지만, "므네모시네"의 압도적으로 경이로운 이미지와 한 사람의 개체적 생을 초월하여 고대 이전부터 현대까지 인류가 공통으로 겪어온 파토스의 기억을 집적하려는 열망은 바르부르크를 알게 된 사람이라면 누구든 굳게 사로잡을 것이다.
"므네모시네"에서 압도의 감각은 중요하다. 60여 개의 검은 도판에 빼곡히 배열된 수천 장의 이미지. 이미지는 무한히 증식하면서 평면 바깥으로 범람하여 그것을 바라보는 자를 위협하려 한다. 이미지 자체가 파토스의 근원, 즉 극한으로 고양될 경우 고통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감각의 유발자다.
여기서 이미지 생성에 대한 바르부르크의 독특한 사유가 도출된다. 바르부르크는 아메리카 인디언 부족의 뱀 제의나 고대 아랍 점성술 등 유럽 외곽의 문화와 이미지 표상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외부 세계나 미지의 타자를 마술적 정령 같은 공포와 위협의 근원으로 인식한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이때 인간은 위협적인 미지의 마신을 그것에서 연상되는 자기가 이미 아는 다른 대상의 이미지로 치환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한다. 다시 말해 이미지는 인간과 그가 감당할 수 없는 끔찍한 실재 사이에 거리를 구획하고, 막을 드리우고, 인간에게 지적 사유와 관조의 공간을 열어준다. 그런데 이미지는 위험한 외부의 힘을 막으면서도 본질적으로는 그것을 담지하고 연상시킨다. 이것이 바로 다나카 준이 강조한 이미지의 양극성이다. 양가성이라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이미지가 방어하면서도 내포한 실재의 위협으로 인해 언제든 관조의 공간이 무너지고 "착란과 광기의 파동이 매개 없이 밀려올 가능성"(127쪽)이 있다.
<아비 바르부르크 평전>의 가장 큰 미덕은 저자 스스로 자부하듯 곰브리치의 전기에서 의도적으로 생략한 바르부르크의 정신분열증 발병 시절을 상세히 기술했다는 점이다. 다나카 준은 바르부르크의 크로이츠링겐 병원에서의 뱀 제의 강연과 말년의 "므네모시네" 프로젝트에 대해 우선은 분열증자로서 붕괴된 사유 공간을 이미지의 힘으로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또한 이미지의 양가성으로 인해, 꿈틀거리는 뱀처럼, "말을 잃어가면서 검은 패널 위에 정념의 몸짓의 배치를 어지럽게 계속"(379쪽) 이어가는 행위는 "퇴행적인 망각으로의 길"(379쪽)을 더듬어가는 일이기도 했으리라.
이 잠정적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다나카 준의 진중하면서도 화려한 논증도 바르부르크의 사유처럼 꾸준한 순환과 회귀의 나선 운동을 반복한다. 기꺼이 빠지고 갇히고픈 언어의 미궁을 만들어간다. 섣불리 요약하는 대신 다른 독자들의 독서 체험의 몫으로 남긴다.
보충1
다나카 준의 <아비 바르부르크 평전> 출간을 계기로 바르부르크의 저작 및 다른 주요 연구서들도 번역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행여 관심 있을 번역자와 출판사를 위해 간략한 추천 도서 목록을 작성해보았습니다.
1) Aby Warburg, Gesammelte Schriften 1-7, Berlin, Akademie Verlag, 1998-2009.
2) E. H. Gombrich, Aby Warburg: An Intellectual Biography, Chicago, Chicago UP, 1970.
3) Ludwig Binswanger und Aby Warburg, Die unendliche Heilung: Aby Warburgs Krankengeschichte, Diaphanes, 2007.
4) Georges Didi-Huberman, L'Image survivante: Histoire de l'art et temps des fantômes selon Aby Warburg, Paris, Minuit, 2002.
5) Philippe-Alain Michaud, Aby Warburg et l'image en mouvement, Paris, Macula, 2005.
보충2
1) 책의 원제는 <아비 바르부르크 기억의 미궁>입니다. 한국어 제목 <아비 바르부르크 평전>은 아마도 독자들에게 바르부르크의 이름을 더욱 직설적으로 알리기 위해서라고 짐작되지만 원제의 시적인 함의를 전혀 전달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기억은 바르부르크 사유의 핵심어고 미궁은 바르부르크의 기억 이미지에 대한 다나카 준의 독창적인 해석이라는 점을 고려하자면 더욱 그렇습니다. 부제로라도 표기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2) 번역은 사소한 오역 몇 군데를 제외하고 전체적으로 무리 없지만, 아마도 책을 급하게 출간한 듯, 오탈자가 수십 군데나 되어 원활한 독서를 방해합니다. 특히 한국어 옆에 병기된 독어, 불어, 영어 용어들 철자에 오탈자가 많습니다. 학술서의 신뢰도는 엄밀한 용어 사용으로도 결정되는 만큼, 좋은 책을 번역 출간하는 과정에서 교정 교열에 무심했다는 점이 매우 아쉽습니다. 또한 아마도 가타카나를 거의 그대로 옮겨서 그랬겠지만, 서구 학자들의 이름이 부정확한데다 동일인의 이름도 하나의 표기법으로 통일되지 않은 경우도 꽤 있습니다. 재판을 출간할 때 꼭 고려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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