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기자들이 흔히 쓰는 용어 중에 '엠바고(embargo)'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로 '보도 자제' 정도로 해석될 이 말은, 어떤 사실에 대해 알려는 주되 일정한 시간까지는 보도를 자제해 달라는 일종의 약속이다. 예를 들자면 경찰의 수사과정에서 유력한 용의자가 밝혀졌지만 이를 보도할 경우 용의자에게 피신할 기회를 주기 때문에 그를 잡을 때까지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또 한편 이와 비슷한 의미에서 '오프 더 레코드(off-the-record)'라는 표현이 있다. 우리말로는 '비보도'라고 할 수 있는데, 말 그대로 기록에도 남기지 말고, 더더구나 보도는 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이런저런 사실들을 설명해주는 것이다. 말하자면, 보도를 해서는 안될 주요 사항이지만 취재기자에게 꼭 해명을 해야 할 상황에서 주로 오프 더 레코드가 걸린다.
엠바고와 오프 더 레코드는 한때 정부에서 언론을 통제하는 가장 유용한 수단 중의 하나로 오남용을 심각하게 하는 바람에 그 악명이 높았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도 출입처와 기자들 사이에서는 사안에 따라 이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신문기자들과 빈번히 접촉할 수밖에 없는 나에게 있어서도 엠바고와 오프 더 레코드는 때때로 아주 중요한 수단이 된다. 전경련에서 진행하고 있는 어떤 프로젝트에 대해 기자들이 미리 눈치를 챘거나 미리 외부로 알려져서는 안될 기밀사항들이 새나갔을 경우 기자들에게 엠바고나 오프 더 레코드를 요청하는 것이 바로 내 임무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이런 약속들은 잘 지켜졌다. 어차피 칼자루를 쥔 것은 기자들 쪽이었지만 어지간한 특종이 아닌 다음에야 굳이 우리와의 관계를 악화시킬 이유가 없었던 때문이다.
하지만 1986년의 어느 날, 나는 단 한 사람의 기자에게 엠바고를 요청하느라 피가 마르는 듯한 긴장 속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했던 적이 있다. 바로 미국 민주당의 대통령 예비후보였던 게리 하트의 생각 없는 말실수 때문이었다.
1986년, 미국에서는 게리 하트 돌풍이 불고 있었다.
지난 겨울,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고어와 부시 후보간의 개표 파동에서 보았듯이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우리와 많이 다르다. 특히 그중에서도 우리와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 바로 대의원에 의한 간접선거라는 점. 그리고 한 주에서 승리하면 그 주의 대의원 표를 몽땅 한 후보가 '독식'을 한다는 점도 우리와 매우 다르다.
게리 하트 돌풍의 내용은 당시 2년후인 1988년의 제 42대 대통령 선거에서 그가 당선될 것이 유력하다는 것. 민주당 내에 그와 경쟁할 만한 별다른 인물이 없었던 데다 공화당은 8년 동안 굳어진 레이건의 이미지를 넘어설 만한 후보감이 없었던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통령 선거가 2년이나 남은 시점에서 게리 하트의 당선이 대단히 유력시 되고 있었다.
그해, 게리 하트의 한국 방문은 이런 점에서 국내외 여론의 스포트 라이트를 받고도 남음이 있었다.
*** 국가원수급 환영**
김포공항에서부터 마치 국가 원수급 환영을 받은 게리 하트의 일정은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빡빡하게 채워졌다. 정부 고위 관리들은 물론 미국과 조그마한 이해관계라도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의 눈도장을 받기 위해 각종 만찬회니, 환영회니, 연설회니 하면서 준비를 했던 것이다.
전경련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설사 그가 대통령 선거에서 떨어진다 하더라도 아직 젊은 나이였고, 언제든 대권을 노릴 수 있는 거물이었기 때문에 그와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어두는 것이 바람직했다. 그러나 현직 대통령도 아니고, 경제학자도 아닌 사람에게 강연회나 연설회는 어울리지 않는 일. 우리 역시 환영 리셉션을 준비하고 그를 초청했다.
1986년 12월 10일. 남산 하얏트 호텔로 가는 편도 1차선의 좁은 길은 국내외 고급 승용차의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게리 하트를 만나기 위해 한국 경제계의 거물들이 대거 출동을 한 데다 어떻게 해서든 그를 만나기 위해 전경련 주최 리셉션에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정각 오후 6시. 전경련 주최 미 대통령 후보 게리 하트 환영 리셉션은 각 언론의 화려한 플래시 세례 속에서 막이 올랐다. 주인공은 물론 게리 하트. 리셉션에 참가한 사람들은 그와 한마디라도 나누기 위해 애를 썼고, 예상 밖의 환대 때문인지 게리 하트는 꽤나 들뜬 분위기였다. 하긴 누구라도 그렇지 않겠는가. 자신을 주빈으로 하는 환영 리셉션에다 미국 내에서보다 더 열띤 관심과 환영.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바쁘게 돌아가던 리셉션 분위기와중에 정주영 회장과 게리 하트가 마주 섰다.이미 수인사를 나눈 처지라 정회장은 미리 준비하고 있던 것을 단도직입적으로 거론했다.
"지금 미 해군은 전세계 5대양에 걸쳐 배치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트 의원께서 해군 장교 출신이라 잘 아시겠지만 여기에 드는 비용이 엄청납니다. 그리고 미국에서도 그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비용을 절감하는 방법을 함께 의논해 보았으면 합니다."
"한국에서 미국의 국방예산을 절감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것은 미 해군이 필요로 하는 전함을 한국에서 건조하는 것입니다. 물론 군사기밀에 속하는 특수 함정이나 최첨단 함정은 곤란하겠지만 일반 전함만이라도 한국에서 건조를 한다면 미국으로선 엄청난 예산 절감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사실 정회장은 게리 하트 의원이 아무리 촉망받는 대통령 후보라고는 해도 당장 해군 함정을 한국에 맡길 수 있을 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은 나름대로 몇 가지 포석을 깔고 있는 것이었다.
***정회장의 깊은 포석**
우선 당장 성사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미국의 막강한 실력자이자 해군 출신인 게리 하트를 통해서 미국의 입장을 엿보자는 의도가 있었고, 예상대로 그가 대통령에 당선이 된다면 오늘의 이야기가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직 여러 후보 중의 한 사람에 불과한 게리 하트 의원을 마치 대통령 당선자라도 되는 것처럼 부추김으로써 향후의 관계를 미리 다져놓자는 의도도 적지 않이 있었던 것이다.
다시 게리 하트가 물었다.
"한국에서 해군 함정을 건조하는 것이 어째서 우리 미국의 국방비를 절감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알아듣도록 설명을 좀 해주시겠습니까?"
"한국의 선박 건조 기술은 이미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게다가 임금 또한 대단히 경쟁력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 함정을 건조하게 되면 다른 곳에 발주했을 때에 비해 거의 절반밖에 비용이 들지 않는 것입니다. 저희들은 오래전부터 이런 사실들을 알고 있었지만 해군 함정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만한 위치에 있는 분을 아직 뵙지 못했기 때문에 이를 전달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마침 하트 의원께서 한국을 찾아주신 기회에 이런 말씀을 드릴 수 있게 되어 참 다행입니다. 미국으로 돌아가시면 의원님의 전문적인 견해와 함께 저희들의 입장을 잘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아, 정말 좋은 생각입니다. 미국에 돌아가면 꼭 이를 검토해서 실현되도록 해보겠습니다."
정회장과 게리 하트 의원의 이야기는 이어서 한미간의 무역역조라든지 세계 정세 등에 대한 것으로 옮겨갔다.
다소 들뜬 탓이었을까? 혹은 리셉션에서 마신 몇 잔의 칵테일 때문이었을까? 통역을 하기도 바쁠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던 게리 하트 의원의 눈이 갑자기 작아졌다. 누군가에게 자신만이 알고 있는 비밀을 이야기할 때의 그 눈.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야기가 그의 입에서 술술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누구도 들어서는 안될 '금역'의 이야기들.
"사실은 제가 오늘 낮에 전두환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아, 예…."
"대통령께서 제게 특별한 주문을 했습니다."
"특별한 주문이라뇨?"
***천기누설 아닌가**
"아, 왜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제가 내일 소련으로 가서 고르바초프 수상을 만나는 거 말입니다. 그러니까 고르바초프한테 전해달라는 메시지 말입니다. 내용을 들어보니까 전두환 대통령은 내후년에 있을 88 올림픽 때문에 무척 신경이 쓰이는 모양입니다. 전대통령은 나더러 고르바초프 수상에게 첫째 소련이 꼭 서울 올림픽에 참석하여 반쪽 올림픽이 되지 않게 도와줄 것과, 둘째 혹시 북한이 방해공작을 펼지도 모르니까 그걸 좀 막아달라는 거라고 하더군요.참, 셋째 한국은 소련과의 관계 개선에 관심이 많다는 이야기도 꼭 좀 전해달라고 하더군요. 어차피 이제 냉전도 깨어져가고 소련도 페레스트로이카를 하고 있는 마당이니 당연한 결론이죠. 그리고 넷째는…"
맡은 바 임무가 통역이라 그의 말을 정회장에게 전하면서도 나는 한껏 목소리를 낮추었다.
세상에, 한 국가 원수가 다른 국가 원수에게 전하는 메시지 내용을… 그야말로 천기누설이 아닌가.
한 나라의 국가 기밀을, 사후도 아니고 사전에, 그것도 정부관리도 아닌 민간인에게 저렇게 털어놓다니…. 더더욱이 미국등 강대국의 관심이 고조된 그때 한반도 상황과 분위기에서 솔직히 그의 정신이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정회장이 아니었다. 그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남에게 들었다고 다른 데다 말을 옮길 사람도 아니고, 나 역시 직업상 어떤 기밀을 듣더라도 결코 누설해서는 안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정회장은 그저 일상적인 사업 얘기라도 들은 양 태연한 척하고 있었지만 나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혹시 누가 딴 사람이 듣기라도 했다면?
오싹한 기분으로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다행히 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느라 우리 이야기를 듣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하긴 바싹 붙어서 있었더라도 내 목소리가 워낙 작았기 때문에 알아듣지도 못했을 터였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조금전까지 우리 주위에 있었던 것 같았던 젊은이가 저쪽 출구 쪽으로 서둘러 걸어나가는 것이 아닌가. 안면이 있는 코리아 헤럴드의 신참 기자였다. 몹시 서두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그가 우리의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을 확신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영어로 기사를 쓰는 영자지 기자의 귀에 게리 하트의 이야기는 쏙쏙 박혔으리라.
나는 통역이고 뭐고 두 사람을 내버려둔 채 서둘러 그를 쫓아갔다.
"여보, 김기자. 나 좀 봅시다."
순간 당황한 듯한 그의 얼굴이 홱 뒤를 돌았다.
"왜 그러십니까? 저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다 아시면서 왜 그러십니까? 우리 얘기 들었죠?"
"무슨 얘기 말씀입니까?"
그는 계속 오리발을 내밀었지만 어설픈 신참 기자의 수에 쉽게 넘어갈 나도 아니었다.
결국 그는 우리의 얘기를 들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가 양보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거기까지. 나의 엠바고 요청을 그는 단번에 거절했다. 하긴, 신참 아니라 최고참이라 해도 그 정도 특종을 잡을 기회는 평생에 한 번 올까말까 할 정도였으니, 기자로서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였으리라.
*** 내가 쓴 비상수단**
결국 그는 간절한 나의 요청을 묵살한 채 신문사로 향했다. 잠시 후 그가 신문사에 도착했을 무렵 신문사로 전화를 걸어 데스크에게 직접 협조를 요청했지만 속된 말로 '씨도 먹히지 않았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이제 남은 마감시간은 불과 몇 시간. 그 안에 그를 제지하지 못하면 내일 아침 신문 1면은 '전두환 대통령, 미 대통령 후보 게리 하트 의원 통해 고르비에 친서 전달' 이런 타이틀이 대문짝만하게 장식하리라. 그리고 그것이 가져올 국내의 파장은 감히 폭발적일 것이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초조와 불안으로 머리가 빠개질 듯 아파 오면서 식은땀까지 흐르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고민에 빠져 있던 내게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지! 거기가 있었지!'
내 머릿속에 떠오른 곳은 바로 안기부였다. 당시만 해도 각 신문사마다 안기부 요원이 상주하다시피 하면서 글의 내용은 물론 '사진을 넣어라 빼라'까지 간섭을 하곤 했다.
나는 곧 전경련을 출입하던 안기부의 이사무관 집으로 연락을 취했다.
"아, 이사무관님 안녕하십니까. 저 박정웅입니다."
"아니, 이 시간에 웬일이십니까?"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나는 사건의 전후를 소상히 설명하고 담당 기자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명색 안기부 전문가인 그에게 사안의 심각성을 길게 설명할 것도 없었다.
"나로서는 할 만큼 했어요. 이젠 당신들 차롑니다. 사안의 중대성이야 나보다 더 잘 아실 테고…."
다음날, 신문에는 고르바초프 이야기는 단 한 줄도 실리지 않았다. 나는 안기부에서 어떻게 했는지는 알고 싶지 않았다. 말 그대로 '불문가지'의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날 그런 실수를 저지르고도 자신이 무슨 실수를 저질렀는지 그때나 지금이나 염두에도 두고 있지 않을 게리 하트 의원에 대한 실망은 엄청났다.
그리고 그날 밤, 리셉션이 끝나고 만찬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을 때 나는 다시 한 번 그에게 깊은 충격을 느꼈다.
자신의 실수조차 깨닫지 못하는 게리 하트와 끝까지 아무것도 모른 척했던 정회장은 이윽고 만찬장으로 자리를 옮기기 위해 사람들과 함께 출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감색 정장을 차려 입은 2∼3명의 건장한 청년이 우리 앞을 가로막은 것은 바로 그때였다.
"누구요?"
그러나 그들은 처음 그대로 무표정인 채 게리 하트 의원의 양쪽에 서며 담담한 어조로 한마디만을 남겼다.
"게리 하트 의원을 모시러 왔습니다."
"당신들 누군데 이분을 모시고 간다는 거요? 대체 어디로 간다는 거요?"
"우리는 '위'에서 시킨 대로만 할 뿐입니다. 궁금하신 사항이 있으시면 '위'에다 직접 물어보십시오,"
위에서 시킨 일이라는데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때는 그런 시기였던 것이다.
그렇게 떠난 게리 하트 의원은 한국 경제계 원로들이 한시간 넘게 주빈을 기다리다가 식어빠진 음식들을 어색한 가운데 그럭저럭 먹는둥 마는둥 끝내고 떠나버린 밤 10시가 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청와대 당직실, 외무부 당직실 어데로 연락해도 그의 행방을 알수가 없었다.
전경련이 나름대로 기대와 의욕을 가지고 준비했던 '게리 하트 의원 초청 리셉션'은 이렇게 씁쓸한 뒷맛을 남긴 채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다음날 나는 그가 '위'에서 마련한 특별한 파티장으로 자리를 옮긴것이란 이야길 들었다.
다만 그날의 사건과 연관되어 내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은 그가 다녀간 지 약 2년 후,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기 직전, 민주당 후보 지명전을 앞두고 터진 그의 스캔들이다.
아내가 집을 비운 사이 다른 여자를 집으로 불러들였다 몰래 카메라에 잡혀 세계적인 망신을 샀던 그는 결국 스스로 후보 자리를 사퇴하고 '풋내기' 클린턴에게 자리를 양보해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 미국 관련 기사 어디를 살펴보아도 그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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