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회장은 전경련 회장을 퇴임하면서 기자들에게 사적으로 다음과 같이 올림픽 유치와 관련된 뒷이야기들을 털어놨다.
내가 전경련 회장을 하며 이렇다하게 내놓고 얘기할 것을 굳이 찾는다면 경제 외적인 일로 88올림픽을 체육계의 협력을 얻어서 전경련이 주도해서 우리 경제인들이 유치했다고 얘기해도 크게 잘못된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88올림픽이 여러분도 잘 아시지만 일본에 이겨서 한국에 가져온다는 것을 아무도 생각 못했을 겁니다. 그런 얘기를 왜 할 수 있느냐 하면 대한체육회가 김집 부회장을 도쿄(東京에) 보내서 일본 측에 제의하기를 88올림픽을 우리하고 일본이 경쟁하고 있는데 우리가 취소하고 일본이 하도록 해줄 테니까 86아시안게임을 우리가 하도록 해달라고 얘기했답니다.
체육계 비사지만 일본이 퇴짜를 놨습니다. 88올림픽은 자기네가 된 걸로 다 자축 건배까지 했는데 우리가 왜 구질구질하게 86년 아시안게임 한국 개최 지원이라는 짐을 지느냐면서.
그러니까 그것은 대한체육회가 포기한거나 같죠. 그때는 문교부에 체육국인가가 하나 있을 때에요. 그것을 문교부장관이 대통령께 보고해 가지고 이런 상태라고 하니까 위에서 할 수 있는 대로 최선을 다해서 해보지도 않고 패배주의로 임해서는 안된다고 했답니다.
그러니까 이제라도 총력을 기울여서 유치를 해보자고 했는데 올림픽 개최국이 9월 30일에 결정되는 일인데 그렇게 생각한 것이 그 해 4월 달이었어요. 88올림픽 유치하던 해가 84년인가의 일입니다.
물론 내가 전경련 회장으로 있을 때입니다. 문교부가 누런 종이에 프린트한 것을 하나 가지고 왔는데 장관이 대통령 결재까지 맡았다고 하며 민간 7인 위원장이라는 것을 들고 왔어요. 국장이 정부의 체면이 서도록 해주면 좋겠다고.
거참, 88올림픽을 어떻게 유치하는지, IOC위원이 누구인지 알기나 합니까?
그래서 한번 회의를 갖자고 생각해서 88올림픽은 대한민국 국가가 유치하는 것이 아니라 서울시가 유치하는 것이므로 서울시장, 문교부장관, 대한체육회, KOC위원들 다 나오시라고 해서 롯데에서 회의를 했습니다. 서울시장은 안 나오고, 국장이 나왔고 조상호 KOC회장, 최만립 총무가 나왔습니다.
유치하려면 서울시가 올림픽을 유치할만한 여러 가지 환경과 제반 여건이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30분짜리 영화를 만들어서 전시장에 가서 선전을 해야 됩니다. 경기장 모텔을 만들고 그것을 IOC위원회가 열리는 나라에 가서 활동을 해야 합니다.
***" 입체하면 주겠느냐"**
IOC위원을 모셔다가 다 보여주고 해야 하는데 그때 이런 영화를 만드는데 1억 7천 몇 백만 원 정도가 들고, 그것을 서울시가 줘서 즉각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서울시가 예산이 없다고 했습니다. 위에서 결정했으니까 할 생각은 가지고 있으나 돈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국회가 예산 주는 것이 아니라 국무총리에게 추가 예산을 받으면 되는 것 아니냐 했더니 그렇게는 안 하겠다고 해요. 윗분은 그렇게 지시했지만 밑에서는 움직이질 않는 거죠. 가봐야 비용만 나고 돈만 없어진다 그런 뜻인지 모르겠어요.
소위 이름 가는데 마음 간다고 어쨌든 일은 하기는 해야 할텐데, 그러면 예산은 언제 세우는 거냐니까 명년에 세운다는 겁니다. 명년에 예산을 세워서 내가 입체(立替)를 하면 주겠느냐고 하니까 그렇게 할 수 있다 못하겠다 말을 않더라고요.
그러나 입체해서 만들었고, 그 후에 예산 세워 내 돈 돌려줄 줄 알았지만, 기부체납 도장 찍으라고 해서 내 돈 날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거기에 가서 활동을 하는데 정부에서는 여러 가지 위원을 내고, 민간측인 전경련에서도 유럽 각국 경제협력위원장이 있어요. 한영경제협력위원장은 그때 내가 겸임을 했고, 한불은 조중훈씨 등 각국이 다 있습니다.
그것을 동원하고 그 다음엔 국제적 감각이 있고 안면이 있는 유창순씨께 부탁해서 동원하고 그 다음엔 건설회사들, 가령 동아가 스웨덴에서 무엇을 했다하면 스웨덴을 책임지고, 건설업자를 통해서 그 나라 IOC위원을 만나고, 전부 각 위원들이 자기네가 친한 그 나라 업자를 통해서 경제협력위원장을 통해서 그 나라 IOC위원을 만나는 것입니다.
올림픽을 한 나라는 IOC위원이 2명이고, 안 한 나라는 1명입니다. 우리나라는 1명이고 일본은 2명이죠. IOC위원이 82명인데, 몰라서 그렇지 얼굴만 알면 82명 쫓아다니고 표만 모으면 또 되는 거죠.
그래서 난 그때 거기 가서 영국, 벨기에 쫓아다녔습니다. 그때 남덕우총리가 스칸디나비아 쪽에 회의가 있어 그 길에 영국으로 왔는데 스칸디나비아국 IOC위원들이 안 만나더랍니다.
한국은 머리 속에 없다 이거죠. 난 영국,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 몇 나라 돌고, 전상진 대사는 남미쪽, 또 김운용 IOC위원도 몇 나라 돌고 했습니다.
거기 갔는데 누가 움직여야 되잖습니까? IOC위원 쫓아다니고 점심 사주고 저녁 사주고 해야 하는데 자동차 없이 걸어 다닐 수는 없죠. 정부에서는 1전도 안 주니까요.
***"일본은 세이코시계 준다"**
어쨌든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열흘 동안, 참, 아마 내 생애에 그렇게 계획적으로, 그리고 열심히 뛰어 다녀보긴 처음이었습니다. 거기와 있는 모든 사람들이 특파원들까지 동원하고, 각국 대사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오고해서 거기에 한 60~70명 왔는데 그렇게 한 덩어리가 되어서 한 표라도 주워 모으는데 합심해서 노력한 것은 일생에 처음이에요. 분위기가 그렇게 되었어요.
자유진영표중 한 20표라도 얻으면 나라 체면유지가 된다고 했지요.
새벽부터 밤까지 뛰고 10시에 모여서 표를 점검하는 거예요. 매일 그렇게 했는데 첫 번째는 체면유지고 그 다음엔 어떻게 하면 가능성이 있겠다고 이렇게 된 거에요.
일본 친구들이 전시장 만들고, 한국도 만들고, 동계올림픽 신청국도 세군데 만들었고, 참 혼신의 정력을 기울이는 거죠.
일본 사람들만 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방해를 하는 거예요. 그들이 20명이 나와서 뛰고 있는 거죠. 일본이 어떻게 얘기를 하냐하면 남북이 대치해있기 때문에 휴전선에서 자동차로 불과 1시간 거리인 서울에서 올림픽을 하는 것은 88올림픽을 취소하는 거나 같다고 선전해요.
그러니 북한은 일본을 위해서 일하는 셈이죠. 소위 중간지역국가들 단체 있죠? 비동맹국가들, 우리는 거기에 못 들고 북한은 들어 있잖아요. 비동맹국가 표를 일본에 모아 주는데 활동하고 동구권표 모아주는데 활동하는 거죠.
일본은 IOC위원들에게 세이코 시계를 나눠 준다는 정보를 들었어요.
우리는 그러고 있는데 내 참, 서울시장이 들어오지를 않아요. 그 사람들은 20일부터 일본 선전관 개관이 되었는데 일본은 IOC위원, 나고야 시장 등이 18일에 다 들어와서 활동을 하는데 우리는 IOC위원도 서울 시장도 안 들어와요.
IOC위원이 안 들어오면 어떤 어려움이 있느냐 하면 IOC위원들은 신변보장 때문에 한 호텔에 모아놓아서 다른 사람은 못 들어가요. IOC위원이 면회한다고 허가한 사람만 들어가서 만나는 거죠. 건물에 들어가야 활동할 텐데 IOC위원이 안 들어와서 호텔을 들어갈 수가 없는거에요.
장기영씨와 월터 정, 그분들이 IOC위원에 면식이 있어서 준 IOC위원 대접으로 그 호텔에 묵게 했어요. 그 양반을 면회한다고 들어갔죠. 그분이 들어오라고 해서 활동을 하기는 하는데 부자유스럽죠.
그 후에 김택수씨가 22일 저녁에 왔어요. 그래서 잘 왔다고 우리가 IOC위원들에게 화환을 보내려고 했는데 당신이 안 와서 못했는데 당신 이름으로 보내려고 준비를 해 놓았다고 하니 그분 얘기가, 영어로 뭡니까, 무슨 '콜' (프로토콜:의전)에 위배돼서 가만히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내가 같은 IOC위원인데 IOC위원들에게 꽃을 보내느냐" 이거에요.
한국이 올림픽 유치하려고 하니 그런 거 떠나서 보내자 했더니 자기 격이 떨어져서 안 된대요. 할 수 없이 내 이름으로 보냈죠. 그 사람들이 날 알기나 해요.
어쨌든 꽃은 꽃가게에서 일일이 정성을 들여서 기가 막히게 해서 보내게 했습니다.
한 이틀 있다가 서울 시장이 왔어요. 그 꽃이 3-4일 지내면 시드니까 과일 상자를 해서 시장 이름으로 보내고 했는데,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주효했어요.
리셉션 때 만나면 일본 사람으로부터 시계를 받았다고 고맙다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아름다운 꽃을 보내서 고맙다고 내놓고 인사하는 거예요. 방에 제일 좋은 곳에 근사한 꽃이 있으니까 잘 만나주고요. 큰 효과를 봤어요. 아무것도 아닌데, 미국 IOC위원들한테 많은 도움을 받았구요. 먼저 환심을 산 IOC위원들이 다른 IOC위원들하고 24시간 붙어있는거죠.
"잘해보라"고 하는 표는 미심쩍지만 일본이 이러저러하니까 한국은 이렇게 하라고 코치하는 표는 우리 표에요. 감을 잡아서 그 표는 우리 표라고 생각하는거죠.
***"끝장 보고 돌아가야죠"**
독일의 아디다스가 올림픽 공식후원업체인데, 그 사람들을 잡아서 남미의 후진국 표를 얻고 남미나 아프리카 가난한 나라의 IOC위원들에게는 부부를 한국에 초청한다고 조중훈씨가 왕복 비행기표를 보낸다고 해서 그게 주효했어요. 그래서 표를 얻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에요. 초청하는 사람이 왕복비행기표를 주는 거니까요. 그 사람들 입이 이렇게 벌어졌어요.
이렇게 했는데 마지막에는 될 것 같다고 생각이 됐어요. 우리는 이북 사람들에게 참 잘 했어요. 거기에 온 북한 사람들이 우리에게 욕을 해도 우리는 웃으면서 대응하자고 했습니다. 우리가 같이 싸우면 IOC위원들이 남북한이 긴장 상태라 안되겠다고 생각할테니까요. 우리들이 웃으면서 얘기를 하면 저 사람들은 농을 언성을 높여서 하는 줄 알거다 하면서.
"이북에는 작년에 풍년이 들었다죠?" 하면,
"예, 대풍 들었지요." 크게 얘기하는 식으로 좋은 얘기만 하고 이북의 명산대천, 온천, 원산해수욕장 등 좋은 것만 칭찬해주니까 입이 이렇게 커지고 하나도 싸울 일이 없어요.“
개표 전날 서독신문이 우리를 막 때렸어요. 그 지방신문이 질 나쁘게 썼어요. 하계올림픽은 일본으로 다 끝났는데 한국 사람들 울면서 돌아가야 할 것들이 아직도 웃으면서 표 얻으러 다닌다고.
전날 아침에 이북 대표를 만났는데 그들이 웃으면서 하는 말이,
"정선생 그만 수고하고 돌아가시죠."
"왜 돌아갑니까? 끝장을 보고 돌아가야죠."
"엊저녁 서독신문 봤죠?"
"독일말 몰라서 못 봤습니다."
"다 끝났다고 썼습니다. 그러니까 돌아가시죠. 도저히 되지도 않을 것, 몇 표 나오지도 않을 텐데 왜 다닙니까?"
***"우리 내기합시다"**
"몇 표 나올 것 같습니까?"
"세 표 나올 겁니다."
"어디어디 표가 나옵니까?"
"한국표 하나하고, 대만 표 하나, 미국 표는 둘인데 그 중 하나는 한국을 주고 하나는 캐나다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데 쓸거니까 한 표."
"세 표면 됐습니다."
"안심입니다" 했죠.
다투어도 소용없거든요.
로스앤젤레스 신문기자가 개표 날 아침에 테이블을 차려놓고 기자들만 10불 내고 내기 투표하는 건데 맞은 사람이 먹는 거예요. 10불씩 내고 어느 도시가 되는가를 쓰는 거예요. 쭉 적은 것을 보니까 오전에는 나고야가 된다고 대부분 썼는데, 오후 되니까 여러 사람이 서울이 된다고 쓰는 거예요. 참 기자들이 센스가 있어요. 백중했는데 그래도 일본이 된다고 한 것이 좀 많았어요. 오전 오후를 보면 오후에는 한국이 된다고 썼어요.
우리나라 어느 특파원이 나를 보고서 "정회장님 내기하자"고 해요.
"어디가 된다고 생각합니까?"
"난 한국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안됩니다."
"그럼 내기합시다."
"당신 걸고 싶은 데로 걸어라."
마음먹고 20불 걸었어요. 나도 20불해서 이병규 부장을 주었어요. 우리가 되니까 그 돈 내가 싹 먹었죠. 개표하니까 52표 대 27표 되었어요.
우리 경제인들이 분발해서 각국 경제협력위원장들, 김우중, 조중훈, 최원석 회장 등 모두 갔었습니다. 정부도 그렇게 협조해주기를 희망했었습니다.
대한체육회가 포기했던 것을 우리 경제인이 바덴바덴에서 유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전경련 회장을 안 했으면 끌고 갈 힘이 없었고 생각도 해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전경련 재임 중에 전경련 바깥일이긴 하나 국가를 위해서 한 덩어리가 되어서 그렇게 일해 본 것이 내 생애에 있어서 가장 기쁜 일이에요.
프레시안에 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