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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화> 정회장, 세계와 겨루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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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화> 정회장, 세계와 겨루다 <8>

템즈강을 수놓은 화려한 불꽃놀이

영국은 정주영 회장이 '건설'을 뛰어넘어 다시 조선과 중공업, 자동차로 국제적인 기업으로 현대를 이끌어나가는 바탕이 되어주었다는 점에서 그 어떤 국가와의 인연보다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우선 정주영 회장이 국제 무대에 공식 데뷔한 계기가 되었던 것이 1974년의 한영경제협력위원회 창립총회에서 한국 측 위원장으로 추대된 것이다. 하지만 정주영 회장은 그 두 해 전인 1972년에 이미 영국을 고리로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것은 바로 조선소 기공식과 함께 26만t급 선박을 건조 완료하는 세계 조선(造船) 역사상 전무후무한 신화를 창조한 것이다.

***거대 프로젝트 설계**

1972년, 한국 경제는 경공업 위주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에 한계를 느끼고 나름대로 새로운 길을 찾고 있을 때였다. 이때 정부 정책에 앞서 이미 건설을 주업종으로 경공업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던 정주영 회장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거대한 프로젝트를 설계한다.

그것은 바로 조선소 설립이었다. 그리고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영국에서 빌린 26만t급 선박의 설계도를 들고 그리스로 날아가 마침내 '딱 정주영 만큼 미친' 그리스 선주로부터 선박 건조를 수주받고 영국은행에서 조선소 설립 자금을 받아내기에 이른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정주영 회장과 영국의 인연이 결국 2년 뒤 한영경제협력위원회 한국측 위원장으로 이어지고, 이후 계속된 한국과 영국 경제협력의 주요 고리로서 활동할 수 있는 바탕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1974년 한영경제협력위원회를 통해 전경련의 대표로서, 그리고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가로 세계 무대에 공식 데뷔한 정회장에겐 수많은 요구들이 쏟아졌다. 그중 가장 큰 현안으로 다가왔던 것이 바로 미국과 일본 시장을 대체할 만한 시장의 다변화, 외국 자본과 기술의 도입 등이었다. 그리고 이를 충족시킬 만한 주요 대상 국가로 손꼽히던 곳이 바로 영국이었다. 영국은 또한 현대조선에 있어서도 계속적인 자본의 유입과 선박 수주를 위해 소홀히 할 수 없는 곳이었다.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위맹을 떨쳤던 영국은 20세기 중반이 넘어서면서 예전의 식민지들을 대부분 상실하였지만, 금융과 자본시장에 있어서는 여전히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또한 전통적인 해양 국가로서 선박 건조에 있어서는 최첨단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조선 선진국이기도 했다. 엔진, 선박 기자재 등의 도입에 있어 영국을 통하지 않고는 되는 일이 없을 정도.

***영국 시장 집중 공략**
이런 여러 가지 연유로 해서 정회장은 우선 전경련 회장이 되기 이전부터 당시 자신의 사위였던 정희영씨를 런던 본부장으로 앉히고 영국 시장 공략에 나섰다. 또 전경련 회장으로서 그는 한영경제협력위원회를 통해 인연을 맺게 된 영국 경제계, 학계, 금융계, 정부 부처 인사들과의 인맥을 십분 활용, 불철주야 뛰어다녔다.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한영경제협력위원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게 된 것도 이러한 노력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영국에서 최초로 한영경제협력위원회가 열리게 되었다. 영국 측에서는 영국경제인연합회(CBI)가 주축이 되었고 한국에서는 전경련이 주축이 되었던 이 회의에 정회장은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한국의 정재계 주요 인물들이 상당수 참가하기로 된 이 대회에 대한 영국 내 관심은 불행하게도 미미한 것이었다. 이미 몇 년 전 전설과도 같았던 정회장 스토리가 몇몇 금융계 인사들 사이에선 알려져 있었지만 워낙 국제 무대 경험이 없었던 데다 한국이라는 이름 자체가 영국인들에게는 별로 어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회장은 현대조선 런던 지사 전 직원은 물론 영국에 파견되어 나와 있는 한국 기업의 직원들을 총동원, 대회 홍보에 힘을 기울였다. 이런 다각적인 노력 덕분에 영국에서의 한영경제협력위원회 역시 알찬 소득을 거두고 성황리에 끝마칠 수 있었다. 정회장의 진면목이 발휘된 것은 바로 대회 직후 있었던 리셉션이었다.

***기상천외의 리셉션**

국제 대회의 관례대로 영국 측에서 마련한 성대한 리셉션을 마친 다음날, 한국 측에서도 답례 리셉션을 준비하게 되었다. 이때 정주영 회장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해서든 이번 기회에 한국과 현대의 이미지를 영국에 확실히 심어놓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 나를 포함한 전 비서진과 런던 현지 실무자들을 불러놓고 연일 회의를 거듭했다.

그러나 답례 리셉션에 달리 어떤 프로그램이 포함될 수 있겠는가. 우리가 내놓은 안들은 나름대로 모두 관례에 준한 괜찮은 것들이었지만 정회장은 계속 "노!"를 거듭했다. 우리는 답답했다. 도대체 회장님이 말씀하시는 '기억에 남을 만한 리셉션'이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결국 그 해답은 정회장의 머릿속에 이미 들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정회장이 계획을 밝히는 순간, 그의 발상력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우리마저 깜짝 놀라고 말았던 것이다.

정회장이 구상한 '기억에 남을 만한 리셉션'의 무대는 런던을 가로지르는 영국의 상징 템즈강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리셉션이 열리던 날의 저녁, 전날 내린 비로 영국답지 않게 저 멀리 있는 풍경까지 훤히 보일 정도로 날은 맑았다. 날씨 때문이었을까? 서늘한 템즈강의 바람을 맞으며 리셉션은 흥겹게 시작되었다. 템즈강변에 자리를 마련한 정회장의 아이디어에 참석자 모두는 감탄의 인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참석 인사들은 자신의 감사 인사가 너무 이른 것이었음을 곧 느끼게 되었다. 정회장은 여기에 한 술 더 떠 템즈강에 여러 대의 유람선을 띄우고 그 위에 밴드를 배치, 리셉션 시작부터 끝까지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오게 했던 것이다. 때 아닌 유람선 부대와 그 위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선율에 사람들은 잠시 말을 잊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의 템즈강은 저녁 산책을 나온 영국인들과 템즈강의 야경을 보기 위해 몰려든 세계 각국의 여행객들로 어지간히 붐비는 곳이 아닌가. 여기서 벌어진 리셉션과 유람선에서 울려 퍼지는 선율은 그곳에 모여든 사람들의 관심을 단번에 끌어 모았다. 정회장의 예상이 적중한 것이다.

그러나 정회장이 준비한 회심의 하이라이트가 아직 남아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은은한 템즈강의 야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화려한 불꽃놀이였다.
"오우, 뷰리플!"
전혀 예상치 못한 아름다운 광경에 넋을 잃고 연방 탄성을 질러대는 리셉션 참석 인사들과 런던 시민, 그리고 관광객들…. 사람과 자연과 인간의 기술이 빚어내는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다음날, 영국의 주요 신문들은 이날의 리셉션과 불꽃놀이를 대서특필하고 한영경제협력위원회의 배경과 성과 등을 상세히 소개했다. 하지만 이날 보도의 주인공은 뭐니 뭐니 해도 바로 정주영 회장이었다. 이날의 장관을 연출한 주 기획자로서 정주영 회장과 그의 일화, 현대그룹의 이야기가 함께 소개됨으로써 한동안 영국인들은 한국에는 현대그룹과 정주영 회장만이 있다는 오해 아닌 오해를 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그날 이후, 그러잖아도 돈독했던 영국과 정회장의 인연은 더욱 긴밀해졌고, 이는 곧 현대조선 그리고 그 후신인 현대중공업이 오늘날 세계 최대, 최고의 조선사업의 진출기지를 구축하는 상징적인 이벤트가 되었다.
일상을 뛰어넘는 "이벤트 기획 전문가"로서의 정회장은 이때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후에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소떼 무리 방북을 기획해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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