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호·여운환 사건을 둘러싸고 다시금 검찰이 도마 위에 올랐다. 옷 로비 사건이나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에서처럼 검찰에 대한 비판과 함께 특별검사를 임명하여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각계의 요구가 강하다. 이에 따라 여·야는 특별검사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미정이지만 일단 특별검사제의 도입에 대해서는 합의를 한 상태이다.
검찰이 신뢰의 위기를 겪을 때마다 등장하는 것이 특별검사제이다. 어찌 보면 특별검사제도는 역설적이게도 한국검찰을 지켜주는 수호신과도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현재의 검찰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 대신에 특별검사라는 그럴듯한 제도, 그것도 우리들이 민주주의의 종주국으로 믿고 있는 미국제이니 성능 또한 좋을 것이라는 맹목적 신뢰가 일이 생길 때마다 특별검사도입을 주장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특별검사제의 도입이 과연 실효성 있는 제도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특히 검찰에서 이러한 의문을 강하게 제기하지만 검찰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는 대안인 만큼 검찰은 이 문제에 대한 의견제시의 적절한 당사자가 아니라고 본다. 현재의 검찰제도를 유지하려는 내심의 의사에 불과하다고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3자적 입장에서 이 제도가 과연 의혹사건에 대한 실체적 진실규명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으며, 한국검찰을 위기에서 구할 수 있는 제도인지에 대한 의문제기는 계속되어 왔다.
특별검사제의 도입목적이 무엇인가? 그것은 검찰을 신뢰성 상실상태에서 구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특별검사제가 검찰불신에서 비롯된 단순한 대안이라면 검찰의 위기 원인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간과된 미봉책에 불과하다. 이 점이 특검제에만 매달릴 경우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이다.
최근에 특별검사제 도입에 맞서 대검찰청은 특별수사검찰청 설치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검찰개혁방안을 확정하여 법무부에 보냈다. 이 내용 가운데에는 항변권심의위원회를 두어 검사들에게 상사에 대한 항변권을 인정하고, 현직 검사가 아닌 사람도 검사장에 임명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특별수사검찰청이 불기소한 모든 사건에 대해 국회가 재정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은 특별히 실효성 있는 내용도 아니거니와 특별검사제의 도입을 저지하기 위한 급조된 개선안에 불과하다. 이러한 개선안에 의해 현재의 검찰모습이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검찰이 특별검사제 도입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검찰이 파헤치지 못하는 사건을 특별검사가 밝혀낼까 걱정되어서가 아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는 검찰조직에 예외가 인정되는 상황을 두고 볼 수 없다는 것과,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수사에서 검찰이 배제되는 데 대한 자존심 훼손과 영향력 감소의 문제 등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검찰의 과도한 자존심과 정치적 영향력에 대한 집착이 검찰을 일그러지게 만들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프랑스 혁명 이후 등장한 근대의 검사제도는 수사 및 기소와 재판을 함께 담당하였던 규문주의 재판제도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규문판사가 오늘날의 검사와 판사의 권한을 통합하여 가짐으로써 야기되었던 인권침해 등 심각한 문제점을 공소권자와 심판권자로 분리함으로써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법제도를 만들기 위한 모색의 결과물이다. 결국 검사제도는 독점적 권한 행사를 통한 사법권의 권력화 현상을 지양하고 권한의 분산을 통한 공정한 형사사법제도를 운영하기 위한 제도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은 검찰의 기소독점권은 인정하면서도 이로 말미암아 초래되는 잘못된 공소권 행사의 부작용에 대한 치유책은 너무나 미미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구체적인 예로는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대한 불복신청방법인 재정신청을 극히 제한적으로만 인정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헌법기관인 헌법재판소가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대하여 위헌결정을 내려도 검사가 기소하지 않는 한 실효성이 없다. 검사의 결정이 헌법재판소의 결정보다 우위에 서는 검찰국가의 모습이다.
검찰청법상의 상명하복 규정도 마찬가지이다. 수사기관의 속성상 조직의 특수성이 인정된다고 볼 수는 있다. 그러나 검찰의 상명하복은 그렇지 않아도 위계질서에 순응적인 한국적 인간관계 속에서 그야말로 총체적 상명하복관계로 변질되어 공과 사가 혼합된 기형적 검찰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의 사법제도에서 검찰의 정치성만이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수준이나 경제의 투명성은 제쳐두고라도 사법제도 전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높은 상황이 더 문제이다. 사법제도가 신뢰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올바른 법의식이 형성될 리가 없으며, 제도적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릴 가능성도 별로 없다. 그런데 우리의 법조문화는 일제시대 식민지적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채 여전히 국민을 위한 법조가 아니라 국민을 법 적용의 단순한 대상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잔존하고 있다. 국민에게 지시하고 명령하는 식민지 관료의 사고방식과 행태를 답습하거나 심지어 일부이겠지만 검찰의 도덕적 해이감이 심각한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소위 법조 삼륜의 직업적 동업자 의식이 너무 강하다. 학교와 고향, 사법연수원, 사법시험 동기 등 얽히고 설킨 인연의 수레바퀴 속에서 헤어나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안에서 만족감을 느끼고 이익을 보려는 사고가 일부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제도적 개혁의 원동력이 되어야 할 법률가 집단이 오히려 수구적 이익추구집단으로 남아 있거나, 정치권력과의 관계 속에서 사법적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을 하는 것도 현실이다.
법조인으로서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의식과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의 내면화가 이루어지지 못한 수준에서 부분적 개선안은 무용지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별검사제도는 정치적 흥정의 대상물로 변질될 것이고, 검찰은 계속되는 비판의 파도에 휩쓸려 허우적댈 것이다.
결국 사법조직과 이들 조직 내부 문화의 후진성을 타파하고, 여기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올바르게 형성될 수 있는 법학교육과 개방적 사법제도의 수립이 없이는 어떠한 특별검사도 결국 보통검사에 불과하였다는 기억만을 우리에게 남겨주고 떠날 것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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