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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나를 조폭 만들었다"

'이용호게이트' 여운환씨의 항변

언론 보도에 대한 검사 등 공직자들의 잇단 명예훼손 소송으로 언론자유와 언론의 사회적 감시 기능이 위축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반면 '일단 터뜨리고 보자'는 식의 언론의 마구잡이식 의혹 보도가 개인의 인권과 명예를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특히 지난 10.25 재보선 직전 언론의 잇단 의혹보도는 상대방을 흠집내려는 정치권의 정략에 놀아난 측면이 강하다는 지적도 많았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돼 언론으로부터 조폭으로 지목됐던 여운환씨는 지난 10월 30일 안상운 변호사를 통해 검찰과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 그리고 18개 언론사를 대상으로 총액 74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이들이 자신을 조폭 두목, 혹은 정치조폭으로 매도하고 마치 정관계 로비를 한 것처럼 허위 사실을 공표하거나 허위, 왜곡, 추측 보도해 명예를 훼손해 막대한 손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이번 소송은 청구금액이 언론보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단일 사건으로서는 가장 많은 액수라는 점에서도 주목되지만 언론의 의혹 사건 보도 관행이 법정에 서게 됐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언론보도의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여운환씨측의 입장을 통해 언론보도의 문제점을 짚어본다. 편집자

***이용호 게이트, 몸통은 조폭?**

이용호 사건의 쟁점은 현상적으로 여야가 특검 수사 대상으로 합의한 것처럼 크게 3가지로 집약된다. 지앤지(G&G)그룹 이용호 씨 주가조작 및 횡령, 이와 관련한 이용호, 여운환, 김형윤 씨 등의 정관계 로비의혹, 그리고 검찰의 비호의혹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일부 언론이 지적한 것처럼 과연 여권 실세에 연루된 ‘조폭게이트’였나는 것이다. 이는 이 사건의 전개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9월 4일 검찰이 이 씨의 구속을 발표할 때만 해도 이 사건은 불법과 탈법을 넘나들며 한 순간에 떼돈을 번 이른바 기업사냥꾼의 주가조작 및 횡령 사건이었을 뿐이었다. 언론에서 대표적으로 성공한 벤처 사업가로 부각시키기도 했던 한 유망한 사업가의 허망한 몰락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검찰이 지난 해 이 씨를 긴급 체포하고도 하루 만에 풀어 준 사실이 드러나면서 불똥은 검찰로 뛰었다. 검찰의 비호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바로 ‘조폭두목’ 출신인 여운환 씨의 등장이다. 여 씨에게 이 씨의 자금 수십억 원이 전방위 로비 명목으로 건너가고, 이 가운데 상당액을 가로챘다는 혐의로 여씨가 구속되면서 이 사건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여씨의 구속을 계기로 ‘이용호 게이트’는 일순 ‘여운환 게이트’로 바뀌었다. 한나라당은 연일 정권 실세 개입 의혹을 제기했고, 이는 곧 ‘호남 조폭’과 ‘정권 실세’가 결합된 조폭 게이트로 비화됐다.

여기에 10·25 재보선을 바로 코앞에 둔 시점에서 터져 나온 여 씨와 김홍일 의원의 ‘조우 사실’은 선거 판세를 일순간에 뒤집을 정도의 파괴력이 컸다. 야당은 여씨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과 김 의원의 ‘부적절한 만남’을 문제 삼아 정부 여당의 실정을 ‘조폭정권’이라는 구호에 담아 비난의 강도를 높였고, 결과적으로 여당은 10·25 재보선에서 참패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당 총재직 사태라는, 예상하기 어려웠던 정계 지각변동을 가져온 1등 공신은 다름 아닌 ‘조폭 여운환 씨’인지도 모른다.

***한 순간에 사라진 그 많던 의혹들**

하지만 10·25 재보선이 끝나자 마자 세상을 그처럼 떠들썩하게 했던 ‘조폭게이트’는 어디론지 자취를 감췄다. 그렇게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던 야당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입을 다물었다. 덩달아 요란했던 언론 또한 잠잠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많던 의혹들이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신기할 정도였다.

그렇게 꺼져 가던 불씨에 다시 불을 지핀 것은 바로 그 의혹의 핵심으로 지목됐던 여운환 씨였다. 재·보선 선거가 끝난 5일 후인 10월 30일, 여 씨가 변호사를 통해 대한민국(검찰)과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 그리고 18개 언론사에 언론사를 대상으로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면서 이 사건은 제2라운드를 맞게 됐다.

여씨는 이 소송에서 우선 자신이 조폭 두목 출신이라는 검찰의 발표나 언론의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마치 지금도 자신이 조폭인 것처럼 보도한 언론사의 보도는 전혀 사실무근이라는 주장이다.

여 씨는 검찰이 자신을 ‘국제PJ파 두목급 간부’라고 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92년 ‘국제PJ파 두목’이라는 혐의로 구속된 적은 있지만 1심과 2심, 그리고 대법원에서 두목급 수괴로 폭력범죄 단체를 구성했다는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 받았다는 것이다.

다만, 국제 PJ파 ‘자금책’및 ‘고문급 간부’로 인정돼 4년형을 살았지만 이 역시 “50만원을 후배에게 준 것이 자금 지원으로 인정된 것”이라면서 어렸을 때 한때 ‘주먹’들과 어울린 적이 있지만 결혼을 하면서부터는 이 세계와 손을 끊었다고 주장한다.

또 언론에서 보도한 것처럼 자신이 이 씨의 전방위 로비를 한 적도, 부탁 받은 적도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 씨 한테서 로비자금으로 42여 억원을 건네 받아 이 가운데 17여 억원을 가로챘다는 것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이다. 이 씨와는 90년 대부터 막역하게 알고 지내던 사이로 그 동안 수 십억원 씩 서로 융통해주고 하던 사이라는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40여 억원도 이른바 ‘보물섬 사건’을 앞두고 급히 융통해달라고 해 가져간 20억원과 그 사채 이자 비용, 그리고 그 동안 서로 오간 거래 대금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여 씨의 주장은 검찰 수사 결과로도 뒷받침되는 부분이 많다. 일단 검찰의 기소내용이 그렇다. 검찰은 여 씨가 이 씨로부터 사건 무마 등의 명목으로 12억원을, 해외전환사태 발행을 위한 로비자금으로 10억 4천만원 등 모두 40여 억원의 돈을 받아 이 가운데 17여 억원을 가로챘다는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정작 초점이 됐던 로비 의혹에 대해서는 ‘로비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며 기소 내용에서 제외했다. 실제 로비는 하지 않고 로비 등의 명목으로 40여 억원을 받아 중간에서 가로챘다는 것이다. 이른바 ‘배달사고’인 셈이다.

검찰의 기소 내용 대로라면 이 씨 사건은 단순한 주가조작 및 횡령, 그리고 사기 사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왜냐하면 로비는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정관계에 걸친 흑막도 있을 리 없다. 적어도 여운환 씨를 통해서는 말이다.

다만 지난해 이 씨 사건을 다뤘던 검찰 수사팀이 이런 저런 사유로 ‘부적절하게’ 사건을 처리한 것에 다름 아니다. 여 씨는 ‘조폭 출신의 실패한 로비스트’가 아니라, 그저 로비를 미끼로 돈을 갈취한 ‘파렴치범’일 뿐이다.

현재 재판에서도 쟁점은 여씨에게 건네진 돈이 ‘로비를 명목으로 한 것이냐, 아니냐’로 압축돼 있다. 이는 여 씨에게 건네진 금액이 거래상 서로 주고 받은 돈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재판의 판결이, 그리고 새로 임명될 특검의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분명한 것은 검찰 수사 결과나 지금 진행 중인 사건의 모양새만으로는 세상을 그렇게 떠들썩하게 했던 ‘조폭게이트’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는 점이다. 그런데 여 씨는 왜 다시 ‘조폭’ 이야기를 꺼낸 것일까.

***조폭 게이트…각본-검찰, 연출-한나라당에 주연은 언론?**

검찰이 이 같은 혐의 내용으로 기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이 후에도 조폭과 여권 실세가 연루된 ‘조폭 게이트’로 비화됐다. 그렇게 된 데에는 야당의 정치공세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야당의 공세를 거르지 않고 중계 방송하듯 보도한 언론의 역할도 컸다.

어떤 경우에는 언론이 더 앞서나가기도 했다. 특히 여 씨를 ‘조폭’으로 만든 데에는 언론의 역할이 더 결정적이었다. 과거 국제PJ파 두목으로 구속 기소됐던 전력을 들어 그를 조폭으로 단정하다시피하고, 조폭과 정치권의 연루 의혹을 집중적으로 제기한 것은 바로 언론이었다.

게다가 야당과 대다수 언론은 이 씨가 마치 지금도 조폭과 관계가 있는 것처럼 ‘여론’을 몰아가 결과적으로 이 씨 사건을 이른바 ‘조폭 게이트’로 비화시켰다. 일부 언론은 여 씨의 이같은 전력을 들어 ‘조폭’과 ‘정치권’과의 ‘검은 결탁’을 주요 기사로 다뤘다.

사실 여 씨 가족들이 소송을 내기로 ‘작심’한 것도 언론 때문이다. 검찰의 구속이나 기소 내용도 억울하지만 그것은 법정에서라도 시비를 가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힘들게’ 벗어나려 했던 ‘조폭’이라는 굴레를 아무 거리낌 없이 덧씌우는 “언론의 여론 재판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는 것이다.

여씨가 일찍이 주먹 세계와는 손을 끊었다고 확신하는 가족들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검찰 수사에서도 여 씨가 ‘조폭’과 관계 있다는 그 어떤 증거나 정황도 내놓은 바 없는 데도, 사실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여 씨를 조폭으로 만들어가는 언론의 여론 재판에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외숙부의 계좌는 물론 집안 식구, 조금이라도 친분이 있는 사람들의 계좌는 모조리 조사했다. 집이나 사무실 전화, 가족들은 물론이고 주변 친인척, 친구, 비즈니스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비롯해 최근 들어 외숙부와 한번이라도 통화를 한 적이 있으면 이들의 통화 내역 역시 모두 조사한 것으로 안다.

그런 검찰이 조폭과 관련됐다는 증거를 내놓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이나 언론이 조폭이다, 이렇게 몰아가면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냐. 정말 외숙부가 조폭과 연루되고 이 씨에게서 받은 돈을 정관계 로비에 쓴 게 사실이라면, 검찰이 이를 밝혀주면 속이나 시원하겠다.”

여씨의 외사촌 조카로 중앙언론사의 기자로 있는 C모씨의 항변이다. 자신도 언론사에 몸담고 있지만 검찰이, 그리고 언론이 정말 이럴 수 있는지 ‘황당’하다고 말한다.

“최소한 기본이라는 게 있는 게 아니냐. 검찰이, 야당이 아무리 떠든다고 해도 언론이 그것을 그대로 받아 적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니냐. 최소한 사실 관계는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닌가. 언론이 이래 가지고는 안 된다. 이래서는 제가 몸담고 있는 언론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는 생각에 집안 어른들이 소송을 내야 한다는 데 적극 찬성했다”는 것이다.

C기자는는 특히 대다수 언론이 단 한번의 반론의 기회도 주지 않은 데 분노했다. 92년 여 씨를 ‘국제 PJ파 두목’으로 엮어 구속시킨, 결과적으로 법원에서 무리한 기소라는 결론이 난 홍준표 의원의 말은 아무 의심 없이 그대로 받아 쓰면서도 정작 여 씨나 그 가족들에게는 단 한번도 확인 취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0·25 동대문을 재선거에 나선 홍의원이 ‘선거전략’의 일환으로 조폭 게이트를 증폭시키고, 과거 자신의 ‘이력’을 부각시키는 데 이 사건을 이용할만한 충분한 ‘혐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이 최소한의 사실 확인도 거치지 않은 채 홍의원의 말만을 그대로 인용 보도한 것은 너무 무책임하다는 지적이다.

“언론 보도 가운데 그 어느 것 하나라도 딱 부러지게 증거를 대 가족들이 아 그랬나 하는 생각이라도 들었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요. 재산이 1천억원이나 된다고요. 많아도 1백억원이나 될까 말까 합니다. 그것도 대부분은 담보 잡혀 있는 거예요. 제과점 할 때 가게를 보았던 외숙모를 룸 살롱 마담을 했다고 하지를 않나, 검사들이 내려오면 1억원씩 주곤 했다고요? 도대체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지 모르겠어요. ”

C씨가 아는 한 여 씨의 이른바 ‘조폭 행각’과 관련한 언론 보도 내용의 거의 대부분은 황당하기 그지 없는 ‘작문’이라는 것이다.

***“피하라”…이용호 씨 변호사, 구속직전 여 씨에게 연락**

여 씨는 진행중인 형사 소송에서도 그렇지만 검찰과 홍준표 의원, 언론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도 이용호 씨 한테서 로비자금 등으로 40여 억원의 건네 받아 일부를 가로챘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정확한 내용은 지금 법정에서 다투고 있습니다만, 거의 대부분 증빙 자료를 제출했습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이 씨가 외숙부에게 ‘보물섬 사건’을 앞두고 30억원만 급히 융통해달라고 했답니다. 30억원은 도저히 안 된다 해서 20억원을 만들어 주었다는 겁니다. 그것도 적색경보업체 어음을 담보로 말이죠. 이 어음을 사채시장에 돌려 만들어 주었는데 사채이자, 이 씨와의 주고 받을 것, 그리고 이 씨가 보장하겠다는 수익을 빼면 검찰과 차이가 나는 금액은 불과 1~2억원에 불과합니다.”

여 씨의 사촌 조카 C모 기자의 이야기다. C기자는 이와 관련, 여 씨가 외숙부여서 그런 것이 아니라, 기자의 관점에서 이해하기 힘든 대목으로 이 씨와 여 씨의 말이 서로 다른 데도 불구하고 검찰이 수사과정에서 단 한번도 대질신문을 하지 않은 점을 궁금하게 생각한다.

한 사람은 ‘로비자금’으로 주었다 하고, 다른 사람은 ‘서로 주고 받을 돈’을 받은 것 뿐이라고 주장하는데, 더구나 그 자금이 당초 검찰이 예상하거나 언론들이 추정한 것처럼 ‘로비자금’으로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당사자를 단 한번도 대질 신문하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여 씨 또한 이 씨가 도대체 왜 그 돈을 ‘로비자금’으로 주었다고 주장하는 지 정말 알 수 없다는 전언이기도 했다.

이 대목에서 여 씨와 여 씨 가족들은 ‘검찰’과 ‘이 씨측’의 저의에 모두 의구심을 갖고 있다. 먼저 검찰의 구속 직전에 이 씨측 변호인으로부터 ‘피하라’고 연락이 온 것 부터가 의문이다.

여 씨는 이 씨가 구속된 지 9일 후인 9월 13일 광주 집에서 심야에 긴급 체포됐다. 당시는 검찰이 지난해 이 씨를 긴급 체포했다가 풀어준 사실이 드러나면서 의혹의 초점이 막 ‘검찰’ 쪽으로 향하던 때였다. 여 씨측은 이런 상황에서 이 씨측 변호사가 느닷없이 피하라는 연락해준 것 자체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검찰이 이 씨에 대해서는 수감 직후부터 신문 반입을 허용했던 반면, 여 씨에게는 한달 가까이 ‘신문 반입’을 금지시켜 세상 돌아가는 물정에 ‘어둡게’ 만든 것도 궁금한 대목이다.

여 씨측은 이에 대해 검찰은 여론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이용호 측은 그 책임을 여 씨에게 떠넘기거나 아니면 ‘또 다른 어떤 다른 이유로’ 여 씨를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 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엇갈리는 판결들…언론의 책임은 어디까지?**

이번 여 씨의 소송에서 최대 쟁점은 언론 보도 내용에 관한 것이다. 여 씨측은 손해배상 청구소송 이외에도 이들 언론사를 대상으로 언론중재위원회에 반론 보도를 신청했었다.

그 가운데 반론 보도를 받아들인 언론사는 대한매일과 세계일보 두 군데. 이들 신문사들은 각기 여운환 씨와의 서면 인터뷰 방식으로 최근 여 씨의 반론을 비교적 자세하게 게재했다.

그러나 다른 언론사들은 반론 게재를 거부했다. 여 씨가 조폭 두목은 아닐지언정 조폭사건으로 구속됐던 것이 사실이고, 조폭과의 연루 의혹 등은 정치권에서도 제기된 사안인 만큼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도 보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여 씨 관련한 행적 보도들도 믿을만한 사람들의 증언에 근거한 것이며, 이 씨 돈을 횡령했다는 것은 검찰이 밝힌 혐의 사실인데 이를 보도하지 않을 수 있느냐는 반박이기도 하다.

언론사들은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도 역시 이 같은 반론을 펼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이나 정치권에서 제기한 의혹을 보도한 것을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하면 어떻게 보도할 수 있겠느냐는 항변이기도 하다.

***"한번 조폭은 영원한 조폭”은 또 다른 폭력**

이와 관련 여 씨측은 “언론이 어디 검찰 발표만 인용 보도했느냐”고 되묻는다. 여 씨를 조폭으로 만들어 ‘여론 재판’을 한 것은 검찰이 아니라 ‘한나라당’과 ‘언론’이라는 것이다. 단적으로 검찰이 기소한 이후에도 상당수 언론은 여 씨를 ‘이 씨의 로비스트’라고 단정 보도했는가 하면 아무런 근거 없이 ‘조직폭력배의 배후’ 등으로 낙인 찍었다는 것이다.

여 씨의 조카인 C모 기자의 말을 들어보자.
“소송을 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다른 언론사의 아는 기자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항변이 있기도 했습니다. 먼저 나는 가족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족이기 이전에 기자로서도 이 일은 꼭 해야 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기자가 될 때 한 다짐이 뭐냐고 말이죠. 진실을 밝히고 억울한 사람을 도와주자는 우리의 서약은 어디 갔느냐고요. 검찰이 발표했다고 해서, 정치권에서 의혹을 제기한다고 해서 언론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사실 확인 절차 등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이죠. 정말 의혹이 있겠다 싶으면 그것을 파고들어 진상이 무엇인가를 밝혀주어야 하는 것이 언론이 할 일 아닌가요. 우리(기자)들의 희망을 위해서라도 이 소송을 꼭 해야 겠다고 말이죠.”

여 씨 가족들이 소송을 내기로 까지 결정한 데에는 나름의 고심이 적지 않았다. 검찰과 언론사를 건드려 좋을 게 뭐냐는 걱정이 앞섰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렇게 당하고는 도저히 ‘낯 들고 살수 없을 것’ 같아서 소송을 내기로 했다. 소송 액수가 너무 많지 않느냐는 말도 있지만 그것이 여 씨와 가족들이 ‘억울하게’ 당한 고통에 비하면 견줄 수 있는 것이겠느냐고 반문한다.

실제 여 씨 가족은 92년 사건과 이번 사건으로 더할 나위 없는 상처를 받았다. 92년 때 고 3이던 큰 아들이 충격을 받아 ‘가출’해 결국 학업을 포기하는 어려움을 겪은 데 이어 이번에도 수능시험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고3인 셋째 아들 때문에 노심 초사해야 했다. 대학에 다니는 둘째 아이는 “너희 엄마 마담 출신이라며” 비아냥 대는 동료 대학생들과 대판 싸움박질을 해야 했다. 그게 “90% 이상은 언론 탓”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이들 가족들은.

“그 분(여운환 씨)이, 가족 회의에서 소송을 내기로 했다,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자, 나이 어린 조카 앞에서 울음을 터트리더라고요. 그래 그러자. 제발 집안 식구들이라도 떳떳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말이죠.”

여 씨의 조카 C모 기자의 말이다. 소송 청구금액이 많다고도 하는 데 사실 가족들은 이번 소송을 통해 돈으로 ‘보상’ 받을 생각은 전혀 없다. 최소한 이 정도는 요구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약 소송에서 이겨 억울한 누명을 벗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것이다. 배상금은 전액 언론 보도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도와주는 재단이나 단체에 기부할 작정이다.

여씨측 변호를 맡은 안상운 변호사는 이렇게 말한다.
“이번 검찰 수사나 언론 보도에서 가장 큰 문제는 ‘한 번 조폭이면 영원한 조폭’이라는 낙인입니다. 전과가 있는 사람은 인권이 없나요. 왜 한 번 조폭이면 영원한 조폭으로 살아야 합니까. 전과자들의 갱생을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과거 전과사실을 들어 ‘너는 그런 사람’이니까 ‘죽을 때 까지 그렇게 살아라’ 라고 낙인 찍는다면 우리 사회가 어찌 인권을 존중하는 법치국가라고 하겠어요.”

이번 사건의 핵심은 별다른 근거도 없이 ‘한 번 조폭은 영원한 조폭’이라는 우리 사회의 ‘낙인찍기’와 가혹한 ‘여론 형벌’이라는 것이다. 검찰과 정치권, 그리고 언론이 합작한 이 ‘낙인찍기’와 ‘여론 재판’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조폭적 폭력’이라는 것이다.

미국이나 독일, 일본 등에서는 전과는 사람의 명예나 신용에 직접 관계되는 것이고, 전과자의 사회 복귀와 갱생을 돕기 위해서 전과를 감추는 것은 보호하도록 하고 있다는 설명이기도 하다. 선거에 나가거나 공인으로서 역할 때문에 이를 공개할 사회적 필요가 인정되는 경우를 제외하곤 함부로 전과를 공개하거나 언론에서 보도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 씨와 가족들이 주장하는 대로 그가 조폭과는 일찍이 관계를 끊은 사람으로 지금은 조폭과 전혀 관계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또 여 씨가 주장하는 대로 이 씨와 주고 받은 돈이 사업상 오간 돈으로 로비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돈이었다면 이 사건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다 해도 지금으로서는 검찰의 기소 내용과 크게 달라질 게 없다. 왜냐하면 애당초 여 씨를 조폭으로 잡아 넣은 것도 아니고 ‘로비도 없었다’는 게 검찰의 수사 결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 사회적인 맥락에서 이해하자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야당과 언론들이 그렇게 떠들어댔던 ‘조폭게이트’는 말 그대로 근거 없는 ‘여론재판’이었고, ‘가공된 허상의 이미지’가 된다. 국민들은 있지도 않은 ‘조폭 게이트’에 휘둘린 셈이고, 꼭 이것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10·25 재보선의 결과 또한 어떻게 됐을 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그로 인해 여 씨와 그 가족들이 겪은 고통과 피해는 어떻게 보상될 수 있을까.

***의혹을 넘어, 이미지를 넘어…**

말 그대로 의혹의 시대다. 하루가 달리 숱한 의혹들이 제기되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하게 파헤쳐지는 일은 드물다. 정치권과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뒤흔들던 의혹 사건들이지만 잠시 그 때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실체적인 진실과는 무관하게 망각의 무덤에 묻혀진다.

총풍, 북풍 사건이 그렇고 특별검사 까지 임명됐던 옷로비 사건이나 조폐공사 파업 유도사건도 마찬가지였다. 특별검사까지 임명돼 진실 찾기에 나섰지만 실체적인 진실은 여전히 미궁으로 남아 있지 않은가.

이들 의혹 사건들은 시한폭탄이기도 하다. 진승현 게이트처럼 언제 어떤 모습으로 또 그 의혹의 일단이 불쑥 불거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총풍, 북풍 사건 또한 내년 대통령 선거 때면 또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불씨가 지펴질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온갖 의혹 사건들이 그 진상과는 무관하게 의혹만으로 남을 때 그 사회적 폐해는 이루 말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 넓게 퍼지고 있는 불신과 냉소의 분위기가 바로 그것이다. 그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하게 진상이 드러나지 않을 때 의혹은 우리 사회의 토대를 뿌리부터 해체한다.

의혹의 잔영만이 이미지로 각인되는 불신의 토양에서는 진실이 숨쉴 틈이 없다. 생산적인 토론이나 합리적인 주장이 설 땅이 없게 된다. 진실이나 사실과는 무관하게 근거 없는 의혹이 여론을 지배하고 이미지 조작의 정치 공학이 판을 칠 때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이나 피해자들이 당해야 할 고통과 상처를 생각한다면 우리 언론의 ‘의혹보도’ 관행도 이제는 달라져야 할 때다.

의혹을 ‘사냥’할 게 아니라, 설령 진실과 진상을 온전히 드러내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진실을 찾고 진상을 규명하려는 노력까지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닐까. 취재할수록 답답해지는, 더 막막해지기도 하는 여 씨 사건의 취재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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