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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란의 '미주알 고주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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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란의 '미주알 고주알' <1>

저 아득한 질서 속으로

일찍이 연암 박지원 선생께서는 ‘앞을 바라보면 뒤는 놓치게 되고 왼편을 돌아보면 오른쪽을 잃게 된다’고 하셨다. 이젠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 것 같다.

생래적으로 나는 한꺼번에 두가지 일은 하지 못한다. 그런 나를 두고 사람들은 단순하다거나 미련하다는 표현을 쓴다. 나로써는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켜놓고 통화를 한다거나 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동시에 두 명의 남자 혹은 여자들과 연애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나는 서점이나 찻집, 빵집도 다니는 데만 다닌다. 만나는 사람도 일정한 건 두말할 나위도 없다.

어쩌자고 자꾸만 내 결점을 들춰내는 것 같지만, 게다가 나는 길눈까지 어두운 편이다. 그런 내가 운전을 하겠다고 했을 때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손을 휘휘 내저으며 만류한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대단한 기계치인 내가 십이년 전에 운전면허를 땄다는 것은 정말이지 놀랄만한 일이다. 우선 나 자신보다도 나를 잘 아는 주변 사람들이 더 놀랐다. 빳빳한 운전면허를 받아든 나는 의기양양해졌다.

아무래도 운전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 건 여행 때문이다. 나는 여행을 자주 가는 편이다. 여행을 떠날 때면 짐이 가득 든 무거운 가방을 이고지고 고속버스를 타거나 기차를 이용한다.

그러던 어느 참에, 아마 멀디 먼 강원도 오지 어딘가를 다녀온 후부터인 것 같다. 나는 무거운 짐가방을 든 채 장기 여행하는 것에 지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나는 더 이상 스무살도 청춘도 아니었다. 여행을 한 번 갔다오면 힘에 부쳤고 몹시 피곤했다. 숙소를 중심으로 택시나 버스를 타고 인근을 산책하는 것에도 싫증이 난 상태였다. 게다가 지방 여행을 하는 덴 교통요금 또한 만만치 않게 드는 것이다.

내가 소지한 면허는 그동안 일명 ‘장롱살인면허’가 돼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는데, 그 과정 또한 나를 지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핸들을 잡아본 것이 십년도 넘은 일이니, 나보다 더 걱정이 태산인 아버지가 나를 자동차에 태우고 과천 현대미술관 주차장으로 갔다. 거기서 하루에 두어 시간씩 사흘 동안 아버지에게 운전을 배웠다. 그리고나서도 안심이 안 된 나는 바로 도로로 뛰어들지 못하고 운전연수를 전문으로 하는 곳에 전화를 걸었다. 보통 두 시간씩 닷새면 끝난다고 했다.

아무렇든 연수를 시작하였다. 역시 차선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나는 신호도 제대로 볼 줄 몰랐고 태생이 그러한지 집중을 필요로 하는 운전 중에도 늘 저도 모르게 딴 생각에 골몰하고 엄한 데 눈길을 주느라 자주 붉은 신호를 못 본 채 건널목을 지나치는 치명적인 실수를 되풀이하곤 했다. 왼쪽 사이드미러를 보면 오른쪽을 놓치게 되고 백밀러를 보면 왼쪽을 놓치는 건 다반사였다. 그건 지금 생각해도 식은땀이 나는 일이지만, 나는 태연했다. 내가 안 비키면 당신들이 알아서 비켜가겠지, 싶은 이기적인 심사가 있었던 모양이다.

나흘째 되는 날, 나는 내 운전연수를 맡고 있던 사람에게 이제 이 정도면 되지 않겠느냐고 다소 뻔뻔스런 표정으로 물어봤다. 그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몹시 자존심이 상하고 말았는데, 그건 내가 다른 운전연수자들보다 판단력이 흐리다는 거였다. 그래서 닷새가 아니라 이틀 정도 더 연수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닷새째 되는 날, 나는 운전연수를 그만뒀다.

그 다음날, 아버지를 옆에 태우고 시내로 자동차를 몰고 나갔다. 수난의 연속이었다. 차선을 무시로 넘나드는 건 기본이고 신호도 무시했다. 물론 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급기야 자동차 안에서 아버지와 서로 언성을 높여가며 싸웠다. 어찌나 서럽고 자존심이 상하는지 눈물이 확확 쏟아졌다.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자동차를 탈 염을 못 내고 있다. 그날 이후 모든 자신감을 잃었기 때문이다.

길을 걷다가 혹은 버스를 타고 있을 적이면 차선을 지키며 질서 정연하게 달리고 있는 자동차들, 그 안에서 핸들을 쥐고 있을 세상의 수많은 운전자들이 신기하기도 하고 내심 부럽기까지 하다. 내겐 없는 무슨 특별한 재능들을 한 가지씩 갖고 있는 것만 같다. 어쩌면 그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딱히 운전을 배워야 할 필요는 없다. 시내로 외출할 때는 대개가 저녁약속이니 맥주도 한잔씩 해야 하고, 그다지 외출이 잦은 것도 아니고, 뭐 또 아쉬운 대로 여행은 늘 그랬던 것처럼 고속버스나 기차를 이용하면 되는 것이고. 아, 그러나 생각은 이렇게 해도 나는 운전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지금은 너무나도 부러운 것이다.

나는 창밖이 내다보이는 이층 창가에 앉아 물끄러미 차도를 내려다보고 있다. 한 번 어! 하고 벌어진 입이 좀체 다물어지질 않는다. 그 놀랍도록 질서정연함 속에서 자동차들은 경적 한 번 울리지 않고 앞으로 뒤로 옆으로 혹은 휙 아주 방향을 틀어 제 갈 길들을 가고 있다. 그 질서가 눈부시다. 그들끼리만 알고 나만 모르는 어떤 암묵적인 질서, 다른 세상이 의심할 여지없이 거기 있다. 마음을 비웠다고 생각했지만 이층 창가에 앉아 차도를 보고 있자니 속이 쓰리고 문득 서러운 마음까지 치민다.

새삼스럽지만, 뭐든 쉬운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찻집을 나오면서 나는 다시 갈등에 휩싸인다. 운전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동네 한바퀴를 돌다 오른쪽 사이드 미러를 박살 낸 날이다.

생각해보면, 연암께서 하신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은 아닐 테지. 하지만 어쨌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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