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로 시작해볼까. 코끼리와 기린, 양, 말, 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개나 고양이는 돼지보다 잠이 많아 하루에 열세 시간씩 잠을 잔다. '두발가락나무늘보' 던가, 하루에 스무 시간씩이나 자는 동물들도 있다. 두더지는 사람처럼 평균 여덟 시간씩 잔다. 동물들의 세계도 법칙이란 게 있고 여기 못지않은 치열한 생존 투쟁이 벌어지는 곳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살아남기 위한 본능은 눈물겨운 데가 있는 법이다. 다른 동물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도록 나무 꼭대기에서 주로 생활하는 동물은 안심하고 잠을 많이 자는 반면에 사자나 표범 등 힘센 동물에게 공격을 받기 쉬운 초원의 동물들은 하루 대부분 깨어 있어야만 한다. 퀴즈의 정답은 그 모두 각성상태에 있어야 하는 동물들이라는 거다. 코끼리는 하루에 세 시간밖에 자지 않는다.
불면증이란 한달이상 증상이 지속되는 경우를 말하는 게 사실이라면, 어쩌면 나는 불면증에 시달린다고 말할 자격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경험에 따르면 한달 이상 증상이 지속된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앉아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하는 등등의 일상적인 일들을 정상적으로 하진 못할 거란 짐작이 든다. 그땐 지체없이 신경정신과란 델 가보는 게 낫겠지.
이제 겨우 사흘? 이 정도면 이번 내 불면증은 참고 견딜만하다. 여기서 일주일, 열흘 이상 불면이 지속되면 그땐 정말 고통스럽다. 모든 게 그렇지만 불면도 겪어본 사람만이 그 고통을 안다.
얼마 전에 나는 극심한 편두통을 경험했다. 나는 그게 말로만 듣던 편두통이란 걸 모르고 내 머릿속에 드디어 무슨 심각한 문제가 생겼구나, 부들부들 몸을 떨었었다. '날카로운 송곳으로 머리를 쿡쿡 찌르는 것 같다'는 상식적인 표현을 그때 처음 경험했고 친구들의 말을 통해서 그게 편두통이라는 걸 알았다. 얼얼해진 한쪽 머리를 붙잡고 나는 생각했다. 이것보단 차라리 불면증이 더 낫겠다! 그 말이 씨가 되었는지, 며칠째 불면에 시달리고 있다.
사람이 잠을 자야 하는 이유는 많다. 에너지 보전을 위해, 수면이 중추신경의 발달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기억과 학습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등등. 하지만 불면증의 원인이란 건 명확히 밝혀진 바 없다. 약물 알코올 중독이나 불안, 스트레스 등 정신적이 요인이란 것 외에는. 왜 잠을 자지 못하는가. 이 질문의 해답은 어쩌면 자고 싶으나 못 자는, 그 당사자만이 가장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 곰곰히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는 내가 무엇 때문에 불면에 시달리고 있는지, 그래, 알 것도 같다.
얼마전부터 나는 전전긍긍하고 있다. 갖고 있던 멜라토닌이 다 떨어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불면의 잦은 호소 때문인지, 주위에서 불면에 좋다는 약을 소개해주거나 불면을 이기는 방법 같은 것을 상세히 알려주곤 한다. 내 침대에는 숙면을 도와준다는 아마씨와 라벤다로 속이 채워진 '눈 베게'도 있다.
잠이 오지 않을 것 같거나, 아니면 그 맛과 향기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고 커피를 마신 날이면 나는 잠자기 두어 시간 전에 멜라토닌 두알을 복용한다. 컨디션이 괜찮은 날이면 더러 잠이 오기도 한다. 그 가까스런 우연을 기대하면서 멜라토닌을 먹는 것이다. 약 한 병이 바닥나는 건 순식간이다. 가까스런 우연이라고 말했지만 아마 나는 상당히 그 약에 의지하고 있던 모양이다.
한 친구가 육개월만에 미국에서 돌아왔다. 나는 다짜고짜 물었다. 내 멜라토닌 사왔어? 사왔어? 응? 사왔냐고? 친구가 무표정한 얼굴로 이렇게 말한다. 잠 안 오면, 올 때까지 그냥 기다려봐!
나처럼 불면 때문에 멜라토닌을 복용하는 분들께 전한다. 최근에 멜라토닌이 불면증의 특효약처럼 알려지고 있는데 아직 검증된 사실이 없다. 부작용에 대한 연구도 충분하지 않다. 불면증뿐만 아니라 수명을 연장시키거나 성기능을 활성화시키며 암까지 치료할 수 있다는 설은 더더군다나 의학적으로 증명된 바가 없음을 알려드린다.
최근 '라이프'라는 미국 월간지에서 불면증을 퇴치하는 열가지 방법을 소개했다. ①잠을 못 자더라도 7-8시간은 잠자리를 떠나지 말 것 ②카페인 성분이 든 음식을 피할 것 ③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에어로빅이나 심한 운동은 피할 것 ④담배, 지나친 음주는 피할 것 ⑤진정 효과가 있는 식물성 차를 마실 것 ⑥취침 전 흥분되는 일을 하지 말고 잠자리에는 직장 일을 가져가지 말 것 ⑦따뜻한 물로 목욕해 긴장을 풀어줄 것 ⑧침실은 어둡고 조용하고 시원하게 유지할 것 ⑨라디오나 음악을 들을 것(그러면 당신을 괴롭히는 문제가 아닌 다른 문제에 집중할 수 있다) ⑩낮잠을 피할 것.
딱히 새로운 방법은 없다. 그러나 사실 저걸 다 지키는 것도 쉬운 건 아니다. 이것 열 가지 이외에도 내가 알고 있는 불면을 치료하는 방법들은 참으로 다양하다. 하지만 어느 것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실제로 불면이 오래 지속되면 그 모든 것을 할 의욕이 일체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문제는 바로 그거다.
아이러니하지만, 불면이 시작되면 한 가지 좋은 점도 있다. '자신'에 대해서 들여다볼 시간이 많아진다는 것. 물론 그런 시간 때문에도 잠이 오지 않긴 하지만. 하지만 불면이 한 번씩 지나가고 나면 난 문득 이런 생각까지도 하는 것이다. 세상에 '엄마'가 없는 것처럼 이따금씩의 감기나, 우울, 불면이 없다면 세상은 너무 건조하고 무의미하겠지, 라고.
어쩌면 이 글을 쓰고 난 지금부터 나는 또다시 불면에 시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젠 그렇게 두렵지만도 않다. 오늘도 잠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이른바 '불면공포증'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기다리면, 언젠가 잠은 올 테니까. 너무 깊이 잠들어 이 칼럼의 원고 마감을 지키지 못하게 될 지경까지 올지도 모를 테니까.
의학사전에 불면증(不眠症)이라는 병명이 없다는 건, 특히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불면증은 하나의 증상일 뿐이다. 잠이 안 온다고? 그래, 그렇다면 잠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설마 한달이 가겠어 두달이 가겠어. 이렇게 단순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무슨 뾰족한 수가 없어서는, 정말 아니다.
(불면이 심각해지자 급기야 평소에도 썩 좋지도 않았던 목과 어깨의 근육에도 문제가 생겼다. 게다가 느닷없는 편두통까지. 육체에 대한 두려움이 구체적으로 커졌다. 갑자기 나는 꿔준 돈을 독촉하러 가는 양 발걸음을 급히 해 '명상요가센터'를 찾기에 이르렀다. 물론, 다음번 칼럼은 새로 시작한 '요가'에 관한 것이 되겠지?)
P.S. 이 원고의 마감은 오늘(11일) 아침 여섯시까지였다. 그것도 그 전날 마감인 것을 내가 막무가내로 우겨 겨우 아침 여섯시까지로 미뤄둔 상태였다. 늦은 외출에서 돌아온 나는 자명종시계를 맞춰놓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번 칼럼엔 무슨 이야기를 쓸까, 자못 진지하게 고민도 하였다. 슬슬 어깨와 목의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지금 일어나서 원고를 써야 하는데, 이렇게 잠이 들면 안 되는데, 아아, 정말 이러면 안 되는데…… 나는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아침 여덟시! 원고 마감시간이 지나 있었다. 그러나 나는 태연자약하다. 혼자 슬쩍 웃기까지 한다. 이 칼럼의 담당기자는 지금쯤 애를 태우고 있을 텐데. 아무려나, 난, 몇 시간 푹 자고 일어나니 기분이 정말 좋다.
어제는 밤을 꼴딱 세우고 아침 여덟시 넘어 간신히 두어 시간 자고 깨어났다. 사흘 내내 그랬다. 그러니 어제 점심약속부터 시작한 긴 외출 끝에, 원고마감을 앞두고 스륵 잠이 들어버린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커피까지 마셨는데도 말이다. ……원고마감? 나는 대책없이 뻔뻔해지고 있다. 내일의 닭보단 오늘의 달걀이 더 중요하단 생각 때문이겠지.
지금은 출근시간인가보다. 골목길을 내려가는 사람들의 발짝소리가 분주하고 커튼 사이로 햇살이 환하다. 나는 게으른 고양이처럼 등을 활짝 펼치곤 기지개를 켠다. 이제 슬슬 이 칼럼을 써야겠다. 그래도 양심이란 게 있어서, 이 칼럼을 담당하고 있는 전홍기혜씨께 미안하단 말을 꼭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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