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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라크는 제2의 일본이 될 수 없다"

"민주시장경제 이식은 환상, 약탈과 저항만 있을 뿐"

전후 이라크에 대한 장밋빛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는 부시 미 행정부는 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을 모델로 삼고 있다. 7년 가까운 점령을 통해 일본을 민주화시키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일으켰듯이 이라크에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정착시켜 중동지역 변화의 교두보로 삼겠다는 것이다. 그들의 시나리오는 과연 현실이 될 것인가.

미국의 저명한 일본 현대사 전문가 존 다우어(MIT 교수)의 답은'아니오'다. 2000년 퓰리처상에 빛나는 <패배의 수용: 2차 세계대전 후의 일본>의 저자 다우어는 네가지 이유를 들어 일본의 사례는 이라크에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전리품 나눠갖기 급급하면 점령 정책 실패해"**

다우어가 '점령과 제국: 이라크와 일본의 차이(Occupations and Empires: why Iraq is not Japan)' 제하의 논평에서 이라크와 일본의 차이로 꼽은 첫째는 기본적인 국가 조직의 실태와 국민적 분열상이다. 2차 대전후 일본은 국가의 기본 틀이 유지됐고 넓은 정치적 스펙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응집력이 높았으나 이라크는 인종적ㆍ종교적ㆍ지역적으로 분열돼 있는 것이다.

둘째, 민주화에 대한 경험이다. 일본은 1920년대 다이쇼(大正)시대에 이미 시민사회의 형식과 이념을 시도, '민주화'에 대한 경험이 있었으나 이라크에는 그같은 경험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셋째, 경제적 기반의 문제다. 패전 당시 일본은 상당한 수준의 근대 산업기반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이라크는 천연자원(석유)만을 수출했을 뿐, 이렇다할 산업 기반이 없다.

넷째, 경제 개발 전략의 차이다. 일본은 미군 사령부의 비호 아래 외국인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일본 정부에 주도권을 부여하면서 재건사업을 폈다. 이라크는 그와 정반대로 외국인들이 재건사업의 일부라도 따내고 민영화를 통해 '전리품'을 나눠 가지려는 등 돈벌이에만 혈안이 돼있다.

다우어는 이같은 네가지 차이가 미국의 이라크 점령정책이 실패할 가능성을 높게 하고 있다고 경고하고 미군이 철수해야 한다는 이라크인들의 요구가 머지 않아 행동으로 급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음은 존 다우어 논평의 전문이다. 이 글은 미국의 진보적 비평 전문 웹사이트 ZNet(www.zmag.org)에 지난 9일 게재됐다. 편집자.

***점령과 제국: 이라크와 일본의 차이**

누가 점령당하길 원하겠는가?

2차 세계대전 후 일본 총리를 네 번이나 지낸 보수 정객 요시다 시게루는 맥아더 사령부(GHQ) 치하를 회고하며 이렇게 짧게 물었다. 요시다는 GHQ라는 무시무시한 말을 들을 때마다 "당장 미국으로 가!(Go Home Quickly)"의 이니셜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미국인들은 물론 가지 않았다. 미군의 일본 점령은 1945년 8월 시작됐고 맥아더는 수년 내에 짐을 싸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1948년에 있을 미국 대통령 선거를 노렸다) 그러나 점령 사령부는 1952년 4월까지 일본을 떠나지 않았다. 태평양전쟁 기간의 거의 두배인 6년 반 이상 점령이 지속됐다.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미군은 여전히 거기 있다. 오키나와에서는 주민들과의 마찰을 일으키며 위압적인 모습으로, 일본열도의 나머지 지역에서는 다소 덜 소란스럽게 있다.

일본 점령이 현 이라크 상황에 대해 주는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같은 '끝없는 얽혀듬'일 것이다. 총독과 군대를 해외에 파견하는 것은 쉽지만 철수는 훨씬 어렵다. 점령과 제국에는 그 자체의 냉혹한 논리가 있다.

달리 말하자면, 이라크 전후 상황에 대한 장밋빛 시나리오를 간절히 바라는 미국 정책결정자들과 논객들이 자주 거론하는 일본 주둔 사례는 이라크에 대한 모델로 삼을 만한 것이 거의 없다.

심지어 요시다의 불만조차도 두 경우가 얼마나 다른지를 말해준다. 그는 불만을 참고 정복자들에 협력했고 그의 동료들도 그랬다. 패전에 따른 반미 시위는 없었다. 점령군에 대한 테러나 폭력사건도 전혀 없었다.

일본만의 독특한 상황은 이렇게 설명될 수 있다. 전쟁이 끝났을 때도 일왕(日王)을 필두로 중앙의 강한 관료제(군은 제외)에서 말단 조직까지의 국가 기본 틀은 그대로 유지됐다. 요시다 같은 보수주의자에서부터 공산당까지,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응집력은 높았다. 이는 이라크의 종교적, 민족적, 부족적 분열과는 정반대다. 펜타곤의 비밀스런 작업으로 선정된 망명객의 무리를 이끌고 들어가 오랫동안 떠나있던 그들의 조국에 새로운 정치질서를 만들려는 것이 바그다드 입성 방식이다. 도쿄 입성 방식은 그와 달랐다.

일본 점령도 무질서와 부정부패로부터 자유로웠던 것은 분명 아니다. 일왕의 항복 선언 후 미군 도착까지 2주일 동안 군수품에 대한 대규모 약탈이 있었다. 약탈의 대부분은 군부와 민간 관료, 거대 기업가들에 의해 자행됐는데, 대규모 물자가 45년부터 49년까지 번성했던 암시장으로 조금씩 유입되고 있었다. 부정부패를 통해 얻은 물자 대부분은 보수 세력이 주로 만든 신흥 정당들의 금고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라크의 상황처럼) 조직 폭력단들이 트럭과 버스를 가지고 박물관에 들어가 약탈하지는 않았고 도서관을 파괴했던 군중도 없었다. 재건 '붐'에서 한몫 잡으려고 외부에서 유입되는 정상배들도 없었다.

맥아더 장군의 지휘로 미국인들은 광범위한 개혁을 시작했다. 국민주권을 확립하고 왕을 "상징"적 지위로 만들며 남녀평등을 비롯, 민권의 실질적인 향상을 보장하는 신헌법 제정이 개혁의 중심이었다. 군국주의자들이 권력을 장악했던 1930년대 이전, 일본인들이 이미 시민사회의 형식과 이념을 실험했다는 사실은 그같은 "민주화"를 잘 수용할 수 있는 토대였다. 이와 비견할 만한 민주주의의 경험이 이라크에는 없다.

***상이한 경제 모델**

경제정책의 경우, 작은 정부와 거대 기업에 대한 신념을 가진 미국인들이 이라크의 부(富)를 미국 기업에 이전시킬 자본주의를 이식하려는 것도 일본의 경우와는 완전 반대다.

일본 주둔 후 최초의 개혁 단계에서 나온 "경제 민주화"라는 이상은 루즈벨트의 뉴딜에 담긴 자유주의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이는 강력한 노동운동을 자극했고 지주로부터 토지를 뺏어 소농에게 나눠주는 급진적인 토지개혁을 수반했다.

개혁 과정에 냉전이란 요소가 개입하기 전까지, 점령 정책의 우선 과제에는 기업 트러스트를 깨고 지분구조를 다각화하는 것도 있었다. 심지어 보수적인 맥아더 조차도 자이바츠(재벌)의 과점에 따른 부의 집중은 봉건적이고 "사적 소유에 의한 사회주의"의 한 형태라고 주장했다. 부유층에게 더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는 조세 구조를 만드는 것도 경제 민주화를 향상시켰다.

당시까지만 해도 불운으로 여겨졌던 일본의 천연자원 부족은 아이러니하게도 행운이었다. 석유가 풍부한 이라크와는 달리 경제적 이해를 쫓아 일본으로 들어가겠다고 아우성치는 외부세력이 없었다. 실제로 일본 경제에 진출하고자 하는 외부세력은 거의 없었다. 한국 전쟁 발발로 군수품 조달 붐이 일어났던 1950년까지(요시다는 "신의 선물"이라 칭했다) 일본 경제에 대한 전망은 불투명했고 전망하는 것 자체가 금지될 지경이었다.

***내부로부터의 재건**

일본을 위한 마샬플랜은 없었다. 초토화된 나라를 재건은 거의 전적으로 일본인들이 책임져야 했다. 이것 역시 행운이었다. 파괴적인 패배의 결과로 일본 군대는 해체됐고 군수품 생산은 금지됐으며 수많은 정책결정가와 자본가, 경영인, 엔지니어, 숙련ㆍ비숙련 노동자들은 생산적인 일을 하는 민간 기업으로 발길을 돌렸다.

전투기를 만들던 사람들이 오늘날 일본을 거미줄처럼 엮고 있는 "총알 열차" 철도 시스템을 개발하는데 그들의 재능을 발휘했다.

탱크를 만들던 사람들은 중장비를 만들었다. 히타치나 도시바 같은 대형 전자 회사들은 군수품 도급에서 소비재 생산으로 옮겨갔다. 혼다와 소니 같은 거대 기업들은 초기의 어려움을 딛고 화려하게 일어섰다.

외부에서도 경제 재건을 도왔지만 이라크에서 보여지는 직접 투자와 직접 계약은 없었다. 일례로, 오늘날 일본의 진수로 여겨지는 품질 관리(quality-control)는 1949년 미국의 통계학자 에드워드 데밍에 의해 일본인 엔지지어와 기업가들에게 도입됐다. 그리고 한국전쟁 종전 후 미국은 일본 기업이 미국 사업권과 특허를 받도록 주선해 냉전 시대 동맹으로서 재건을 촉진시켰다.

***'국가 주도와 외국인 배제(pro-state and anti-foreigner)'**

그러나 전후 일본의 경제정책과 부시 행정부에 의해 제기되고 있는 이라크 어젠다에는 더욱 큰 차이가 있다. 경제 민주화라는 초기의 이상과는 별도로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국가 주도와 외국인 배제"로 요약되는 아주 엄격한 어젠다를 따랐다.

뉴딜적 사고-성공적이었던 전시 (경제)계획의 교훈, 그리고 보다 일반적으로는 개발도상경제의 역사-에 따라, 일본 정부는 정책 우선권을 설정하고 재건을 지도하는 데에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미군 사령부의 후원하에 경제정책과 관련된 중앙 정부 조직들이 전시보다
더 강한 힘을 갖게 됐다. 일본의 수출 지향 생산성을 촉진시킨다는 명시적인 목적을 위해 1949년 통산성(MITI) 개설을 어느 누구보다도 더 장려한 것은 미국이었다. (물론 70년대 이후 MITI는 일본 불공정 무역 관행의 주범이라고 미국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었다)

국내 경제에 대한 해외 영향력을 제한하는 법을 일본 정부가 도입한 것도 미국의 비호로 이뤄진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자급자족"이 핵심이었고 일본의 거품 경제가 터졌던 90년대까지 이 정책은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70년대와 80년대 세계를 놀라게했던 경제력은 바로 이 "(일본 경제에) 국가는 들어오되 외국인은 나가라(state-in, foreigners-out)" 철학 때문이었다.

***전리품?**

일본경제의 이같은 발전과정은 현재 이라크 관련 뉴스에서 난무하는 경제 시나리오와 매우 다른 것이다. 석유 개발권, 돈벌이 될만한 재건 사업의 계약, 광범위한 "민영화"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아젠다가 전리품에 관한 이야기와 뒤얽혀 널리 유포되고 있다. 고위급 로비스트와 정책결정자들과 선이 닿아있는 '연고자본주의'의 폐해와 더불어 전쟁을 통한 이익 추구라는 인식이 퍼져있다. (미 정부가 최근 공화당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벡텔에 이라크 재건 사업권을 준 것이 한 예다)

미 행정부의 생경한 "자유 시장"이데올로기는 미국 정치지도자들이 추구하는 정치적 신념, 혹은 그들이 이라크의 새 정부와 법을 어떻게 만들고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인들이 알게 된 바와 같이 "점령"은 복잡한 일이다. 승전군을 이끌고 도착한 총독이 겪는 언어(의사소통)의 문제는 일면에 불과하다. 그들이 뽑은 현지인 하급관리는 파괴와 재건을 짭짤한 돈벌이로 인식하는 외국인들과 마찬가지도 또하나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물론 "정권 교체"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와 상관없이, 혹은 미국인 총독이 떠나더라도, 미군 기지는 분명 이라크에 머물 것이다.

자신들의 자산(석유)을 (스스로) 통제하고 이익을 늘이려는 수많은 이라크인들에게 미군 주둔은 제국의 새로운 얼굴로 비춰질 공산이 크다. "당장 미국으로 가"라는 외침이 벌써부터 터져나온다는 사실이 놀랄 일이 아니다.

나아가 또 이 말이 요시다 시게루의 조용한 불평과는 달리, 행동으로 변화한다 해도 놀랄 일은 못된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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