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좋아져서 그런지 요즘 인터넷 서점의 책 소개란에는 책의 무게까지 나온다. 이에 따르면 <한국사 오디세이> 상권은 1천1백26그램(6백4면), 하권은 1천4백87그램(7백96면)이다. 두 권을 합치면 2천6백13그램(1천4백면)이다. 책이 나오고 난 직후에 김정환이 '밥이나 먹세'라고 초대하여 밥집에 갔다가 이 책을 얻어 종이가방에 집어넣어 가지고 오던 날, 이렇게 두꺼운 책을 들고 다니다 보면 팔뚝이 좀 굵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보았다. 이런 '운반 운동'이 처음은 아니었다. 재작년(2001년 8월)에 비슷한 방식으로 증정받은 <내 영혼의 음악 : 시인 김정환의 명반 150선> 역시 무게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6백40면이나 되는, 하드카버의 묵직한 책이었다. 이보다 6개월 전에 받은 <21세기를 지배하는 문화의 키워드 : 예술적 상상력>은 6백16그램(3백56면)이고 2000년 9월에 받은 책은 소설 <파경과 광경>으로 지금 찾아보니 2백98면의 아담한 분량이지만 그 내용이라는 게 그야말로 만만찮아서 참고 또 참고 다 읽으면 머리가 좀 좋아지지 않을까 퍽 기대를 했던 책이었다. 그 중간에 시집도 한 권 받은 게 있는데 2000년 11월의 <해가 뜨다>라는 제목의 시집이 그것이다(1백79그램, 1백10면). 물론 그 전에도 김정환은 음악, 문학, 문화, 평론, 시집에 수다한 역서, 내가 잘 모르는 또 어떤 분야의 책을 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역사다. 가만히 보면 역사가 아니다.
나는 역사를 관점이라고 생각한다(역사는'아와 비아의 투쟁'이다, 도전과 응전이다 등등). 역사는 나열 방식이다(기전체, 편년체, 기사본말체). 역사는 물론 역사에 포섭되어 있는 사람과 사건과 관계와 제반 사항의 잡탕밥이다(예술사, 경제사, 인물사, 전쟁사, 과학사, 분류학의 역사, 분류학의 역사를 찾는 책의 역사를 연구하는 인물들의 역사에 관한 역사...). 하지만 역사 스스로가 역사 내에 있음에도 역사임을 거부하는 것도 있다. 그건 바로 요즘 유행하는 '막말'로 표현하자면 '노가리'다. 역사(가)는 과학(자)을 표방하고 엄밀성과 정확성, 실증을 도구, 또는 윤리로 내세운다. 과학, 줄여 말하면 '학'이다. 고상한 '학' 내지 '학자'에게는 골목에 떠도는 노가리,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이빨', '썰', '구라'(街談巷說道聽塗說者之所造也, <漢書> 藝文志)가 격에 맞지 않을 것이다. 노가리는 역사가 그렇게 하든 말든 개의치 않을 것인데 노가리는 자신도 어쩔 수 없는 무한한 연쇄의 흐름을 타고 대해로 흘러가기에도 바쁘기 때문이다. <한국사 오디세이>는 노가리와 역사의 학이 만나는 현장이다. 노가리냐, 역사냐 딱 잘라서 이야기하라면 아무래도 노가리이기 쉽겠다. 딱 잘라서 말하라는 쪽은 물론 '학'을 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왜 김정환이 역사에 관한 이야기책을 썼을까. 나는 그 비밀을 조금은 알고 있다. 그는 언젠가 내게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수양제는 고구려를 정복하기 위해 네 차례나 원정을 한다. 그 중 두 번째의 전쟁에서 수나라의 백만 군사는 불과 수만 명만 제 나라로 돌아가는 세계 전사에 길이 남을 대패를 당한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의 희생물이 된 것이다. 평양성에서 방어군의 총사령관을 맡고 있던 을지문덕은 이 때의 승리 후에 홀연히 기록 속에서 사라진다. 그 이듬해에, 또 그 이듬해 하여 수양제가 두 번이나 더 고구려로 쳐들어오는데 당연히 있어야 할 을지문덕은 나타나지 않는다. 집에 갔나? 집이 어딘데? 여기까지가 역사의 영역이라면 이후부터는 노가리의 들판이 된다.
"을지문덕의 '을지'는 계급을 뜻한다는 설이 있고 선비족 출신을 뜻한다는 설도 있다. 후자가 흥미롭다. 아니, 정말 고구려답다. 고구려는 전투적 부족의 전시 연합체였던가? 그래서 서쪽 중국에 맞서 강력하게 모였다가, 남쪽을 괴롭히다가 사라져 버렸던가. 거란의 요 제국, 여진의 청 제국쯤으로 경천동지 출현하기 위하여?(상권 312면)"
이처럼 남들이 그냥 넘어갔던 일에 대해 집요하게 쫓아다니고 자기 나름의 결론을 내려(그게 시적으로 오든, 노가리로 오든, 비유로 오든) 대화를 시도하는 게 이 책의 주된 방식이다. 그러므로 그는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노가리꾼들, 이를테면 박지원, 허균, 김만중과 심지어 허준에 이르기까지(허준의 <동의보감>이 육체의 유토피아를 위한 '과학'임을 단박에 파악하고서) 이야기꾼들에 대해 친연감을 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에서 한 마흔 살 넘은 사내치고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드물다. 역사의 주역이 되려는 사람도 있고 역사 속의 사건의 일원으로 만족하는 사람도 있고 역사의 현장에서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지켜보려는 사람, 역사를 기록하고 연구하는 사람, 이런 모든 사람과 현상을 연구하는 사람 기타 등등 하여 대부분의 사내들은 역사를 처삼촌 산소보듯 대할 수는 없게 되어 있다. 특히 20세기 후반에 청년기를 보낸 대한민국의 사내들이라면, 삶 자체가 역사 자체일 수밖에 없다.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이므로 똑같은 일이 지금의 청년들에게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역사는 드라마나 영화, 다큐멘터리에 의해 끊임없이 재현되고 분석되면서 흥미를 끌었지만 책으로 재현된 역사는 무겁고 두껍고 재미가 없었다. 책은 글로 쓰는 것이다. 재미있는 글에는 문체가 있고 서술의 일관성이 있다. 김정환의 <한국사 오디세이>는 외우고 밑줄치고 명심해야 할 교훈 덩어리인 역사가 아니라, 밑줄 치게 하고 외우게 하고 명심시켜야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쓴 역사책이 아니라 '어렸을 적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는 재미있었다'로 시작하여 이야기로서의 역사, 이야기를 매개로 한 '지난한 역사와 복잡한 인간의 사상과 광대무변한 상상력'을 포착하려고 하는 시도로서의 책이다. 이야기책인데 덤으로 이야기를 보충하고 상징하는 자료사진, 그리고 예술품 그림이 들어 있다. 비파형 동검도 나오고 칸딘스키의 그림도 나온다. 왜냐 하면, 본인이 듣기 싫어할지도 모르지만 김정환은 전방위 예술가이므로 그의 이야기책 역시 전방위적이다. 역사=이야기=예술=기록=상상=반성=후회=사랑=총체성=난장판..., 하여 등식부호(=)는 무한으로 이어진다. 역사가 무한이고 이야기가 무한이고 상상이 무한인 한.
나는 중국의 고대사에 관한 한 기전체의 <사기>의 저자 사마천, 통사에서는 <중국의 역사>의 저자 진순신, 조선 역사에서는 기사본말체인 <연려실기술>의 이긍익을 최고로 꼽고 있다. 세계사에서는 올더스 헉슬리의 <세계사 소사>가 명저임을 기억하고는 있는데 너무 오래 전에 읽은 것이라 아직도 그런지 확인해 보지는 못했다. <한국사 오디세이>의 '오디세이'는 한국사가 동떨어진 섬으로서의 역사가 아니라 세계사 속의 한국사로 존재한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말할 것도 없이 저자가 시인이자 이야기꾼임을 폭로한다. 사마천, 진순신과 비교하면 김정환의 노가리가 훨씬 심하고 이긍익과 비교하면 조금 모자란다. <연려실기술>은 그 자체로 과학적인 척하는 공식, 비공식 기록에 소문까지 뒤섞어놓은 잡탕이기 때문에 노가리로 치면 <한국사 오디세이>보다 훨씬 더 불순하다.
불순이라는 말이 나온 김에 말하자면 김정환의 글에는 겨울철 바싹 마른 노가리처럼 살 한 점 없어 보이는 순정함이 있다. 본인이 아무리 너스레를 떨며 아닌 척해도 알 만한 사람은 알게 되어 있다. 더러운 연못에 뿌리내린 연과 같이, 스스로 필터가 되려는 '착한' 심성에서 나오는 본질적인 순정성이라고나 할까. 연못이 죽어버린 갯벌처럼 너무 더러워지면 그 역시 참지 못하고 그가 좋아하는 말대로 '방방' 떠서 어디로, 다른 멋진 곳으로 가버릴 테지만.
십여년 전에 나는 이런 글을 썼었다.
'그는 역사가였다. 그는 공식적인 직업이 없었다. 굳이 이름 붙인다면 재야 사학자였다. 그가 재야 사학자임을 아는 사람은 그가 사는 동네의 아이들뿐이었다. 아이들에게 전쟁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그것이 그의 직업이었고 보람이었으며 이승에서 찾아낸 유일한 재미였다. 그의 이야기를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기억력과 분석력과 끊임없이 솟아나는 새로운 이야기에 놀라게 마련이었다. 그에게 책을 써보라고 권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 그에게 나가서 일을 하라, 병을 고치고 새로운 출발을 하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그들의 충고를 따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을 사람이 없을 때는 숲에 올라가 노래를 불렀다. 어쩌다 그 노래를 들은 사람은 그의 목소리의 아름다움에 대해 한마디씩 하게 마련이었다. 그리고 어느날 그는 사라졌다. 아이들은 그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른들은 그가 죽었다거나 없어졌다고 하지 않고 떠났다고 했다. 아이들은 대부분 그렇게 기억했다. 이제 그 아이들은 다 자랐을 것이다. 이제 나는 그를 기억할 때마다 고통을 느낀다. 그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위대한 전쟁 사가였다. 요컨대 그는 누구에게나, 그 자신에게도 무해무익했다. 오오, 나는 누구보다 위대한 장군인 그가 어린 영혼들을 지휘하여 세월과 세상을 상대로 한 대전에서, 통쾌하게 싸워 전사했다고 기록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지 못한다.'(졸저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의 '역사가' 부분)
그때 이미 나는 역사가가, 재야 역사가가 본질적으로 '노가리꾼'임을 알고 있었던가. 이제 김정환의 <한국사 오디세이>를 통해 그때의 내 생각이 실없는 노가리로 끝나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말 김정환은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를 듣지 않을 때면 혼자 매혹적인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드높은 미성의 노래는 아무래도 돛처럼 불룩한 배에서 나오는 것 같다. 그 배에서 나오는 게 노래뿐일까. 그 뱃속에 들어가는 게 어찌 밥과 술뿐이리오.
사족. 그날 김정환을 만나기 직전, 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노가리가 나왔다.
"김정환 형이 이때까지 낸 책을 쌓으면 그 형 키를 넘겠지? 소설 쓰는 김주영 선생은 안 되는 걸 내가 알거든."
"설마 그렇게까지야 되겠어? 그러지 말고 무게로 따져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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