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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보트에서 보내온 평화의 편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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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보트에서 보내온 평화의 편지 <3>

상의군인 재활센터에서 만난 스리랑카 내전의 기억

10월 9일부터 10일, 피스보트와 함께 콜롬보에 도착한 한국평화프로젝트 팀은 지구대학 학생들, 쓰리랑카 전문가 시부야 선생, 일본 비폭력 평화대 대표 키미지마 교수와 오카타씨, 그리고 국제 비폭력 평화대 13명과 함께 이틀간의 평화여행을 함께 했다. 평화프로젝트팀의 임영신(이라크 반전평화팀)씨가 글을, 김박태식(비폭력평화물결)씨가 사진을 보내왔다. 편집자

10월의 쓰리랑카, 그러나 이곳에 가을은 없다. 일년 내내 여름일 뿐인 스리랑카, 그 맑은 햇빛 사이로 갑자기 비가 듣는다. 후두득 떨어지는 빗방울들 사이로 사람들은 모두 준비했다는 듯이 우산을 펼쳐든다. 스콜이었다. 그렇게 쓰리랑카 사람들은 햇빛과 스콜을 위해 늘 우산을 들고 다니는 것이었다. 5분 후 거짓말처럼 다시 햇살이 찬란하다. 사람들의 우산도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한국돈 천원이면 한 무더기의 사과를, 한 다발의 바나나를 안겨주는 넉넉한 시장, 큰 빌딩 사이 사이 식민의 흔적인 고풍스러운 영국풍 건물들과 바다가 주는 애잔한 아름다움. 그 아름다운 섬을 피로 적셔 온 20년간의 내전, 수십만명이 흘린 핏물들...

지난 2002년 2월, 스리랑카 정부와 타밀타이거(LTTE)의 휴전으로 참으로 오랜만에 평화를 누리고 있는 스리랑카 사람들의 이 위태로운 평화, 그 속에 우리는 발을 디디기 시작했다

1천8백만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스리랑카, 그러나 우리는 다만 스리랑카의 인구가 1천8백만명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 인구를 이루고 있는 77%의 싱할라족과 23%의 타밀족 그것은 단순한 구분이 아니라 북부 지역은 타밀족이 집중되어 있고 남부와 동서쪽은 싱할라 족의 주요거주지이다.

사진1.<상의군인재활센터의 건물을 둘러보고 있는 참석자들과 안내를 해주는 군인들>

콜롬보의 도시에서 30분쯤을 차로 더 가 도착한 상의군인재활센터(Army Rehabilitation Center). 군인들이 총을 들고 지키고 있는 삼엄한 정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니 숲과 나무 꽃들로 그득한 아름다운 정원이다. 곳곳에 사람들이 페인트가 벗겨진 곳을 새로 칠하고 있고 곳을 새로 심고 있기도 하다. 모두들 될 수 있는 천천히 그 일들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본인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의료장교가 군복을 입고 우리를 맞이한다. 3개의 병동 91개의 침상이 있다는 재활센터, 그 중 21명의 환자가 함께 있는 한 병동에 들어갔다. 육해공을 통틀어 모든 부상자들은 치료 후 이곳으로 후송되어 재활치료를 정부군의 군 재활병원인 것이다.

“이곳에 누워있는 환자들은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에 맞서 싸우다가 부상을 입은 스리랑카 정부군 군인들입니다.”

테러리스트, 그가 말하는 테러리스트는 지난 20년간 스리랑카 정부군과 내전을 벌이고 있는 타밀타이거, 타밀족 군인들인 것이다.

그는 전신이 마비된 한 사람 앞에 서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환자복 사이로 보이는 그의 검은 발목과 하얀 발바닥, 걸어본 기억이 오래인 듯, 그의 발엔 굳은 살이라곤 찾아볼 길이 없다.

“이 클라이언트의 경우 뒷목에 부상을 입으며 경추가 손상되어 걸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휠체어가 있어도 스스로 조작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전동휠체어가 필요한데 너무 고가라서 지급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욕창을 방지하기 위해 이 클라이언트의 경우 물침대를 사용하고 3시간에 한 번씩 자세를 바꾸어 줍니다.”

그의 일과는 그렇게 물 침대 위에서 세시간에 한 번씩 자세를 바꾸며 하루를 지내는 것이었다.

***검은 의수, 검은 의족**

이 센터는 의료치료, 심리치료, 물리치료 크게 세 파트의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클라이언트가 20대 초반의 청년들입니다. 이들은 부상을 입고 나면 정상적인 결혼, 직업, 사회생활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의료적 치료만으로는 사회에 다시 복귀할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의료, 심리, 물리치료와 더불어 직업훈련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환자 중 이곳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장기간 이 센터에서 사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치료기간 동안도 군에서 입은 부상이기 때문에 월급이 지급됩니다. 그것이 이곳이 일반 민간 재활치료소와 가장 다른 점입니다.”

그러나 월급이 지급되고 이곳에 살 수 있다 한들 이곳에 남는 이들은 돌아갈 곳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인 것이다. 쓰리랑카 전문가 시부야 선생의 이야기에 의하면 결국 모병제인 스리랑카 사회에서 군인이 되는 것은 부유하거나 배운 사람들이 아니라 대학을 가지 못하거나 갈 수도 없는 시골의 청년들인 것이다. 돌보아 줄 가족이 없거나, 결혼할 수 없을 만큼 정신적 신체적 손상을 당한 사람들이 이곳에 남게 되는 것이다.

“이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50% 정도가 이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은 상의군인들입니다.”

문득 정원을 돌보는 사람들이, 페인트 칠을 하는 사람들이 왜 그렇듯 느린 속도로 일을 하고 있었는지가 깨달아졌다.

사진2. <치료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의료치료 현황을 보고 난후 그는 우리를 물리치료실과 직업 치료실로 안내 한다, 선풍기가 쉬임없이 돌아가고 있는 물리치료실로 들어서니 십여명의 환자들이 치료를 받고 있다. 어떤 이는 퍼줄을 맞추고 있고, 어떤 이는 나무 블록을 쌓고 있다. 또 어떤 이는 걷기 연습을, 어떤 이는 공던지기를 하고 있다. 어린 아이들이 쓰는 퍼즐을, 나무 불럭을, 구멍맞추기를 하고 있는 한 때는 건장했을 그들... 그들의 치료를 보다가, 조국을 지키기 위해 청춘을 바친 그들을 위해 정부가 어떻게 돕고 있는 지를 설명하는 고위장교의 설명을 듣다가 그만 밖으로 나와버린다 어떤 조국이 그들의 몸을 부수고, 그들의 삶을 고스란히 앗아갈 자격을 지닐 수 있는가...

망연히 서서 햇빛을 보다가 바깥에 서 있는 군인에게 말을 걸어본다.
언제 입대를 했는지, 왜 군인이 되었는지, 여기서 일하고 있는 것이 행복한지....
아까 안내를 해 주었던 의료장교와 그는 친구인 듯 하다 바깥에서 함께 담배를 피고 있는 그들이 웃으며 내 물음에 답을 하기 시작한다.

그 역시 장교였다. 타닐카 대령(33, Major. Tanilka Perera). 대령이라는 말에 언제 군에 입대했는지를 물으니 벌써 14년째 군 복무를 하고 있다고 한다. 서른세살이라는 그가 14년째 복무를 하려면 그는 19살에 입대를 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만 18세가 지나면 입대가 가능하다는 스리랑카 정부군, 장교의 경우 10년, 사병의 경우 12년이 계약기간이라 하니 그는 4년을 더 복무하고 있는 것이다. 사병의 경우 12년 이상 근무를 하게 되면 월급 뿐 아니라 집을 제공한다 하니 실업과 가난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이들에게 군대는 꽤 괜찮은 직장인 것이다. 죽거나 다치지만 않는다면... 다친다 해도 12년의 계약기간 동안은 군에서 치료 뿐 아니라 월급을 제공하는 동일한 해택과 보장을 주고 있으니 사람들은 그 오랜 전투에도 불구하고 군에 입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타닐카 대령은 자신이 군에 입대한 것은 돈 때문만은 아니라 한다. 스리랑카, 자신의 힘겨운 조국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을 뿐이라고, 특히 이 재활센터에서 다친 어린 군인들을 돕는 일이 자신에겐 참 소중하다고....

그와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아까 병실을 안내해 주었던 의무장교가 다가온다. 타닐카 대령의 이야기를 듣던 그는 타닐카 역시 상이군인이라고 가르쳐 준다. 그는 바지를 걷어 올려 자신의 상처를 보여준다. 그 역시 한 쪽 다리를 잃었다. 92년 12월의 전투에서... 때문에 그는 전방에는 다시 가지 못하고 후방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의 상이군인들을 돌보고 있는 것이다. 그 의료장교는 직업군인이 아니라 자원장교라 한다 스리랑카는 직업군인과 자원군인 두가지 시스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계약군인에 비해 자원군인은 훨씬 적은 월급을 받지만 조금 더 자유로운 편이라고... 83년부터 93년까지 10년간 나이지리아에서 자라서 의사가 된 그는 지금 5년째 군대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사설 병원에 가면 더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지만 조국이 힘들었떤 시기, 밖에서 편안하게 살아온 것에 대한 미안함으로 무언가 하고 싶어 지금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라고...

타밀타이거에겐 적군일 뿐인 그들, 그들 역시 결국은 상처입은 사람이거나 양심을 따르는 선한 시민들일 뿐인 것이다. 직업재활센터까지 다 둘러본 사람들은 상이군인들이 직접 만들었따는 가죽가방이며 열쇠고리 같은 물건들을 몇가지 사서 들고 나왔다. 후원금을 준비해간 피스보트를 위해 군대는 작은 강당에 차를 준비해 두었다. 아름다운 찻잔에 스리랑카의 명품이라는 실론티를 내어 준다. 그리고 장교들이 앞에 앉아 몇가지 사람들의 질문을 받고 간단한 토론을 했다.

어떤 이가 묻는다. “왜 평화를 위해 일하지 않고 남을 죽여야 하는 군인이 되었나요?” 그들은 대답한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군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평화를 위해 싸우고 죽고 다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른 종족, 다른 종교로 인한 타밀족과 싱할라족의 긴 싸움, 2002년 맺은 휴전협정이 아니었다면 이렇듯 이곳에 와 이 사람들을 만나지도 못했을 그 오랜 전투를 지나온 이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평화를 묻고 어떻게 평화를 만들어 가자고 해야 하는가. 평화로운 땅 일본에서 온 젊은이들과 피로 물든 땅 스리랑카에서 청춘을 보낸 이들이 함께 평화에 대해 묻고 대답한다. 그러나 그 물음이 바른 대답인지, 그 답이 바른 답인지 다시 묻고 또 묻게 된다.

차를 마시는 도중 한 군인이 몇 개의 의족을 가지고 들어온다. 각기 길이와 크기가 다른 의족들을 강당 앞쪽에 죽 전시한다. 하나에 450달러 정도 한다는 의족과 의수, 그것은 이 재활센터에서 자신들의 환자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값비싼 보상일 것이다. 그 다양한 의수와 의족들을 들여다 보고 있는데 몇 명의 군인들이 우르르 들어선다. 그리고는 중앙 통로로 와 패션쇼를 하듯 두명씩 걷기 시작한다. 뒤에서부터 앞으로 걸어온 두 명의 군인은 다리를 걷어 각기 다른 의수를 보여준다. 그러더니 마침내 의수에서 다리를 빼내고야 만다. 그는 발 없는 다리에 신고있던 긴 양말을 벗어 잘려나간, 둥그렇게 뭉뚱그려진 얇은 발목을 보여준다. 다시 두 사람이 걸어 들어 오고 그들의 다른 다리와 다른 상처들을 보여주고....

실론티를 마시며 우리는 의족패션쇼를 보는 것이다. 그의 다리가 이 의족에 얼마나 잘 맞는지, 이 의족을 신고 걷는 그의 걸음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이 싱할라 군인들을 위한 재건 병원이 얼마나 그들의 부상당한 전사들을 잘 돌보고 있는지....

한 병사가 의수들을 몇 가지 더 가져와 보여주는데 문득 무언가 조금 낯설었다. 그렇다. 스리랑카의 의수는, 그 피부 빛이 검다. 그들의 잘려나간 손과 다리처럼 그들의 의수와 의족도 검은 빛인 것이다.

단단하고 깨끗한 의수와 의족들을 보다가 그들의 다리가 저토록 둥글고 곱게 아물기까지 그들이 견뎌야 했을 통증들을 가늠해 보다가, 그만 차를 다 마시지 못하고 그곳을 일어선다. 처음부터 끝까지 적군이 아니라 다만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에 의해 부상을 입었다는 그들의 오랜 적, 타밀타이거와 타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또 하나의 스리랑카, 타밀 사람들**

스리랑카 상이군인재활센터에서 나온 우리는 그대로 버스에 올라 다시 콜롬보 시내로 향한다.

정부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 타밀족, 해서 그토록 오래 자신들의 정부를 얻기 위해 싸우고 있는 타밀족,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병원이나 재활센터가 아니라 구호 NGO같은 성격의 '타밀 재건 기구'(Tamils Rehabilitation Organisation. 이하 TLO).

그 곳에서 우리를 맞아준 것은 타밀타이거가 아니라 타밀 사람을 위해 일하고 있는 호주인 마가렛이었다. 이곳에서 일한지 8개월이 되었다는 그녀는 준비해 둔 프리젠테이션을 시작했다.

내전으로 수많은 난민이 발생한 스리랑카 동북부 지역에서 긴급구호와 장기구호, 지뢰제거, 학교운동, 보육 등 타밀 사람들의 재건을 위해 일하고 있는 그들의 재정은 타밀군이 아니라 유니세프, Save The Children 같은 들 그리고 해외의 기관들과 전쟁을 피해 조국을 떠난 타밀사람들의 지원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지난해 2월의 휴전협정 이후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한다.

그러나 아직도 북동부의 전투지역에는 1백50만개의 지뢰가 매설되어 있고, 1백만명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난민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TLO의 주요결정자들은 아직까지 해외활동가들이지만 전체 일을 해가는 인력비율을 보면 99%가 타밀 사람들이라 한다. 6백명이 지뢰제거를 위해, 4백명이 아이들의 교사로, 1백명이 프로젝트를 위해 일하고 있다. 나머지 1천여명 이상의 유급 자원봉사자들을 합치면 대략 2천5백명 정도의 타밀 사람들을 고용해 타밀 사회재건을 위해 일하고 있는 것이다. 또 이들은 마이크로 뱅크를 만들어 작은 공동체 단위의 자립을 위한 창업을 지원하고 있다 몇 농가가 합쳐 트렉터를 사기도 하고, 미싱을 사서 여성들이 봉제공장을 시작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 한 해 동안 1천 2백만 U.S.D의 돈을 차용해 주었다고 한다. 이 돈은 이년 단위로 대출금을 납입하거나 연장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며 신용도 또한 높다고 한다.

이곳에 온지 8개월밖에 안되었지만 이곳에 살기로 결심하고 왔다는 호주 사람 마가렛, 그녀는 무려 3시간 동안을 충실히 TLO의 사업에 대해 설명해 주고 긴 시간동안 질문들을 성의있게 응답해 주었다. 그녀가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를 물으니 호주에서 만나 결혼한 그녀의 남편이 타밀 사람이었고 두 사람을 함깨 타밀을 위해 일하기 위해 올해 초 호주에서 스리랑카로 돌아왔다고 한다. 전쟁만 사람의 생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랑도 이토록 한 사람의 생을 바꾸어 놓는다.

사진3. <TLO 사무실에서 단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참석자들>

TLO, 우리는 그곳에서 타밀타이거를 만나지는 못했다. 그러나 묻는다 싱할라의 청년들의 발목을 팔을 생의 파괴시켜온 테러리스트는 어디에 있는가... 이곳에도 사랑이, 아픔이, 청춘이, 고통이 이렇듯 선연히 살아있을 뿐이다.

타밀타이거의 병사들은 어쩌면 지금도 2005년 선거를 기다리는 대신 동북부의 어느 숲에서 총을 들고 군사훈련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싱할라 사람들이 테러리스트라 부르는 타밀타이거 속에는 타밀의 여인들이, 타밀의 아이들이,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는 아름다운 여자와 청년들이 이 고통과 아픔의 역사 속에서 저마다의 생을 밀어가고 있는 것이다. 타밀의 원수인 싱할라의 군인들은 그렇듯 잘린 다리로 재활병원에서 잃어버린 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룻길, 허나 그 길이 결코 짧다고 느껴지지 않는 것은 우리가 거닐었던 것이 휴전협정으로 사라지지 않은 어떤 전선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바닷가의 작은 호텔로 향하는 길, 스리랑카의 저녁은 참 아름답다. 정갈하고 고즈넉한 정원을 지닌 집들, 마당마다 흐드러진 여름꽃들, 평화롭게 거니는 사람들 그 일상이 지닌 아름다움에 문득 스리랑카로 오는 길, 시부야 선생님이 음악과 내전이란 강의에서 들려주신 스리랑카 혁명군의 노래가 귓전을 흐른다.

“새로운 세계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벌을 받아야 할 정도로 나쁜 일이라면
사슬로 이어서 제 아들을 데리고 가세요.
창으로 찌르고 손가락을 때리며 모진 고문을 하세요.

불길에 휩싸인 나라에서 물소와 같이 태평한 저 젊은이들은 누구인가요
감옥에서 당신의 고문으로 죽은 내 아들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입니다.
내 아이와 같은 아이들이 몇백만으로 거듭 거듭 태어나기를...
그러한 아이들 곁에서 그 아이들을 돌보는 어머니가 되기를..."

아름다운 스리랑카의 저녁길,그 고즈넉한 골목을 흐르는 아름다운 멜로디, 그 땅의 평화에 스민 잔혹한 역사, 애닮은 노래...

<사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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